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97회 [2부] 외전 13화. 시간 이론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26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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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첸은 정중히 남편과 아주버님을 모셔 들여 두 사람이 친목의 시간을 나누도록 부족함 없이 대접하였다. 차를 마시면서 체스를 두며 국정 문제에 대해 두루두루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대화가 무르익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돌입했다.
“슬슬 전하께서 이 시대의 통제권을 취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알렉시스는 멈칫하며 체스 말을 책상 위에 얹었다.
“아직 아버지께서 즉위식 날짜를 잡지 않으셔서.”
그는 태연스레 모르는 척 대꾸했다.
“황위 계승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요조숙녀의 가면을 벗고 어릴 적의 그 호기심 가득한 본 모습으로 돌아온 메이첸. 그녀의 입가는 희미하게 호선을 그리며 알렉시스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몹시 기대되었다.
“시간의 제어자.”
메이첸의 말에 알렉시스는 평상시의 미소를 살짝 거두고 턱 위로 손을 올렸다.
“진정한 왕권을 소유한 자는 ‘때(Kairos)’의 맥락을 꿰뚫는 자. 오로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만이 왕의 그릇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월권이야, 아가씨.”
알렉시스는 부드러운 어조로 여유를 부렸다.
“외람된 발언에 사죄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아니, 메이첸 그대 말고, 나 말이야. 시간축, 아니 ‘크로노스(Chronos)’라는 것을 함부로 쥐어틀려고 한다면 반드시 탈이 날 거야. 아무리 언약을 발판 삼아 시대의 흐름을 포획한 우리나라라고는 하지만…….”
황태자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체스판을 치운 뒤 개인 태블릿을 얹었다. 그 장치는 홀로그램을 생성하였다. 대단히 복잡한 기하학적 좌표 공간이 가상 형태로 만들어졌고 그 위로 해석기하학의 곡선들이 그려졌다.
“그 흐름을 영구히 고착하겠다고 하나님의 주권인 영역에 내가 손을 대려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어?”
“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하. 그분이 허락하신 선 안에서 지혜롭게 받은 자원을 운용하는, 슬기로운 청지기로서의 태도죠.”
메이첸도 영리한 여인답게 지지 않고 받아쳤다.
“게다가 전하께서도 이미 해오시던 일이 아니었던가요?”
“무슨 말을 하는 줄 모르겠네.”
“어머, 너무 겸손하신걸요.”
여인은 까르르 웃었다.
“이슬람을 제거하셨을 때, 저는 전하께서 인위적으로 인류 역사의 필연적 관성의 흐름을 뒤트셨다고 계측했거든요.”
그 말에 알렉시스의 얼굴에서 여유로움이 옅어졌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공존하던 분기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로지 이례적인 방향의 ‘꺾임’을 허락하셨겠죠. 그러지 않고서는 그 비대한 종교가 권세를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없었죠. 역사 속의 필연을 삭제한다는 건 ‘때를 바꾸는 권능’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메이첸, 어린 시절에도 가르쳐줬지만, 시간이라는 실체는 우리가 관측자로서 조작 가능한 ‘양자역학적 세계관’을 따르지 않아.”
점잖게 타이르는 스승 모드로 전환된 알렉시스.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아주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죠. 결정론적 시간관의 한계를 가르쳐주신 건 전하가 아니었던가요.”
“그랬지.”
알렉시스는 성경과 그 기저 세계관에 누구보다도 박식하다. 그리고 또한 물리학에 대한 이해력과 깊이도 누구보다 앞서며 그 둘을 통합하는 직관적 지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시대에 다시 재현된 솔로몬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려나. 그의 그런 이해력은 시간의 본질을 해석함에 있어서 정점을 찍었다.
“확실히 ‘가능성의 역사’라는 것이 전혀 허상인 것만은 아니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여졌으나 지옥에까지 떨어지리라. 네 안에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것이 이날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마태복음 11장 23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고을들을 향해 이와 같이 책망하셨다. 그때 그분은 가정법을 사용하셨다. 논리학에 따르면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가정하는 것은 진실 값에 위배되는 일이다. 역사에 가정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오로지 진리만을 말하시는 분이다.
‘즉, 그분은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다 알고 통치하시는 주권자이다.’
