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52회 [2부] 73화. 주술적 내란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1 | 회차평점 ![]() |
몇 달 전부터 중앙정보국은 음지의 세력을 감시하고 있었다. 정보국장 입장에서는 의도치도 원치도 않은 일이었다지만 펠렌드로크 황자 쪽 세력과의 비밀 접촉을 기점으로 각종 힌트들을 얻었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많은 진척을 이뤘다.
두로의 후예들, 정보국장의 의붓형제인 제로스의 표현대로라면 ‘에니그마의 수호자’들, 그들은 현재까지 뿌리뽑히지 않은 이 사회의 거의 마지막 남은 조직적 악성 종양이었다. 그자들의 내부망이 어떠하며 사회 각층의 어느 집단과 어떤 단체에 촉수를 뻗쳤고, 또 의심되는 관계자들은 누구인지, 첩자로 추정되는 이는 누구이며 어느 선까지 얽혔는지, 프락치 노릇을 하는 하부 조직들은 무엇인지, 이미 많은 정보들이 증명되어 에쉬튼 국장의 데이터베이스에 체계적으로 저축되었다.
이미 놈들의 촉수 중 50% 이상은 적출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음지의 무리들이었다. 심문을 통해 자백도 상당 부분 받아내었고 윗선에 대한 정보도 적지 않게 캐낸 참이었다. 가장 완벽한 시점에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터뜨리기를 기다리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매우 이상한 반전 기류가 포착되었다. 에쉬튼과 그의 부관들은 이변을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은 운명의 결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접근해오는 징조를 감지했다. 그래서 중앙정보국과 그 하청 기관들은 일제히 대대적인 첩보 및 체포 작전을 가동하였다. 아울러 모든 경로를 통해 정보들을 최대한 모았으며 그것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거듭 작전을 세부 변경하였다.
기괴하고 비이성적으로 증폭된 적성 세력의 난기류는 연말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였다.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인 형태로, 사방에서 산발적인 이상 행위들이 나타났다. 중범죄에 해당하는 조직적 반동 행동이 난무하였고 그 모든 행태가 긴밀하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갑작스럽고 조짐이나 예비 동작 없이 시작된 행태들이었다.
에쉬튼은 감시망을 최대한도로 넓히며 때를 기다렸다. 숨어 있던 모든 벌레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올라와 감시망에 걸려야만 했다. 그는 기존에 노획한 정보에 밀거래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활용하여 선제적으로 나섰다. 어떤 자들이 숨은 반역자일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근거 데이터베이스가 있기에 유리했다. 시간은 중앙정보국의 편이었다.
마침내 12월 30일이 이르렀을 때, 중앙정보국은 사전 경고 없이 사냥을 시작했다. 의심스러운 무리가 이미 북부 신대륙의 대서양 연안 욕(York) 스테이트 쪽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또다른 움직임이 유럽의 구 이탈리아 지역으로 수렴하였다.
미리 어떤 자들이 숨은 범죄자인지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악한 에쉬튼의 요원들은 아무런 소음도 발생하지 않은 채 용의자들을 연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릴 수 있는 하청 집단들의 70% 이상이 사전에 차단되었고 그들의 여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어찌나 정교히 체포가 이뤄졌는지 대중은 이러한 대란이 물밑에서 격동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 30%의 하청 집단과 그 관계자들, 그리고 주요 거물들의 움직임은 지속적인 중앙정보국 감시의 레이더망에 잡히게 되었다. 감시망에서 벗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적었고 이들도 곧 추적 당할 예정이었다.
내로라하는 전문 요원들이 무인 유닛들의 보조를 받아 능수능란히 첩보 작전을 성사시키는 중, 정보국장은 마지막 결정적 단서가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중이었다. 그와 협력 관계를 맺은 최고위 정보 기술 과학자들이 노획물들의 메모리를 열쇠로 정교히 열었다.
“역시나인가.”
문제의 그 노획물들이란 바로 최근 이변 때 돌발 폭주를 일으킨 정체불명의 로봇들이었다. 에쉬튼은 이 존재들에 대해서는 사전에 받은 보고가 없었다. 동물적 감각이 비상한 그는 중대한 문제 풀이의 열쇠가 바로 저것들 안에 있으리라는 결론을 추리해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정부 기관들에 앞서 가장 발빠르고 공격적으로 개입했다. 중앙정보국에 허락된 모든 공권력, 자원, 정보력, 행동력을 총동원하여 폭주 로봇들의 몸체를 회수하는 일에 나섰다. 경우에 따라서는 로비와 설득, 심지어는 비밀스러운 협박까지 동원해가면서 타 치안 유지 기관들로부터 그 로봇 몸체들을 인수받았다.
