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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00회 [2부] 21화. 마스터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3.03 | 회차평점 0 0

 

 

 

*

 

 

 

 

 

기막히게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걸웅.

 

 

이것이 디에고 안드레스를 묘사하는 세간의 평가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조롱의 표현은 아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나이였다.

 

 

능력 면에서든 천운에 있어서든 따를 자가 얼마 되지 않으리라.

 

 

아마 지금 시대를 통틀어 근 천 년의 역사를 합쳐도 능히 두 손에는 들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손바닥 안에서 읽어내는 전략가.

 

 

낯선 세계와 미지의 영역을 마음껏 휘저으며 정복해대는 모험왕.

 

 

기발한 천재성과 시대를 앞서 나가는 혜안, 더불어 무수한 재능들까지.

 

 

왕과 혁명가의 자질을 동시에 소유한 기인 중의 괴인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황제는 열두 명의 위대한 마스터들 중 유일하게 디에고만은 아들의 카드 패에 넣기를 보류해두었다.

 

 

미워하거나 경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훗날 아들에게 유용한 조력자가 되리라는 기대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직은 순탄히 소화해내기에 버거운, 흥미로운 괴짜이기 때문이었다.

 

 

 

 

 

디에고는 그런 황제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황태자 곁에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어이, 아저씨. 또 당신인가?”

 

 

 

 

 

적갈색과 고동색 중간쯤의 머리색을 한 청년은 눈살을 약하게 찌푸렸다.

 

 

상대는 잊을만 하면 보이는, 유독 자주 들러붙는 스토커 같은 아저씨였다.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도전하고 시비 거는 것만 아니면 괜찮은 사람인데.

 

 

어쩌다가 자신은 저런 스토커를 곁에 붙이고 말았단 말인가.

 

 

한탄이 흘러나왔다.

 

 

 

 

 

‘평소에 적당히 져줄걸 그랬나?’

 

 

 

 

 

 

 

 

회색과 보랏빛이 섞인 머리의 날렵하게 단련된 체형의 50대 남성.

 

 

그는 거대 스크린을 앞에 둔 채 홀로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고정한 채 휴식을 취하는 알렉시스 곁에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호승심 비슷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확히는 디에고만 승부욕 비슷한 뭔가를 불태우는 느낌이었다.

 

 

알렉시스는 빨리 벗어나고 싶어 몹시 따분해하는 표정이었다.

 

 

 

 

 

“옆자리는 비어있나?”

 

 

 

 

 

“앉고 싶으면 당신 마음대로 하시지.”

 

 

 

 

 

“고맙군.”

 

 

 

 

 

나이에 비해 열댓 살은 젊어보이는 중년남 디에고는 옆자리를 기꺼이 차지했다.

 

 

가히 담력이 뛰어난 것인지 그는 상대의 신분이나 위엄의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기가 죽지 않았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제국의 최고 통치자 앞에서 무례하게 비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디에고라는 사람을 잘 알았기에 별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황태자가 워낙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성격이기도 했고.

 

 

 

 

 

‘유독 지나치게 거리감 없이 대한단 말이지. 나한테만.’

 

 

 

 

 

원래 저 남부 출신 사내는 무례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신사답게 예의가 바르고 호쾌한 호남이란 말이다.

 

 

다만 기질과 성향이 범상하지는 않다 보니 이상하게도 자신이 한 번 꽂힌 상대에게는 물불을 가릴 줄 몰랐다.

 

 

아쉽게도 그 꽂힌 상대라는 게 자신이라는 게 한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그날.

 

 

그 뒤로는 마치 동갑내기 고향 친구마냥 불쑥 거리감 없이 다가오곤 했다.

 

 

엄밀히는 친구로서가 아니라 이기고 싶은 도전자로서?

 

 

참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요새 몸이 갈려 죽어나가는 모양이군.”

 

 

 

 

 

디에고는 별 악의없이 알렉시스에게 툭 말을 던졌다.

 

 

 

 

 

“뭐, 보시다시피. 당신 같은 괴짜들을 한 명도 아니고 한꺼번에 열을 움직이려면 정신력의 소모가 상당해서 말이지.”

 

 

 

 

 

알렉시스는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테이블 위의 체스말 몇 개를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기력이 다 소진되어버린건가? 우리 잘난 왕자님께서? 어쩐지 요새는 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다 했군.”

