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01회 [2부] 22화. 마스터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3.07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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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치자들 가운데도 유달리 완전함에 한없이 가까운 이들은 있다.
흔히 성군(聖君) 혹은 덕왕(德王)이라 불리는 이들, 현인 가운데 으뜸이라 칭송받는 존재들.
그런 축복은 한 시대에 하나 존재하기도 어려우며, 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천년을 고대하고 소망해도 한 번을 채 누리기 어렵다.
역사의 특이점이 된 브리튼은 그 희소성의 질서를 언약의 힘으로 붕괴시켰다.
그 반칙과 같은 은총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자신 위에 복리(複利)를 더하였고 끝내 인류의 인재 창고의 폭을 녹아내린 금마냥 길게 늘어뜨렸다.
그렇게 하여 한 시대에 비범한 괴인이 열 이상 출몰하는 괴현상이 벌어졌다.
재능이나 능력과 혜안에 있어서는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흠모받기에 합당했다.
하지만 사상의 방향성, 추구하는 청사진의 모습, 성향과 성정, 개성적인 색채는 제각기 너무도 판이했다.
그들 중 하나씩만 존재했더라면 한 시대의 개혁과 타개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그들 모두가 모인다면 그것은 예측 불허의 혼돈을 의미했으리라.
알렉시스는 자신이 소환한 열 명의 대영웅들을 둘러보았다.
맨 오른쪽에 선 제라드 폴 매카서 전 장군과 야코프 폰 카이퍼 수상.
두 사람은 마스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브리튼 제국에 충성하는 충신들이다.
알렉시스가 맨 먼저 포섭하여 자기 사람으로 길들인 것도 이 둘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황실과 황제의 뜻에 순응하여 다음 세대의 황제를 자신들의 상관으로 기꺼이 수용하였다.
지난 이터널 클렌징 작전 때에도 둘은 기꺼이 황태자의 기발하면서도 무모한 도전을 도와 그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매커서 총독은 알렉시스에게는 아버지 격의 정신적 지주로 그가 심리적으로도 의지하고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한때는 자신의 군 상관이었으며 지금은 동생 테서렉틴의 지도를 맡기기에 거리낌이 없는 좋은 스승이었다.
또한 덕성과 지혜와 용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카이퍼 수상 역시 마찬가지.
아버지의 조언자였던 야코프 카이퍼는 이제 부친에게서 아들에게로 양도되었다.
노년의 신사는 자신의 가문이 입은 마음의 빚을 갚고자 기꺼이 새 왕을 물심양면으로 돕기로 맹약했다.
하지만 모든 마스터들이 이들처럼 친 브리튼적 성향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 마음 속에 새워진 인류 경영의 원칙이 동일한 것도 아니었다.
한 중년의 남성이 앞으로 나아와 황태자에게 예를 표하며 손에 입을 맞추었다.
절제된 훌륭한 몸가짐에 고풍스러운 품격이 몸에 밴 그 남자.
이름은 무스타파 이스마일이었다.
“직접 뵙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태자 전하.”
“감사합니다, 이스마일 선생.”
알렉시스가 지금까지도 친히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이는 이 열둘 중에서 두 사람 뿐이었다.
하나는 그의 정치학 선생이었던 타이완의 노호(老虎), 양첸 타이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공식 스승이자 그에게 각종 계교와 술책을 가르쳐준 인간으로 바로 이 남자, 터키 반도의 무스타파 이스마일이었다.
양첸과 무스타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커뮤니스트 연방과 브리튼 제국이 세상을 양분하여 대립하던 냉전 시절, 그 경계에 속한 약소국의 지도자로서 거대 양국 모두를 능수능란히 농락한 괴인이라는 점이었다.
무스타파의 조국인 터키 지역은 세계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인류를 위협하였던 삼대 세력 중 하나였다.
그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이슬람의 맹주로서 근동 세계를 다스려왔다.
패전 이후 그들은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그들이 지배했던 나라들은 브리튼 혹은 연방에 삼켜졌고 극히 소수의 나라들만이 중립 완충 지대로 남겨졌다.
그리고 터키는 반으로 갈라져 서부는 브리튼의, 동부는 연방의 신탁 통치를 받게 되었다.
무스타파는 바로 그렇게 이어져온 질서를 새 방향으로 타파해낸 장본인이었다.
