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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18회 [2부] 39화. 그림자 회담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4.23 | 회차평점 0 0

 

 

 

*

 

 

 

 

 

 

 

 

브리튼 황실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언약을 맺었던 백성이 하나 있었다. 메시아를 배출하였던 히브리 민족이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언약은 유효하나 지금은 잠시 보류된 상태로 그 신적 계약의 효력이 재활성화되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이 언약을 맺었을 때 이 사실을 맹렬히 증오하고 시기한 이들이 도처에 존재했다. 마치 브리튼의 왕이 처음으로 하나님과 거룩한 약속을 체결했을 때 이웃의 국가들이 그들의 특별한 신분을 파괴하고자 애썼던 것처럼. 그리고 인간들이나 악령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레퍼토리는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니, 그들은 히브리 민족을 상대할 때나 브리튼을 상대할 때나 늘 똑같이 식상한 공략법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식상하다’라 함은 그것이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최소 일정 부분은 먹혀들어가는, 그런대로 괜찮은 효력을 지녔음을 시사하는 바이다. 애초에 그러니까 자주 사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식상한 공략법이란 바로 ‘연합’을 빙자한 ‘야합’이었다. 언약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끔 하는 탁한 요소들과 끈끈한 연을 맺도록 유도하는 것, 곧 부정한 것과 멍에를 같이 메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결혼’이었다.

 

 

브리튼의 가장 오래된 적은 이슬람도, 교황청도, 공산주의도 아니었다. 종교계에 침투한 바벨 시티의 에니그마, 두로와 페니키아의 영적 후손인 비밀결사단들, 그리고 또다른 일단의 무리들, 이들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영들이야말로 브리튼을 가장 오랫동안 미워하고 괴롭혀온 적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정면으로 크리스토프의 직계 자손들을 이길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당장 크리스토프 본인부터가 훌륭한 성군이자 현왕이었는데, 그 아들은 그보다 두 배나 더 나은 위인으로 당대의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맏아들은 또다시 그보다 두 배 더 나은 자가 되었고, 이 같은 일들이 장자(長子)를 통해서건, 장녀(長女)를 통해서건 대대손손 계승되었다. 즉 세월이 흐를수록 이 승부는 압도적으로 그림자의 무리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그렇기에 두로와 바벨의 영적 후손들은 정공법보다 더 확실한, 비열함의 술책을 동원하였다. 바로 연혼(連婚)을 이용하는 것. 사회 속으로 몰래 숨어든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브리튼의 황실과 그 방계 가문들, 그리고 위대한 건국 공신들과 가신들의 후손들 속에 자신들의 트로이 목마를 심었다. 여인을 통해서, 혹은 남자를 통해서, 결혼 제도를 통해 가문 내에 위험 인자들을 심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브리튼 황실과 그 휘하 가문들, 혹은 국가의 유력한 인사들의 모임 사이로 적들의 기생충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는 실로 위험천만한 흐름이었으니, 언약의 틀에 단단히 묶인 브리튼의 지도자들의 연맹체 내부로 또다른 종류의 사악한 계약의 끈이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했다.

 

 

연혼을 통해 흑암 세력의 스파이들이 브리튼 유력가들의 가문에 들어가는데 성공하면 그 다음 세대에는 반드시 한 명 이상의 후손이 나타나 악한 유지에 감염된 채 마음과 뜻을 적에게 내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손은 자신이 적에게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아는 경우도 있었고, 전혀 알지 못한 채 적의 꼭두각시가 되는 일도 있었다.

 

 

후일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배역한 무리는 대담하게도 황가의 후예들 속에도, 심지어 나중에는 황실 직계에까지도 손을 뻗쳤다.

 

 

물론 그들의 침투 전략이 100%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침투시킨 첩자들이 도리어 전향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어쨌건 숱한 노력과 밑작업 끝에 어느 정도는 브리튼의 유서깊은 가문들이 영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오염 당하게 되었다. 직계도 예외가 아니거늘, 하물며 방계 가문은 어떠하겠는가.

 

 

 

 

 

바로 그 ‘황실 방계 가문들의 외부 오염’으로 생긴 산물 가운데 하나가 에쉬튼이었다. 그리고 그림자 세력 입장에서는 참으로 호재이겠지만, 에쉬튼은 더 나아가 황실 직계 가문 내에 입양되기까지 했다.

