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60회 악몽의 추억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27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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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속에서 그의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날들을 배회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밀실.
팔다리를 모두 펴기도 어려운 좁디 좁은 폐쇄된 공간.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흠집도 내기 힘든 두터운 벽,
그것이 직육면체 공간의 육면을 빽빽이 두르고 있었다.
창문조차도 없는, 언뜻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상자였다.
스무살의 한 젊은이가 그 공간에 결박되어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속박의 멍에 아래에 짓눌린 자였다.
자유라는 단어는 그에게 있어서 상상도 하기 못할 낯선 단어였다.
오로지 고통과 갑갑함만이 그에게 친숙한 세상이었다.
그는 바깥 세상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듣지도 못했고 냄새 맡지도 못했고 피부로 느끼지도 못했다.
종종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운송되긴 했으나 항상 밀폐된 상자에 담긴 채 비밀스레 호송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생활 반경은 늘 발 하나 뻗기 힘든 좁은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낮에는 실험실로 보내져 잔인한 연구원들의 손아귀에 내던져졌다.
어려서부터 그는 온갖 종류의 실험에 맡겨져 노리개 신세가 되어왔다.
가늠하기 힘든 온갖 고통이 가해졌고 이제 그는 그 괴로움에 익숙해졌다.
생명공학부터 기계 공학, 나노 공학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연구의 재료로서 그는 소모되고 또 소모되었다.
과학자들은 그의 몸을 헤집고 뒤흔들었으며 만지고 조작하고 괴롭혔다.
의학자들은 각종 불법적인 실험과 시술과 수술로 그를 학대했다.
그는 매주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악착 같은 생존력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밤이 되면 실험실의 지하에 위치한 좁다란 암흑의 독방에 던져졌다.
빛조차 보지 못할 시커먼 어둠 속에서 그는 팔다리를 사슬에 결박당한 채 관절 하나 움직이기 힘든 속박 속에서 양 팔과 양 다리를 쫙 벌린 채 천장에 묶였다.
독방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상자라고 해도 될 협소한 공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분만 묶여 있어도 제정신을 잃게 될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매 순간을, 그 상태를 기본 자세로 가졌다.
냉방도,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오물을 처리할 변기조차도 없는 공간.
그 짐승 우리보다도 더한 가혹한 환경 속에서 그는 평생을 살아왔다.
잠 자는 순간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팔을 묶인 채로 매달려 있었다.
팔을 벌린 자세로 오래 매달려 있다보니 어깨가 빠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배설물들의 악취와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면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해 입 속에 쑤셔넣어지는 사료에 불과했다.
그는 사람이 먹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저 양분을 주입받을 뿐이었다.
짐승 사료조차도 그처럼 역겨운 맛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그는 살아남았다.
그런대로 영양소는 필요한 만큼 공급되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기적에 가까우리만큼 착실히 강해졌다.
생물학의 법칙을 넘어선 지독한 집념이 만든 초자연적 기적 덕택이었을까?
혹은 악착 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몸을 혹사시키며 운동한 덕이었을까?
아니면 실험의 결과로 인해 생긴 부작용으로 초인적인 신체 능력이라도 얻은 덕이었을까?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였지만 강한 장정이라도 수 일 만에 만신창이로 만들 끔찍한 환경 속에서 청년은 거듭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해짐과는 별개로 고통은 끊이질 않았다.
의식주를 박탈당한 채 독방의 처참한 환경 속에서 괴로워하는 괴로움,
실험체로서 각종 위험한 실험을 당하며 겪는 고통,
그것들과는 별개로 또다른 아픔도 그의 삶의 일상사로 박혀들었다.
바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학대와 고문이었다.
“일어나, 이 쓰레기 같은 녀석.”
차디찬 독방의 문이 열렸다.
만져지는 듯한 완전한 어둠이 잠시 걷히며 어슴푸레한 빛줄기가 스며들었다.
그래봤자 어두운 밤과 같은 조명이었으나 오랫동안 캄캄함에 적응된 사내의 눈에는 햇빛처럼 밝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상징하는 빛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어 번씩 이렇게 문이 열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무서운 일이 뒤따랐다.
보통 먹을 것이나 물은 좁은 구멍을 통해 집어넣어졌기 때문에 문이 열린다는 것은 교도관의 입장을 의미했다.
그리고 결박된 그를 상대할 교도관의 역할은 보통 딱 한 가지였다.
국가에 의해 허락된 고문을 마음껏 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허용된 마약을 통해 마음 속의 가학적 쾌락을 마음껏 만족시켰다.
반사적으로 사내는 몸을 움츠렸다.
하루에 두세 번 정도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일정, 고문 시간이었다.
실험 당하는 것도 그것 나름대로 괴롭지만, 이 학대 일정은 한 수 더 했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인간되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어휴, 냄새 한 번 지독하기도 하지.”