그는 외교와 로비, 그 외 각종 모략들을 동원하여 터키 반도를 지배하던 두 외세의 영향력을 뽑아내었다.
그리고 누구도 불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분단된 두 조각의 통일을 이뤄내었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 제국도 이 모략가 여우에게서 상당한 골탕을 먹었다.
범 커뮤니스트 연방은 그것의 몇 배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고도 무스타파는 교활하게 자신들의 이점과 고지를 활용했고, 화술과 설득을 동원하여 양 세력의 대립 가운데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렇게 무스타파의 슬기에 힘입어 터키는 양쪽 모두의 승인을 받아 하나의 독립국으로 재출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지혜로운 책략가는 당시의 동포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제안을,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요청을 내밀었다.
바로 이슬람이라는 범 지구적인 지배력의 시스템으로부터의 탈피였다.
무스타파는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미래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이슬람만큼은 브리튼 제국 황실도, 커뮤니스트 연방도, 결단코 용인해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종교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브리튼 황가도 결국 이 단 하나의 위험 종교만은 내버려두지 않는다. 때가 되면 반드시 사상(思想)의 칼날로 다스릴 것이다. 아니 다른 시민들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세상과 혼합되지 못하는 초승달 종교를 제거하겠지.’
그는 종교에서 탈피된 세속적 정부를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당시로서 이슬람도, 기독교도 받아들일 뜻이 없던 그로서는 최선의 제안이었다.
어리석은 동포들은 두 수 앞을 내다본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탄핵되었고 암살의 위협 끝에 도망치듯이 망명하였다.
작년에 있었던 알렉시스 황태자의 칼춤을 그 민족이 미리 보았더라면 무스타파의 선견지명을 진지하게 고려하였을까?
어쨌건 엎질러진 물은 엎질러진 물이었고, 한창 활약하다가 어처구니 없이 모든 기회를 잃은 무스타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골머리를 앓게 한 황제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복인지, 아니면 인재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알폰스 황제는 이때다 싶어 이 버려진 오리알을 사골국 우리듯 알차게 활용하였다.
어찌나 고차원, 고강도 노동으로 오래 부려먹었던지 이제는 무스타파 쪽에서 젊은 시절의 야심과 뜻을 다 접고 매너리즘에 빠져 은퇴를 바라게 될 지경이었다.
고향과 동포 민족들의 부흥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지금은 브리튼의 속국으로 전락했으니 알아서 잘들 해보라지.
허나 슬프게도 황제는 그의 소유권을 아들에게 이양하였다.
무스타파는 내키지 않는 마음 가운데서도 무서움 때문에 이 젊은 청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였다.
자신을 패망하게 하였던 그 강력한 이슬람의 영을 몇 년 사이에 죽여버린 남자인데 외경심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에게서 모략을 배워간 꼬마가 자신보다 더 알뜰하게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두 영악한 늙은 여우보다도 더 버거운 그릇들은 여럿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성자라고 불리는 대 지도자, 쿠조 말리크 만델라가 그 예였다.
흰 머리와 수염에 건장한 근육질 풍채가 인상적인 쿠조.
그는 서남부 컨티넌트에서만큼은 동포 민족들에 의해 황제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 거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본질은 충격적이게도 독립 운동가에 가까웠다.
그러면서도 브리튼과 가치적으로는 대립하지 않으려 했고, 항상 온건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하였다.
무력과 불법으로 날뛰는 이들보다 오히려 이런 류의 성자가 더 뼈 아픈 법이다.
인도에는 마하트마 인드라가 있다면 아프리카에는 쿠조 만델라가 있다.
이런 말이 있을만큼 그의 존재감은 막대했다.
차이가 있다면 브리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민족의 부강을 꾀했던 인드라와 달리, 쿠조는 브리튼의 가치는 계승하되 정치적인 독립을 열망했다.
그는 아프리카 합중국을 구축하여 브리튼과 정식 동맹을 맺고자 했다.
지배국과 속국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등한 입장으로서.
실제로 그는 그 큰 야심을 이루는 데 있어 거의 성공할 뻔 했었다.
다만, 브리튼의 통치자들이 시민들의 민심을 얻어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질서 속에 합류하기를 원하게 하자 쿠조는 이에 승복하고 자신의 뜻을 보류하였다.