 

 

오염이라고 해서 에쉬튼이라는 인간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는 그의 부모님에게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일정 부분 그 사상과 근본에 있어서 적들의 영향력에 오염된 인물이었고, 그의 아버지 역시도 황실 방계 후손 출신이긴 했으나 그 윗대에서 적들의 영향력을 적잖이 받았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에쉬튼의 부모님은 대전쟁 초기 당시에 불행의 사고로 숨을 거뒀다. 민간 선척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던 중 연방과 제국의 교전에 휘말려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분명 사실이기는 하나, 이 일의 배후에는 또다른 이들의 음흉한 개입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는 그렇게 단신으로 세상에 남겨졌는데, 황실보다 먼저 그에게 손을 뻗친 이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정체를 교묘히 감추고서는 아이에게 접근하여 비밀스러운 후원 세력 행세를 하였다. 아이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은 그들은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 아이를 혼미케하였고, 갖은 미혹과 가스라이팅으로 아이가 조종당하도록 유도하였다.

 

 

에쉬튼의 부모님이 ‘그들’과 연루된 자들이다 보니 ‘그들’의 친밀한 접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의 가까운 이웃, 친지, 후원자, 동료를 자처하는 자들이 아이에게 다가갔고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척하며 은밀히 그릇된 사상과 쓴 뿌리와 독한 마음을 심어주었다.

 

 

아울러 가계(家系) 자체가 ‘그들’과 연루된 탓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경향성도 어린 에쉬튼에게 영향을 미쳤다. 음흉한 ‘그들’은 가스라이팅 뿐 아니라 실질적인 저주도 아이에게 씌웠다. ‘헥스(Hex)’라고 불리는 이 주술은 ‘목소리의 힘’을 매개로 전달되는 권능으로, 어떤 일정한 말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희생양으로 하여금 특정한 사상이나 경향성에 경도되도록 하는 힘이었다.

 

 

다중의 헥스에 씌워진 아이는 특정 무리의 음흉한 뒷배경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판단력을 봉인당했으며, 브리튼의 가치관과 국가적 정당성을 무의식중에 의심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

 

 

 

 

 

이런 배경을 알기에 에쉬튼이라는 인간이 황실 내에 심겼다는 사실은 그림자 세력의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승부수를 걸어볼만한 히든카드와도 같았다. 그런데 왠걸.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 불어닥쳤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애송이가 가장 먼저 그들의 심장부를 향한 맹공을 개시했다.

 

 

갑작스런 배신이 아니었다. 정황상 에쉬튼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을 몰락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음이 분명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는가. 중앙정보국에 입사한 때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결과적으로 뒷통수를 맞은 건 브리튼 황실 쪽이 아닌 그림자 세력들 쪽이 되었다.

 

 

 

 

 

“헥스가 이미 한참 전에 깨어진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금빛새벽회 10위 서열의 제10 마탑주가 발언했다.

 

 

“분명 천 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메커니즘의 저주들을 조합해서 사용했다지 않았는가? 그대들의 부주의함과 무능함 탓이 아니겠는가?”

 

 

광명협회의 아크비숍 중 하나가 힐난하듯 물었다.

 

 

“게다가 그 꼬맹이는 기독교인도 아니지 않은가?”

 

 

자유건축가연맹의 제3 아키텍터가 말했다.

 

 

“과연 그렇다면 금빛새벽회와 광명협회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저주 중 단 하나도 깨트릴 수 없을 터. 기이한 일이로군. 그대들이 실수했다고 믿기는 어렵군.”

 

 

그러자 로젠크로스 소속의 제5 대집정관이 개입하여 말을 끊었다.

 

 

“자, 자, 이미 벌어진 일로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아무 소용 없는 법일세.”

 

 

회의장이 잠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건 생각 이상의 타격이야.”

 

 

에쉬튼의 배신 아닌 배신이 뼈아픈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그림자 세력은 나름 중앙정보국의 내부에도 자신들의 첩자와 영향력을 많이 이식해두었다. 결정적인 때에 황실의 발목을 잡고 브리튼 내부의 질서를 해이해지게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헌데, 에쉬튼의 분별력과 감찰력이 이 오랜 안배를 모조리 무위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는 마치 중앙정보국 내부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누가 적의 사람이고 누가 충신인지, 어떤 이의 사상이 불온하며 어떤 이가 충직한지, 겉보기로 드러나는 증거들을 넘어 각 사람의 속내까지도 간파하는 듯 지혜롭고 면밀히 대처하고 있었다.

