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89회 [2부] 외전 5화. 에쉬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21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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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국은 브리튼 제국의 공적인 기관이다. 다만, 친 황실 성향은 아니다. 도리어 근본부터 황실 견제 기관의 성격을 띤다.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권력의 무게중심이 황제에게로 수렴하는 브리튼 제국의 성격상 이례적으로 독특한 기관이라 할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하면 황실의 견제 역은 그 외에도 여럿 있다.
역대 황제들은 지혜로운 사람들로 자신과 그 후손을 포함하여 어느 인간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나라의 기초를 닦았던 종교개혁자들의 교리, 곧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다’라는 명제를 믿었고 그랬기에 절대 권력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깊이 인지했다.
그래서 각 세대의 황제들은 저 나름의 노력으로 자신의 힘을 제어해 줄 보조자들을 찾아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약의 효력 때문에 황제의 권능은 대를 거칠수록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힘들의 최종 수렴점이 된다. 이는 결국 교만이나 부패와 맞물려 되려 언약을 파괴하는 결과를 충분히 낳을 수 있다. 이런 계산이 서자 언약의 ‘지속 가능성’을 확실시 하기 위해서라도 견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방도를 만들어두어도 대부분은 시간이 흘러 황실을 위한 보조 도구로 흡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의회 시스템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여러 단계에 걸쳐 많은 의회가 나름 지혜롭고 체계적인 헌법 규칙에 따라 함께 협력하며 정밀하게 작동하였고 황실의 조언자 노릇을 잘 해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의회 내부에는 타락 또는 과잉 충성이라는 두 가지 극단이 침투했다. 알폰스 황제와 알렉시스 황태자의 개입으로 두 번에 걸쳐 의회의 대대적인 수술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의회의 상당 부분은 황태자의 수하에 놓인 세력이 되었다.
비단 의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알렉시스 본인도 이런 비가역적 흐름의 문제점을 인지하는 중이었다. 학계도, 재계도, 산업계도, 언론도, 미디어도, 심지어 종교계도, 그의 무시무시한 중력에 의해 끌려가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는 황태자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제어되지 않는 불수의적 현상인데, 이는 그가 질량중심으로서 모든 질량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는 항성과도 같은 존재감을 지닌 탓이었다. 특별히 이슬람을 상대로 거둔 승리와 연이어 거둔 그림자 세력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사람들의 신임과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의 충성을 그에게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미봉책으로 비블로스의 제어권을 쪼개놓지 않았다면 더는 견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미 이르렀을 것이다.
중앙정보국도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시대적인 중력 궤도 안에서 벗어날 리 없다. 알렉시스도 이 사실을 알았고 중앙정보국장인 에쉬튼도 알았다. 더욱이 황태자와 중앙정보국 사이에는 저번 사태와 관련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해명해야 할 껄끄러운 이슈들이 남아 있었다. 곧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당사자들 처지에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일들이 정리되고 3월쯤에 알렉시스는 중앙정보국에 대한 제어 코드를 아버지에게서 인계받았다.
이에 황태자는 공식적으로 중앙정보국의 인사권에 간섭하여 내부 구조 개편에 관여하였다. 일종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이었는데, 지난 내란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은밀한 부분들에 대한 피드백이기도 했다. 국가에 끝까지 충성한 유능하고 충직한 일꾼들에게 중요 직책을 맡겼으며 믿을 수 없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다. 한순간에 황태자의 영향력은 중앙정보국 전체에 강하게 뿌리내렸다.
이후 알렉시스는 중앙정보국의 주요 지도자들을 소환하였다. 그들을 잘 길들이기 위한 목적도 있고 앞으로 직접적으로 그들을 사용하여 일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공인할 목적이었다.
“다들 반갑네. 늘 헌신이 많군.”
이미 그들 중 몇은 황제와도 대면한 적이 있었으나 황태자가 준 인상은 사뭇 달랐다. 온화한 인품은 비슷했으나 존재감에서 발원하는 중력의 크기가 다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한 성격이지만 공적인 처지에 있을 때의 그는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중력장 아래에 묶어두는 존재였다. 요원들은 앞으로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직감을 가졌다.
“그대들과 지난 일들에 대해 나눠야 할 논의가 많다네.”
