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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46회 [2부] 67화. 흑막들의 준동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24 | 회차평점 0 0

 

 

 

초자연계로부터 온 낯선 왕의 강림이 확증된 후, 암흑계의 여섯 맹주는 소문들과 의견의 나뉨으로 술렁였다. 그들은 기대와 두려움, 불확실성과 기대로 인해 마음이 쪼개졌다. 본래 주술적인 자들은 이러한 때에 주술의 힘에 기대어 미래의 해답을 얻길 갈구하는 법이다. 점치는 자, 때를 보는 자, 마법을 행하는 자, 술객들과 박수들, 그리고 부리는 영을 다루는 자들까지. 이들의 세계에서 이런 행태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각종 마술적 방법을 통해 그들은 점을 쳤다. 계몽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의 속에 든 마신의 이름이 무엇일지, 그가 정말로 그들이 조상대로부터 가장 고대하고 섬기던 또다른 ‘하나님’인지, 만일 그렇다면 그를 담은 그릇은 누구인지 몹시 알기를 원했다.

 

 

그 무렵에 미심쩍은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챈슬러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마지막으로 회담에 참여한 이후로 그와의 연락이 온오프라인은 물론 오컬트 의식을 통한 원격 회의로부터 끊어졌다. 대외적으로도 그가 활동 중이라는 단서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는 칩거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획책하는 중인가? 하필이면 알렉시스가 잠든 시점인지라 의심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챈슬러가 배신을 택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이들은 그가 뭔가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중이리라고 막연히 예견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챈슬러가 혹시 그 계몽자 왕과 연루된 것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시했다.

 

 

실제로 챈슬러는 종종 자신이야말로 힐렐의 그릇으로 쓰임받기에 합당하다는 뉘양스의 언급을 흘리곤 했었다. 혹은 자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후손 가운데는 광명의 택함을 받을 이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농담조로 하기도 했었다. 챈슬러에게 어떤 후손들이 있는지 그 명단은 같은 동료인 여섯 맹주의 지도자들도 몰랐다. 워낙 꿍꿍이를 알기 힘든 인간이니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씨들을 세계 곳곳에 퍼뜨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정말로 그의 가문이 마신의 선택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일종의 희생양으로 바쳐짐으로써 신의 부활을 위한 제물이 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 자신의 몸이 곧 계몽자를 담을 그릇이 된 것은 아닐까?

 

 

불확실성으로 인해 의견은 통일되지 않았다. 광명협회의 아크비숍들 중 몇은 차라리 이 기회에 챈슬러를 추적하여 제거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이트템플러 출신의 기사단장들은 이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몇몇 마탑주들은 챈슬러의 추적보다는 계몽자의 거처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로젠크로스의 대집정관들은 중립을 유지한 채 지켜보았다.

 

 

“어쩌면 챈슬러는 우리의 이런 동요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간을 보는 것인지도 모르지.”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의 제1 영도자가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 그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다른 이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이제 우리는 황실과의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야 할세.”

 

 

이미 황태자의 여러 업적 중 하나가 꺾였으니 나머지도 파죽지세로 넘어질 것은 당연지사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물론 은밀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음모와 책략을 바탕으로 싸움을 전개해야 하리라. 이것이 절대다수의 의견이었고 이 방향으로 추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모든 변수에 대비하자는 말일세.”

 

 

“하긴, 내분부터 막는 것이 우선이지.”

 

 

현실을 직시하자면, 현재 여섯 조직끼리의 연합은 물론이고 한 조직 내부에서의 연합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큰 축에서는 비슷하게 영적 궤를 같이했지만, 그 내부에도 분명 다양성과 이질성은 존재했다.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세부 분파끼리의 알력 다툼도 알게 모르게 있었다. 당장은 황실이라는 공공의 적으로 인해 연합된 듯 보였으나 그 실상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느슨한 연맹체였다.

 

 

이런 때에 달콤한 기회의 떡에 그들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치명적인 분열의 기폭제였다. 일단 누가 계몽자를 차지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여기서부터 이미 다툼의 소지가 선명했고 치열한 쟁탈전이 예견되는 바였다. 더 나아가 계몽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그를 찾는다면 어떻게 처우할 것인지, 이 부분도 문제였다.