오물과 배변으로 범벅이 된 공간인지라 악취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악마 같은 고문관들은 그 악취에도 물러나지 않고 기꺼이 들어왔다.
마스크와 장갑을 둘러쓴 그들은 사지를 대자로 벌린 채 묶인 가련한 희생양을 우월감 가득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근육질의 몸에 덩치는 산처럼 컸으나 오물로 범벅 된 비참한 전라의 몸.
학대하는 자들의 눈에는 사슬에 포박된 비천한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수염과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란 그 짐승을 향해 고문자들은 맘껏 조소하였다.
그는 스무살 젊은이의 머리카락을 집고 거칠게 머리를 끌어당겼다.
“벌레만도 못한 녀석.”
포로는 반항도 없이 말도 없이 매서운 눈으로 고문자들을 노려보았다.
악마들,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악한 악마들.
제발 죽어버렸으면!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어버렸으면!
복수심의 불꽃이 포로의 심장 속에서 들꿇었다.
그러나 그가 저항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다가올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방도도 그에게는 없었다.
“끄억!”
짐승처럼 묶인 남자의 입에서 단말마와 고통스런 비명이 토해졌다.
연약한 부위들을 발로 걷어차인 그는 몸을 애써 움츠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곧 이어 혹독한 채찍질이 가해졌다.
일부러 몸에서 가장 민감하고 약한 부분들만을 노린 매질이 쇄도했다.
제아무리 갑옷같은 근육으로 전신을 단단히 감싼 그였지만 단련할 수 없는 부위들은 있었다.
거칠게 방에서 끌려나온 그는 기력을 잃은 채 나신으로 질질 사슬에 끌려갔다.
그는 독방만큼이나 어두운 고문실로 호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물 고문을 당했다.
쉴새 없이 코와 입으로 물이 흡수되었다.
괴로운 나머지 그의 전신 근육이 파르르 경련하며 저항하였다.
온 몸에 도드라진 정맥들이 잔뜩 팽창하였다.
발가락과 손가락은 사시떨기처럼 흔들리며 신전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렇게 세 시간 이상을 물 고문을 당했을까?
너무나도 많은 물을 마신 나머지 요의(尿意)가 미칠 정도로 극심해졌다.
배가 터질 것 같아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제발!”
그는 제발 몸에 가득 찬 물의 압박을 해소하게 해달라며 짧은 비명으로 애원하기를 반복했다.
이런 식의 잔혹한 처우를 겪은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긴 했으나 매번 겪을 때마다 쉬이 적응되지 않는 비참함이 뒤따랐다.
그의 마음이 마모되어 인간다움을 포기해버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놔줘! 부탁이야! 죽고 싶어!”
그러나 그의 마음대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의 인체는 악마 같은 교도관들의 잔인한 구속에 의해 포박되어 있었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심지어 무언가를 빼낼 출구들마저도, 모조리 잔인한 결박의 기구들의 통제 아래 짓눌린 상태였다.
잔악한 잠금 장치에 의해 살갗이 포박된 상태에 있던 그는 요의조차 맘대로 해소할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은 이미 밑바닥까지 밟힌 신세였다.
아니, 생물로서의 존엄성이라고 해야 옳으리라.
하다못해 야생 동물조차도 배변과 배뇨는 금지당하지 않거늘.
교도관 중 하나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는 잠금 장치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대신에 그 출구 쪽으로 철심을 집어넣었다.
독하기로 유명한 향신료가 잔뜩 발라진 철심이 약한 점막 부위에 직접 닿았다.
괴로움으로 인해 포로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크어어억! 끄윽!”
이어서 또다른 교도관이 그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결국 폭발할 듯한 요의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짐승처럼 물을 쏟아냈다.
그 압력에 밀린 철심이 거친 마찰과 함께 그의 점막을 할퀴었다.
바닥은 곧 피에 섞인 소변으로 더러워졌다.
극심한 괴로움과 굴욕감으로 인해 마비된 사내는 기력을 잃고 축 늘어졌다.
다시금 팔과 다리의 결박이 팽팽해져 그의 사지를 벌린 채 구속하였다.
교도관들은 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머리를 발로 밟았다.
피 흘리는 몸 아랫부분을 구둣발로 짓이기며 배를 몽둥이로 때렸다.
“기억해. 이것이 네가 영원히 머무를 위치야.”
그 악마들의 사악한 쾌락의 미소를 청년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게 되었다.
*
그의 무의식은 이제 이십대의 기억 창고를 벗어나 삼십대의 기억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자유라는 것을 체험하였던 나날이었다.
수용소와 실험실 안에서 그는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의 노력으로 모든 힘과 지식을 획득했으나 오로지 하나, 자유의 몸만은 얻지 못했다.