알렉시스는 매우 면밀하게, 정곡을 찌르는 주요 사항들에 대해 요원들에게 질문했다. 나라가 내부에서부터 뒤집어졌던 그 모든 일에 관해 그는 꼬치꼬치 캐물으며 요원들을 시험하였다. 일부러 곤경에 빠트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며 도리어 칭찬하기 위한 용도이긴 했으나 얼마나 예리하고 기습적인지 백전노장 요원들 모두가 긴장감에 압도되어 진이 빠졌다. 그러나 공식적인 상관 앞에서 정보를 감출 권한은 없기에 그들은 낱낱이 진실을 실토했다. 정보 대부분은 이미 알렉시스 측에서 알고 있었으나 추가적인 소득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상하 우열 관계가 더 확실하게 정립되었다. 요원들은 황태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두려운 사람임을 머릿속에 철저히 각인하였다. 좋은 사람임은 분명하나 가볍지는 않다. 그에게는 어떤 은폐나 왜곡이나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정보력은 이미 중앙정보국 전체를 웃돌며 통찰력과 지혜는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황실이라면 몰라도 황태자를 견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위축되지 않고 그 위세를 견디는 건 여기서 한 명뿐이었다.
“황태자 전하.”
한 목소리가 대화를 잠시 멈춰 세웠다.
“이 자리를 빌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흑발에 가까운 고동색 머리의 청년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를 앞에 두고 흔들림 없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동공은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선명한 보랏빛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그 진중한 기백에 황태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크, 엘리자베스, 로버트.”
황태자가 요원들을 호명했다.
“네, 전하.”
긴장감에 위축된 그들이었다.
“다른 이들을 데리고 잠시 여기서 자리를 비워줬으면 좋겠군요. 삼십 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중앙정보국장과 단둘이서 국가 기밀을 논의할 생각이라서.”
“알겠습니다.”
마크 멕라렌과 부관들은 황태자의 명령대로 중앙정보국 주요 관련자들을 데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황태자의 인간 비서들, 로봇 비서들 및 정부 직원들마자 자리를 피해주었다.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
“그래, 에쉬.”
엄숙했던 어조를 순식간에 누그러뜨리는 알렉시스.
“송구하지만 전하께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긴밀히 질문드리고 싶었던 것도…….”
“둘밖에 없으니, 형이라고 불러도 좋아, 에쉬.”
“아닙니다. 중앙정보국장으로서 저는 워쳐들과 바벨 시티 수호자들의 일과 직접 연루된 당사자입니다. 내란 사태에 대한 책무를 맡은 장본인이고도 하고요. 그러니 이 모든 진실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계실 황태자 전하와 정식으로 처음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이에 알렉시스는 만지작거리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자세를 반듯이 고쳤다. 아쉬움 비슷한 감정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많이 어른스러워졌구나, 에쉬튼.”
“전하.”
“형님이라고 부르면 네 질문에 답해줄게.”
“알겠습니다, 형님.”
그제야 알렉시스는 능글맞게 잘생긴 얼굴 위로 느긋한 미소를 걸었다.
“우리 동생의 의문이라면 어느 쪽이지? 둘 중 하나일 텐데. 바벨 시티의 에니그마에 관한 건가, 아니면 워쳐에 대한 건가?”
“이왕이면 둘 다 듣고 싶습니다.”
“네게는 그럴 권리가 있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사로잡힌 적 세력 중 상당수의 심문을 맡은 것도, 그리고 나포된 워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중앙정보국이다. 그걸 알기에 알렉시스도 노골적으로 제어권을 취하겠노라고 온 것이다. 수장이 동생인 만큼 원활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품에 안고 세상의 풍파로부터 씻겨주던 그 작은 아이가 어느덧 한 명의 강력한 지휘관으로 자라나 홀로 서게 되었다. 알렉시스도 이제 그것을 현실로써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리라.
“제 부관들의 기선을 제압하신 건 견제하시기 위함입니까?”
오늘의 대화 방식은 알렉시스답지 않게 유독 상대를 곤경으로 모는 화법에 가까웠다. 아마 상대하는 조직이 황실을 견제하는 기관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에쉬튼은 그렇게 지레짐작하였다.
“그런 면도 없잖아 있었지.”
“우리가 황실에 불충하거나 비협조적으로 굴 것을 염려하셨다면 그건…….”
“아니, 너를 생각해서 조직 내부를 길들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어.”
“네?”
“너 아직 조직 내부를 100% 장악하진 못했잖아. 매우 잘해주고 있긴 한데, 아직 네게 벅찬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지난 사태 때도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정보국 내 세력이 있었어.”
“…….”
과연 알렉시스의 말대로였다. 아직 젊은 국장에게 온전히 복종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 치고는 대단히 능숙히 조직을 활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완벽하게 에쉬튼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장악이 요구된다.
