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75회 [1부] 75화. 대언자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2.13 | 회차평점 ![]() |
열한 명의 아이들과 아저씨까지 모두 열두 명의 일행.
그들은 어느 중소 규모 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다.
이곳은 대략 5년 전쯤에 아저씨가 알아봐준 곳이었다.
그는 제롬에게 이곳을 일러주었고 정기 출석을 권유하였다.
그 이후로 제롬은 동생들을 데리고 매일 주일 오전마다 꼬박꼬박 이곳에 출석하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게으름을 피우려는 아이들을 잘 타이르기란 매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을 제외하면 아이들 대부분은 미적지근하고 미성숙했다.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을 함양했다기보다는 그저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예배에 나왔다.
열심의 마음이나 뜨거움을 기대하기는 아직 무리였다.
그래도 후원자의 최소한의 기대 중 하나였기에 그런대로 형식적으로는 아이들도 잘 따르긴 했지만 마음은 좀처럼 향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사랑하는 귀한 분께서 곁에 동행한 덕인지 평소와 달리 아이들은 정신이 맑고 또렸했다.
찬양도 그런대로 열심히 따라 불렀고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도 졸지 않으려 노력했다.
예배당은 아주 한적하지도, 너무 북적거리지도 않았다.
이곳이 교차 지대의 프로빈스라 그런지 각기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출신지와 언어가 다른 이들이 같이 예배드리긴 했지만, 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모두가 다 같이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한 덕분이었다.
브리튼의 세계 통일 이후 그 언어는 세계 공용어로 확고히 자리하였다.
후원자는 아이들 곁에서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잠잠히 예배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왠지 그는 예배당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기색이었다.
일부러 눈에 안 띄는 구석진 자리에서 옆 사람과 간격을 둔 채 기척을 숨겼다.
또 실내에서도 모자를 눌러 쓴 채 계속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실내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이긴 하나 무슨 사정이 있는지 그는 계속 그 차림을 유지했다.
건장한 큰 덩치에 그런 수상한 차림으로 정체를 숨기는 사내라.
누가 봐도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자연히 몇몇 사람의 시선은 힐긋 힐긋 그를 향했다.
하지만 설교자인 노목사 헤이기 로우리는 그 수상한 사내를 신경쓰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집중시키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이백에서 삼백 명 규모의 작은 교회였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이 오면 보통 언급을 하거나 소개를 시키는 게 보통이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이 사내를 향해서는 목사도 일부러 침묵하였다.
오히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어조와 강렬한 눈빛으로 사인을 주었다.
오로지 말씀 강해에만 집중하도록 요청하면서.
‘다행이군.’
후원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크게 이목을 끌지 않고 아저씨와 예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오전 예배가 마무리되자 아이들은 같이 교회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후원자는 아이들더러 먼저 가서 식사하고 있을 것을 권한 다음 강당에 홀로 남았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 교제와 인사를 나누었고 하나 둘 강당을 떠나 야외나 식당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채플 강당이 한적해지자 그제야 몸을 구석에 숨기던 청년은 발을 뗐다.
“이 늙은 소생께 보실 일이 있으신지요?”
조심스레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던 후원자는 멈칫하였다.
“헤이기 목사님.”
청년은 미안해하며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5년 전, 동부와 중앙 컨티넌트 연합 부응 집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여전히 강녕해보이시니 감사할 일입니다.”
지긋이 나이 먹은 노목사는 수 년 전에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일었던 운동을 회상하였다.
이름하여 ‘거룩한 방파제’와 ‘거룩한 파도’의 물결.
여러 늙은 목사들과 젊은 목사들이 뜻을 품고 그 날의 집회에 참여했었다.
현대화된 오늘날 쉬이 일어나기 힘든 대규모 영적 각성이요, 진지한 회개 운동이었다.
당시 북부, 중앙, 동부 컨티넌트의 일부의 관리를 맡았던 이 청년.
그는 정치인으로서 신경써야 하는 여러 불편한 시선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 날의 집회를 직접 후원하였으며 심지어 지원 연설까지 했었다.
그리고 헤이기는 그날 거룩한 방파제 모임에 참여한 수많은 목사들 중 하나였다.
그때 그는 운 좋게 이 젊은 통치자와 짧은 접촉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워낙 바쁘신 몸이라 길게 인사하지는 못했다.
딱 한 번, 몇 초간의 악수를 나눈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향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함 없어다.
하기야 지금은 훨씬 더 귀하신 몸이 되었지.
이렇게 작은 곳에 행차해주신 것 자체가 노목사로서는 영광으로 생각해야 마땅했다.
적어도 세상의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허나 헤이기는 그저 덤덤하고 잔잔했다.
깎듯이 예를 갖추기는 했으나 반가워하는 태도의 온도는 평소 예배당을 찾아오던 한 사람의 불우한 노숙자를 대접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모든 이를 신께서 보내주신 이웃으로 생각하는 노목사의 삶의 철학 덕분이었다.
“신분을 숨겨서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목을 함부로 끌 수 없는 입장이라서요.”
“이해합니다. 전하께서는 예배 참석과 정치인의 정치 행위를 엮기를 불편해하셨죠.”
브리튼은 개인의 자유를 허락하고 보장하는 나라이긴 해도 그 근간 정신의 기초는 성경.
자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과 신앙심이 국민 문화의 뿌리가 되는 나라였다.
