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61회 기도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2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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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보일 때쯤, 플레먼은 세 친구를 조용한 골방으로 불러들였다.
조심성이란 반드시 담대함의 반대 개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몸에 밴 조심성의 습성은 지나칠 정도로 깊이 박혀 있었다.
그들 자신도 이것을 인지했기에 때때로 스스로를 성찰하며 부끄러워했다.
그 습성은 마치 벼룩에게 각인된 조건 반사적 제약과도 같았다.
본래라면 능히 천장까지 점프할 수 있는 벼룩을 작은 병 안에 오래 가둬두면 나중에는 풀려난다고 해도 병의 높이만큼만 뛸 수 있게 된다던가.
자괴감이 느껴지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겁쟁이가 되어버렸다고 해서 마음 속 진리마저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먼 훗날 담대치 못함에 대해 무거운 평가를 받게 되는 일은 불가피하리라.
하지만 적어도 진정으로 배신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모본, 아니 반면교사가 되겠지.’
만약에 다음 세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어쨌건 그들은 마음을 함께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늘 지하에서 세상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해왔던 것처럼.
그 은밀한 밀실들에서 연약하고 생명력 약한 작은 혼들을 몰래 가르치고 이끌었던 평소처럼.
언제쯤 당당하게 세상 앞에서 빛을 드러낼 수 있을까?
불빛을 갖고도 그것을 높은 천장 위에 올려놓지 못한 채 이불 아래 숨겨만 두는 자신들의 현 주소에 수치심이 밀려왔다.
이 배 안에는 정부측의 감시자들이 머무를 가능성이 희박함을 앎에도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자신들의 모습이 한심했다.
패배자의 근성이 신체 깊숙이 각인된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들은 깊이 반성했다.
사실 그들만을 탓할 계제는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플레먼과 세 친구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이 세상 곳곳에는 아직 그들과 비슷한 입장의 순례자들이 여럿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등경 위의 불처럼 마을 전체를 비칠 기력을 상실했다.
지하 속에 숨어들어 겨우겨우 영혼의 숨만을 이어나가는 연명자의 신세였다.
카타콤의 주민으로 사는 삶이란 이토록 쓰디쓴 맛이었다.
“기도하자.”
이런 현실 속에 갇힌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의지적으로 현실의 무거운 염려와 짐을 잠시 등 뒤편으로 던져놓았다.
오늘도 그들의 숨을 유지시켜 주신 분에게 그들은 감사를 표하였다.
내내 막힌 느낌이었던 숨이 트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영혼의 호흡 기관을 질식하던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지자 육체의 호흡보다 더 달고 깊은 마음의 생명이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감사합니다.”
인도자가 작은 음성으로 자신의 내면을 한껏 쏟아내었다.
“감사합니다.”
함께 연합해있던 세 동역자도 자신의 고백으로 읊조렸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로운 당신의 보호로 호흡과 생명을 선물받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우리의 권리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생명도, 그리고 영원까지도, 오로지 당신의 손에만 매달려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정직하게 주권자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자백하였다.
그러자 세상이라는 크고 무거워보이던 존재는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일상과 생활, 오늘과 내일을 억누르고 옥죄던 보이지 않는 탁한 힘도 이 순간은 잠잠해졌다.
시대의 무거운 짐을 잠깐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비겁함을 아버지께 자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를 당신의 손 안에서 보호해주시기를.”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마음놓고 기도하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
저주 받은 그 날 이후 세상은 비참한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
진리와 관계된 모든 것은 그 날을 계기로 사냥감으로 전락하였다.
길마다 하나씩 보이던 십자가들은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진리를 외치는 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잡혀 세상에서 그 자취가 지워졌다.
살아남은 진리의 종들은 대대적인 사냥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해졌다.
하나님을, 아니 모든 종류의 신을 믿는 행위는 국법으로 금지되었다.