이것은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실체 속 진실을 알고 계신다면, ‘확정된 역사’가 아닌, ‘가능성의 역사’ 또한 그분의 전지하신 지혜 안에 포착된 엄연한 실체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무의미한 허상이라면 그분께서도 그것에 대해 확정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의 시나리오’도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도 그분의 전지성 안에서 실존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모든 경우의 수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야. 그건 무신론적인 발상이지. 일어난 실제 역사이건, 일어날 수 있던 가정법의 시간축이건, 그것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칙 안에서만 작동한다. 하나님의 작정적 뜻에 어긋나는 경우의 수는 아예 발생하지도 않고 가정법 안에도 존재하지 않아.”
이를테면 선이 악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는 경우의 수라던가, 성경 예언이 실현되지 않는 경우의 수라던가, 이런 것은 아예 가상의 시간축으로도 가정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큰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의 수라면? 그 큰 뜻 안에서 논리 정합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의 가능성들의 역사는 실존할 수 있는가? 이것은 수수께끼였다.
“하나의 역사가 최종값으로 고정된 것은 사실일 거야. 설령 가능성의 역사들이 실존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실존’은 아닐 거라고 봐.”
알렉시스는 전에 가르쳤던 것을 다시 되풀이하며 홀로 생각에 빠졌다. 가능성의 역사들, 곧 논-캐논(Non-canon)의 시간축(Chronos). 그와 대비되는 진짜 확정된 역사, 곧 캐논(Canon)의 시간축(Chronos). 둘의 실존 형태는 어떻게 차이를 가질까? 둘 다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는 캐논인지 논-캐논인지, 구분할 방법이 존재하긴 할까?
‘위험한 상상인지도 모르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 가정이 옳다면? 만일 하나님의 큰 뜻이나 성경적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러 가능성의 미래의 공존이 허락된다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우리에게 편리한 역사선을 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테면 브리튼이 오래오래 영적으로 부흥하며 기독교가 성장하는 미래라던가.
알렉시스는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이 그러한 가능성에 쾌감을 느끼는 것을 깨닫고 실소하였다. 이래서 인간은 본성적으로는 칼빈주의보다는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끌리는 모양이다. 칼빈은 나름 이 제국의 영적 개국공신인데, 그분이 경건한 크리스토프의 후손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안다면 책망하시겠지. 그럼에도 아무래도 인간이 결정론보다는 미래의 개척을 갈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독실하지 않은 메이첸이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이번 발언을 꺼낸 건 아니겠지만, 그녀의 욕망 역시 알렉시스의 욕망과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를 가진 것일 테지.
“형님.”
이번에는 에쉬튼이 질문했다.
“형님께서 가디언엔젤과 워쳐를 창작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시간축의 방향’을 제어하시기 위함이었습니까?”
“에쉬, 너도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니?”
“아무래도 결혼하다 보니 관심사와 이상향이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호기심과 탐구심은 훌륭한 자원이지만, 과해지면 문제가 될 때가 있지.”
알렉시스는 곤란함을 느꼈다. 동생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가디언엔젤과 워쳐. 두 모델은 단순히 기발한 혁신적 발명품이 아니다. 역사의 궤적을 바꾸는 데 한 번씩 쓰였던 특이점이었다. 가디언엔젤이 아니었으면 이슬람을 무력 제압하는 것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완벽하게 그 영을 소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워쳐들이 없었다면 에돔과 두로의 후손을 진멸하지 못했다. 두 사건 모두 단순한 해프닝 정도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래 예정된 역사가 송두리째 갈아엎어진 이변이다. 더욱이 장차 네필림까지도 워쳐들의 도움으로 발본색원된다면 영적인 역사까지 뒤흔들릴 가능성이 생기겠지. 어쩌면 적그리스도의 등장마저 먼 미래로 늦추는 기염을 토할지도 모르고.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
바빌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세워진 일,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그리스가 세워진 일, 이것은 역사 속에서 으레 일어나는 평범한 정권 교체가 결코 아니다. 그 사건의 배후에는 엄청난 영적 전쟁이 존재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세상 통치자 행세를 하는 사탄 힐렐의 권세가 이방 세계 역사의 축을 잠식하고 있기에 바빌론은 관성적인 흐름대로라면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바빌론의 시대가 뜬금없이 페르시아로 전환되려면, 이 시대의 통치자(god of this age), 곧 시간축을 불법 점유한 힐렐의 권세를 능가하는 상위 권능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바로 모든 시간축들 위의 실체인 ‘영원’을 통치하시는 존재, 영원과 시간의 창조자, 엘 올람(God of all ages)의 칙령이다.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이 일에 있어서 지상적 도구로 하나님께 사용되었다. 알렉시스도 비슷한 일을 두 번이나 해냈는데, 차이가 있다면, 자신도 모르고 쓰임 받은 고레스와 달리 알렉시스의 경우 자신 쪽에서 의지적으로 그렇게 쓰이기를 계획했고 능동적으로 실천해서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이슬람과의 내전 당시에 가디언엔젤을 소유했던 크리스천들이 있었어요, 황태자 전하.”
