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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54회 [1부] 54화. 맏형의 책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26 | 회차평점 0 0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둘러쓴 한 체격 건장한 사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누군가를 찾으려는 듯하는 모양새.

 

 

공항을 왕래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지인들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피식 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나 그러했듯 사람들의 시선은 흘깃흘깃 그 청년에게로 쏠렸다.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언뜻 봐도 수상한 차림인 탓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효의 테러리스트들이 전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궐기한 대 사건이 불과 얼마 전이었으니 신경이 쓰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런데 흥미롭게도 로봇들도, 전자 시스템도, AI들도, 경찰들도 그 청년을 향해 제지의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마치 그의 신분의 신뢰성의 확실함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더 큰 이유는 그의 범상치 않은 피지컬이었다.

 

 

거의 2미터 가까이 되는 훤칠한 키도 키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흉기 같은 팔뚝에다 말처럼 맹렬해 보이는 근육, 건물의 두 기둥 같은 강직한 다리까지, 예사롭지 않은 외양이었다.

 

 

더욱이 그 금강석 같은 근육들이 둔탁해보이는 형태가 아닌, 표범처럼 날렵한 모습으로 고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겉보기 자랑을 위해 만들어진 형태가 아닌, 실전과 고행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전사 중의 전사, 혹은 용사들의 수장.

 

 

그런 칭호를 붙여주기에 어울릴 듯한 기품이었다.

 

 

 

 

 

청년은 자신이 평소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즐겨 찾던 옥상 라운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외가 보이는 풍경에 음식점까지 같이 있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멍 때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찾는 손님이 많은 게 고독을 즐기는 그에게는 불편이라면 불편인데, 오늘은 다행히도 한적했다.

 

 

사실은 미리 식당 전체를 돈으로 예약한 덕분이었다.

 

 

 

 

 

 

 

 

“쳇.”

 

 

 

 

 

인적이 없이 고요한 분위기의 저녁.

 

 

노을 지는 하늘이 제법 볼품 있었다.

 

 

청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와 캡 모자를 벗고 자유로이 공기를 맞았다.

 

 

억센 숱의 진회색의 머리카락, 성질이 사나워보이지만 동시에 귀공자처럼 곱상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몸은 그야말로 수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연단된 육체인데 그의 실제 나이는 올해로 스물일곱이었다.

 

 

신체적으로는 확실히 전성기일 나이이지만, 온갖 위기의 경험을 두루 쌓기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였다.

 

 

 

 

 

 

 

 

“이곳에서 마지막 이벤트를 벌인다, 이건가?”

 

 

 

 

 

그는 불만족스러운 투로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나 같았으면 그런 번거러운 절차는 생략한 채 국법으로 처리했을 텐데.

 

 

구태여 법을 만들어서까지 말이야.”

 

 

 

 

 

언뜻 보기엔 불평 같은 말투였으나 그렇다고 불신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뭐, 어련히 훌륭하게 잘 하시겠지.”

 

 

 

 

 

바로 그때 청년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랜슨!”

 

 

 

 

 

잠시 움찔한 자색 눈의 젊은이는 당황한 기색으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거의 비슷한 체격인 다른 사내가 사복 차림으로 모자를 눌러쓴 채 서 있었다.

 

 

랜슨은 설마 상대가 자신을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 말문이 막혔다.

 

 

사내는 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약간 가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형?”

 

 

 

 

 

랜슨의 뺨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불곰이라도 때려잡을 기세였던 강인한 패기가 한순간에 한 마리의 양처럼 온후해졌다.

 

 

상대는 얼굴을 가리던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냈다.

 

 

랜슨과 비슷한 느낌의 외양에 훨씬 더 성숙미와 노련함이 담긴 얼굴의 미남자.

 

 

결 좋은 머리카락은 빛이 반사되는 방향에 따라 고동색으로 보이기도 했고 짙은 밀색 혹은 적갈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동공의 색은 랜슨과 동일한 보랏빛이었는데 그 채도가 훨씬 짙어 자수정을 연상시켰다.

 

 

 

 

 

 

 

 

“저, 저기, 형! 알렉! 그게 말이지.”

 

 

 

 

 

젊은이는 패기넘치는 평소 모습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쭈뼛거렸다.

 

 

마치 장난치다 화분을 깨트리고 엄한 아버지에게 들킬까 끙끙거리는 아이마냥.

 

 

그는 혼날 것을 걱정하는 아이처럼 불안해하는 눈초리를 지었다.

 

 

사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랜슨 쪽으로 뚜벅 뚜벅 다가왔다.

