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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74회 [1부] 74화. 아저씨와 아이들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2.13 | 회차평점 0 0

 

 

 

 

 

 

샤디는 올해로 브리튼식 나이 계산법으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얼마 전 그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이것으로 아이는 살아생전 세 번째로 타인의 축하를 오롯이 누렸다.

 

 

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축복으로 받아들여주는, 순수하고도 따뜻한 축하를.

 

 

 

 

 

두 해하고도 수 개월 전, 그날의 구조가 있기 전까지 이런 기쁨은 사치에 불과했다.

 

 

아니 상상하지도 못할 낯선 외계의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알라의 세상 아래에서 헐떡거려온 식민지 피지배인의 삶에서 가치와 존엄이란 없었다.

 

 

삶이란 수레바퀴였으며 그저 고통의 연속이었고 내일을 알지 못할 저주받은 여정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며 죽어서 어떻게 될지도 전혀 확신하지 못하는 저주.

 

 

그때는 그것을 숙명처럼 꾸역꾸역 받아들였으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확실히 고통이었다.

 

 

 

 

 

아이는 지난 2년간 이전의 삶에서 박탈당해온 따스함을 돌려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로 인해 전에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학대당하여 미숙하고 훼손된 상태로 머물렀던 마음과 지식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손색없을 수준으로 양호하게 회복되었다.

 

 

그에게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기회와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은택이 주어졌다.

 

 

무엇보다 이제는 잔학한 어른들 대신, 새로운 가족들이 그의 곁에 자리하였다.

 

 

 

 

 

샤디가 현재 거주하는 구역은 중앙과 동남부와 동부 컨티넌트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한 작은 스테이트였다.

 

 

구대륙은 물론 신대륙에서 이주해온 이들까지,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사는 곳으로 브리튼령에 소속된 이래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상당한 번영을 이룬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소년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 혹은 손위의 청소년들과 같이 생활하는 중이었다.

 

 

물론 후원자 측에서 보내준 여러 어른들이 살림살이를 도와주곤 하기는 했다.

 

 

그들 가운데는 전문적인 직원도 있었고 선의로 동참한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아울러 AI 가정부 로봇들도 이런 저런 부분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의 윤택한 삶을 거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의 가족은 한 집에서 살아가는 열한 명의 아이들뿐이었다.

 

 

샤디 이전부터 이 집, 혹은 이 기숙사에는 열 명의 아이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고 가장 최근에 합류한 샤디는 막내로서 받아들여졌다.

 

 

 

 

 

열한 명의 소년들과 소녀들은 대부분 혈혈단신의 고아 출신이었다.

 

 

이들에게는 의지할 이웃이나 친척이 없었고 있더라도 남보다 못한 자들뿐이었다.

 

 

원래라면 잘해야 보육원에서 일반 복지를 받으며 불우하고 자라다 자립했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행운이 따른 것인지 이들에게는 나름 ‘가정’이라는 따스한 품이 주어졌다.

 

 

무기한으로 유지되는, 혈연 이상의 끈끈한 공동체가.

 

 

 

 

 

“우린 특혜를 받은 셈이야.”

 

 

 

 

 

맏형이자 가장(家長) 격인 스무살의 청년, 제롬은 늘 이 말을 입에 달곤 했다.

 

 

 

 

 

그는 열 살 무렵 빈민촌에서 거둬들여진 이래로 이 공동체의 터주대감을 맡고 있었다.

 

 

제롬 다음으로 거둬들여진 아이들은 그의 의붓동생들로 입적되었다.

 

 

상당히 책임감도 풍부하고 정도 많은 아이였기에 그는 새로운 식구들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감 없이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를 거둬들인 그 후원자는 어쩌면 그런 제롬의 성정을 꿰뚫어보았기에 그를 한 공동체의 리더 겸 어른 역할로 택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난 시절은 대전쟁이 한창 발발하던 무렵이었어. 세계 곳곳에 수많은 빈민, 고아, 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 어느 정도 사회 안전망이 회복되긴 했지만, 그들 모두가 우리처럼 전폭적인 후원과 든든한 울타리를 얻지는 못했어.”

