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17회 [2부] 38화. 그림자 회담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4.21 | 회차평점 ![]() |
머나먼 과거, 로마는 지중해 근동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여 큰 위엄을 모두 앞에서 뽐내었다. 위대한 그리스의 정복 대왕을 계승하여 세계의 패자가 된 도시, 서방 세계의 모든 것은 그녀의 뱃속으로 집어삼켜졌다. 그 희생양 가운데는 신의 저주를 받은 페니키아인들의 찬란한 문명도 있었다. 그들의 모체이자 요람은 가나안 땅의 두로와 시돈이요, 그들이 세운 최후의 나라는 한니발의 모국인 카르타고였다.
군웅할거의 시대에 패권 경쟁에서 밀려난 페니키아의 종족은 와심상담의 마음으로 서방 세계의 유일한 패권자, 로마의 위장(胃腸) 속으로 들어가기를 택했다. 그들은 실력을 키움으로써 다시금 세상에 권위와 힘을 떨치리라고 다짐했다. 이전에는 국가라는 형태로 세력을 구축했다면, 이제는 기생충이 되어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의태하였다.
그렇게 위대했던 두로의 후손들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집념 어린 탐심과 한 맺힌 복수심 속에 고이 숨겨둔 채 암약하였다. 그들은 히브리인들처럼 지혜로웠고 이 세상의 삶에서 자신의 몫을 얻어내는 데 능통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미움과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긴 채 은밀하게 융화되어 어느 누구의 훼방도 받지 않은 채 암세포처럼 세계의 심장부를 침식하였다.
그들은 승리를 위해 모든 자존심을 내다버렸다. 민족적 정체성도 버렸고 자기들의 국가적 ‘얼과 유지’의 순수성도 기꺼이 포기하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 자신 속에 섞어 넣었고 모든 전술과 수법을 모방했으며, 거의 모든 영역 속에 침투하여 자신들을 그 영역의 일부로 동화시켰다. 어느 덧 그들에게는 서방과 근동의 거의 모든 일족의 피, 문화, 유산, 영향력이 섞여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하나의 종족 개념을 적용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들은 유전자를 통한 계승 개념을 포기하고 정신적, 사상적, 이념적 유전 전승을 통해 맥을 이어가는, 역사 속의 악성종양 조직이 되었다.
두로의 후예들은 시대마다 다양한 조직을 만들어 그림자로서 세상에 영향을 떨쳤다. 수많은 집단들이 흥하였다고 무너졌고, 때로는 합쳐지기도, 때로는 분열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계보의 후예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어둠의 그림자들이 흥망성쇄를 거치는 와중에 서방 세계는 강한 영향력을 얻어 지구 전체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그 원동력에 편승하여 기생충들도 자신의 세를 불렸다.
그리하여 16세기와 17세기 무렵에 이르러서는, 그들은 실질적으로 유럽과 그 너머의 모든 나라들에 음산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위협적인 권세가 되었다. 이후 로마의 후손들이 세계 전체로 확산되었고 그 정복의 풍파를 타고 저주 받은 가나인인들의 영은 포자를 퍼뜨리는 곰팡이마냥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19세기 무렵에 이르자 막후에서 암투를 벌이던 그림자 조직들의 상당수가 내분과 투쟁으로 정리되었고, 그 승리의 잔을 마신 통합된 여섯 개의 거대 조직들이 확립되었다. 그 무리는 사실상 하나하나가 대륙 단위로 권세를 떨치는 초거대기업과 같은 급수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흑막이 되어 모든 이들을 꼭두각시로 만들 기세였던 그들의 음흉한 야심에 제동을 건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브리튼 제국과 그것을 이끄는 지도층인 황가였다. 그리고 21세기인 오늘에 이르러 그 위협은 절정에 달하였고 마침내 비밀리에 꼭꼭 숨어있던 그림자 세력들의 수장이 침묵을 깨트렸다. 다시금 비상대책회의를 위해 협정의 자리로 올라왔다.
“그대들 모두를 한 자리에 뵙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구려.”
