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96회 [2부] 외전 12화. 정략결혼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12 | 회차평점 0
|
이제 통치자로서 견습의 기간을 통과하고 어느덧 세계 전역을 책임지는 큰 짐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알렉시스. 언약 가문의 후손답게 외양은 여전히 이십대의 젊은 얼굴과 몸이었으나 내면은 이제 성숙한 영혼을 소유한 장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책무를 이어받은 차기 황제로서 인류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 나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는 에스겔서 38장과 39장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묵상하였다. 성경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지면을 중동과 이스라엘에 대한 선포에 할애한다. 대부분의 브리튼 제국 출신 복음주의 목회자들은 이 예언들이 과거 구약 시대에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였고 실제로 그것이 정통 신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론이었다. 브라이틀란트 황실에 선포하는 역할을 맡은 참된 대언자들조차도 동일한 의견이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이러한 예언들이 구체적인 정보로서의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이해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은 그저 ‘상징적인 모형’이라고 치부할 뿐이었다. 즉 오늘날에 모압, 암몬, 앗시리아, 이집트, 블레셋, 두발, 메섹, 마곡 등의 나라가 더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는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드물었다.
알렉시스도 그런 지론을 따라오긴 했으나 최근 들어 의문이 들었다. 두로와 에돔의 후손이 실존한다면, 과거 이스라엘 주변국들을 향해 내려진 예언도 마냥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장차 심판을 받게 될 열국을 뭉뚱그려 모형론적으로 모압이나 블레셋 같은 이름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실제로 다시 등장하게 될 특정 민족이나 국가들을 지목하여 미래를 예언하신 것은 아닐까?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과 시간 축에 대한 이해력이 누구보다도, 심지어 가장 영적인 목회자보다도 더 깊고 풍성한 알렉시스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었다.
‘에스겔이 예언한 나라들, 저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한 기록이 역사 시대에 존재했던가?’
그가 기억하기로는 그런 성경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지목한 이방 침략국들이란, 그저 상징으로써 이용된 나라들이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 먼 장래에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될 국가들일까? 그럴 가능성을 마냥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그 국가들을 추적해야 하는가? 민족의 혈통을 일일이 추적해야 하는가. 그렇게 따지면 이미 세계 방방곡곡에 섞여 흩어진 두발, 메섹, 마곡, 페르시아, 붓, 구스, 고멜, 도갈마의 후손을 무슨 수로 추적하느냐?. 정작 자신들도 노아의 손자 중 누구의 혈통적 자손인지 추적 조사를 놓친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그게 아니라면 에스겔 당시에 이 민족들이 살던 영토를 그대로 적용하여 말세에도 그 영토들에서 다시 반란의 세력이 일어나리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것도 그럴듯하긴 하지만 딜레마는 딜레마였다.
‘이미 세계 1차, 2차 대전과 근래의 3차 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민족은 그 국토의 경계가 흐려졌다.’
전에는 바벨탑의 저주로 인해 각 민족과 혈통이 일정하게 배당된 영토 내에 거주의 경계를 두고 국한되었으나, 이방인 국가와 하나님이 언약을 맺는 이례적 현상으로 말미암아 브리튼이 국가 간 경계를 의도치 않게 허무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는 페르시아의 옛 영토 안에도 흑인, 백인, 황인 모두가 기거하고 있으며 두발이나 메섹의 땅인 중앙아시아나 투르크 역시 그러하다.
‘원래대로라면 이 곡과 마곡 전쟁이라는 사건의 참여 국가들은, 현대사에 대응해 보면 대부분 구 이슬람교가 창궐하던 지역의 사람들이다.’
만약 이슬람교가 세계 최대의 권력을 얻었더라면, 저 예언이 현실 속에서 문자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 개연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이슬람은 황태자의 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영적으로 삭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언이 무마되는 건가?’
하나님의 예언은 그런 식으로 ‘취소’하거나 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방인들의 점술과는 달리 한 번 그분이 선포한 말씀은 변경되지 않는다. 알렉시스로서는 경외감과 동시에 불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잠시 막아둔 화약고의 뚜껑이 다시금 증기를 내뿜으며 끓어오를 것인가. 이슬람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지역들이, 혹은 그 후손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인가.
