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93회 [2부] 외전 9화. 에디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25 | 회차평점 0
|
*
에드윈은 정말로 변했다. 전에는 훌륭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철부지였던 그였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자기 말처럼 망나니에 가까웠다. 외적인 재능만 뛰어났을 뿐 인격적인 형성에 있어서 결함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형님이 자신을 다른 형제들과 동일하게 아낀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고 동시에 올바른 가치관을 다시 기초부터 배움으로써 그는 노력을 시작했다.
당장 전 존재가 뒤집히는 격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싹이 돋는 것이 보였다. 습관이 달라졌으며 태도가 변화하였고 성숙함이 더해졌다. 자신보다 못 가진 사람을 교만하게 경멸하는 습성이 점점 옅어졌고 잘난 외모와 재능을 신뢰하며 방자하게 굴던 것도 서서히 사라졌다. 아마도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존중하던 큰형님의 태도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의 변화가 소문으로 전달되었다. 황실의 직계 및 방계 사람들은 크게 의아해했다. 문제아가 철이 들다니. 해가 서편에서 뜨려는가. 분명 긍정적인 징조임은 맞는데 너무 낯선 변화인지라 되려 불안감이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알았다. 에드윈이 얼마나 내면에서부터 깊이 근심하고 반성했는지. 적어도 그는 형님의 애정 담긴 책망을 경멸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또한 수잔나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못난 옛 모습을 거울로 보듯 생생하게 직면했기에 그로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 일에 연루되었던 제로스나 이안은 의붓형제가 비뚤어지지 않고 건전한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에드윈의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사실 과학자들이었다. 특별히 팀 에덴의 선배 멤버들과 그 협력 업체들 및 동업자들은 이 악동의 개과천선에 당혹감을 표했다.
예전부터 사실 에드윈은 유명했다. 그 천재성이 워낙 빛을 발하기도 했으며 거의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팔방미인 성향에 실제적인 성과까지 꽤 산출한 기린아였으니까. 하지만 예전의 그는 지극히 오만했다. 자신보다 선배인 과학자들의 자존심을 짓밟아놓는 게 특기였다. 다른 학자들의 가설을 무참히 반증하며 무너뜨리기도 했고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남들이 못 풀던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조롱을 던지기도 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그런 이유로 에드윈을 꽤 싫어했다. 차라리 알렉시스같이 궤가 다른 천재라면 견딜 수 있다. 그래, 유례없는 절대적 일인자가 하나 정도는 존재할 수도 있지. 자기 전문 분야도 아닌 일을 전문가인 그들보다 훨씬 잘 해내는 사람의 존재란 자존심을 짓밟는 괴로움이긴 하나, 그렇다고 천재지변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에드윈은 재능 면에서는 알렉시스보다 못한 주제에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대부분의 학자들보다는 더 영리했다.
그러나 이렇게 미운털이 박혔던 그 청년이 정식으로 막내 멤버가 되면서부터는 학문과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모든 면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보였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기 의견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으며 자신이 남보다 나은 면에 대해서 자랑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모든 동료의 재능을 정중히 평가하며 가르침을 청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식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월등히 영리함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겸손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재능과 지혜를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빛을 발하였다. 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일을 잘했다면 이제는 공동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서 일 측면에서 탁월함을 보였고 동시에 타인을 높여주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개과천선이 단순한 잠깐의 변덕이 아님이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되었고 이는 평가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팀 에덴의 회원들은 하나 같이 천재들로 자신들의 경쟁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도 이제는 마음의 편견을 허물고 에드윈을 정식으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철부지 황자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과학자 대 과학자로서 말이다.
이렇게 순풍을 탄 덕분인지 그 해에 맡겨진 신(新)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놀라운 진척을 보였다. 서서히 에드윈은 선배들의 귀염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 또한 보람을 느꼈다.
*
동생의 갱생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당연히 알렉시스였다.
그는 팀 에덴 멤버들을 모두 불러 사기를 북돋울 겸 개인적으로 잔치를 대접하였고 그들이 이뤄낸 성과들에 대해 한 명 한 명 거론해 가며 후히 칭찬하였다. 아울러 책임감 있고 도덕적이며 성숙한 과학 발전을 통해 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가꿀 중요한 책무가 그들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며 소명 의식을 북돋아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간접적으로 에드윈의 선배들에게 부탁한 격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잘 대우해 주기를.