 

 

 

 

 

옛날 자기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면을 보면 나이든 어르신같은 구석도 있는 친구였다.

 

 

이런 애어른 같은 그였으나 무르고 순진한 성정이었기에 동생들 눈에는 그저 편안하고 만만한 동네 형에 불과했다.

 

 

 

 

 

제롬 밑으로는 한 살 아래의 열아홉 살 아이가 둘 있었다.

 

 

한 명은 라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지나치게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이었다.

 

 

다른 하나는 티아라는 이름의 소녀로 약간 예민한 성격이나 동시에 영민하고 현실적 감각이 탁월했으며 꼼꼼한 덕에 가족들을 제법 잘 챙기는 편이었다.

 

 

 

 

 

그 아래로는 후원자가 어디에서 또 주워왔는지 쌍둥이가 두 쌍이나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 루브와 레빗은 길거리 출신으로 불우한 배경에서 자라난 것치고는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소년들이었다.

 

 

그리고 이란성 쌍둥이 리리나와 미리안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이리 튀지도 않고 저리 튀지도 않는 흔히 볼 법한 성격의 소녀들이었다.

 

 

이들 넷은 전부 올해로 열여덟 살이었다.

 

 

 

 

 

샤디와 동갑인 친구도 셋 있었는데 샤디처럼 구 이슬람 권에서 거둬진 소녀들이었다.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이 그들의 이전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한 가지 요인이었다.

 

 

샤디보다 더욱 극심한 억압과 학대를 받아오며 망가진 탓에 이들 세 소녀는 정신사회적으로 회복되기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쌍둥이들은 활발한 사교적 접촉을 통해 그들이 새 가족의 품에 섞여들도록 마음문의 빗장을 풀어 주었고 티아는 소녀들을 긴밀히 챙겨주며 여러 도움을 베풀었다.

 

 

막내 소녀들은 원래 살던 사회에서는 이름이 없었는데 입적 과정에서 각각 그레이스, 머시, 피스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다른 곳의 공동체에 몸을 담은 아이들도 그러하듯 모두 후원자에게서 받은 이름이었다.

 

 

 

 

 

샤디는 지난 2년 간 이곳의 선배들과 그런대로 가까워져 그들 무리에 녹아들었다.

 

 

아직 동갑내기인 그레이스, 머시, 피스와는 어색한 면이 있어 낯을 가리긴 했다.

 

 

아무래도 출신지가 출신지이다보니 마주하기 난감한 과거의 그림자가 그들 모두의 얼굴 위에 남아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루브와 레빗 형제와는 금세 싹싹한 사이가 되었고 리리나와 미리안 자매와도 이야기를 어느 정도 터놓을 정도가 되었다.

 

 

순진하고 곰처럼 둔한 제롬 형과도 크게 거리낌은 없었다.

 

 

어른스러운 티아도 이런 저런 면에서 많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 맘에 들었다.

 

 

 

 

 

그런데 유독 샤디의 눈에 거듭 밟히는 사람은 오히려 두 살 위의 라이였다.

 

 

라이는 비단 샤디만이 아니라 그룹 멤버들 누구와도 그리 활발히 섞이지 않았다.

 

 

친절함이 모자란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벽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라이는 멤버들 중 유일하게 완전하게 고아는 아닌 아이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에게는 홑몸의 어머니 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가난하고 마음이 아픈 탓에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은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던가.

 

 

아마 후원자가 라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모종의 지원을 베풀었던 것 같다.

 

 

그러한 이유가 아니고서야 라이가 제 어머니를 두고 선뜻 이곳에 합류하지는 않았을테니.

 

 

 

 

 

라이는 이곳에 들어올 때 일종의 기숙사 입사 개념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고 먹고 입고 잤으나,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제 어머니를 뵈러 갔다.

 

 

그날 하루는 늘 우중충하고 무거웠던 아이의 표정도 아주 조금은 가벼워지곤 했다.

 

 

여러모로 숨기는 면면이 많은 소년이었다.

