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72회 [1부] 72화. 정산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2.07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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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황제 알폰스 지크프리트 엘 제이코프 엑스칼리프는 기본적으로 중립의 모양새를 지켰다.
그는 자기 맏아들이 지구 상에서 한 종교를 삭제한 행위에 대해 기본적으로 아무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황실은 이번 일과 무관하고 황태자의 계략은 순전히 개인적 신념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정교분리의 원칙 하에 모든 종교를 용인한다는 게 브리튼의 기본 이념이니, 어쩌면 어느 정도는 이터널 클렌징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이슬람만은 타 종교 및 브리튼 국가 시스템과 공존이 불가능한 변질체이니 이터널 클렌징이 잘못된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황제도 여겼다.
오히려 개인적 심정으로는 아들이 전적으로 지혜롭게 처사했다고 믿었다.
큰아들의 능력치와 지혜가 워낙 높아서 성공시킨 것이지 무리한 도전이었음은 부정치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것과는 별개로 황제라는 공적 지위에 있는 입장에서 대놓고 그런 소견을 드러내기도 민망했다.
이슬람이야 지금 온 세계 주민들에게 극악의 유물로 낙인 찍힌 별종이라서 별 논란 없이 넘어갔지만, 혹 누군가가 이렇게 의구심을 표현한다면 어찌하겠는가.
‘만일 당신들의 그 칼날이 공존 불가능한 종교가 아닌, 보통의 종교들까지 향한다면 그때는 어찌하겠소?’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들 유타 황자의 고백에 따르면 황태자는 마인드 퓨리파이어 개량 프로젝트를 주도할 때 단순히 이슬람만을 타겟으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닌 듯한 모양새였다.
일곱 가지 버전의 그 마인드 퓨리파이어 세트는 주로 이슬람 정신을 소멸시키는 데 집중된 기능을 갖기는 했으나 공산주의, 성혁명주의, 범신론적 이교 신앙들도 일정 부분 표적으로 삼는 듯했다.
적어도 그런 쪽 신앙을 소유한 자들의 기존 신앙 의식과 이념을 흔들어놓거나 의심을 품게 만들 정도는 되리라.
이러한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개된다면 알렉시스는 물론 황제의 입장도 곤란해진다.
‘아들 녀석이 너무 유능해도 곤란하군.’
알폰스 황제는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해결의 핵심은 간단하다.
알렉시스 황태자를 치하하지 않고 그의 전략들을 간접적으로 긍정해주면 그만이다.
“마인드 퓨리파이어, 가디언엔젤, 그리고 타르타로스.”
다른 각종 전략들과 인물들도 많이 동원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터널 클렌징의 핵심 성공 요인을 꼽으라면 저 셋만이 해당된다.
예수께 봉헌된 황금과 유향과 몰약에 비견되는 보물들.
황제로서는 저 세 종류의 발명이 알렉시스의 이슬람 소멸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닌, 그저 인류의 복지와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임을 인정해주면 그만이다.
“이슬람 소멸은 그저 그 부산물로서 얻어진 결과일뿐, 일단은 그렇게 입을 맞추도록 하지.”
그래. 선후 관계와 목적과 수단을 서로 바꿔버리자.
분명히 아들 녀석이 자기 계획을 위해 저 도구들을 완성해낸 것이 맞긴 하겠지.
허나 누가 신경쓰겠는가.
때로는 순전히 전쟁 목적으로 개발된 도구들이 전후 평화의 시대에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킨 희대의 위대한 발명품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후일 성과만 확실히 드러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정되기만 한다면, 그 기원이 피로 얼룩졌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겠지.
그리하여 알폰스는 황태자의 계략과 무슬림 진압에 참여했던 그 어느 누구도 따로 치하하지 않기로 하였다.
적어도 그 프로젝트와 관련되어서는 누구도 칭찬하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예외로, 그는 알렉시스가 아닌, 그의 곁을 도운 세 명의 과학자만은 우대하였다.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원형 기술을 고안해낸 나스루딘 마하리쉬.