이후 개인적으로 형 대 동생으로서 독대의 시간을 나누었다. 알렉시스는 격식을 내려놓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에드윈을 격려하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 형으로서 자랑스럽다.”
“과찬입니다.”
에드윈은 여전히 칭찬 듣기가 어색한지 귓불을 붉혔다. 큰형님은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하기는 했으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시리라고는 기대치 않았다. 그런 소리를 듣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도 못한 면도 있고.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들한테 많이 배우고.”
“네.”
에드윈의 선배인 팀 에덴의 수석 멤버 열두 명은 하나하나가 라지쿠마르나 켈리온 부부에게 필적 내지는 상회하는 천재들이다. 전문으로 삼은 분야가 각자 다르기는 하나 모두가 과학과 공학의 전반적인 영역을 섭렵하였고 전문성을 갖춘 영역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지녔다. 창조성과 융합적 재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고. 즉 에드윈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인재들이다. 이런 이유로 알렉시스는 동생이 이 팀에서 잘 적응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아니면 나한테 물어봐도 좋아.”
“형님은 매일 바쁘시잖습니까.”
“동생한테 내줄 시간이라면 쥐어짜서라도 만들어야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조언을 청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알렉시스는 동생의 등을 살살 두드렸다.
“너희가 만들어 나갈 미래의 모습을 많이 기대하고 있어.”
에드윈은 이에 속으로 생각했다.
‘저분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쇠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에드윈 본인도 그렇지만, 알렉시스의 동생들은 하나 같이 거대한 크기의 재능을 소유하였다. 누군가는 경이로운 창의성을, 누군가는 나라와 기업을 부강하게 만들 성실한 능력을, 누군가는 지혜와 박식함을 지녔다. 하지만 그 각각의 퍼즐 조각만으로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배를 올바른 방향으로 항해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을 모아 제 뜻대로 능수능란하게 제어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형님은 확실히 그런 존재였다. 모든 재능을 지니긴 했으나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인재들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 타인의 재능을 일깨워 연단한 뒤 모두를 모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여 한편의 대서사시를 자아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 과학자들도, 기업가들도, 선생들도, 정치인들도, 심지어 목회자들과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도, 언제나 알렉시스의 비전과 설계대로 행동해 왔다. 모든 이의 지지를 끌어낼 뿐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가장 필요한 곳에 배치하여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는 위인. 그런 일은 저 사람만 가능하다.
‘에쉬튼은 형님에 대해 경각심을 표했다. 하지만 난 조금 생각이 달라.’
워쳐들이나 가디언엔젤들, 아이언로드 시리즈와 비블로스, 누군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알렉시스가 조금만 불순한 의도를 품으면 그것들을 활용하여 온 인류를 자기 뜻대로 쥐락펴락하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큰 힘을 쥐고도 인류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황태자가 보유한 기술력, 군사력, 정치력, 재력, 이것 중 어느 하나만을 절반만 취하여 다른 이에게 준다고 하자. 필시 이는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제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작 적그리스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남았을 능력과 자원이다. 그게 다른 사람 손에 있지 않은 게 인류로서는 행운이야. 가장 위협적인 칼이 올바른 주인의 손안에서 통제된다는 것은 축복이지.’
아직은 신앙심이 부족한 탓에 영원한 세상의 재림보다는 이 땅에서의 삶에 더 애착이 있는 에드윈이었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 이런 현상 유지가 오래되기를 원했다. 이왕이면 형님이 장수하셔서 수백 년간 지구를 관리하시면 좋겠고 그가 피를 이은 후손까지 둔다면 더욱 바랄 나위가 없겠지.
에드윈은 본래 특정 한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공학을 두루 섭렵한 영재였는데 그가 최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학문은 생명 공학이었다. 그 동기 가운데는 무의식적으로 형님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었다. 자신과 달리 브리튼 언약의 계승자이자 황실의 피가 가장 짙게 농축된 알렉시스라면 최소한의 개입만으로도 충분히 불로(不老)의 경지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렇듯 아직은 도덕보다는 과학적인 호기심에 좀 더 이끌리는 에드윈이었다. 인생 경험을 통해 인간 됨됨이가 조금 성장하기는 했다만 아직은 철부지의 때를 다 벗겨내지 못했다.