 

 

 

 

 

대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첫 선입견과 달리 라이는 샤디에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부러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레 용기 내어 샤디가 인사하거나 대화를 걸면 그런대로 잘 받아주고 두런두런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생활하면서 불편할 때마다 이것저것 도와주거나 알려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 괜찮은 형’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사실 유독 라이가 눈에 밟히는 이유는 그의 성격이나 신비에 감싸인 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 패밀리 멤버들은 대체로 외모가 특출하거나 체격이 좋지 못했다.

 

 

어려운 성장 배경 탓도 있고 원래부터 뼈대가 좋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잘해봐야 평범한 수준의 외모였고 어디에 내놓아도 시선을 끌지 못할 아이들이었다.

 

 

 

 

 

헌데 라이만은 그들과 달랐다.

 

 

잘 못 먹고 자랐을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키가 185cm을 훌쩍 넘었다.

 

 

조금 마른 편이긴 해도 골격은 상당했다.

 

 

운동만 꾸준히 하면 특전사나 운동선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다.

 

 

무엇보다 편부모 가정의 소년답지 않게 귀공자 분위기를 풍기는 상당한 미소년이었다.

 

 

거리를 다닐 때마다 행인들이 누구나 한 번씩은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로.

 

 

 

 

 

샤디는 그런 라이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매우 짙게 느꼈다.

 

 

그는 기이하게도 라이 형이 그 사람을 닮은 것 같다는 이상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 얼굴이 흔한 건 아닐텐데.’

 

 

 

 

 

더욱이 자수정처럼 맑은 채도의 보랏빛 동공은 더더욱 희귀한 특질.

 

 

샤디가 라이에게서 엉뚱한 데자뷔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이 같은 ‘아이들의 자치적 패밀리’는 샤디네 하나가 전부는 아니었다.

 

 

현재 세계 전역에는 비슷한 유형의 가정이 모두 천 스물네 개가 존재했다.

 

 

각 패밀리에는 평균 일곱에서 열둘 사이의 멤버들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스물한 살 미만의 나이였다.

 

 

 

 

 

그것들은 고아원도, 보육원도 아니었으며 생존을 위해 모인 임의적 집단과도 달랐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물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후원자의 지원이 끊어질 것을 고민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독립하여 경제력을 갖춘 어른이 될 때까지 보장되는 보호의 막이 그들에게 약속되었다.

 

 

대신 성실하게 공부하고 성장하여 나라와 세계에 보탬이 될 인재가 될 도덕적 책무가 그들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강제성을 띤 명령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뜻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권고의 차원이었다.

 

 

 

 

 

아울러 그들은 어른들의 강압적인 다스림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후원자에게서 훈육과 배움과 양육을 받은 가장 손위의 아이가 가장이 되어 자신의 후배들을 동생으로서 길러내는 역을 맡았다.

 

 

어떻게 귀신같이 잘 골라낸 것인지 맏이 역할의 아이들은 성정 상 웬만한 어른 이상으로 돌봄에 능숙했으며 자기 동생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방치하지도 않았다.

 

 

또한 후원자는 종종 가신들을 보내어 아이들의 삶을 살폈고 적절한 피드백도 제공하였다.

 

 

그의 보이지 않는 통제 아래에 놓여 있었기에 완전하게 방임된 조건도 아니었고, 동시에 동정심 없는 어른이 아이들 위에 군림하지도 않았기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자치는 보장된 셈이었다.

 

 

 

 

 

패밀리마다 내부의 결속력은 강한 편이었고 정도 대체로는 꽤나 짙었다.

 

 

혈육끼리 같이 들여온 경우가 아니면 서로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힘들고 불우한 처지를 공유해서인지 그들은 서로를 향한 동정심으로 끈끈한 연대를 구축해낼 수 있었다.

 

 

물질적 자원의 공급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기에 서로 다툴 필요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후원자는 아이들 사이에서의 분쟁이나 다툼이 생기면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아마 그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마다 서신을 통해서 엄한 꾸중의 말을 주어 아이들이 화해하게끔 이끌었다.