가디언엔젤의 기본 메커니즘을 제안한 아미타브 카푸르.
뇌파 기술을 바탕으로 타르타로스의 원리를 제공하였고 완성까지 도운 라지쿠마르 샤르마.
공교롭게도 셋 다 인도 출신으로 자기 지역에서는 손에 꼽히는 위인들이었다.
알폰스는 이들을 브리튼 본국으로 초대하여 크게 환대하였다.
그리고 큰 행사와 함께 그들의 공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정하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황제의 인장이 찍힌 명예로운 특별상을 수여하였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의 상보다도 더 가치있는 상급으로 대대손손 가보로 자랑해도 좋을 성과였다.
이 모든 포상 과정에서 이터널 클렌징이나 알렉시스와의 연관성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상급의 명분은 오로지 단 하나, 인류 공익과 제국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뿐이었다.
세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알렉시스와 무관하게 순전히 자기 공으로 상을 받은 셈이었다.
“그대의 발명 덕에 우리 시민들은 중독과 퇴폐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계발할 가능성을 얻게 되었소. 후일 창의력과 잠재력을 폭넓게 개화한 미래의 인재들이 등장하여 세계에 번영과 회복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니 기쁠 따름이오.”
알폰스 황제가 손수 나스루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몸둘 바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폐하.”
“그대에게는 모두의 감사와 칭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오.”
나스루딘은 자신이 이 영광을 차지해도 되는 지 의문스러웠다.
일단 최초 모델을 고안한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을 개량하고 강화해서 일곱 버전의 시리즈로 재탄생시킨 것은 알렉시스의 커버넌트 그룹이었으니까.
하지만 황제는 그 사실은 덮어두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일단 자기 아들 중 둘이 연루되었다는 것이 공론화되면 자칫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발명 의도가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나스루딘은 어쩔 수 없이 기여도 독식에 수긍하였다.
‘불편한 기분이군. 황태자 전하의 공범이 된 기분이야.’
이어서 황제는 아미타브 교수에게도 후한 칭찬과 함께 포상을 공개적으로 선사하였다.
참고로 이번 내전을 계기로 숨겨져 있던 가디언엔젤들의 존재도 어느 정도는 대중에게 드러난 상태였다.
그것을 만들어낸 주체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황제는 이번 기회에 그 중심 역할의 스포트라이트를 아미타브 카푸르에게로 고정해두었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허허, 내 아들 녀석이 그대만큼의 전문성을 갖출 리가 없지 않은가.”
능구렁이 같은 프로 정치꾼 같으니.
말재간으로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아미타브도 하는 수 없이 공로를 모두 뒤집어썼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의지를 돕는 인공지능을 발명하여 인류의 암담한 미래에 한 줄기 희망을 비춰주어 고맙네. 브리튼의 모든 시민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네.”
“미약한 저를 귀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어쨌건 브리튼 황가의 영적 정통성을 지지하시는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시겠군.
가문의 자랑이라며 상을 두고 두고 박제해서 보관하실지도?
아미타브는 즐거워할 바키라의 모습을 상상하며 불편감을 달랬다.
마지막으로 라지쿠마르의 순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칭찬을 받아도 되는 존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정은 정말 옳았던 걸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열매들이 맺혔던 것은 사실이다.
또 우려했던 바와 달리 부작용도 아주 크지는 않았다.
죄수들은 이제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에게 해악을 끼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만약 원래의 예정대로 그냥 사형을 집행했으면 그들은 그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죽기 전에 이렇게 큰 깨달음이라도 얻는 게 영원의 관점에서는 유익이리라.
하지만 애써 그렇게 이성적으로 위안을 만들어보아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따위가 신의 거룩한 심판을 두고 그런 천기누설을 해도 되었던 걸까?’
그런 불편감을 알렉시스도 느꼈던 것일까?
그는 마지막 타나토노트가 귀환한 즉시 타르타로스를 폐기 처분하였다.
후일 그것이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느낀 이유도 있었으리라.