“최근에 앨리스가 너를 찾아왔다며?”
“아, 네, 맞습니다. 박사님과 학문적인 관심사에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교류 차원에서 토론을 나눴습니다.”
“대단하네, 우리 동생. 벌써 그렇게까지 성장했단 말이지.”
알렉시스는 기특해하며 동생의 흑청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팀 원더랜드 멤버들과의 교류라. 생명 공학 쪽에 관심이 많나 보구나.”
“겸사겸사 공부할까 합니다. 선생님들께 제안할 아이디어들도 있고요.”
“그래, 너는 생각이 유연하니 그 친구들도 같이 교류하며 배울 게 많겠네.”
“형님의 치료에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입니다.”
쿨럭. 알렉시스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잠시 당황하였다.
“너도 그걸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는 민망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팀 원더랜드 측 선생님들이 보유한 기술력에 저희의 인프라를 접목하면 세포 단위의 3D 프린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신경, 결체조직, 상피, 혈관까지 동일한 형태로 구축한 뒤, 인간 장기의 세포 분화 및 수용체 발현 패턴을 조정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인체와 완전히 동일한 장기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모양만 본뜬 인공 장기가 아니라 이식받는 이의 유전체를 그대로 담은 실제 장기를 말이죠.”
“크흠, 그렇구나.”
동생이 전문을 살려 이런 부분까지 열심을 내다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면서 동시에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형은 정말 괜찮은데. 살면서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희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미 형제들끼리 모여 합의한 바였다. 큰형님은 언젠가 반드시 신체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이는 타협 불가능한 목표점이다.
“에디, 굳이 우리가 영원히 세상을 다스릴 필요는 없어.”
알렉시스는 꾸짖거나 칭찬하는 대신 부드러운 말로 응수하였다.
“우리는 그저 잠시 맡겨진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야. 나와 너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가문으로서도 마찬가지지. 국가 역시도. 브리튼은 영원히 지구를 관리하도록 부르심 받은 게 아니야.”
그저 원래의 주인이 다시 취하러 오시기 전에 관리하는 종일 뿐이다. 이것을 기억하기에 알렉시스는 불안감이나 조급함에 시달리지 않았다. 심지어 주인이 청지기가 맡은 것을 빼앗아 악한 자가 짓밟도록 잠시 허락하신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황실이 몰락하고 짐승이 득세하는 때가 온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오시려면 그러한 과정들도 거쳐야 할 테니 낙담할 이유는 없다.
“난 언젠가 내 왕관을 내어놓을 거야. 나 역시 영원한 몸은 아니니까.”
알렉시스의 말에 에드윈의 표정이 옅은 침울함에 잠겼다.
“하지만 내려놓을 대상은 내 자녀도, 시민들도 아니야.”
한때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고민했었다. 어머니에게서 비전을 배울 때는 시민들을 향한 왕관의 헌납도 고려했다. 아버지께 훈육받을 때는 자녀에게 비전을 계승하는 것도 꿈꾸었다. 여전히 그 둘 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의 대전쟁과 두 번의 내전을 체험하면서 목표가 더 진전되었다. 이제는 더 나은 헌납, 더 좋은 환원을 꿈꾸게 된 알렉시스였다.
“난 예수님의 발치에 내 왕관을 던져 놓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에드윈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형님께서는 주님을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시는군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지. 구원자이시니까. 게다가 그분은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한 왕이신걸.”
신앙심이 얕은 에드윈으로서는 아직 형님께서 주님을 향해 품은 그 애틋한 충성심의 깊이를 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다만, 간접적으로나마 흐릿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자기 삶에도 그와 비슷한 비유(比喩)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싶었다.
“그분이 형님께는 진짜 맏형이시군요.”
“그래,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입양된 아이들이고, 그분은 아버지와 태초부터 함께 계셨던 유일한 아들이시니까.”