만일 훗날 그릇된 뜻을 추구하는 왕이 나타나거나 부적합한 자가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쿠조나 그의 유지를 잇는 정신적 후계자는 기꺼이 다시금 비폭력적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뜻을 굳히리라.
다시 말해서 알렉시스가 성군답게 똑바로 행동하지 않는 한 쿠조는 언제든 그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이런 면 때문에 알렉시스는 그를 버거워하면서도 달가워했다.
이는 자신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어해주는 좋은 견제 장치라는 뜻이 아닌가.
거절하거나 내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악수를 나누는 두 건장한 용장의 손아귀에 강인한 악력이 스며들었다.
보랏빛 눈과 회색 눈 사이로 온화한 미덕에 섞인 팽팽한 긴장감이 조여졌다.
“유익하고 선한 계획을 제안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리더.”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그 곁에서 황태자를 묵묵히 응시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하나는 랍비인 아미르 코헨 벤큐리온으로 알렉시스의 친구였으며,
다른 하나는 아미르와 막역한 사이이자 유럽 지역의 상권을 장악한 거장으로 이름은 트라하 폰 바이스하우프트였다.
아미르가 세상 지식과 언변과 영예로서 자랑거리를 삼는 자라면, 트라하는 재물과 권력에 능통하였고 그것을 얻는 지혜가 탁월한 자였다.
아미르가 히브리 계열의 정통성을 지닌 혈통의 소유이듯, 트라하는 옛 귀족 출신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브리튼 황가 이상의 깊은 정통성과 역사성을 자랑하였다.
오십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귀족스러운 풍모에 매혹적인 이목구비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태자께서 당신에게 미리 계획에 대해 언질을 주시지는 않았는지요, 코헨?”
트라하가 아미르에게 질문하였다.
“글쎄요. 따로 들은 바는 없답니다.”
“그렇군요. 지난 번 사건도 그렇고, 당신을 특별히 신뢰하기에 뭔가 함께 상의를 나눌 줄 알았죠.”
“하하, 신뢰라니요. 가당찮은 말입니다.”
아미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황태자는 어떤 인간도 백퍼센트 신뢰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그때그때 동역자를 구하기는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경영을 온전히 이해하리라 믿지는 않아.’
심지어 아버지나 삼촌이나 가족들을 대할 때조차도.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보통 준비를 다 해놓은 뒤에 동역자를 끌어들이는 편이었다.
이윽고 알렉시스는 세 명의 여인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본래 적국 출신이었다가 전향한 이 세 명에 대해서는 후일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기회가 있으리라.
“반갑습니다, 누님들.”
“여전히 기운 넘쳐 보이니 다행이구나, 알렉.”
참고로 이 셋은 알렉시스는 대전쟁 시절에 적국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그가 아직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특수 요원이었던 때, 그는 적의 심장부에 침투하여 여러 모험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세 장소와 상황에서 이 여인들을 조우했다.
북부의 나탈리아 올가 알렉산드리아.
중앙의 하칸 바르에르든.
그리고 동부의 타오슈란 메이안.
세 사람 다 내부에서 연방을 자발적으로 파괴시킨 장본인들로 그 공적은 브리튼의 명장들과 영웅들 이상이었다.
이렇게 열국의 최상위 거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패기와 강인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들이었으나 지금 이 공간에서는 기이한 기운이 그들을 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압도하는 그 정체불명의 무형의 힘이 황태자에게서 기인한 것임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그 정체를 밝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순간, 보이지 않는 기묘한 ‘관측력’이 그들을 현미경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감시를 당하는 듯한 그 기이한 느낌에 자존심 강하고 뜻이 강인한 그들도 본능적으로 황태자에게 굴복당하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중요 안건을 전달하겠습니다.”
알렉시스는 어떤 ‘새로운 정책’을 점검받고자 열한 명에게 미리 보여주었다.
그는 최근 들어 인류의 시스템에 일정 범위 이상의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자제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어떤 큰 계략을 꾸밀 때면 늘 이렇게 최상위급 조력자들에게 점검 차원에서 동의를 구하곤 했다.
그 조력자들이 각기 다른 사상과 생각으로 무장한 십인십색의 이질적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험 정도는 가뿐히 통과해야 안전하게 집행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겠는가.
마스터들 모두 적잖은 깊은 인상을 받았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슬람 청산 계획 때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으나 장기적으로는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져올 플랜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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