“앞으로도 너희는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들을 많이 맡아줘야 해. 요원들 모두가 너를 중심으로 네게로 뜻을 모을 의무가 있지. 그러니 나도 틈날 때마다 피드백을 줄 의향이야. 전에는 방치했었지만, 이제는 내 직할 기관이니 좀 더 내부 정리가 필요하지.”
에쉬튼은 형님 앞에서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도 이왕이면 나를 이용하도록 해. 이미 네 공적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더 절대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배경으로서든, 지원군으로서든, 나를 활용해.”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에쉬튼은 곤란한 화제를 덮어두고 그의 본 질문을 향해 움직였다.
“형님께서는 왜 워쳐들을 창조하신 것입니까?”
이 질문에는 중대한 전제가 있었다. 워쳐들의 창조자는 알렉시스와 그의 세력이다. 워쳐들의 근원이 전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현재, 이런 결론을 당연하듯 가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지도 모른다. 누구보다도 사실 관계의 정확한 분별에 신중해야 할 중앙정보국장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도 아니다.
하지만 에쉬튼은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의 질문은 ‘형님께서 정말로 저것들을 창조하신 것이 맞습니까’가 아닌, ‘왜 창조하셨습니까’였다. 그리고 알렉시스 역시 이 지적에서 도망칠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이 실망스러웠구나, 에쉬.”
“저에게 형님의 뜻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나 자격은 없습니다. 그저 연루된 관계자로서 올바르게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이 질문이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일과도 직결되었다고 감히 판단합니다.”
당돌하게 찔러오는 동생의 강인한 눈빛에 알렉시스는 머뭇거리며 고민했다. 항상 공적인 자리에서 중대한 대화가 오갈 때 자신은 누군가를 취조하는 쪽이 되면 되었지, 반대로 추궁당하는 처지가 된 적은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대언자들의 책망을 들을 때를 제외하면 일방적으로 옳고 그름을 교정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신보다 하급자에게 난처한 추궁을 당하는 지금 입장은 낯설었다. 하필 상대가 동생이라서 그런지 난처함이 한층 더했다.
“형님은, 혹 인류 전체를 위험 요인으로 보고 감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까?”
“네 의견은 어떻니?”
“단순히 ‘그렇다’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형님이 정말 인류 전체를 감시하는 체계를 소유하시길 원했다면,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은 수없이 많았을 테니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그가 소유한 기업체를 통해 모든 개인과 조직의 정보망을 일거수일투족 장악하는 일은 매우 쉽다. 개인 전자장비를 비롯해 현 문명의 이기 중에는 어느 것 하나 커버넌트 그룹의 상표 밖에 있는 것이 없으니까. 하드웨어들도, 정보망도, 소프트웨어도, 그들의 손안에 있다. 그러니 알렉시스가 선을 넘길 원한다면 그는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제가 아는 형님은 인류 위에 힘으로 군림하기를 택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너무 안일한 평가는 아닐까?”
“수많은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들을 상대해 왔습니다. 사람에 대한 안목이 아주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워쳐들의 존재 목적. 일단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데, 바로 ‘그림자 정부’와 ‘어둠의 세력’을 감시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에쉬튼은 워쳐들에게서 그들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었고 마지막에는 역전승을 위한 기밀까지도 얻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알렉시스가 계획하던 바에 그 이상의 목적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 목적의 범위가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기에 두려움이 들었다. 형님이 자신이 아는 대로 선량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만일 저 선한 왕 이면에 자신이 모르던 위험한 면이 내재되어 있다면, 두렵건대 자신은 오늘 그것을 바르게 파악할 의무를 마주해야 한다.
“형님은 워쳐들을 통해서 대체 무엇을……, 아니 어쩌면 워쳐들은 그저 시작점일지도 모르겠군요. 형님의 영향력과 권능이 인류 전반에 어디까지 깊고 넓게 뿌리내렸는지 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계획하는 목적을 알고 싶다는 말이구나.”
알렉시스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름 잘 연기하여 숨기고는 있으나 그도 아주 조금은 난감했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다. 마냥 아이 취급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둬야겠다. 대등한 한 명의 어른으로서 존중해줘야 마땅하겠지.
“지금의 네 정보력이라면 이미 더 깊은 부분에까지 접근했을지도 모르겠네. 은폐하는 것도 더는 의미 없겠구나.”
알렉시스는 차렷 자세로 서 있던 동생을 정중히 자신 앞의 의자에 앉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에 대한 준비였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거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이미 너도 제리에게 이런저런 비밀들을 들었겠지.”
알렉시스 황태자는 어떤 인간도 다가가지 못한 세계 이면의 수수께끼들에 대해 귀중한 기밀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상대가 아우이기에 베푸는 특별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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