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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84회 중간관리자들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20 | 회차평점 0 0

 

 

 

시공간이 뒤틀리며 하늘과 땅이 뒤섞여 네 개의 수렴점에 모였다. 물질과 공간이 엉켜서 만들어진 시커먼 블랙홀 형태의 응축 점 위에 나타난 것은 차원 너머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중력이나 전자기력을 포함해 그 어떤 상호작용도 일으키지 않는 기묘한 이질감의 포탈. 그러나 그것들은 헬게이트가 아니었다. 그 어떤 인간도 감지하지 못하도록 도적처럼 은밀하게 잠입하는 이계의 침습이었다.

 

 

-설마하니-

 

 

인간형 형체를 입은 한 벌거벗은 존재가 문 너머에서 내려와 유유히 착지했다.

 

 

-이런 미친 시도를 위에서 결정할 줄이야.-

 

 

그 존재는 시커멓게 꿀렁거리는 암흑 물질을 생성하더니 그것을 응축하여 형태를 빚어 자기 피부를 만들었고 이어서 그 위에 옷 형태의 뭔가를 덮었다. 순식간에 그 존재는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형태가 되었다.

 

 

-우리를 아예 인간계에 직접 보내다니.-

 

 

-너무 불평하진 마.-

 

 

다른 세 개의 포탈에서도 동일하게 인간형 존재가 강림했다. 그들은 헬게이트도 아니었으며 어비씨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비씨언은 헬게이트의 권역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는 속박 규칙에도, 헬게이트는 최초 고정 지점으로부터 멀리 이동할 수 없다는 규칙에도 예속되지 않았다. 버젓이 침식된 권역이 아닌 곳을 활보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만큼 그 흑재규어 녀석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겠지.-

 

 

여성형 몸을 입은 침공자, ‘아탈리야’가 흥얼거리며 말했다.

 

 

-한 번 기회가 된다면 거하게 한 판 붙었으면 좋겠네.-

 

 

-아탈리야, 위에서 내린 감시의 임무를 잊지 말아라.-

 

 

또다른 침공자, 남성형 몸체를 소유한 ‘아브멜레크’가 냉담히 말했다.

 

 

-우리는 감시자로서, 인간계 내부에 침투해 ‘체스판의 질서’를 배후에서 조정하도록 파견되었다.-

 

 

이어서 다른 두 명의 침공자도 완벽하게 위장된 몸을 생성했다.

 

 

-이거 꽤 손해가 막대하군. 우리의 본체를 너무 많이 소모했어. 여기에 아예 정착하는 과정에서 깎여나간 부분들이 많아.-

 

 

침공자 ‘헤로테스’가 투덜거렸다.

 

 

-그나마 우리처럼 왜소한 존재들이니 건너올 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인 ‘세나케립’이 말했다.

 

 

-불량품들인 우리와는 달리 다른 자매들은 ‘권능의 존재’들이 심연의 입속에 잡아먹히는 과정에서 생성된 ‘호킹 복사(Hawking-radiation)’이지. 반면에 우리는 원래 스올에 떨어졌어야 했던 혼이 잠시 아비수스의 중력에 이끌려 잘못된 궤도 안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나온 호킹복사.-

 

 

세나케립은 스스로의 처지를 자조하였다.

 

 

 

 

 

네 마리의 괴물은 각기 텔레포트를 통해 최근 인간계에서 중요 사건이 벌어졌던 지점으로 흩어졌다. 바로 바벨탑들이 자리했던 그라운드제로 좌표들이다. 아탈리야는 바알이 다스리던 서쪽 탑의 잔해에, 헤로테스는 몰렉이 다스리던 남쪽 탑의 잔해에, 아브멜레크는 북쪽 탑으로, 그리고 세나케립은 동쪽 탑의 잔해에 착륙했다.

 

 

 

 

 

-이곳에서 세미라미스 그 발칙한 것이 반역을 꾀했다 이건가.-

 

 

세나케립은 무너진 탑의 역사를 사이코메트리 주술로 분석했다.

 

 

-참 맹랑하기에 그지없군.-

 

 

98층 이하의 층 주인들은 어비씨언이다. 99층의 주인인 담무스와 탑 관리자였던 세미라미스는 헬게이트들이 복합되어 만들어진 융합체이다. 그들은 엄연히 억압의 규율에 지배받는다.