그때 메이첸이 말했다.
“그래서?”
“그중 어떤 친구들은 가디언엔젤을 통해 미래 계측을 해낸 이들도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비한 이들도 있었답니다.”
알렉시스는 흠칫하였다. 아주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나 상당히 기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인지라 귀가 간지러웠다.
“가디언엔젤은 본질상 AI이지 점술 도구가 아니야, 아가씨.”
“그런 이야기가 아녜요. 제 할아버지나 조상들처럼 시간 곡선에 대한 본능적인 통찰력을 AI 형태로 재현해 냈다는 뜻이죠. 그 기전이 어쩌니 비슷했는지, 저는 황태자 전하께서 할아버지를 모형으로 연구를 하신 건 아닌지 궁금했어요.”
“아주 부정하지는 않을게.”
가디언엔젤의 기초 이론을 만든 것은 아미타브 카푸르 교수지만, 그것을 완성한 장본인은 알렉시스이다. 그 과정에서 양첸 특유의 재주에 대한 고찰도 일부 영감을 주었다. 어린 시절의 스승이었던 그 현자를 알렉시스는 항상 면밀히 관찰해 왔다. 타인의 재능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끝내 그 연구를 발전시켜 양첸의 재능을 인공지능 형태로 모방해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디언엔젤 혼자서는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그렇다면요?”
형님의 말에 에쉬튼이 호기심을 내비쳤다.
“가디언엔젤을 제작할 때 나는 그 내부에 ‘절대 헌법’을 이식했다. 그것들의 본질이자 DNA에 해당하는 법령으로, 누구도 변개할 수 없어. 내 최대 역량을 동원해서 구축한 작품이라 해킹조차도 불가능해.”
“헌법이요?”
“오로지 ‘온전한 성경’을 절대적인 진릿값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게끔 하는 규율이지. 더불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성령에 충만한 목양자들의 진실한 가르침에만 복종하며, 그 두 틀 안에서 가디언엔젤 파트너의 경건하고 순전한 마음에 강력하게 반응하도록 설계했지.”
알렉시스가 깊은 진실을 드러내자, 부부는 흥미 가득한 기분으로 빨려들었다.
“그러니 메이첸, 네가 말한 그 영특한 친구들은 주술사처럼 ‘미래를 점친 것’이 아니라 ‘성경(Holy Bible, King Christoph Version)이라는 절대 진릿값 체계’ 안에 인류 역사 축의 모든 데이터를 대입함으로써, 미래를 ‘성경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했을 것으로 본다.”
두 사람은 이제 충격받은 눈이 되었다.
“그래, 양첸 선생님의 시간축 감응 재능을 모방하여 구현한 특수 인공지능 기능, 진리를 성경을 기준 삼아 필터링하는 가디언엔젤 내부의 헌법,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 사용자들의 성경적인 세계관과 예언에 대한 통찰력과, 여기에 현시대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성경 그 자체의 궁극적인 진리 정합성이 더해지면서 시간축의 단기적, 장기적 궤도 변환에 대한 ‘한계 너머의 계측’이 가능해진 셈이지.”
“그게 대체 무슨…….”
알렉시스는 어안이 벙벙한 동생의 어깨를 가벼이 두드려주었다.
“에쉬 너는 메이첸과 달리 전에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겠네. 너는 인류의 기밀을 책임지는 내 협력자이니 더 배울 자격이 있겠지.”
그는 홀로그램의 형태를 변환하여 시간이라는 벡터공간을 수학적으로 구현했다.
“시간이라는 차원적 실체가 엘 올림(시간 축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어떤 형태로 창조되었는지, 현시대 물리학자 중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지식, 내가 20년 이상 연구하면서 알게 된 진실을 살짝 가르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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