‘브리튼이 멸망하지 않고서야 그런 대규모 반란이 준동하긴 어려울 터인데.’
정말 그저 예언 속에 언급된 민족들의 명단은 상징에 불과한 것일까. 하긴 요한계시록에도 천년왕국 말미에 반란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들을 상징적으로 곡과 마곡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 천년왕국을 어떻게 해석할지도 브리튼의 목회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긴 하다만.
여하튼 알렉시스로서는 문제의 그 땅, 곧 두발과 메섹과 마곡과 도갈마가 모두 교차하는 유일한 후보지인 구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 자신의 스승 중 하나인 무스타파 선생이 활동했다. 무스타파 본인은 이슬람에 반대하던 사람이었고 훌륭한 지도자이다. 비록 예수님을 독실하게 따르는 기독교인은 아니라고 해도 인간적으로는 괜찮은 분이다.
만일 이런 식으로 그 땅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태어난다고 해보자. 그중 어떤 이가 트라하처럼 인류의 위협으로 자라나거나 브리튼에 대적하는 반란 연맹을 조성한다면? 이런 가설대로라면 이슬람이라는 요소 없이도 곡과 마곡의 전쟁에 대한 예언적 단서를 추론할 수 있을까.
더욱이 소아시아(터키) 지역은 세계가 통일되기 전까지는 대만과 더불어 외교적 간계와 지정학적 충돌이 가장 첨예하게 교차하던 교차로의 땅이었다. 그 두 곳에서 외교술의 달인인 두 명의 마스터, 양첸과 무스타파가 발흥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니리라.
고로 이미 세계가 통일된 지금이라고 해도 브리튼은 지혜로운 외교를 행하는 지도자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의 외교적 지혜를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 더 앞세워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마냥 인간 쪽의 능동적인 책임을 등한시해서도 곤란한 것 아니겠는가.
*
메이첸 타이산은 양첸의 손녀이다. 그에게는 아들들과 손자들은 있었으나 손녀딸 아이는 그녀뿐이었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아꼈다. 더욱이 그녀는 지성 면에서 가장 할아버지를 닮은,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다. 비슷하게 황실의 보배인 아델바이스 황녀가 ‘학문에 탁월한 수재’라면 메이첸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 능통한 모략가’였다.
알렉시스가 메이첸은 만난 건 그가 스물아홉쯤이었을 때인데 당시 그보다 열두 살 어린 그녀는 열일곱의 학창 시절이었다. 황태자는 자신의 가장 아끼는 동생 테디를 옛 스승이었던 양첸 옹에게 맡기려던 참이었고 그 과정에서 타이산 가의 집을 종종 들락날락했다.
양첸의 모든 후손은 알렉시스의 위압감과 권위를 두려워하여 제대로 대화조차 시도하지 못했지만, 한 명만은 달랐다. 맹랑하면서도 명석한 메이첸은 황태자를 향해서 용감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며 접근했다.
사실 그녀는 그렇게 싹싹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자주 듣던 편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고민할 법한 이런저런 평범한 문제들은 그녀에게는 오히려 시시하여 신경 쓸 겨를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인류의 장래니 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고 그런 면에서는 천연 양첸을 빼다 닮았다.
그녀가 알렉시스에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이에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 자신의 관심사와 호기심을 마음껏 터놓을 수 있으며 진지한 토론과 질문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 받을 수 있는 어른. 아무래도 그런 면으로 인해 아이가 알렉시스에게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 덕에 알렉시스는 그녀와 자주 토론하게 되었다. 테서렉틴이 양첸에게 배우는 동안, 형인 그는 그 손녀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어쩌다 보니 알렉시스는 타이산 가문의 흥미로운 내력을 전해 듣게 되었다. 종종 알렉시스는 양첸의 손녀 앞에서 옹의 선견지명과 판단력에 대해 격찬을 늘려놓았다. 그는 노장이 지닌 능력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분이 가정에서는 어떤 면모와 성품을 보이는지, 평상시에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길래 먼 지평을 내다볼 수 있는지,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지, 가문에 전수되는 가르침이나 교훈은 무엇인지, 이런 단서 등을 찾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에 닿게 되었다. 이것은 소녀 또한 언제나 마음속으로 고민하며 생각하였으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는 못했던 주제였다.