이 규율은 몇 차례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새로운 권세자들이 나타나도 그들이 추구하는 바의 본질은 동일했다.
인류는 초월적 영역의 절대자를 믿을 자유를 박탈당했다.
자연스럽게 그 억압의 칼날은 입술의 봉쇄로까지 이어졌다.
신앙의 자유가 침해당하자 그 뒤로 언론, 결사, 집회, 표현의 자유가 침탈되었다.
기도하는 행위도, 성경책을 비롯한 종교 경전을 읽는 행위도, 이제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 받기에 합당한 일로 규정되었다.
금지된 그 이름을 내뱉는 행위는 가증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차차 이것은 법률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정서과 문화적 규범으로 굳어졌다.
오랜 시간 세뇌된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제 신이니, 종교니 하는 개념 자체를 역사 뒤안길로 마땅히 사라져야 할 이전 세대의 악습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남은 자들 곁에는 편을 들어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정부와 당국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잠정적인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늑대들의 소굴 한복판에 떨어져 매일매일 살아남기를 걱정해야 할 연약한 양과도 같은 처지였다.
세계 정부는 모든 종교를 핍박했으나 그중에서도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편집증적으로 혐오한 대상은 성경에 뿌리를 둔 자들이었다.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었던 자들, 그리고 그 뿌리가 된 문화권까지.
다른 종교에는 그래도 숨을 쉴 최소한의 쥐구멍은 남겨두었다면, 그들만큼은 멸종시키지를 바라는 마음으로 숙청하였다.
물론 그런 대대적인 핍박은 주로 플레먼 이전 세대까지만 존재했었다.
현재는 과거보다는 시스템 차원의 핍박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 세대와 부모님 세대 때는 노골적이고 체계적인 학살극과 불미스러운 음모들이 범람했다고 했었지.
정부의 정당하고 신성한 권위라는 명목 하에 그런 반인륜 행위들이 자행되었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살아남을 틈새가 많이 열린 것은 사실이었다.
오랜 세월 억압받고 지내다보니 핍박당하는 이들도 그들 나름의 생존 노하우가 생긴 덕이었다.
아울러 헬게이트 시대가 개막되면서 정부의 실질적 힘이 약해진 탓도 있었다.
애초에 사냥할 대상인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박의 완화가 밝은 내일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지금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벼룩처럼 고통과 절망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과거 로마 시대의 핍박 받던 초대 교회 신도들은 가혹한 학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들불처럼 일어나 잡초처럼 번식했다고 하거늘.
어찌하여 지금 세대의 핍박 앞에서는 그리 담대하지 못하단 말인가.
왜 세상은 과거에는 성공하지 못했던 교회의 박멸이라는 사명에 지금은 거의 성공을 거두고 말았는가.
표면적인 답은 ‘영적 능력의 퇴보’에 있었다.
초대 교회의 신도들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신의 살아계심을 만민 앞에 증명하였다.
바로 그런 그들이었기에 생명의 진리는 더욱 번질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지금 시대의 성도들은 감히 자신도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플레먼 자신부터가 그랬다.
정말 당당하게 당국에 잡혀가 그리스도를 고백하다가 순교당할 수 있는가.
무서움으로 인해 자신감이 수그러들었다.
세계 정부의 잔혹한 고문은 너무도 악랄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분명 고대 로마의 반인륜적 악행도 그 못지 않았을터.
핑곗거리를 아무리 내세워봐도 자신들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퇴보가 가장 극심히 나타난 영역이 바로 입술이었다.
누구도 신앙과 성경적 가치를 전할 수 없도록 법으로 강제 당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수십 년에 걸쳐 전 지구 단위로 존속되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숨쉴 틈과 도망칠 쥐구멍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수십 년간 당해온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유전자 속에 공포와 패배 근성이 새겨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린 그들은 사람들에게 마땅히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공포로 인해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 그들은 누구도 겁쟁이라고 정죄할 수는 없으리라.