 

 

워낙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긴 해도 아이들을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닌 듯했다.

 

 

 

 

 

아이들과 후원자의 의사소통은 의무적이진 않아도 거의 빠짐없이 주기적으로 이뤄졌다.

 

 

1,024개 패밀리의 소속 청소년들과 아동들은 매주 한 번씩은 후원자에게 서신을 썼다.

 

 

전자 메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후원자의 취향을 따라 손편지를 사용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질문 등 어떤 내용이든 자유로이 허락되었다.

 

 

 

 

 

후원자는 워낙에 분주했기에 일일이 항상 대답을 주지는 못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씩은 각 패밀리 당 한 편씩 안부 편지를 전송하였다.

 

 

하나의 편지에는 해당 패밀리의 각 멤버들 하나 하나를 향한 위로, 격려, 충고, 가르침, 칭찬의 말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으레 그 내용을 보고 놀라곤 했는데, 이는 후원자의 기억력 때문이었다.

 

 

그는 4주 간 받은 각 아이의 편지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한 치의 모순도 없이 정확하게 응답해주었다.

 

 

보통 그렇게 많은 아이들과 원격으로 팬팔을 나누다보면 한두 가지는 헷갈릴 법도 한데.

 

 

자주 얼굴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여하튼 누군가에 의해 상세히 기억된다는 것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후원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무려 20년 전부터 이 ‘불우아동 발굴’에 나섰다고 한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자신이 직접 아이를 찾아내어 거둬들였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후원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패밀리에 입적시키기도 했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신 맏이 역할을 할 아이의 경우 그가 직접 선발하지는 못했더라도 나중에라도 반드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터놓곤 했다.

 

 

 

 

 

그가 왜 이들을 모아놓는지는 아무도 아는 바가 없었다.

 

 

모종의 선발 기준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거둬진 아이들이 대체로 다양한 성격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돌이나 문제를 일으킨 바 없는 점을 보면 말이다.

 

 

적어도 문제가 될 소지의 쭉정이들은 걸러내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대단한 잠재력을 지녔다거나 엄청나게 장점이 많은 건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도 당연히 간간히 섞여 있었지만, 드문 비율이었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거나 엄청난 천재로 보이는 이들은 더욱 드물었다.

 

 

또 일반적인 인류애나 동정심 때문만이라고 치부하기도 애매했다.

 

 

선택된 아이들보다 더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도 세상에는 많았으나 그들 모두가 후원자의 조건 없는 선택에 든 것은 아니었다.

 

 

 

 

 

어쨌건 감사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리라.

 

 

 

 

 

한편, 아이들에게 그 잘나고 훌륭하신 후원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지금도 있긴 했다.

 

 

그 기회란 바로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교회 출석이었다.

 

 

 

 

 

후원자는 미리 알고 계획했는지 아이들의 거주 시설을 둘 때마다 그 근방에 최소 한 명 이상의 ‘적합한 자격’의 목사님과 ‘부합되는 조건’의 교회가 있도록 해두었다.

 

 

여기서 자격이나 조건이란 접근의 편리성, 교회의 규모, 사람의 수, 프로그램의 현란함, 기부 규모나 명성 따위와는 전혀 무관했다.

 

 

아마도 영적인 순수성, 사랑의 진실성, 분명한 진리의 확고성 등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다만, 그런 교회가 한둘이 아니긴 할 텐데 그 중에서 왜 하필 그 일부를 고른 것인지는 역시 후원자 자신 말고는 확실히 알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입적 시 교육과 양육과 가족의 품 등의 기회를 선물받은 대가로 최소한의 요구 사항을 요청받았다.

 

 

역시 강제는 아니긴 했으나 어렵진 않기에 지키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다.

 

 

그 중 하나는 정기적인 교회 출석이었다.

 

 

물론 후원자가 알아봐둔 ‘적합한 자격’과 ‘부합되는 조건’의 교회들 중에서 택해서.

 

 

 

 

 

그것은 아이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목회자들은 불우한 배경에서 자라났던 아이들은 제 가족처럼 여기고 긍휼히 대해주었다.