 

 

 

 

 

“일을 크게 벌인다고? 내가 무슨?”

 

 

 

 

 

알렉시스는 뻔뻔한 표정으로 모르겠다는 어투로 되물었다.

 

 

디에고는 그 철면피에 어처구니가 없이 혀를 내둘렀다.

 

 

 

 

 

“이봐, 아저씨. 나처럼 기존 질서에 잘 순응하는 바른 생활 사나이도 드물다고.”

 

 

 

 

 

“그러시겠지. 브리튼 제국 황실의 영도 하에 세워진 질서에 말이야. 그것에 반발하는 가치는 급진적으로든 서서히든 어떻게든 말려 죽이잖아.”

 

 

 

 

 

“억측이고 모함이야, 디에고 아저씨. 난 세계 모든 민족과 시민들을 존중해.”

 

 

 

 

 

“네, 네, 그러시겠죠.”

 

 

 

 

 

디에고는 짖궂게 키득거리며 친구를 약올리듯 동생뻘 사내를 놀렸다.

 

 

 

 

 

“솔직히 난 네가 화끈하게 이슬람을 청소해버리던 때가 더 재밌었는데.”

 

 

 

 

 

“…….”

 

 

 

 

 

“아쉽게도 요새는 중성화된 강아지마냥 얌전해져버렸단 말야.”

 

 

 

 

 

이에 알렉시스는 뭔 소리를 하냐는 투로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그 일은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감당했어야 하는 과업이었어. 힘이 적어 함부로 칼을 빼들지 못했을뿐. 그리고 이제 더는 그런 규격 밖의 걸림돌은 없어. 사람들의 삶과 사회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섭리에 맡기는 편이 옳지. 이게 원래의 내 방식과 잘 맞아.”

 

 

 

 

 

“흠? 정말인가?”

 

 

재수없는 표정으로 비웃으며 디에고는 상대의 짜증을 부채질했다.

 

 

 

 

 

“과연 대단하신 황태자 전하께서 얌전하게 구실 수 있을지? 세상을 뒤엎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성정을 지닌 분께서?”

 

 

 

 

 

“이봐, 난 당신이 아니야, 디에고.”

 

 

 

 

 

보랏빛의 눈이 여유만만한 조소를 머금고 갈색 피부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높이 차이에 순간적으로 디에고는 움츠러들었다.

 

 

그는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웃음을 멈추고 입술을 비죽였다.

 

 

천하무적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자존심을 유일하게 무너뜨렸던 당사자.

 

 

바로 그런 우월함 때문에 더욱더 승부욕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지.

 

 

 

 

 

“세상은 소수의 혁명가들에 의해 조성되거나 발전하는 것이 아니야. 인간의 작은 노력을 초월한 보이지 않는 섭리에 의해서 정미하게 조정되지. 우리 같은 개미들은 그 앞에서 겸허함을 배울 필요가 있어.”

 

 

 

 

 

알렉시스는 잠잠히 디에고와의 옛 인연의 기억을 되새김질하였다.

 

 

 

 

 

디에고 안드레스는 남부 신대륙 출신이었다.

 

 

라틴 유럽의 지배를 오랜 세월 받아왔던 그 지역에서 태어난 그도 신대륙의 원주민 혈통과 유럽 라틴 혈통을 모두 물려 받았다.

 

 

남부 신대륙이 브리튼 령으로 복속된 시절은 세계 제1차 대전 때였고, 그 이후에 태어난 디에고도 당연히 브리튼의 시민으로 나고 자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땅에 머무르지 않았다.

 

 

지리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모험가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즐거워했다.

 

 

그는 어린 시절 뒷받쳐줄 배경 하나 없이 맨손으로 북부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세상의 많은 민족들이 으레 그랬듯 그도 큰 꿈과 야심을 품고서 기회의 땅인 브리튼의 심장부를 찾았다.

 

 

 

 

 

그러나 그릇이 달라서였는지 그가 추구하는 꿈은 그 스케일이 달랐다.

 

 

디에고는 세상을 차지하기를 바라는 야심가요 실제로 그만한 자질을 갖춘 영웅이었다.

 

 

사업을 하든, 정치 운동을 하든, 혹은 학계에서 활동하든, 그는 승승장구하였다.