 

 

 

 

 

 

 

 

 

 

 

*

 

 

 

 

 

바로 그 시점, 챈슬러는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채 잠잠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복잡한 사고 실험이 그의 머릿속에서 맹렬히 가동되었다. 그는 수만 가지의 상황들을 고려하며 상상력과 창조성을 총동원하였다. 그리고 추리력을 발휘하여 이 사태의 진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고자 애썼다.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가?’

 

 

이성적인 지혜에 있어서 다른 조직 수장들보다 훨씬 더 탁월한 사람이 바로 챈슬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주술적인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신의 존재를 믿었고 이원론을 믿었다. 그는 힐렐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분이 현계에 다시금 현현할 것을 확신했다. 여러 마술들과 마법들에 능통한 그이기에 이것이 단순한 미신이 아닌 현실임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계몽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로서도 당췌 가늠이 서지 않았다. 계몽자 속에 정말로 신이 들어 있는 것인가? 그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마계의 신들은 자신의 이름을 속일 수 있다. 일단 두로의 후손들부터가 그러한 거짓의 능통함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며 섬기는 자들이다. 그러니 동료들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처지이고 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혹시 힐렐의 이름을 사칭한 어떤 장난꾸러기 거짓 신이 그 속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혹은 그가 생각하던 초자연계에 대한 상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초자연계의 정치적 투쟁 진영은 그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역학 관계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분쟁 구도를 다 계시받지 못한 인간이기에 많은 부분을 불확실성 속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의문스러운 부분은 이거이군.”

 

 

힐렐을 담은 그릇이 누구란 말인가? 모든 마법적 예언들에 대한 분석 결과, 챈슬러는 이런 결론에 이미 도달하였었다. 만약에 이 시대에 힐렐이 성육한다면 반드시 챈슬러 자신의 유전자를 매개로 임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 밖의 가능성은 그 스스로 완전히 제거하고 차단해둔 상태였다. 모든 헥스와 주술 코드의 정통성은 오롯이 챈슬러의 게놈 및 에피게놈과 연동되었고 그 외의 가문들은 이미 바벨 시티의 중앙 열쇠 노릇을 감당하지 못한다.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금 마신의 그릇이 된 저 존재는 챈슬러의 후손인가? 그에게는 여러 사생아가 있었다. 자기 자신도 다 얼굴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생아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 황실의 직계와 방계 가운데도 그런 이들이 숨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각성한 것인가?’

 

 

이미 챈슬러가 보낸 여러 첩자들과 감시 시스템은 황급히 그의 옛 흔적들을 검색하는 중이었다. 그가 씨앗을 남겨둔 가문들과 지역들, 그 모든 곳이 수색되는 중이었다.

 

 

정작 더 두려운 부분은 바로 이러한 추적을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일단 바벨 시티의 열쇠로서의 권한 중 알짜배기에 해당되는 95% 이상이 챈슬러 자신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원로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들도 자신의 씨앗들을 유념해서 보고 있으리라. 더 큰 문제는 브리튼 측이었다.

 

 

‘그녀는 내 비밀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와의 신뢰를 확실하게 다져는 일이 필요하다. 그녀는 지금 누구의 편인가? 그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만일 이용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황제와 대공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응하려면 그녀와의 확고한 연맹이 필요하다.

 

 

 

 

 

 

 

 

 

 

 

*

 

 

 

 

 

펠렌드로크는 근심이 옅게 서린 무표정으로 자신의 저택에 들어섰다. 사용인들이 주인인 그를 공손히 맞이하였다. 방에 들어간 그는 양복 코트를 벗어 가사용 안드로이드에게 맡긴 뒤 다소 거칠게 소매와 목의 단추를 풀어 느슨하게 하였다. 장신의 탄탄하고 건장한 근육질 체격이 옷맵시 위로 드러난 모습에서 그의 전투적이고 사나운 성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제국의 거대한 부와 권력을 운용하고 다스리는 유능한 차세대 지도자, 그는 강력한 실세 중 하나였으며 여러 모사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왕좌에 좌정한 황제와 황태자도 많은 실권과 기회를 그에게 맡겼다. 펠렌드로크는 항상 그런 주군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항상 맡겨진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내곤 했다.