그러다보니 전국 어디에 가나 교회가 있었고 시민들의 적잖은 비율도 교회에 출석하였다.
물론 그런 양적인 부흥이 반드시 영적인 진실성과 질에 비례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저 교회에 출석만 하는, 신앙심의 열매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특히 정치권이 그러하였다.
정치인들 중에도 자칭 신자라는 이는 제법 되었다.
개중에는 진정 소명 의식이 투철한 자도 있겠지만, 아닌 이들도 상당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들 가운데는 보여주기 식의 종교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유익을 갈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헤이기는 그런 자들의 작태를 대단히 경멸하였다.
황태자는 적어도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기에 다행이었다.
오히려 황태자는 상당히 건전하고 올바른 축이었다.
황태자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어떤 한 지역 교회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전 세계를 순회하는 그의 직무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존재감 탓이었다.
세계 전체의 대표자나 다름 없는 역대 최강의 위인을 어느 한 지역 교회가 담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지나치게 묵직한 네임밸류로 인해 해당 교회는 필요 이상의 이목을 끌게 될 테니까.
자칫 그의 영향으로 의도치 않은 양적 성장이 야기될 경우, 해당 교회는 사람들의 인기와 재물이라는 치명적인 우상의 유혹에 걸려들어 넘어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무리 신실하고 깨끗한 교회일지라도 말이다.
로마 가톨릭이 정치적 권세자인 황제를 받아들인 그릇이 된 이후로 본격적인 변질이 시작되었던 역사를 브리튼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황태자의 헌금이 특정 하나의 지역 교회가 아닌 전 세계의 사역지, 선교지, 중소 교회에 나뉘어 공급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의 이유였다.
정치적 존재감도 지나치게 막대하지만 재산의 영향력은 그보다 더했으니까.
어느 한 단체가 감당할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도 크지만, 알렉시스 본인이 전 세계의 여러 신실한 목회자들의 순전한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갈구하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 진짜배기 목회자들 가운데는 대형 교회의 지도자들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었지만, 적잖은 수가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의 양 떼를 묵묵하게 섬기는, 주님 앞의 작은 자들이었다.
그런 분들의 가르침을 듣기를 바라는 마음은 굴뚝 같은데 막상 자신의 영향력으로 불필요한 떠들석거림을 만들기는 싫으니, 하는 수 없이 변장하고 숨어서 듣는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그렇게 하는 김에 자신이 거둬들인 자식 같은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그 믿음직스러운 목사님들께 맡기는 것은 덤이었다.
여기까지는 알렉시스의 입장에서 그의 기호와 선택의 이유를 설명한 것.
반대로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알렉시스 황태자의 이름이 가져오는 풍파 때문은 아니었다.
“오늘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헤이기 목사님. 아이들을 잘 인도해주신 점도 감사하고요.”
마스크를 내린 알렉시스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였다.
한 나라의 최고 실력자이자 차기 황제답지 않은 겸비한 자세.
그러나 알렉시스가 모든 목회자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거짓 목회자나 미혹된 자, 진리를 전하지 않거나 진실을 말할 용기를 거부한 자에게는 그도 차갑고 냉답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는 친절하게 대해도 적어도 목회자로서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즉, 헤이기는 알렉시스가 스스로 인정하는, 참된 일꾼으로서 인정된 자 중 하나였다.
“근래의 일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헤이기의 입에서 다소 무거운 공기의 말이 흘러나오자 청년은 긴장하였다.
황제 앞에서도 그 특유의 당당함을 잃지 않던 그의 잘생긴 얼굴이 스승 앞에서 꾸중을 듣는 제자처럼 걱정으로 위축되었다.
“전하께서는 하나님의 대적들이 말끔히 청소된 세상을 소원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일을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확신하셨는지요?”
“목사님?”
온유하고 부드럽고 공손한 노인의 언어.
그러나 그 속에는 알렉시스만 느낄 수 있는 분명한 뼈대가 있었다.
그 순간 알렉시스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확신했다.
지금의 만남은 노인과 청년, 한 작은 교회의 담임 목사와 세계 지도자의 접촉이 아니다.
계약의 주체이자 창조자인 절대신, 그리고 그 언약에 종속된 가문의 책임자.
이 순간, 신께서 대리자인 대언자를 통해 자신의 채무자에게 말씀과 명령을 하신다.
여기에는 반항이나 반론이 끼여들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인 아버지의 말씀과 당부가 기억에서 어른거렸다.
“아들아, 기억하거라. 우리의 선조는 하나님과 손수 언약을 맺었지만, 그 과정을 돕고 대언의 역할을 감당했던 자들은 리포머들, 곧 종교개혁자들이란다. 그때처럼 주님께서는 언제든 자신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우리에게 대언을 하실 수 있다. 특히 너는 인간 측에서의 계약 최종 책임자이니 네게 그분이 명하실 일이 심심찮게 있을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대언자들과 왕의 관계.
시대가 다르다보니 그 모양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브리튼의 목회자들과 황가 사이에도 비슷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오로지 ‘순전한 하나님의 종들’만이 이 대언 역할에 해당되었다.
한 치라도 양심을 위반하거나,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숨겨두었거나, 올바른 교리를 뒤틀거나, 진리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인간이 두려워 하나님의 뜻을 당당히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격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 자격 조건에 합격한 자들은 황제라 할지라도 가벼이 대할 수 없었다.
그들을 대할 때 사실상 상대하는 존재는 대언자가 아닌, 그 배후의 신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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