 

 

여러모로 황태자 알렉시스의 하위 호환 격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배경 면에서 유리함이 없었으니 그런 면에서는 더 낫다고 해야 하려나.

 

 

만약에 그가 다른 시대에 났다면, 혹은 브리튼 황실이 존재하지 않는 현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분명 세계와 시대를 뒤바꾼 큰 폭풍이 되었을 것이다.

 

 

 

 

 

디에고의 야망이란 바로 공화정 체계의 완성이었다.

 

 

이것이 브리튼 입장에서 그가 적잖이 골머리 아픈 요인인 이유였다.

 

 

 

 

 

무능력하고 말만 앞서는 선동가나 몽상가였다면 모를까.

 

 

디에고는 정말 그 일을 실천과 가능성으로 옮기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는 브리튼 제국의 심장부인 북부 신대륙 내부로 들어가 그 사회 내에서 빠르게 힘을 키우며 영향력들을 얻었다.

 

 

비정부 조직들을 구성하였고 강력하고 체계적인 당들을 형성하였으며 능숙하게 문화 진지전을 펼쳤다.

 

 

그의 무리들과 조력자들은 오합지졸이 아닌, 한 몸에 달리 손발처럼 착착 맞는 협응력을 지닌 연합력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흔들려는 자들이 아닌,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유익을 남기는 자들이었다.

 

 

 

 

 

현 황제와 전대 황제는 조용히 파동을 일으키는 그 사내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그가 거하는 시대가 달랐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도 세계 역사는 그의 손에 새로이 다시 쓰였을지도 모르겠군.”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객관적 평가였다.

 

 

브리튼 혹은 브리튼 령의 일부가 왕의 힘으로부터 벗어나 논리적이고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이루어 번영을 구가한다?

 

 

그런 판타지 같은 시나리오가 지금 시대 사람들의 머리에서는 쉬이 상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디에고 정도의 변수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그는 진실로 과거 여러 시대의 개혁가들과 한 나라를 새로이 재탄생시킨 국부들의 역량을 모두 합쳐놓은 듯한 그릇이었다.

 

 

최소 서너 세대만 앞섰다면 브리튼을 바꾸어 공화정으로 바꾼 뒤 수장으로서 북부 신대륙 합중국 같은 새 시스템을 선포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에게는 커뮤니스트 연방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잔학한 탐심과 포악함이 없었다.

 

 

비록 남부 출신인지라 가톨릭 배경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딱히 교황청에 충성심이 있지도 않았고, 기독교계 문화권이라면 그런대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그래서 브리튼 제국의 기초적인 문화적 뿌리와도 충분히 상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단지 세습되는 왕정이 아닌, 시민에 의해 다스려지는 체계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진실성과 정직성을 알았기에 현 황제도 별 문제를 삼지 않았다.

 

 

더 나아가 아예 그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기까지 했다.

 

 

자, 그대가 추구하는 소원대로 최선을 다해보시게나.

 

 

이렇게 말하며 일부러 기회를 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로 인해 근 수십 년간 브리튼 내부에서는 공화정을 추구하려는 정치적 흐름과 황정을 지지하는 흐름이 기묘하게 공존하며 균형을 이루었다.

 

 

그 두 움직임은 황제와 디에고 모두에 의해 절제되고 제어되었고 거친 충돌이나 위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방향으로는 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디에고가 마스터로 불리기 합당한 인재라는 증거 중 하나였다.

 

 

 

 

 

그는 황제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며 존경을 표했다.

 

 

적어도 그가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군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브리튼 황실에 대대로 물려지는 영적 유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로 후대가 반드시 선대보다 뛰어난 존재로 태어나리라는 법칙도 단지 겹친 우연 내지는 과장된 역사의 기록 정도로 취급하였다.

 

 

그랬기에 그는 늘 황정의 한계를 비판해왔다.

 

 

 

 

 

“지금의 황제께서는 유능한 통치자이지만, 언제까지고 다음 세대에 적합한 인재가 허락되리라는 보장은 없지. 세습이란 위험의 한계성을 내포한 시스템이다. 훗날 암군이나 폭군이 등장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더욱이 지금처럼 세계를 흡수해가는 브리튼을 그런 도박에 맡긴다면 위험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디에고는 노골적으로, 은밀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든 뒤에서든 이런 논조를 유지하였다.