“명확하게 증명된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나 제게는 선각(先覺)의 달란트가 있는 것 같아요.”
“선각?”
재미있군. 비범한 알렉시스는 곧바로 냄새를 맡았다. 그는 타인에게서 특이한 재능을 발굴하는 데 도사였다. 또한 삼촌에게서는 종종 ‘기이한 범주의 보배로운 능력’들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런 알렉시스기에 메이첸이 말한 게 단순히 ‘영민함’이라는 개념 정도로 그치는 건 아님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집안에 그런 분들이 많았니?”
“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대로 몇몇은 있었어요.”
“너도?”
“저도 제 팔다리처럼 다루는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 비슷한 체험을 할 때가 있었거든요. 보통은 ‘육감’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런 정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어요.”
“그렇다면 양첸 선생님도?”
“할아버지는 제가 알기로는 독보적으로, 이례적으로 짙게 선물을 물려받은 경우예요. 응용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 분명해요.”
“할아버지가 네게 그런 경험들을 종종 이야기해 주셨나 보네.”
“맞아요. 아무래도 저도 비슷한 류이다보니, 제 감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해 주셔야만 했죠.”
“흐음, 돌이켜보면 확실히 양첸 옹은 기이한 사람이기는 해.”
대전쟁 이전, 그 할아버지는 오판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전쟁 와중에도 자신의 본국에는 아무 피해도 가지 않게 하였고 도리어 브리튼 제국과 커뮤니스트 연방이 전쟁하는 와중에 실리만을 취하였다. 세계 통일 이후로도 그 비상한 머리로 자기 본토의 위상을 제국령 내에서 드높였다.
단 한 번만 아주 작게 실수해도 회생 불능이 될 수 있던 것이 양첸과 그가 책임지던 타이완섬의 상황이었다. 그런 그곳을 오차 없이 완벽히 수호해 낸 것은 단순히 재능이나 혜안의 영역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아저씨께서는 시간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소녀의 호기심은 이제 더 엉뚱한 영역으로도 전개되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서 신이 난 모양이다.
“물리학에도 조예가 깊은 건가, 대단한 걸 꼬마 아가씨?”
이에 그녀는 더욱 진지하게 말했다. 마치 고민을 상담받고자 하는 사람처럼.
“아저씨는 결정론적인 ‘얼어붙은 강물’로서의 시간을 믿으시는지요, 아니면 모든 가짓수로 갈라져 나뉘는 ‘무한한 가능성의 나무’로서의 시간을 믿으시는지요?”
열일곱에 불과한, 그것도 과학도가 아닌 학생치고는 몇 수 이상을 내다본 대단히 질문이었다. 알렉시스는 그녀의 수준에 맞춰주기로 했다.
“상대성이론의 ‘시공간 연속체’와 양자역학의 ‘확률’, 둘 중 무엇이 현실에 더 부합하는지 궁금한 건가?”
“네.”
한 이론은 결정론적인 ‘시간관’을 제시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어떤 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얼어붙은 강물처럼 과거부터 미래까지 모든 스케쥴이 확정된 태피스트리이며, 시간과 공간은 서로 얽힌 ‘차원’으로서 그 고정된 역사의 네 방향 축을 이룬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의 결정론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지 않은 확률 구름일 뿐이며, 모든 가능성은 공존한다. 그리고 오로지 관측에 의해 그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가 선택되어 현실로 나타날 뿐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무지의 베일’을 주장하며 모든 가능성의 미래들은 모두 평행우주로서 공존한다고 확신하는 것이 양자역학의 확률론이다.
이 흥미로운 주제를 아직 어른도 되지 못한 아이가 던진 게 특이하긴 했으나 영재라면 많이 보아온 알렉시스이기에 매우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귀여운 꼬마를 상대로 토론 놀이를 해주었다.