에드윈도, 에쉬튼도, 원래는 왕의 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실 입장에서 껄끄러운 자들의 후손이었지. 그러나 어쨌건 지금은 그들 모두 황제의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일의 보증이 되어준 사람은 큰형이다. 거리감이 있건 친밀감이 있건, 그런 이유로 형님의 존재감은 자신의 삶에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만일 알렉시스의 신앙심이 단순한 종교심이 아니라, 이와 비슷한 류의 감정이라면 어떨까? 이렇게 바라보니 조금은 이해될 법도 했다.
“아버지는 너도 사랑하고 계셔.”
알렉시스는 격려의 차원에서 동생에게 말했다.
“육신의 아버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두 분 다.”
그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네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에게는 자매나 마찬가지셨지. 그래서 그분은 네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너를 거둬들이길 망설이지 않으셨어.”
두 형제의 표정에 아련한 슬픔이 깃들었다.
‘나 또한 기꺼이 희생하기로 했고.’
에드윈의 입양에 대한 알렉시스의 대가는 ‘꿈을 꾸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원치 않는 미래의 가능성들을 바라보는 예지몽에 눌려야 했다. 두 번이나 다른 세계의 ‘자신’을 만나기도 했고. 가끔 그러한 고뇌와 짓눌림 없이 마음 편하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형님.”
대화의 막바지 무렵에 에드윈은 하고 싶었던 제안을 꺼냈다.
“왜?”
“다름 아니라, 결혼 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알렉시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설마!”
“황제의 직계 후손 중 쿼터(quarter)는 관례적으로 ‘정략결혼’에 참여한다. 저희의 관습이 아니었습니까.”
“그, 그렇긴 하지?”
그런 불문율의 전통이 있긴 하다. 법적으로 강제되는 사안은 아니나, 4대째 황제 이후로는 관례상 늘 그래왔다. 직계, 즉 지금으로 말하면 살아 계신 선황제의 후손들, 곧 알렉시스와 에드윈의 형제들 및 사촌들이 되겠다, 그들 중 4분의 1은 황제가 지정한 상대와 가약을 맺게 되어 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지는 관습은 아니다. 그보다는 ‘능력’을 포섭하여 황실의 인재 풀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브리튼 언약에는 여러 가지 부산물로서의 혜택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정략결혼’과 관련된 것으로, 황실의 직계 후손은 어떤 강력한 위인의 자손과 결혼 시 격세 유전을 통해 그 위인의 재능을 물려받되 더 뛰어난 역량을 갖춘 후손을 낳을 수 있다. 예외 없는 100%의 확률로.
지금껏 황족 직계 및 방계가 지구상에서 가장 인재 풀이 넓고 깊고 풍성한 족속이 된 데는 이러한 관습의 덕택도 컸다.
참고로 이 기이한 법칙은 피를 물려받지 않았더라도 정식으로 입양된 자에게마저 적용된다. 에드윈 같은 경우처럼.
“저도 그 관례에 참여하겠습니다.”
에드윈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선언을 던졌다.
“이봐, 잠깐만.”
“제 이전 행실이 신실하지 못해서 신뢰감이 적으신 줄은 압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시는 여자와 얽히지도 않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결정한 데는 가문에 보탬이 되려는 양심 때문도 있지만, 동시에 이전의 경박하고 무책임한 삶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진 탓도 있었다. 가볍게 여자들을 만나는 삶이 아니라, 진지하게 언약을 맺고 책임을 지는 삶. 에드윈은 자신에게는 차라리 이것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괜찮겠어?”
“네.”
“하아.”
알렉시스는 고민했다.
“만일 네가 정말로 신실하게 언약을 지킬 최소한의 준비가 되었다면 생각해 볼게.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전처럼 행동해서는 곤란해.”
“바보 짓하다가 뼈저리게 후회한 것은 이미 족합니다.”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동생 나름의 고뇌 서린 결단이었겠지. 최근 들어서 그가 보여준 진지한 변화도 있고, 마냥 그의 성실한 노력을 무시하는 것도 좋지는 않으리라.
“형이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고민해 볼게.”
“알겠습니다.”
명목상 정략결혼이라고는 했으나 그렇다고 에드윈의 행복을 변수에서 제외한 결정을 내릴 생각은 없다. 어떻게 하면 그의 성향에 맞는 좋은 이를 찾을 수 있을까. 알렉시스는 고민에 잠겼다.
|
이전회
192회 [2부] 외전 8화. 에디 (1) |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