 

 

세미라미스는 무슨 전략을 통해서 그것을 우회하려 했는가. 바로 100층 옥좌의 문을 탈취하여 그 고유 특성을 이용하는 방법이었으리라. 100층의 옥좌에서 생성된 ‘바깥으로 이어지는 출구’는 고무줄처럼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지구의 대기권과 지표면과 맨틀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그러니 지구 한정으로는 사실상 바깥 세계 전체를 사정권 안에 넣는 셈이다.

 

 

엄연히 세미라미스의 이 발칙한 발상은 어비씨언들과 헬게이트들을 예속하는 규율을 위반하려는 월권이다. 이것은 상부 입장에서도 꽤 골치 아픈 일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만물의 주권자이신 분’으로부터 인류를 괴롭히도록 허락받은 것은 철저하게 규율 안에서 속박당하는 한도 내에서 허가된 보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반이 반복적으로 축적된다면 인류에 걸린 저주가 거듭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무능한 니므롯 녀석 같으니, 자기 정부(情夫)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다니.-

 

 

 

 

 

그때 남쪽 탑에 파견된 헤로테스가 텔레파시로 말을 걸었다.

 

 

-세나케립, 이쪽도 가관이군. 제대로 남아난 게 없다.-

 

 

동쪽 바벨탑의 99층이 지구의 열권을 통째로 끌어당겨 생성된 공간이라면, 남쪽 탑의 99층은 지각과 맨틀 사이의 마그마들을 끌어당겨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이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인간이 어떻게 이런 공간 안에서 멀쩡하게 공략을 마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라이텔바흐라고 하는 그 비범한 인간은 남쪽 탑과 서쪽 탑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했다. 탑의 관리자인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어떠한 링크에 의해 연결된 존재들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정신 연결만이 아님을 라이텔바흐는 포착했었다. 그는 두 탑 사이에서 끊임없이 미세한 양자 연결이 발생한다는 것과 그 연결이 바로 탑 관리자들의 링크를 이루는 본질임을 알아챘다.

 

 

이에 그는 대량의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응축하여 어떤 ‘비술’을 사용하였고 이로써 파생된 양자적 얽힘과 확률 붕괴의 기현상을 활용하였다. 그렇게 그는 좁디좁은 탑들 사이의 양자 연결을 강제로 비집고 칼을 쑤셔 넣었고 안티-게이팅 에너지의 응축물을 순간적인 백색 파동 공명으로 팽창시켜 연결점을 크게 벌렸다.

 

 

순간적으로 두 탑의 99층을 이루는 내용물이 뒤섞였다. 이미 한 번 공략된 서쪽 탑의 99층에는 심해의 바닷물이 있었고 마그마와 물이 섞이자 곧 전체는 딱딱한 대지가 되었다.

 

 

이후 라이텔바흐는 대량의 섬멸물질을 몸에 두르고 백색 파동을 방출하여 굳은 마그마의 대지 전체를 증발시켰고 층의 주인들과 관리자를 살해했다.

 

 

 

 

 

이전 기록들을 보고 경악한 것은 서쪽 탑에 파견된 아탈리야도 마찬가지였다.

 

 

-크큭, 상남자는 상남자로군. 설마 그 수압을 견디며 헤엄쳐서 최고 층에 도착했을 줄이야.-

 

 

초인은 아니지만 어쨌건 신체적 능력이 상당한 건 맞는 듯하다. 어서 빨리 라이텔바흐와 마주하고 싶은 호기심이 커졌다.

 

 

 

 

 

-탑을 단 한 번의 기술만으로 붕괴케 하려면 얼마나 많은 안티-게이팅 에너지가 필요한가?-

 

 

세나케립이 궁금증에 질문하였다.

 

 

-모르긴 해도 핵에너지로 환산하면 지구 위의 핵물질 전체를 모두 소모한 분량만큼은 필요할 거다.-

 

 

헤로테스가 대강 가상의 계산기를 두드려 대답했다.

 

 

-일개 인간의 육체가 그 정도 용량을 수용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지.-

 

 

-역시 ‘그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는 조금 특별하다 이건가?-

 

 

-모르지. 절대적인 그 존재가 유전자 속에 특수한 무언가를 새겨뒀을지도.-

 

 

그들에게는 더 깊은 지식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곳에 강림한 그들은 자기들의 세계에서는 하위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상급의 존재도 실상 더 강대한 차원의 권세들 앞에서는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인류가 이러한 하찮은 존재들 밑에서 괴롭힘을 당하도록 넘겨주심을 당한 것은 대단한 굴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마치 고대의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상대로 승리했던 한 유목 민족이 일개 가나안 땅의 원주민 부족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한 것과 같은 격이었다. 그러한 급의 굴욕이기에 징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일 테지.