 

 

에쉬튼은 지금껏 자신이 헥스로부터, 그리고 친부모의 배경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얻었다는 사실을 교묘히 감추었다. 여전히 그림자 세력의 실체를 모르는 척, 그들의 위장된 하수인들과 적절히 교류를 나누며 아무것도 모른채 이용당하는 양 그런대로 연기를 했었다. 그 와중에 그는 적의 흉측한 심장부를 파악해가고 있었으며 자신 주변의 동료들 가운데 믿을만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누구인지를 판별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었다.

 

 

마치 점이라도 치듯 정밀히 적의 첩자들을 간파해낸 에쉬튼, 그는 들키지 않도록 은밀히 중앙정보국 내부 인사를 분리하였고, 결정적인 때에 이르러 믿을 수 없는 자들을 중요 정보로부터 격리해둔 채, 신뢰할만한 이들만을 대동하여 작전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되려 아무것도 모른 채 속은 이들은 ‘그들’이었다. 미리 정보를 전해받지 못한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프락치들이 예고도 없이 신속히 숙청당하는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며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했다.

 

 

“어쩌면 그 가짜 황자는 헥스로부터 해방된 이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꼭두각시들의 불길한 냄새를 감지할 감지력을 얻었는지도 모르지.”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의 아홉 번째 영도자가 말했다.

 

 

“실제로 그대들이 부리는 ‘헥스’의 리스크 중 하나가 그것이니까. 인위적으로 사상의 방향을 고정하는 술책이기에 효과는 확실하지만, 한 번 틀에서 벗어나버리면 도리어 우리쪽에 대한 감지 능력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성장해버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한 이념적 진영에 깊숙이 몸을 담갔다가 나중에 전향한 자들이야말로 과거 몸 담았던 진영을 가장 속속들이 이해하는 법이다. 믿었던 도끼야말로 가장 괴롭게 발등을 내리찍는 법이다.

 

 

 

 

 

현재 브리튼의 군대나 정치 세력 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 쪽도 표면적으로는 잠잠했다. 맹공을 개시하는 세력은 오로지 중앙정보국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심각히 밀려나고 말았다. 만약 여기에 다른 이들까지 개입한다면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은 명약관화였다.

 

 

“지금 고려해야 할 문제는 그 가증한 꼬맹이만이 아니야.”

 

 

제2 아키텍터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중앙정보국이 어떻게 그토록 우리에 대해 깊숙이 정보를 얻었는지, 그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 필요하겠군.”

 

 

그의 말대로 이것이 더 큰 문제였다. 에쉬튼이 아무리 대단한 지략가라고 해도, 또 중앙정보국의 정보력과 유능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수백 년의 세월간 브리튼 내부에 거미줄 같은 진지를 구축해둔 그림자 세력의 진실들을 낱낱이 파악하기란 역부족이다. 그 말인즉, 중앙정보국에게 천기를 누설한 다른 어떤 요인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설마 ‘워쳐’들…, 그 빌어먹을 황태자의 ‘사역마(事役魔)’들인가?”

 

 

나이트템플러 세력의 제3 기사단장이 격분하며 말했다.

 

 

“그 망할 존재들이 끝까지 우리의 발목을!”

 

 

“아닐세. 그럴 리가 없지.”

 

 

광명협회의 제2 아크비숍이 제3 기사단장의 말을 끊으며 반론하였다.

 

 

“다른 세력이라면 모를까, 중앙정보국만은 결코 워쳐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네. 아니, 결코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해야 옳겠지.”

 

 

그의 말에 제10 대집정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알렉시스 황태자라면 결코 워쳐들과 그쪽 세력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앙정보국은 애초에…….”

 

 

대집정관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타 정재계 조직들과 다르게, 본질 상 황실을 돕는 기관이 아닌, 황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기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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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 유튜브 채널 '피스타이거'의 '두로 시리즈'와 '에돔 시리즈'와 '바빌론 시리즈'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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