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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88회 [2부] 외전 4화. 제리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0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제시카랑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

 

 

형이 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응.”

 

 

동생은 쑥스러움에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울 동생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네.”

 

 

알렉시스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속으로 뿌듯해하였다.

 

 

 

 

 

제시카는 평범한 정원사 출신의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금 큰 교회에서 목회를 담당하는 목사님이지만 경제적인 형편은 평균적인 시민 수준이었다. 다만 아버지의 영적 유산을 물려받은 덕인지 제시카는 젊은 시절부터 말씀 사역에 열정적이었다.

 

 

전임 사역자의 길을 걷진 않았으나 대신 성실히 일을 하는 와중에 틈을 내어 거리에서 복음 트랙(Gospel tract, 전도지)을 나누거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 친절하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다. 성격도 매우 쾌활하며 진리를 분명하게 전하되 온건하고 선량한 어투로 접근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사이버 네트워크상에서도 그녀는 매일의 말씀을 사람들과 공유하였는데, 비록 그 팔로워의 수가 적긴 했으나 개의치 않고 매일 성실하게 이 일을 묵묵히, 그리고 기쁘게 행하였다.

 

 

아울러 그녀는 정원사로서도 솜씨가 일품이었고 조경사(造景史)로서 창조적인 재주를 발휘하여 소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일꾼이었다. 그녀의 솜씨와 성실함에 덕을 본 많은 사람이 그녀를 호평하였고 덕분에 복음 전파의 새로운 문이 더 열리기도 하였다.

 

 

혼자 거주하는 제리는 우연히 그녀의 소문을 듣고는 정원 조경에 도움을 받은 바 있었다. 이때 작품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제리는 그녀의 도움을 몇 번 더 청하였고 팁까지 많이 쳐주면서까지 그녀의 단골을 자처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녀와 만날 기회가 잦아졌고 곧 우정이 싹텄다.

 

 

제시카가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성실한 복음의 일꾼임을 알게 된 이후로 그의 관심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 호감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제리는 수시로 그녀를 초대하여 다과나 음식을 대접하였고 여러 핑계로 데이트를 신청했으며 주말이 오면 그녀와 대화하며 자신들의 관심사를 공유하였다. 특히 둘은 신앙적인 코드가 매우 잘 맞았다. 같은 가치관과 믿음을 가진 덕에 둘은 금세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연은 인연인지, 제시카는 제리의 책들의 애독자가 되었다. 원래도 종종 즐겨보긴 했는데, 제리가 바로 그 작가임을 알게 되면서 그의 매력을 더욱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 그의 저서들에 더욱 푹 빠지게 되었다.

 

 

자신이 황실의 일원인 것을 밝힌 것은 최근 일이었다.

 

 

얼굴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세르빈, 유타, 엘리어트, 펠렌드로크 등과 달리 제로스는 그 정체가 ‘그 유명한 천재 작가’라는 사실이 알려지지는 않았고, 외부에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얼굴은 자주 드러내지 않았다. 신문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도 황실 측에서 모두 모자이크로 제어하기도 했고. 그래서 얼굴과 ‘제리(일반적인 이름에서는 보통 Jerry로 표기하지만, 제로스의 경우 철자는 Zerry이다)’라는 흔한 애칭만 말했을 때는 못 알아보는 이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인지 결혼 프러포즈를 하기 전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그는 많은 걱정을 하였다. 감사하게도 제시카는 큰 부담과 충격을 느끼긴 했으나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 제리를 거절하지 않았다. 알폰스와 세일린도 그녀를 합격점에 두었다. 알렉시스도 오래전에 결혼을 승낙한 상태였다. 아직 정식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주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제수씨랑도 같이 와. 형이랑 같이 셋이 함께 식사하자.”

 

 

“고마워.”

 

 

정식으로 축복받은 것이 기뻤는지 제로스는 헤벌쭉 웃었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형인가.’

 

 

제로스는 홀로 고민에 잠겼다. 다른 형제들도 애인이 있거나 곧 정략결혼을 할 예정이니 금세 자기 가정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형과 나눈 약속대로라면 그때부터는 형을 위한 반려를 찾는 일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 형이 빨리 안정을 찾고 행복해져야 하는 데 말이지.’

 

 

이 부분이 가장 걱정이었다.

 

 

‘물론 알렉 형은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훌륭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아직 제리가 열두 살쯤 되던 꼬마 시절에 큰형은 세상의 운명은 건 대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였다. 자칫하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모두가 두려워하던 절체절명의 시험이었다. 안전하게 황궁 안에서 보호받던 꼬마 제리도 무서웠거늘 그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직접 싸워야 했던 형은 얼마나 더 버거웠을까.

 

 

형은 너무도 자랑스럽고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는 연전연승으로 나라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시민들을 구하려다 동료들을 잃고 홀로 고립되어 무장 단체에 포로가 되었다. 황실은 발칵 뒤집어졌다. 범인은 적국이었던 커뮤니스트 연방도 아니고, 제3 세력인 이슬람 테러 단체였다.

 

 

사태는 며칠 간의 구출 작전 끝에 해결되긴 했다. 하지만 그 며칠을 포로로 잡혀 있던 사이에, 형은 빈사 상태가 되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아직 당시의 제리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형이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맨다는 말을 엿듣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감사하게도 형은 깨어났고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만류에도 다시 전쟁터에 복귀하였다. 그는 특전사가 아닌 사령부의 전략가로서 활약했고 동시에 스파이로서, 과학자로서 활약했다. 형 덕분에 브리튼 제국은 커뮤니스트 연방의 사상조작병기를 공략했고 또한 핵전쟁 역시 더 규모가 확대되기 전에 최소화될 수 있었다.