 

 

세게 얻어맞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며 그 덩치로 어울리지 않게 꼴사납게 몸을 움츠린 순간.

 

 

 

 

 

 

 

 

“하아!”

 

 

 

 

 

기습적으로 사내의 품이 자신만큼이나 커다란 젊은 용병의 몸을 꼭 끌어안아 포옹하였다.

 

 

랜슨은 저항할 틈도 없이 사내에게, 아니 제 형에게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일부러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사내는 연거푸 다행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안도하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주님.”

 

 

 

 

 

그제야 불안으로 흔들렸던 랜슨의 눈빛이 측은함과 미안함의 감정을 머금고 수그러들었다.

 

 

칼 끝도 들어가지 않을 듯한 용장이자 맹수였던 그는 자신보다 열세살이나 많은 형의 익숙한 온기에 무장해제되었다.

 

 

 

 

 

 

 

 

“형.”

 

 

 

 

 

“잘 지낸 거 맞지? 다친 데는 없고? 내가 소식 듣고서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몰라.”

 

 

 

 

 

랜슨의 이복형, 알렉시스는 동생의 건강한 모습에 걱정을 내려놓았다.

 

 

이제 덩치는 자신보다 커졌지만 여전히 알렉시스에게 랜슨은 어릴 적의 그 귀여운 아이 그대로였다.

 

 

 

 

 

 

 

 

“한 나라의 황자라는 녀석이 이렇게 무모해서야. 형이 네 소식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 범죄자들을 숙청한다는 핑계로 이 지역 저 지역 쏘다니기나 하고!”

 

 

 

 

 

이에 젊은 용병왕은 퉁명스럽게 황태자에게 투덜거렸다.

 

 

 

 

 

“난 엄연히 복역 중인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중일 뿐이야.”

 

 

 

 

 

랜슨이 맡은 임무는 용병들 속으로 침투하여 그들을 통제하고 제어한 뒤 브리튼에 유용한 방향으로 휘두르는 것.

 

 

측근들 사이에서 불리는 랜슨 대령이라는 칭명은 단순 무의미한 별명이 아닌, 그의 실제 군내 직함을 반영한 칭호였다.

 

 

대외적으로는 신분과 얼굴이 베일에 싸인 용병왕.

 

 

브리튼 군 입장에서는 좌충우돌 군인.

 

 

그리고 본 신분은 황후와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 중 여섯째이자 황자.

 

 

한 나라의 황자가 평화 시에 입대하여 직업 군인이 된 것도 의외인데, 군인으로서 위장 용병이 된 것도, 그 와중에 용병왕이 되어버린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랜슨은 여러모로 형제들 사이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테러리스트 사냥도 다 재미를 위해서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

 

 

 

 

 

“솔직히 말해서 즐기기도 했잖니, 랜슨.”

 

 

 

 

 

알렉시스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화한 어조로 타박했다.

 

 

 

 

 

 

 

 

“게다가 위험 인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굳이 네가 할 필요는 없어.”

 

 

 

 

 

“난 약한 사람이 아니야, 형.”

 

 

 

 

 

“알아. 네가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지. 그래도 난 널 위험한 곳에 내보내긴 싫어.”

 

 

 

 

 

그러자 억울하다는 듯 랜슨이 반항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는 형은? 형은 제국의 앞날을 책임질 귀한 몸이면서도 그 위험한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었었잖아. 그것도 밑바닥부터 시작했었지.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해도 그건 너무 과한 일이었어.”

 

 

 

 

 

20년 전의 그 슬픔을 되새기는 랜슨의 얼굴은 울적함으로 젖어들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랑 할아버지도, 세르빈과 펠렌드로크와 제리와 테디와 이안도, 그리고 나랑 아델도, 그때 형을 사지로 내보내면서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형이 알기나 해?”

 

 

 

 

 

그 설움 섞인 투정에 알렉시스는 멈칫하며 회한으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죄송스러움과 후회감이 그의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알렉시스는 동생을 품에서 놓아준 뒤 그의 어깨 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미안해.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의무를 감당해야 했어. 너를 포함해 내 동생들이, 그리고 나의 가족인 브리튼의 시민들이 더는 공포감에 짓눌리지 않는 미래를 건설하도록. 비록 완벽하게는 못하더라도 그 미래를 건설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했단 말이지.”

 

 

 

 

 

드넓은 어깨를 따스히 토닥이는 형의 손길에 동생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달라. 네게는 건설적인 미래가 열려 있어. 나와 내 동세대가 한 번 희생한 덕에 다음 세대인 너희는 싸움이 아닌 창조적인 길을 택할 수 있게 되었어.”