기민한 선제 행동 덕에 대부분의 기체를 지체 없이 넘겨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도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기관 측에서 반발하거나 반항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고, 민간 세력 또는 정체불명의 범죄 세력 개입으로 인해 방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에쉬튼과 그에게 충성스러운 요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회수 작전에 사활을 걸었다. 강압과 회유, 합법적 방법과 다소 선을 넘나드는 수단까지도 활용되었다. 유능한 지략가들과 행동 대장들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로봇 회수를 훼방하는 범죄 세력은 퇴치되거나 격퇴되었고 무력을 앞세워 직접 개입한 암살자들과 청부업자들이 적잖이 사살되었다.
‘저들은 이 로봇들의 의미를 알고 있다.’
에니그마의 수호자들과 그들의 영향 아래 놓인 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 인간형 은닉 로봇들을 회수하려 덤벼들었다. 그것들이 이번 게임의 아주 중요한 열쇠라는 증거이리라.
아마 공권력 내부에도 그런 그들에 찬동한 반란자들이 일부 숨어 있었으리라. 아마 내버려두었으면 정부 기관들 내부에서 빼돌림이 벌어졌을 것이다. 혹은 수송 도중에 습격을 통해 탈취당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식으로 눈 뜨고 코 베여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첨단화된 시스템을 운용할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세력, 혹은 인물은 지구 상에 하나뿐이야.’
비록 로봇들에 대한 진실은 알지 못했으나 에쉬튼도 어느 정도 추리의 나래를 뻗칠 수는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나마 이 숨겨진 모든 일들이 황태자인 큰형과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하였다. 정말일까? 인간들 사이에 몰래 숨어든 이 고도의 인공지능 위장 안드로이드들을 창조한 배후가 형님일까? 왜일까? 무엇을 위해서 이것을 계획하신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알렉 형님은 인간 세상을 규제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이런 계획을 하셨을까?’
이런 증거물들이 훤히 드러난 이상 의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훌륭한 성군이라고 해도 결국 ‘권력’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불완전한 한 사람이 쥐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권능이다. 어쩌면 형님도 어느 순간 권력욕 또는 과도한 사명감에 취하여 선을 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처음에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와 방향의 어긋남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권세자들과 재력가들을 감시해온 에쉬튼의 인생에는 종류를 막론하고 권력 그 자체에 대해 불신과 경계를 품는 철학이 형성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가 몸을 담은 중앙정보국의 설립에 그런 목적이 포함되기도 한 바였다. 그런 입장이기에 에쉬튼은 스스로가 황가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황실의 정책적 저의와 인류 경영 방식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야만 했다.
문제는 왜 여러 음지의 불온한 세력들이 이 로봇들이 드러남과 동시에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느냐였다. 에쉬튼은 이번 현상에서 어떤 신호를 감지하였다. 그는 각종 복잡한 추측들과 의심과 경각심의 나래를 잠시 제어한 채 가장 급한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형님을 직접 앞에 세워두고 묻고 싶지만.’
질문에 답해줄 알렉시스는 지금 없었다. 그에게서 명쾌한 해명 또는 자백이라도 듣는다면 마음을 놓으련만, 이런 찝찝한 기분을 안고 가야 한다는 건 솔직히 괴로운 일이었다.
에쉬튼은 고심 끝에 황태자의 깊은 의중을 한 번 믿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설령 그의 방식이 100% 정당화될 수는 없을지라도, 그에게는 어떤 결연한 의지와 생각이 분명 있었으리라. 어쩌면 드러내놓고 해명해주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 일단 형제를 믿어보기로 했으니 이제 해답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일은 자신의 몫이었다.
사흘 간 집중적인 두뇌 노역을 쏟아부은 결과, 중앙정보국은 기어코 포획된 십만여 기의 로봇들의 포렌식 작업을 완수하였다. 그 내용물은 에쉬튼은 일정 부분 예상했던 바와 일치했다.
“처음부터 형님은 이걸 목표로 설계했었나?”