“너와 네 할아버지가 체험한다는 그 기이한 ‘인지 현상’도 혹시 지금 논의한 시간 물리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실 맞아요. 물리학 밖에는 저와 할아버지의 시간 감각을 설명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요. 그래서 관심을 두고 집중해서 팠어요. 아저씨 말고는 누구와도 진지하게 이걸 말한 적은 없다만, 아저씨는 앞날을 보는 판단력과 모든 분야의 지식 면에서 능통하다고 들어서요.”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이런 추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나 할아버지의 ‘선각’은 양자역학적으로 분지되는 여러 미래 가운데 현재 주어진 조건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미래’를 매우 흐릿하게 감지해 내는 초감각이라고 여겨져요.”
“흥미로운 가설인걸. 혹 ‘예지력’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거창한 단어보다는 ‘예측’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죠.”
“하긴 인간들도 불완전하게나마 물리적 지식이나 관측과 통계학을 통해 기상 예보를 그럴듯하게 해내곤 하지.”
“저의 경우에는 단순 ‘고도로 발달한 감’과 효력 면에서 크게 구분되진 않아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그분의 ‘미래시’는 단순히 그런 단계는 아녜요. 어떤 선택지를 취했을 때 관성적으로 임할 ‘다음 수순’을 매우 흐릿하게나마 관측하실 수 있다고 해요.”
“호오.”
알렉시스는 호기심을 기울였다. 물론 실제로 뭔가를 예언해 내는 것은 아닐 테고 확정적으로 어떤 미래를 바라보지는 못하겠지. ‘미래의 가능성’의 방향을 육감적으로 체감하고 그나마 특정 불행이나 위험을 피하고자 가장 가능성 높은 ‘해결책’을 선택지로 취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하는 재능. 본질 자체만 놓고 보면 인간의 보편적 능력인 ‘예측력’이 비상하게 빼어난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메이첸의 언급대로라면 양첸은 확정되지 않은 ‘양자적 미래 확률’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극히 저해상도로 보는 것이지만.
이것만 들으면 마치 공상과학에나 나올 ‘미래 관측’이나 ‘시간 능력자’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그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모든 시간축을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확정적으로 알고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한 인간들도 인과율의 법칙을 이해할 줄 안다. 자신의 행동이 수반될 결과와 책임을 인지할 수 있는 것, 그게 동물과의 차이점 중 하나겠지.
더욱이 하나님처럼 전능하지는 않아도 종종 영적 존재들은 1차원 시간축 상에서 벌어질 일들을 ‘흐릿한 수준’으로나마 제한적으로 예언해 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의도적으로 그 예측을 ‘틀리게 만들면’ 소용이 없긴 하다만, 그래도 제법 자주 맞추는 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예언 또는 악한 영들의 주술적인 미래 관측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들의 영역’ 안에서도 아주 제한적이나마 미래시가 작동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을까.
여기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단 알렉시스 본인도 비슷한 인지를 꿈들과 비전을 통해 종종 경험해 보았기에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네 통찰대로라면, 너나 양첸 옹은 결정적인 순간에 어느 한 가능성의 미래에서 유출된 ‘관측 데이터’를 저해상도로 직감을 통해 포착할 수 있고,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역사선의 분지가 갈려져 뻗어나가도록 ‘행동의 변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예감하는 셈이군.”
지금까지의 양첸의 행보를 본다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는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이해하지 못할 ‘개연성 없는 선택’을 취함으로써 커다란 유익의 결말을 창출했던 적이 매우 많다.
따지고 보면 알렉시스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는 예언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오지 않았던가. 물론 그는 가문의 언약과 개인적으로 소유한 믿음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 안에서 인도받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양첸 이상의 상위 호환이 되긴 했다만.
‘이게 만일 정말 인간으로서의 고유 재능, 그것도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혈통에 연계된 특색이라면, 주목할 가치는 있겠군. 선생님께서도 자신의 능력적 유산을 계승하기를 원한다면 이 아이를 양육하시겠지.’