 

 

 

 

 

따뜻하다고 해서 지금의 말들이 꾸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작전 수행을 하던 중 네가 신대륙 쪽의 무슬림들을 상대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이성의 균형을 잃을 뻔했어. 너와 용병들만으로는 피해 없이 적을 제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거든.

 

 

결과론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뿐이야. 네 경솔함으로 하마터면 너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어.”

 

 

 

 

 

그러자 랜슨도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나야말로! 형이 그 자식들에게 총상을 입는 장면을 생중계로 봤는데 내가 어떻게 맨정신을 유지해?

 

 

나중에야 펠렌드로크에게서 정보를 듣고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또 형 귀한 몸이 상하는 꼴을 보고 얼마나 속이 뒤틀린 줄 알아?”

 

 

 

 

 

분노와 함께 깊은 원망의 감정이 그 항변 속에 녹아있었다.

 

 

 

 

 

 

 

 

“20년 전에도 그랬었지. 정작 주적인 공산주의자들은 감히 형한테 손댈 엄두도 못냈었는데, 정작 엄한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그 짓을 벌였지. 그때도 그자들이 종교적인 광신에 매몰된 채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어.

 

 

그런 정신나간 광신자들을 처벌하는 게 어디가 잘못되었는데!”

 

 

 

 

 

알렉시스도 잘못한 일이 있기에 동생을 더 나무라지는 못했다.

 

 

그는 계엄령 주관자인 아버지 알폰스 황제와 작전의 핵심을 맡은 부관들에게만 진실을 알렸을 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진짜 행방을 은폐하였다.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속이기 위함이었다.

 

 

그 와중에 영악한 둘째 동생 펠렌드로크가 눈치 빠르게 상황을 알아채버린 듯 하지만, 어쨌건 알렉시스의 친인척과 형제들마저도 진실을 미리 알지는 못했다.

 

 

아마 심히 걱정했겠지.

 

 

특히 혈기 넘치고 성격이 급하여 형제들 사이에서도 근육 바보라고 불리는 랜슨이라면 더욱더 그랬으리라.

 

 

 

 

 

 

 

 

“미리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알잖아. 형은 지는 싸움은 애당초 안 하는거.”

 

 

 

 

 

“나도 형 믿어. 그래도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보는 건 또 다르단 말이지.”

 

 

 

 

 

울상짓는 덩치 큰 동생을 달래며 알렉시스는 다시 한 번 포옹으로 위로했다.

 

 

 

 

 

 

 

 

“알겠어. 앞으로는 심려끼치지 않을게.”

 

 

 

 

 

커다란 알렉시스의 손바닥이 진회색의 머릿칼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그러니 너도 약속해줘. 앞으로는 형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알았어.”

 

 

 

 

 

금세 응어리가 풀어진 두 사람은 그간의 우려와 불안감을 해소할 겸 경치 좋은 자리에 앉아 식탁을 공유하였다.

 

 

식사를 나누는 동안 형제는 서로의 근황과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며 진솔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중간 중간 농담도 섞어가면서.

 

 

 

 

 

 

 

 

‘오랜만이네, 랜슨과 단 둘이서 시간 보내는 건.’

 

 

 

 

 

간만의 보상이 그간 철인 노릇을 하느라 문드러지고 은근한 자책감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알렉시스의 심장 위에 치유의 기름을 발라주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껌딱지처럼 늘 따라다녔던 저 귀여운 아이.

 

 

다른 형들보다 맏형인 알렉시스 자신을 향해 유달리 애착을 보였던 소년.

 

 

열세 살 터울의 그 귀염둥이를 돌보던 시간들은 분명 분주했던 청소년 시절 알렉시스의 여러 낙 중 하나였다.

 

 

자신이 전쟁터로 끌려가던 그날, 어린 랜슨이 얼마나 울었는지를 추억하면 절로 가슴이 미어졌다.

 

 

 

 

 

 

 

 

‘그때 내게 애증의 응어리가 생긴 것이겠지.’

 

 

 

 

 

아마 랜슨이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한 것도 과거 큰형이 당한 고생과 수모의 시간에 대한 보복 심리, 혹은 좋아하던 형을 내보내고도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던 나약했던 그 시절 자신에 대한 책망 비슷한 동기였으리라.

 

 

 

 

 

‘난 네가 그저 안전한 세상을 살았으면 했는데.’

 

 

 

 

 

아이러니하게 빚어진 오늘의 현실을 직면하면서 미안함은 더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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