그 재수없는 펠렌드로크가 부하들을 거쳐 건네 준 정보들이 대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중앙정보국을 움직이는 에쉬튼 자신조차도 닿지 못한 기밀들이 어떻게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를 깊이 의심했었거늘, 이런 원리였을 줄이야. 에쉬튼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워쳐들과 거래를 맺었던 건가?”
어쩌면 펠렌드로크 한 명이 전부는 아니리라. 다른 황자들도 이들과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로봇들, 감시자(watcher)들 속에 내장된 데이터는 실로 압도적이다 못해 전쟁의 방향마저 뒤바꿀 거대한 가치의 무기였다.
‘펠렌드로크 녀석이 거래를 통해 워쳐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새 발의 피다. 워쳐들은 황자들에게도 자신의 진짜 패를 전부 드러내지 않고 있었어.’
하지만 이제 워쳐들의 모든 것은 자신의 수중에 있다. 이 일에 대해 형님의 차분한 설명을 듣는 것은 그분이 깨어난 뒤의 일이고 지금은 데이터의 가치를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해야 마땅하리라.
정보국장은 곧장 파견된 전 요원에게 최종 단계로의 돌입을 명령했다.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워쳐들에게서 추출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본진에 결정적 쐐기를 박은 뒤 브리튼 제국의 경찰력과 군사력과 더불어 협동해 마지막 사냥을 감당하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다. 승리가 눈앞이다. 무혈입성에 가까운 완승을 거두리라. 단순히 적의 가담자들만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되는 원동력 자체를 적출하여 영원히 제거할 수 있다.
*
호주 대륙의 어느 도시.
“첫 실험치고는 나쁘지 않겠어.”
중년의 한 남자가 화려한 건물의 마천루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슈퍼 컴퓨터들과 홀로그램 모니터들이 진열되어 사내에게 필요한 주요 데이터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느긋한 자태로 안락 의자에 걸터 앉아 모든 정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인식하였다. 타고난 명석함에 더해 뇌리에 칩이 심겨진 그에게는 이 방대한 정보의 동시 판단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며칠 간 남자는 이곳 호주로 자신의 휘하 측근들과 각종 협력자들, 그리고 여러 외부 동맹자들과 그 끄나풀들을 유인하였다. 여섯 대조직의 멤버들과 하수인들이 모든 영향력을 북부 신대륙의 요크 주(州)와 구 유럽의 로마 주로 집중시키는 동안, 남자만은 몰래 배후에 숨은 채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중이었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추앙한 왕을 믿고 ‘큰 심판’이 오기를 기다리며 인디언 기우제를 드리겠지. 하지만 미안하지만 그대들이 바라는 소원은 이뤄지지 않아.”
그는 어리석은 자들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알았다. 그들이 향한 곳에는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들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굳이 그 자멸을 막아주고픈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자신은 자신대로 뜻을 계획하고 나머지 패배자들은 소모품으로 써주는 편이 낫지 않겠나.
“그 왕은 그대들을 굽어살펴주지 않아.”
남자는 여유로이 몸을 뉘인 채 손에 쥔 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들이 신호에 반응하였다. 이윽고 어떤 전자 신호가 단계적으로 확산되어 세계의 네트워크 전방으로 흘러들었다.
“너희가 믿는 왕은 거짓말쟁이, 혹은 호수 위에 뜬 달 그림자 같은 허상이다.”
조용히 그는 위험한 작은 공을 쏘아올렸다.
“덫에 걸린 건 너희들의 책임이지. 하지만 아주 쓸모 없는 건 아니야. 황태자가 잠든 이때야말로 광기의 파란을 지피기에는 최적이로군. 이왕 죽게 된 운명이라면 이 몸을 위해서 장렬히 폭주하며 죽거라.”
남자, 에돔의 후손인 챈슬러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에 걸렸다.
‘제법이다만 너희의 각본대로 흐르지는 않는단다, 애송이들.’
상대가 황태자가 아니라면 해볼 만 하다. 마스터들도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잠잠히 지켜보고만 있다. 그리고 황제는 큰 물고기 떼에 집중하느라 몰래 빠져나간 자신에게는 시선을 두고 있지 않다. 죽더라도 곱게 죽어주지는 않으리라. 브리튼은 이제 화액을 입게 되리라.
“완성형 광역사상조작병기, 재가동.”
{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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