인간이란 그만큼 연약한 존재이니까.
거룩하신 그 영이 직접 그 안에서 위대한 불굴의 힘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그런 비겁한 모습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버릴 수 없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자리였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몰래 지하나 밀실에서 은밀하게 드려지는 경배.
이것마저 포기해버린다면 정말로 자신의 존재의의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은 자들은 최후의 용기를 쥐어짜냈다.
플레먼은 세 친구의 안전한 앞날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어서 세 친구도 각자 돌아가면서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문득 그들의 마음은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깊은 정서였다.
핍박으로 인해 외지로 내몰린 이후, 그들을 비롯한 남은 성도들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다.
사랑하고 싶어도 도무지 사랑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세상 모두가 그들의 원수가 되어 가혹하게 짓밟아왔으니, 어찌 그들을 마음에 품을 수가 있으리요.
당장 자신들의 앞가림조차도 불투명한 마당에 그럴 여유가 있으리요.
그러나 그들의 양심을 긴 세월 간지럽혀 온 따스한 명령이 그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 명령을 알고도 그 순종에 몸을 과감히 내던질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명령과 엄중한 부탁을.
“내일 걸어가야 할 불확실한 길, 그 길 가운데서 우리의 발을 보호해주소서.”
“우리가 밀알로서 심겨지게 될 그 땅에 주님께서 보호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우리의 이웃뿐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게 될 그 사람들마저도. 그들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죄에 넘어지겠지만,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이들이 치유와 회복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플레먼은 헌터들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스쳤다.
어쩌면 신께서는 그들을 향해서도 연민을 품을 것을 명령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잠잠히 마음속으로 그들의 앞길을 축복하였다.
*
북미 대륙에 상륙한 넷은 인도자의 도움으로 어떤 만남의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번화가에 위치한 그 좌표는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이후 넷은 각기 목적지로 나뉘어 향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신티와 쥬오디아를 한 팀으로 하여 그들을 북서부 지역으로 데려가기 위해 한 사람이 찾아왔다.
플레먼과 어니스트는 그들을 포옹으로 배웅한 뒤 떠나보냈다.
“건강히 잘 지내렴. 새 이웃들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염려하지 마세요.”
두 건장한 근육질 여장부들은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아저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아저씨야말로 건강 잘 챙기시고요.”
“암.”
둘을 태운 차가 떠나가자 어니스트가 플레먼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이번에 온 저 사람은 헌터 같죠?”
플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지금까지는 단순 협력자였다면, 여기서부터는 본진과 가깝다 이건가?”
사실 두 사람이 새 인도자의 정체를 알아본 이유는 간단했다.
사복으로 잘 변장하고 있어도 가려지지 않는 아우라와 체격 때문이었다.
단순한 운동 선수나 특공대원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헌터만의 독특한 느낌이란 것이 존재하긴 했다.
물론 강인해보이는 육체만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모종의 육감 같은 것도 희미하게 전달되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그 ‘면역자’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어니스트를 안내하기 위한 대원이 찾아왔다.
역시나 큰 키에 전투적으로 잘 압축된 무인의 육체가 위압감을 자아내었다.
헌터로 추측되는 그 사내는 정중히 어니스트를 데리고 자기 길로 향하였다.
‘괜찮을까?’
마음속에서 여러 잡념과 망상과 근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불확실한 이 세상 속에서 안심하고 믿을 미래 같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대놓고 말해서 저 헌터들이라는 사람들을 백퍼센트 믿을 수도 없고,
또 언제 정부의 감시에 휘말려 골치아픈 일에 빠질지 어찌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기우를 갖다보면 끝이 없는 법이다.
플레먼은 어차피 불확실한 이 세상 속에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생각하며 마음의 결심을 굳혔다.
주님께서 이 몹시 부끄러운 종들에게조차 긍휼을 보여주시겠지.
그렇게 믿고 그는 굳게 깡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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