기술력과 노하우는 완벽히 습득했으니 알렉시스 본인의 머리에는 그대로 청사진이 남긴 하겠지만, 그 본인이 악한 마음을 먹고 타락하지 않는 한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건 그런 희대의 판도라의 상자 발명에 이바지를 한 주체는 라지쿠마르였다.
“감사하오, 선생.”
알폰스는 따스한 격려와 함께 친히 손을 내밀었다.
“마하리쉬 선생도 그렇고, 카푸르 선생도 그렇고, 선생들의 고향에는 이래저래 큰 빚을 많이 지는군. 형제 민족으로서, 역사의 동반자로서,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요.”
황제는 지난 역사에 미안함을 품은 것인지 온유하고 겸손하게 어조를 낮추었다.
대전쟁들을 통해 어둠의 권세들과 싸워 정당 방위로서 얻어낸 다른 대륙들과 달리, 인도는 처음부터 인도의 식민지로서 흡수된 것이 부정치 못할 사실이니까.
지금이야 모두가 사실상 한 시민으로서 섞여 살아가지만, 역사적 쓴 뿌리의 흔적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서 그 빚을 갚아나가리라.
다행히 세 학자 모두 황제의 겸손한 마음에서 전해지는 진심을 인식하였다.
“폐하께도 지혜와 은혜의 성령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하오.”
“그리고 폐하의 자손들과 폐하의 후계자도, 의로운 주님께서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라지쿠마르는 사심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황제를 축복하였다.
그는 며칠 전의 일을 회상하였다.
레이나의 묘를 방문하였던 날.
매년 찾아가기는 했으나 그날은 친구 알렉시스도 동행하였다.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동경했던 사람을 한 번쯤은 보여줘야지.
‘그곳에서 편히 쉬어라.’
라지쿠마르와 알렉시스는 흰 꽃 한 송이를 각자 십자가 묘비 위에 올려놓았다.
“감사합니다. 라지크에게 참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르쳐주셔서.”
알렉시스는 레이나의 묘 위에서 독백하며 그녀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위선이 포함되지 않은 진중하고 정성스러운 그의 묵념에 라지쿠마르의 마음 한 켠 섞여 있던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 녹아내렸다.
‘그래, 이제 곧 네가 훌륭한 황제가 된다면 그 국가를 터전 삼아 나는 내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내마.’
굳이 곁을 보좌하거나 측근이 되고픈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적당히 가까운 친구 관계 정도면 충분하다.
알렉시스가 만들어나갈 다음 세대의 브리튼을 기대하며 라지쿠마르는 묘를 떠났다.
회상을 마친 라지쿠마르의 귓가에 황제의 담담하고 강직한 대답이 울렸다.
“박사의 공로로 인해 인류는 가장 큰 위협의 실체를 바르게 알게 되었소. 우리는 그간 전쟁이나 기근이나 재난만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믿어왔소. 가장 지혜로운 자들조차도 기껏해야 신체적 죽음을 최대의 적이라고 여겨왔지.
하지만 박사 그대 덕분에 이제 우리의 패러다임은 올바르게 교정되었소. 인류에게 닥친 최대의 적, 최대의 위험을 깨우치도록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오. 덕분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영원을 숙고하며 지혜로운 길을 찾고자 노력할 기회를 얻게 되었소.”
이슬람을 꺾은 것이 진정한 공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죽음 뒤에 마주할 가장 큰 숙제의 존재를 직시시킨 것.
라지쿠마르가 남긴 업적은 다른 것이 아닌 그 직면 하나뿐이다.
황제에게서 이렇게 인정을 받은 라지쿠마르의 마음은 한 켠 가벼워졌다.
‘그렇군. 나는 알렉을 위한 복수를 추구하지 않았구나. 내 결정은 그릇되지 않았다.’
남은 생은 인류를 회복시키고 돕는 일에 전념하리라.
“그리고 알렉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어서, 리키의 스승이 되어주어서 고맙소.”
황제는 아울러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야말로…….”
‘그들의 곁을 거들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라지쿠마르는 끝내 자신감 있게 말을 잇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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