한 명의 위대한 장로가 정적을 깨고 음성을 발했다. 현재 그들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여있지 않았다. 그러나 시공간을 넘어 그들 모두의 정신이 한 자리에 집결하여 서로의 사상체들을 대면하는 중이었다. 오랜 세월의 체계적인 지식 연구와 어두운 오컬트의 힘을 결합해 완성해낸, 그 기술 덕택에 가능케 된 회의였다.
“아랫것들도 아닌, 우리와 같은 최고위 장로들이 한꺼번에 모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일이지만, 시국이 시국인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사실 암흑 회담의 소속자들이 종종 시공간을 건너 정신체의 형태로 회의를 벌이는 일은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여섯 대조직 내에는 10단계 이상의 피라미드 식 계층이 있었다. 그 가운데 2등급에서 7등급에 해당하는 자, 곧 집단의 중급 내지는 중상급 간부들은 종종 조직 내 회담을 주선하여 의제를 나누거나 중요 안건에 대해 회의를 하곤 했었다. 여섯 개의 거대 조직 각각은 자신 속에 여러 하부의 조직체를 갖고 있었고 그것들 간의 원할한 의견 조율을 위해서는 잦은 회의는 필수였다.
아울러 여섯 대조직들끼리도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얽혀 야합(野合)의 커넥션을 구축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조직 출신의 2등급 ~ 5등급의 간부들이 범 조직적 협의를 나누는 일도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이렇게 큰 테이블이 마련되는 경우에는 보통 세계를 논하는 일의 방향성을 재조정하거나 거대한 외부 세력에 대한 대책을 논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각 조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들만이, 그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이는 일은 거의 20년 만이었다. 20년 전의 그날, 그들은 실로 중대한 이슈를 마주하고 있었으니, 곧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브리튼에 의해 통일된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였었다. 이번 시국의 중요성은 가히 그때에 비할 정도로 막중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첫 번째 조직인 ‘광명협회’의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그들의 조직 내 직책은 ‘아크비숍’으로 세상을 찬란한 계몽의 광휘와 금단의 지식으로 인도하는 자들이었다.
두 번째 대조직인 ‘자유건축가연맹’의 최고 수장들도 총 열두 명이었는데 이들에게는 간부들과 조직원들로부터 얻은 존경과 경의의 칭호인 ‘아티텍터’라는 명예가 있었다. 이들은 위대한 후람의 후손이요, 저 강력한 한니발의 위엄을 계승한 자들이었으며 이 세상 삶에서 자신의 몫을 모두 얻은 자들이었다.
이 두 대연맹과 연루되어 있는 세 번째의 거대 조직은 스스로를 ‘로젠크로스’로 칭하였고 샤론의 장미를 대적하는 흑장미의 기치 아래에 집결된 자들이었다. 그들의 대장은 열두 명의 강력한 ‘대집정관(Archon)’들이었으니, 이들은 용사이자 지혜자였으며 시대를 풍미하던 영웅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은 비호하고 돕는 비밀스러운 결사대 가운데 또 하나가 있었고 그들이 바로 네 번째 그림자 세력인 ‘나이트템플러’였다. 이들의 수괴로 좌정한 자들은 열두 명의 기사단장이었다. 그들은 지식과 마법과 요술로 무장하였고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모하여 각자 자기 영역에서 탐욕스럽게 명예를 찬탈하였다.