 

 

그날 형이 어떻게 다쳤는지 제리는 직접 보지 못했고 이후로도 형에게 감히 묻지 못했다. 소문에 매우 민감하기에 돌고 도는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쉬쉬하면서도 이미 대강은 진실에 대한 대단히 정확한 추리를 해낸 상태였고 그 소문은 암암리에 돌았다. 실제로 얼마 전에 트라하도 그 약점을 바탕으로 형의 면전에서 모욕적인 조롱을 퍼붓기도 했었다.

 

 

제리는 동생으로서 몹시 슬펐다.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우리 형에게 그런 모욕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

 

 

다른 동생들은 종종 형과 함께 씻기도 했으니, 부상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긴 보았으리라. 하지만 차마 그들에게 관련된 걸 물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들도 함부로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오늘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매우 착잡했다. 형이 자신과의 심리적인 벽을 허문 건 고맙지만, 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니 괴로웠다. 그날도 그날이지만 이후로도 계속 고통과 수치와 불편에 시달렸겠지.

 

 

 

 

 

“제리, 나 사실 고민이 있는데 말이야.”

 

 

알렉시스는 수심을 솔직하게 표정으로 드러내며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고민을 억누르며 어른스러운 척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어려운 감정을 토로하고 상담을 나누는 것, 알렉시스에게는 이것이 지금까지는 어려웠다. 항상 모든 문제의 해결자 노릇을 해야 하는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동생들 가운데서 제로스의 지혜로움과 품성을 특별히 높이 사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는 솔직해지게 되었다.

 

 

“말해줘, 형.”

 

 

“그게 말이지.”

 

 

제로스는 걱정스러워하며 형의 근심을 경청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형이 용기를 내어 터놓은 내면의 고통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였다. 그는 여태껏 PTSD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게다가 거의 며칠에 한 번꼴로 꿈에서 그 장면이 재현되는 통에 자주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남들 앞에서의 위축됨과 수치스러움도 상당했다.

 

 

그는 단순히 굴욕감 때문만이 아니라 정체 모를 죄책감과 지워지지 않는 자기혐오에 고통받고 있었다. 객관적인 정황을 보면 자기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 잘못에 대해 고통을 받는 것 같은 느낌으로 괴로워했다. 고문당하던 시절에 그가 얻은 기억 가운데는 매우 흐릿한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이것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탓에 그는 더욱 자기 정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다.

 

 

환상통도 한몫하였다. 의학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음에도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그 상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닿는 것만으로도 가상의 고통이 임했다. 정신적인 문제인지라 마취도 통하지 않는다. 그간 이것을 태연하게 견뎌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때 그들은 내 살점을 1mm 단위로 얇게 칼로 잘라냈어.”

 

 

제리는 형의 회고를 듣고는 기가 막혀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칼질을 수십 번씩 당한 격이었지. 단번에 절단당한 것도 아니고 천천히…….”

 

 

“형!”

 

 

형의 죽는 상이 된 얼굴을 본 제리는 재빨리 그의 회상을 만류했다.

 

 

사실 그보다 더한 절망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었다. 더는 남자 노릇을 못 하게 되었다는 비굴한 좌절감,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고충이었다.

 

 

“보기 좀 흉하지?”

 

 

그는 시선을 아래로 축 떨어트렸다. 그때 남성에게 중요한 신체 외부 기관의 대부분을 절단당했다. 천만다행으로 양쪽 생식샘은 생존했기에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전과 같이 정상이었고 근육과 힘도 잘 유지되었다. 하지만 생식샘도 여러 번 둔기로 얻어맞은 탓에 심하게 부었고 여러 번 수술을 거친 끝에야 아물었다. 정자 생성력이 과연 보존되었는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전립샘도 칼로 몇 번 찔렸기에 신경이 훼손되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형, 요새는 의술과 생명공학이 많이 발달했잖아.”

 

 

제리는 진심을 담아 부탁하듯 제안했다.

 

 

“정신적인 고통만 잘 이겨내면 어떻게든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평소의 형답지 않게 나약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설령 치료받는다고 해도 원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너무 큰 충격이 그대로 몸과 마음에 각인되었거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무력하게 한숨 쉬는 형의 모습에 동생은 몹시 속상했다.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상실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이 안위를 줄 수 있을까?

 

 

 

 

 

스스로 주에게 연합한 타국인의 아들은 말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자신의 백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셨다,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보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이사야서 56:3)

 

 

 

 

 

고대의 바빌론 제국에 사로잡혀간 유다 포로들, 곧 나라를 잃고 이국땅에서 강제로 환관이 되어 고통을 받던 소년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이 이방의 속된 음식들로 자신을 결코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강하게 다짐했던 것은 이런 뼈아픈 고통으로 인한 뉘우침이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몸서리칠 정도로 극심한 수치와 아픔으로 조국의 범죄에 대한 경고를 받았으니 다시는 그 어떤 죄와도 타협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겠지. 그랬으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풀무 불이 눈앞에 있었어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하튼 존경하는 훌륭한 형이 이런 괴로움으로 무력하게 주눅 든 광경을 보려니 자신 또한 괴로웠다.

 

 

“사람들 앞에서는 남자다움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현실의 내 처지는 참 모순적이지.”

 

 

자조하는 형의 독백에 동생은 딱 잘라 반박했다.

 

 

“가장 위대한 남자다움이란 건,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내주고 희생하는 용기야, 형.”

 

 

그는 가라앉은 형의 넓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 중에도 형만큼 훌륭하고 멋진 남자는 없어.”

 

 

위로를 위한 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었다. 지금 이 모습으로도 충분히 가장 멋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그리고 앞으로 이 아픔도 딛고 극복해서 더욱 당당히 전진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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