 

 

또한 자리를 비운 후원자를 대신해서 영적인 면에서는 멘토 역도 감당해주었다.

 

 

직접 같이 살지는 않기에 간섭 양은 적었지만, 적어도 일요일만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심하지 않은 수준에서 잔소리도 해주었다.

 

 

 

 

 

후원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일 성수 시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의 몸은 한 개이고 패밀리의 수는 1,024개이므로 당연히 그는 매주 랜덤으로 1,024개 중 하나를 택하여 그 아이들을 찾았다.

 

 

그때마다 그는 일반인으로 변장한 채 아이들 무리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한 패밀리의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아이들이 평소 출석하는 교회, 혹은 자신이 보기에 아이들의 미래에 더 선한 영향을 미칠 교회로 출석하였다.

 

 

 

 

 

모든 아이가 하나님이니 그리스도니 하는 교리적 가르침에 전적으로 수긍한 건 아니었다.

 

 

머리로 수긍했다고 해도 전부 다 순전한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아니었다.

 

 

또 교회 출석을 몹시 귀찮게 여기는 아이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심 매주 주일을 기다리곤 했다.

 

 

이는 드문 확률로나마 그 후원자가 자신들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 그분을 직접 만날 가능성이 100분의 1 정도는 되리라.

 

 

아주 가능성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한다고 가정하면 평생 한 번 정도는 만날 수 있을지도?

 

 

그렇게 부질없이 기대를 걸 만큼 아이들 사이에서 아저씨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확실했다.

 

 

 

 

 

샤디네 패밀리는 이번 주에 바로 그 뜻하지 않은 행운과 마주하였다.

 

 

 

 

 

“안녕.”

 

 

 

 

 

초인종의 울림에 고조되었던 아이들의 긴장감이 그 실루엣의 등장으로 말끔히 녹아내렸다.

 

 

 

 

 

“반갑구나, 제롬.”

 

 

 

 

 

“아저씨!”

 

 

 

 

 

마치 기대 이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수님께 받은 듯한 기분이 된 아이들.

 

 

다 자란 청년이 되어버린 제롬은 소년처럼 순진무구하게 아저씨의 품에 안겼다.

 

 

 

 

 

“건강히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이어서 그 키다리 근육질 아저씨는 시선을 다른 아이들에게 돌렸다.

 

 

그는 다소곤히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들에게 많은 의지가 되어줬다고 들었어. 덕분에 근심을 많이 덜었구나.”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랍니다. 그리고 제롬 저 천둥벌거숭이의 무례는 용서하시길 부탁드려요.”

 

 

 

 

 

새침하면서도 눈치가 빠른 티아는 둔하고 아무에게나 거리낌 없는 제롬과 달리 깎듯이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상대를 대하였다.

 

 

그런 면모가 기특하면서도 아쉬운 키다리아저씨였다.

 

 

 

 

 

“괜찮아. 나는 세상 다른 사람들이 다 고개를 조아리더라도 너희만은 나를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히 대해줬으면 좋겠구나.”

 

 

 

 

 

“어찌 감히 그럴 수 있을까요? 저희는 그저 은혜를 입은 몸인걸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신께 무한한 은총을 입은 작은 아이들에 불과하지. 그러니 나도 너희도 비슷한 입장에 있을뿐이란다.”

 

 

 

 

 

아저씨는 이어서 쌍둥이들과도 포옹을 나누었다.

 

 

장난꾸러기 루브와 레빗은 아저씨의 굵고 단단한 팔에 매달렸다.

 

 

대롱대롱 매달린 두 청소년의 상당한 질량에도 아저씨는 끄떡없이 견뎌내었다.

 

 

힘이 천하장사라도 되는 모양인지 말이다.

 

 

 

 

 

아저씨는 이어서 리리나와 미리안에게도 포옹으로 인사하였다.

 

 

이어서 숫기 없고 겁이 많은 그레이스와 피스와 머시에게도 조심스레 다가가 신사답게 정중히 말을 걸었다.