이들 네 괴뢰 조직의 사주를 받아 행동 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무리가 바로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이었다. 여섯 중 비교적 가장 이른 때에 창설된 이들은 브리튼과 그 이웃 나라들의 내부에서 많은 유력 인사들을 포섭하였고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은밀하게 위세를 늘려나가던 중이었다.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의 영도자들의 숫자 역시 열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째 그림자집단의 이름은 ‘금빛새벽회’였다. 그들은 오컬트에 깊이 몰두된 집단으로, 음산한 속성이 여섯 무리 중 가장 짙었다. 고로 금단의 지식과 숨겨진 신비들을 짙게 물려받은 계승자들이었다. 은둔의 무리인 금빛새벽회는 총 열두 명의 마탑주의 다스림 아래에서 운영되어왔고 오랜 세월 유럽과 그 식민지들을 주름잡았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조직원은 하나 이상의 소속에 발을 걸친 채 겸직을 하곤 했다. 사실상 이들 여섯은 한 몸뚱아리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 브리튼이 언약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듯이 이들 여섯 족속 또한 고대부터 존재하던 탁한 계약들 위에 건축된 밀월체의 연장선이었다. 각 시대마다 그 영을 잇는 자들은 조금씩 다른 기치 하에, 조금씩 다른 조직명과 시스템을 내세워 활동하였으나, 결국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때 음지에서 세계를 주름잡았던 이 계몽자들이 갑자기 발등 위에 불이 떨어진 듯 허둥대는 모양새를 보이니, 이는 어떤 연유인가. 우스꽝스럽게도, 그들은 그들이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적수인 황태자도 아닌, 그 이하의 상대를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칵 뒤집히는 중이었다. 한때 오만하게 스스로를 뽐냈던 그들이 그만큼 수준 이하로 추락했다는 방증이었다. 현재 그들은 자기들의 뿌리인 두로와 카르타고의 가련한 행보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며칠 사이에 중앙정보국이 전면전 태세로 돌입한 이후 상황이 영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제6 아크비숍이 발언하였다.
“당췌 어떻게 알고 준비한 것인지 우리의 수족들과 프락치들을 아래에서부터 신속하게 치고 올라오는 중입니다.”
“어찌나 신속하고 거침없는지 대응할 틈새가 나오지 않습니다.”
“현재 이곳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제3 대집정관, 제7 영도자, 제9 마탑주의 생각 속에서 흘러나온 발언이 무형의 회의장 내부로 흘러들었다. 그들의 다급함에는 진실로 절박함이 맺혀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직면한 위기가 매우 실제적이고 치명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은 여섯 조직 모두가 대동소이했다.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 규모와 본질에 있어서 이전의 작전들과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중앙정보국은 수십 년에 걸쳐 치밀하게 음지의 모든 영역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였다. 테러리스트 조직, 반국가 집단, 조직폭력배, 각종 대리전 수행 조직, 불법 용병들, 화이트칼라 범죄자들과 사기꾼들, 부패한 국가 관료들과 기업인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카르텔들의 더러운 내장 구조는 이미 98% 이상 훤히 밝혀진 상태였다. 그 무시무시한 정보력과 행동력의 중앙정보국이 침묵의 휴전을 깨트리고 역사상 유례없는 토벌전에 돌입했다.
“내버려두면 우리 촉수들과 수족들을 전부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세력만을 잡아내고 있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선의의 피해자도 만들어내지 않은 채.”
아키텍터 두 명이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현 전황은 그들의 말마따마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미 중앙정보국은 범죄의 연결고리에 파고들어 상당한 진전을 이뤄내었고 연루된 연합체들과 그 배후들을 색출해내는 중에 있었다. 브리튼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산하조직들 아래 또다른 산하조직을 두고, 그 아래 대리자들을 두기를 반복하며 수백 갈래의 촉수들을 거미줄처럼 구축해두었건만, 그 공든탑이 단 며칠 사이에 30% 이상 무너졌다. 이 속도라면 배후에 존재하는 비밀결사단들의 실체에까지 닿을 수 있으리라. 황태자도 아니고 일개 조직에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대집정관이 격노에 차 외쳤다. 울분에 북받친 발악, 그러나 그도 엄연히 대집정관이요 수장이었다.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며 그저 도망칠 줄이나 아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었다. 중앙정보국 출신의 마크 맥라렌, 엘리자베스 해시, 로버트 카멜론, 라비 앨커슨 같은, 내로라 하는 불후의 명장들의 위상을 충분히 알았고 그들을 경계하여 대비책을 세울 줄 아는 능력도 있었다. 허나 그가 배신감에 분개한 데에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이유가 있었다.
“그 망할 애송이! 어떻게 해서 우리를 배신한 거지?”
분노의 화살은 바로 그 숱한 전설급 요원들 전부를 컨트롤하는 천재 전략가, 곧 애송이 에쉬튼 카드모스 브라이틀란트 황자를 겨냥하고 있었다. 외부인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지만, 여섯 조직 입장에서는 그 ‘근본조차 없는 가짜 황자’의 반전 행태야말로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타격이었다. 그 애송이의 여유만한한 비웃음이 눈앞에 생생히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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