 

 

정치권에도, 재계에도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이들이 점차 많아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전쟁 직전에도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와중에도 공화정에 대한 요구는 줄지 않았다.

 

 

이후 사실상의 마지막 세계 대전이 마무리된 이후로는 세계 전체에 대한 공정하고 안정적인 통치에 대한 요청과 열망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렇듯 디에고는 전대 황제에게도, 알폰스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적은 아니기에 온건하게 대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두기에도 버거운 숙제였다.

 

 

그래서 그 앞에서 힘이 아닌 정당성 대 정당성으로 승부를 보려면 공정하게 성과로서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후대에 더 나은 성군만이 태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다라. 바깥 사람들의 눈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의심할 수 있겠구먼. 아무리 언약의 존재를 설명해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될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실제적인 증거로서 보이는 수밖에.”

 

 

 

 

 

황제는 후계로서 승부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후대에 더 나은 왕이 나타나지 못할 가능성을 지적 받았으니 그를 반증하는 산 증거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디에고는 자신보다 열세 살은 더 어린 이십대 초반 청년과 맞닥트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인생 가운데 불행인 동시에 행운이었다.

 

 

 

 

 

불행이라 함은 그간 황가의 능력마저도 얕잡아볼 정도로 대단한 능력자였던 그의 자존심과 확신이 무참히 무너짐을 의미했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 줄 알았던 남자, 제가 가장 뛰어난 줄 알았던 사내.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신보다 더한 괴물에게 참패했다.

 

 

힘으로도, 재능으로도, 성과로도, 언변으로도, 능력과 지혜로도.

 

 

더 기가막힌 것은 그렇게 자신의 입을 다물게 한 그 상대는 자신의 사상을 무시하지 않고 되려 존중하였다는 점이었다.

 

 

 

 

 

“아저씨의 생각에 나도 일정 부분은 동의해.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여러 의견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성이 있지. 당신의 아이디어들은 잘 참고할게.”

 

 

 

 

 

그 시절, 알렉시스는 정계에 몸담기에는 어렸지만 승자의 당당함과 여유로움이 넘쳤다.

 

 

디에고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더 탁월하고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하늘은 왜 나를 낳고 또 저런 녀석을 낳았단 말인가?’

 

 

 

 

 

황제 앞에서까지 당당하게 세습 군주제의 한계를 비판했던 자신이 갑자기 수치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전혀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알렉시스라는 존재의 비상식적인 규격이 그의 말문을 막았을 뿐이었다.

 

 

어찌하여 이런 확률론적으로 말도 안되는 기현상이 벌어져 자신을 바보로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접촉과 충돌과 대결과 교류는 다른 의미에서는 행운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호승심을 불태울 강력한 목표가 생겼으니까.

 

 

지금까지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없었더라면 이제는 평생을 두고 도전할 태산 같은 존재가 생겨났다.

 

 

도전 정신이 투철한 디에고에게는 그것은 오히려 피를 끓게 하는 축복이었다.

 

 

 

 

 

 

 

 

그렇게 묘한 관계의, 친구 아닌 친구가 되긴 했는데.

 

 

 

 

 

알렉시스 입장에서는 어느덧 그가 스토커로 비쳐지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과제와 도전거리로 자신을 시험하고 있으니 원.

 

 

 

 

 

그래도 그런 도전자가 있으니 최소한의 긴장감은 유지되는 면은 있었다.

 

 

 

 

 

“오늘은 논쟁이나 토론할 기운이 없으니 잠잠히 영화에나 집중하시지.”

 

 

 

 

 

회상을 마친 알렉시스는 상대가 더 귀찮게 하기 전에 탁 잘라내었다.

 

 

디에고는 투덜거리며 아쉬움의 표정을 드러냈다.

 

 

 

 

 

“아저씨 당신이 다짜고짜 날 보고 싶다고 억지 부리길래 난 오늘 점심에 있었던 주요 인사들과의 식사 자리를 취소하기까지 했어. 그러니 날 더 피곤하게 해주지는 말았으면 해.”

 

 

 

 

 

“역시 전투적이었던 작년이 더 좋았었는데.”

 

 

 

 

 

“뭐래.”