그 기회를 얻은 것은 우연에 가까운 행운 덕이었다.
사고 덕택에 시설에서 탈출한 그는 은인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만신창이의 몸으로 건져진 그는 간호를 받고 씻김을 받고 의식주를 공급받은 뒤 몸을 빠르게 회복하였다.
이후 신속하게 사회화되었고 실력과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렇게 한 인간으로서의 자질과 자격을 갖춘 그는 전사로서, 모략가로서, 그리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조직 속의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동료들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아마도 워낙에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터라 그들도 그에게 공감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탱해주었고 그도 그들을 많이 의지하였다.
그러나 운명의 날에 이르렀을 때, 세상은 다시 잔인하게 그의 것들을 빼앗았다.
지구상에 두 번째로 나타난 SSS 랭크 헬게이트.
첫 번째 것보다 열 배 이상 강력한 그 재난은 사상 최강의 위협을 창조해냈다.
그 헬게이트 안에서 탄생한 최악의 어비씨언, 가히 지구상 최강의 유닛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괴물로 인해 하마터면 헌터계가 처음으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타고난 지략과 적응력으로 헬게이트 사태를 그간 능수능란히 헤쳐나왔던 헌터들이 이번만큼은 손을 쓰지 못한 채 좌절하였다.
서른 명도 넘는 SSS급 헌터, 육십 명도 넘는 SS급 헌터가 그 사악한 괴물 한 마리의 손에 도륙당했다.
여태껏 SSS급 헌터가 헬게이트에서 죽임 당한 적이 사실상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심각한 경종을 울리는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청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사태를 해결할 손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런 그의 발목을 묶은 것은 과거의 악몽이었던 족쇄, 곧 정부였다.
한시가 급한 그 시점에 그 탐욕스러운 자들은 자신을 구속하여 구금하였다.
반정부적 범죄자라느니, 위험인물이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아무리 사태가 급하다고 경고해대도 그들은 고집불통이었다.
결국, 잃지 않아도 되었던 많은 전력을 상실한 뒤에야 그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아마 세계 정부 측도 내버려두었을 때 확대될 일을 심각성을 인지했으리라.
그렇게 헌터는 전쟁터에 투입되었고 괴물과 일대일로 싸워 승리하였다.
그러나 승리의 자리까지 가는 과정에서 많은 옛 동료들이 죽었다.
그들의 꺼진 생명의 불씨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다.
헌터들은 중요한 최상위 인력을 다수 잃었으며 그 날들의 일로 인해 정부를 향한 분노와 증오심을 더욱 불태웠다.
이는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후로 그의 기억속에 ‘그 괴물’, 곧 사상 최강의 어비씨언은 어린 시절 그를 학대했던 교도관들과 더불어 잊지 못할 악몽의 추억으로 도장처럼 새겨졌다.
*
“크윽!”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된 악몽의 늪.
괴로움의 시간에서 깨어난 라이텔바흐는 힘겹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단단한 근육질의 맨 상반신은 자면서 흘린 식은땀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파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군.”
삼십 년 생애를 실험체로서, 고문의 희생양으로 살아온 그였다.
자유를 얻은 뒤로도 세계 정부와 그의 하수인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원수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그들의 탐심과 어리석음과 부패함으로 인해 ‘그 괴물’에게 잃은 동료들의 얼굴이 뇌리에서 아른거렸다.
그때 자신이 진작 투입되기만 했었어도 그들을 잃지 않았을텐데.
거칠어진 호흡을 잠시 가다듬은 라이텔바흐.
그는 뒤숭숭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스위치를 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투덜거리며 샤워실로 뚜벅뚜벅 걸어간 뒤 온 몸으로 찬 물을 맞았다.
어지러운 생각들이 잔잔한 음악과 물의 시원함으로 인해 잠시 잦아들었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괴물인지, 이제는 구분하기도 어렵게 되었군.”
악마는 지옥에서 올라오는가?
아니면 악마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가?
어쩌면 자신이나 저치들이나, 그런 본질 면에서는 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조적으로 묵상하며 라이텔바흐는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강인한 근육으로 촘촘하게 다져진 전사의 육체가 보였다.
그러나 그 몸은 온통 옛 상흔들로 덮여 있었다.
고문의 흉터, 학대의 낙인들, 그리고 괴물에게 얻은 상처까지도.
이 상처들만은 나노봇의 도움으로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처럼 아마 평생을 짊어져야 할 짐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라면 다를까?’
마음 한켠 구석에, 아주 작은 부질없는 희망의 잔흔이 잔바람처럼 내려앉았다.
더 실망하고 싶진 않는데.
아니, 인간에게 더 실망할 구석이 남아 있기는 한가?
라이텔바흐는 쓴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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