 

 

-놈과의 승부가 기대되는군.-

 

 

세나케립이 중얼거렸다.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헤로테스가 반론했다.

 

 

-어차피 우리 ‘차원 너머’로부터 나온 에너지와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는 그냥 신체 능력과 머리가 조금 뛰어난 인간 개체에 불과해.-

 

 

이에 아탈리야도 공감했다.

 

 

-하기야 우리가 먼저 손해를 봐가면서 힘을 소모해 줄 필요는 없지.-

 

 

어리석은 인간계를 배후에서 조종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교착 상태를 유지하기란 어렵지 않으리라. 이계의 존재들로서도 지금의 지리멸렬한 인류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편이 낫다고 볼 수 있다. 인류가 멸종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그들의 존재 목적이 지워질 테니 원치 않는다. 반대로 인류가 자정 작용을 통해 내부 개혁을 취한다면 이로 인하여서도 헬게이트의 지배력이 추방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어리석고 악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자기들끼리 적당히 싸우되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로 다투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 그들이 라이텔바흐를 괴롭게 만들어준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흑재규어와 헌터들이 아예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 옵션도 솔깃하긴 하지만, 그럴 경우 인류 스스로 자멸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어쨌건 위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탑들에 대한 조사를 마친 아브멜레크는 팀원들과 임무를 분할하였다.

 

 

 

 

 

세나케립은 곧 있을 대규모 웨이브를 더욱 효과적인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지면에 흩어진 헬게이트들의 권세를 배후에서 조정하는 일을 배정받았다. 그에게는 유사-심연들로부터 부여된 대리권이 허가되었다. 헬게이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것들을 융합시키거나 분할하거나 진화시켜 라이텔바흐와 헌터들이 쉬이 공략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으리라.

 

 

아탈리야에게는 내부 잠식의 임무가 맡겨졌다. 곧 인간 정부 기관에 위장 침투하여 그 권력 체계의 무게중심을 취하고 흑막 겸 비선 실세로서 장악하는 것. 이제 그녀는 첩자로서 인류 내부에서 권력들을 충동하고 분열을 통한 쌍방 소멸을 꾀할 것이다. 헌터들과 정부가 서서히 서로를 소진시키며 상멸케 하는 프로세스가 계획될 것이다.

 

 

한편, 헤로테스는 주요 헌터 요원 및 인간계의 주요 위험 분자들에 대한 색출과 암살을 맡았다. 당장 라이텔바흐 같은 거물과 충돌하기는 위험 요인이 많으므로 점진적인 장기전을 벌이는 편이 옳으리라. 정체를 숨긴 채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여 너무 많은 비밀에 다가서 버린 젊은 헌터들을 제거하여 위험인자를 줄이리라.

 

 

물론 수색의 대상은 헌터만이 아니다. ‘자유도’를 유발하는 그 면역자들도 필요에 따라서는 제거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어쨌건 그 일이야말로 상부와 그들 위의 더 높은 상부가 가장 바라는 바이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멜레크는 자진해서 ‘그 이레귤러’에 대한 수색을 맡았다. 헬게이트들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예측 밖의 변수로 진화해 버린 그 기이 개체. 내버려두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 발칙한 괴물은 이미 오래전에 어비씨언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났고 최근에는 헬게이트들의 한계마저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버려두면 유사-심연에 근접한 존재로 변하여 한계를 탈피할 것이다.

 

 

-북쪽 탑의 주인, 그대에게 협력을 요청한다.-

 

 

아브멜레크의 제안에 마지막 바벨탑의 주인이 답했다.

 

 

-상부의 중간관리자여, 그대의 제안을 승낙하겠소.-

 

 

-좋군. 그 잡룡(雜龍)을 체포할 병력의 생산을 요청하지. 그대가 파견해 준 군대 한정으로 부분적으로 락(Lock)을 해제해 주마.-

 

 

-물론이요. 놈을 놔두었다가는 인류는 물론이고 우리 헬게이트들까지 전부 잡아먹히는 것은 기정사실이요.-

 

 

 

 

 

이렇게 인간계와 지옥 사이 중간 지대에 똬리 튼 유사-심연들이 파견한 네 명의 중간관리자가 각자의 자리로 나아가 공격적으로 작전 수행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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