다만, 소녀의 ‘시간에 대한 세계관 이해’는 아직 결함이 많았다. 알렉시스는 그녀의 수준에 맞는 언어로 올바르게 교정해 주기로 했다. 그는 이미 성경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영원과 시간’의 수학적 실체에 대해 많이 묵상하고 연구했었다. 그러므로 무작위적인 ‘모든 확률의 제한 없는 생성’이라는 양자역학적 세계관, 곧 주권자가 없는 사실상의 무신론적 시간관에 대해서는 논박해 줄 말이 많았다.
“이 아저씨가 시간의 비밀에 대해 더 가르쳐주마. 특별 서비스다.”
그때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답게 당당히 세상 너머의 위대한 신비를 풀어 보여주었고, 호기심 많은 소녀는 눈을 크게 뜨며 그 충격적 세계관 앞에 대면하였다. 그것이 아마도 그녀의 삶에 변혁의 지점이 되었을 것이다.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알렉시스는 서른 살이 된 남동생 에쉬튼을 동갑의 메이첸 타이산과 더불어 부부의 관계로 맺는 일을 도와주었다. 이 일은 부모님과 양첸 사이에서 이미 이야기가 오간 안건으로 알렉시스가 보기에도 정략결혼이라는 목적에 나름 부합하는 결합으로 생각되었다. 동생과 그 약혼녀는 빼어난 지적 수준에서도, 성향 면에서도 비슷했고 인격적으로도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축하한다, 에쉬.”
새신랑이 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알렉시스.
“메이첸 양도 축하해.”
그는 호쾌하게 미소 지으며 제수씨에게도 축복을 건넸다.
“감사드려요, 황태자 전하.”
연애 과정을 오래 거치지 않았기에 걱정되긴 했으나 의외로 에쉬튼과 메이첸은 잘 맞았다. 열띤 연정이라기보다는 잔잔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두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이 되었다.
이후 에쉬튼네 부부는 결혼식 후 한 달쯤 지나 알렉시스를 자신들의 별장에 초대하였다. 반갑기는 하다만, 한창 둘이서만 알콩달콩하게 보낼 시간이기에 큰형을 부르는 데는 따로 목적이 있음이 분명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공적인 자리가 아니긴 하다만 단순 잡담을 하려는 건 아닌 듯했다.
“바쁘신 와중에 귀한 휴일에 찾아와주셔서 깊이 감사드려요, 전하.”
메이첸이 숙녀답게 공손히 접대하자 알렉시스는 손을 저었다.
“가족들을 위한 시간은 얼마든 있다만, 그래도 오늘은 본론부터 듣고 싶네. 신랑까지 함께 가담했다면, 꽤 중요한 문제인가 보군. 여전히 호기심 많은 아가씨네.”
알렉시스가 메이첸과 종종 편지로 거시적인 주제의 토론을 나눠온 지 어느덧 13년도 넘었다. 마침 그녀의 남편도 세계의 수수께끼들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접근한 탐정으로 무려 중앙정보국장이다. 둘이 만났으니 얼마나 탐구의 불이 붙겠는가.
이에 그녀의 남편도 자기 형님께 공손히 인사하였다.
“형님.”
에쉬튼은 평소처럼 무표정하고 사무적이고 진중한 태도였다.
“에쉬, 무슨 어려운 일 있는 건 아니지?”
“가족끼리는 꼭 공적인 문제가 있어야만 함께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내가 네게 해준 말이긴 하다만, 이렇게 돌려받으니 어색한걸.”
“형님의 고견은 언제 들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알렉시스는 속으로 문득 상상해 보았다. 에쉬튼은 명석하게 위기에 대처해 전략을 구축할 줄 안다. 그리고 메이첸은 양첸 선생만큼은 아니어도 ‘선각’의 재주를 소유했다. 두 사람의 결합이 높은 시너지를 낼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겠는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튀겠는가.
|
이전회
195회 [2부] 외전 11화. 정략결혼 (2) |
다음회
197회 [2부] 외전 13화. 시간 이론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