 

 

그런 그를 고뇌에 빠트린 일들이 있었으니, 최근 벌어진 일련의 괴이한 사건들이었다. 황태자에 대한 소문이나 마인드 퓨리파이어 이변의 경우야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걱정하는 문제였으나, 펠렌드로크의 경우 다른 엘리트들보다 배 이상 정보력이 탁월했기에 음지의 문제들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아는 게 탈이었다. 지금 드러난 문제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함을 그는 잘 알았다. 너무 많은 부분을 알아버린 것이 그의 고뇌의 근원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냉랭하면서도 단아하게 정련된 고풍스러운 음성이 그의 귓가를 긁었다. 아름다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귀부인이었다. 펠렌드로크와 동일한 부류의 책략가이기도 했고 각종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재능과 능력을 자랑하는 사업가이며 세계를 주도하는 젊은 인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 자수성가형 인재. 그러면서도 대대로 학자 가문으로 명망을 떨친 집안에서 태어난 여인. 그녀는 바로 3년 전에 펠렌드로크와 정략 결혼을 맺은 아내, 클라린스 레이카였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부인의 고저 없는 인사에 검붉은 머리의 냉철한 미남은 영혼 없이 고개를 움직여 응답하였다. 사실 둘 사이는 애정이 뜨거운 것도,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닌, 어떤 의미에서는 사무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신뢰로만 연결된 그런 관계였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유능한 인재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았다.

 

 

“당신의 고민을 내가 추측해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 오늘은 좀 더 일하다 들어갈테니 먼저 들어가서 쉬도록 해.”

 

 

평소에 식사나 잠자리를 함께 할 때도 이렇듯 미묘하게 찬 바람이 불던 둘이었다. 클라린스는 애초에 남편에게서 뜨거운 애정이나 사랑을 기대하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 잘생기고 냉혹한 미남자는 자신의 전략과 비전을 공유하고 나눌 동행자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들’ 내부에서 어떤 내분이나 준동이 벌어진 모양이네요.”

 

 

단발 머리의 고고한 미녀가 차분히 내뱉은 정곡의 말에 펠렌드로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찬찬히 생각을 삼키며 고민하였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아내는 손수 넥타이와 셔츠를 풀어주며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제 조언이 필요하지는 않으신지요?”

 

 

“그대가 고민할 안건은 아니야.”

 

 

“하지만 이제껏 있던 일들을 기억하실 테죠. 제 제안대로 했을 때 결정적인 해답의 실마리가 드러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여인은 훤히 드러난 남편의 단단한 목덜미를 살며시 손바닥으로 쓸었다. 금욕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이 남자는 성벽처럼 완벽해보이는 가운데 작은 틈을 드러내는 시점이 이르면 더욱 치명적이고 강한 향기를 발산하는 존재였다.

 

 

“그 부분은 인정하네만, 부인. 허나 이 일은 지나치게 복잡한 실타래가 되었어.”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내 기분이 너무 복잡하군. 형님 문제 때문에 더욱 생각이 많아져서 머리가 아프단 말이지.”

 

 

“이해해요.”

 

 

클라린스의 짙은 눈동자 속으로 어떤 깊은 생각들이 깃들었다.

 

 

“그자들의 파멸을 앞당기고 싶으신 것이죠?”

 

 

그녀는 남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야 물론.”

 

 

“제게 한 가지 책략이 있어요. 당신이라면 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현실로 만들 수 있겠죠. 황태자 전하께서 부재 중이신 지금 당신 외에는 이걸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펠렌드로크의 적자색 눈이 절제된 호기심으로 이채를 발하였다. 이지적이고 냉철한 장신의 미남자는 조심스레 자제된 몸짓으로 아내에게 얼굴을 가까이 이끌어 눈을 마주하였다. 그는 클라린스의 매혹적인 향을 만끽하며 그녀의 귓가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들어보죠,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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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현실의 ㅇㄹㅁㄴㅌ, ㅍㄹㅁㅇㅅ 등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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