 

 

 

 

 

두 사람은 현재 개인 영화관에서 점심 휴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거대한 공간 안에 사람이라고는 둘 밖에 없었다.

 

 

삼차원 스크린 위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최신 영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일종의 가상 역사의 문학 장르였는데, 디에고의 정치적 행보에서 일부 영감을 받은 시놉시스를 담고 있었다.

 

 

다만, 시시하게 마무리되었던 현실의 역사에서와 달리 배경과 조건이 달라진 가상 역사 속에서는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롭고 흥미로운 흐름이 전개되었다.

 

 

 

 

 

“매번 너는 저 배우에게서 눈을 잘 떼지 않는군.”

 

 

 

 

 

디에고가 자신의 관찰을 스스럼없이 말하자 알렉시스는 아주 잠시 멈칫하였다.

 

 

황태자는 프로 답게 시치미를 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랬나?”

 

 

 

 

 

“인물을 관찰하는 눈빛이 아주 미묘하게 다르거든.”

 

 

 

 

 

“불필요하게 예민한 관찰력이네.”

 

 

 

 

 

“하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자이니 이목이 끌리는 건 당연하다만, 네 시선은 동경이나 팬심과는 또 전혀 다르단 말이지.”

 

 

 

 

 

“훌륭한 외양과 재주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끌리는 건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여전히 시치미를 떼는 알렉시스를 디에고는 한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알렉 네 동생이지?”

 

 

 

 

 

아주 짧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안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황실 외에는 없다.

 

 

디에고는 그저 동물적인 직감에 의지하여 찍어보았을 뿐이리라.

 

 

 

 

 

“이해할 수 없군. 왜 그렇게 생각했지?”

 

 

 

 

 

“일단 생긴 게 닮았잖아. 특유의 아우라도 그렇고.”

 

 

 

 

 

“기분 나쁘네. 내가 무슨.”

 

 

 

 

 

동생들을 귀여워하면서도 의외로 외모가 닮았다는 말은 싫어하는 알렉시스.

 

 

딱히 동생들이 못나 보여서가 아니라 그냥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난 나고 동생들은 동생이란 말이다.

 

 

 

 

 

“뭐, 그건 그렇고 천재는 천재네. 나조차도 생각해내지 못한 역사를 저 새파랗게 어린 배우가 자기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구축해내는 듯한 느낌이란 말이지. 소름 돋는군. 저 정도라면 베테랑 정치인들도 깜빡 속여내겠어.”

 

 

 

 

 

그 말에는 동의하는 기색이었는지 알렉시스는 잠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내일 점심 때 시간 되나?”

 

 

 

 

 

이번에는 알렉시스 쪽에서 디에고에게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오, 어쩐 일이래? 나를 귀찮아하던 거 아니었나? 나야 지금은 백수 한량이니 시간이 넘쳐난다만.”

 

 

 

 

 

“놀아주려는 건 아니야. 오랜만에 중대사를 논의하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왕 논하려는 마당에 당신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 미끼에 디에고는 생각 없이 승낙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알렉시스는 은밀한 비밀 회담의 장소로 그를 데리고 갔다.

 

 

조명이 어둡고 거대한 육각형의 홀에 들어가자마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담대하기로 유명했던 디에고는 순간적으로 낯선 위화감에 얼어붙었다.

 

 

 

 

 

“오프라인에서 다 같이 모이는 건 오랜만이군요. 다들 앉아서 편히 드시죠.”

 

 

 

 

 

영 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열 개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태자 뒤에 서 있던 디에고는 땀을 삐질 삐질 흘렸다.

 

 

 

 

 

‘이런, 괴짜 반영웅들을 한 번에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

 

 

 

 

 

이윽고 한 명이 적막을 깨고 음성을 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하나 더 불러들이셨군요, 전하.”

 

 

 

 

 

“여러분과 같은 규격의 능력자라면 미리 통지를 해두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그렇습니다. 제 계획을 숙지시키고 미리 동의를 받아둬야 나중에 귀찮게 변수를 만들지 않겠죠.”

 

 

 

 

 

범상치 않은 무시무시한 아우라가 열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각기 다른 색채의 기묘한 위화감, 시대를 바꿀 영웅들의 두려운 위엄.

 

 

그 모든 색채가 황태자라는 존재감의 틀 안에 갇힌 채 제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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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회 [2부] 22화. 마스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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