 

 

키가 워낙에 커서 작은 소녀들에게는 부담이 될 법도 싶었지만, 일부러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준 덕분에 그 위압감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다들 건강해보여서 마음이 놓이네.”

 

 

 

 

 

그가 이곳의 아이들 전부를 직접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사진으로만 그분을 보았고 그도 화면으로만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알고 지낸 동년배기마냥 아이들과 후원자 사이에는 포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레이스도, 머시도, 피스도, 이제 너희가 원래 주님에 의해 빚어졌어야 할 그 온화하고 아름다운 너희에 가까워졌어. 지금의 길이 너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이란다.”

 

 

 

 

 

이전의 그 폭력 속에서 짓밟히고 부러진 한 송이 꽃의 모습이 아니라 말이지.

 

 

 

 

 

“그리고 샤디도.”

 

 

 

 

 

2년하고도 수 개월만에 다시 만난 아저씨.

 

 

그 얼굴은 그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워낙 젊은 모습이라 그런지 자신들의 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샤디는 우여곡절 많았던 그때의 무서웠던 만남을 회상하였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아저씨가 무섭지도,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잘 지냈지?”

 

 

“네.”

 

 

 

 

 

아저씨의 소식은 뉴스를 통해서 그간 자주 볼 수 있었다.

 

 

과도하게 뉴스에 매몰되는 습관은 안 좋다기에 공부에 매진하려고 조금씩만 보긴 했지만,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보니 매일 회자되었고 그 소식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여러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벌인 활약들을 무수히 보았다.

 

 

그 중에서도 과거 샤디와 세 소녀가 몸을 담고 있었던 그 세계의 붕괴가 인상 깊었다.

 

 

시원섭섭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그 초라한 몰골을 보니 아무 감흥도 들지 않았다.

 

 

이미 불난 남은 건물에서 건져진 뒤 남은 집이 다 타서 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랄까.

 

 

허망하기도 했다.

 

 

자신이 저런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게 눌려 지냈었다니.

 

 

그때는 엄청나게 높은 산 같았는데 멀리서 보니 그저 태우기 좋은 초갓집에 불과했다.

 

 

 

 

 

‘이런 작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왜 아저씨의 눈에 발탁된 걸까?’

 

 

 

 

 

여전히 이런 의문은 들었으나 묻어두기로 했다.

 

 

오늘은 천분의 일의 행운을 공짜로 얻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같이 가자꾸나. 끝나고 목사님께도 인사를 드려야겠네.”

 

 

 

 

 

아저씨는 열한 명의 소년들과 소녀들을 데리고 근방의 그 교회로 향했다.

 

 

최대한 남들이 몰라보도록 캡 모자와 마스크에 후드티를 둘러쓴 그였지만, 그럼에도 워낙에 잘난 이목구비에 훌륭하고 건장한 몸이 두드러진 탓에 행인들의 눈길을 피하긴 그른 듯했다.

 

 

그러건 말건 무슨 상관이랴.

 

 

아이들은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키다리아저씨와 함께 길거리를 나섰다.

 

 

그날 따라 교회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왜지?’

 

 

 

 

 

샤디는 그 와중에 한 가지 의문점을 지우지 못했다.

 

 

 

 

 

‘왜 아저씨는 라이 형에게만 말을 걸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모든 아이가 흥으로 가득 들뜬 가운데, 라이만 축 가라앉아 있었다.

 

 

무언가 안절부절못하는, 죄 지은 사람마냥 눌려 있는 듯한,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었다지만 아저씨가 나타난 이후로 그는 완전히 침묵에 빠진 채 불편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저씨 역시 라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존재를 인지한 것 같긴 한데 일부러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워낙에 자연스러운 나머지 아이들도 그 사실을 일부러 지목하지 않았다.

 

 

 

 

 

라이도 자신이 마치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마냥 일행의 맨 뒷 자리에 서서 일부러 자신과 후원자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벌렸다.

 

 

 

 

 

샤디는 전에 라이와 나눴던 대화 중 라이가 무심코 내뱉었던 한 마디를 기억했다.

 

 

아마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내 존재란 감히 그분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니까.”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리송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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