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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86회 원정대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06 | 회차평점 0 0

 

 

 

라이텔바흐는 미리 약속했던 대로 손님들과 합류하였다. 총 세 명의 동료로 길드장 직위의 헌터들이며 까칠한 라이텔바흐와도 나름 친분이 깊은 편이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 내성적인 플레먼은 다소간 긴장하였다. 가뜩이나 어색한 마당에 다들 헌터들인지라 체구가 자신보다 월등히 커서인지 위축되는 감각이었다.

 

 

“인사하시죠.”

 

 

라이텔바흐는 호쾌히 헌터 동료들을 일반인 친구 앞에 소개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플레먼은 고개를 숙여 조심스레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쭈뼛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대형견들 앞의 무력한 소동물의 신세였다. 세 명의 헌터는 다행히 라이텔바흐의 가까운 친구라는 말에 플레먼 앞에서 태도를 주의하며 예의를 갖췄다.

 

 

“반갑습니다.”

 

 

“플레먼 에이비슨 씨 맞죠?”

 

 

“인사드립니다.”

 

 

금발의 조금 날티 나는 인상의 곱상한 남자는 라울 켄트라일 길드장. 플레먼도 그의 얼굴을 알았다. 신문에서 자주 나오는 유명 인사였으니까. 라울은 헌터로서도 최상위권에 드는 SS급이지만 그보다는 혁신적인 천재 기업가로서 더 유명했다. 짧은 시간 안에 공격적인 투자와 발명으로 여러 사업을 일궈 번창시킨 천재로 라이텔바흐만큼은 아니어도 자본에 대한 영특함이 상당했다.

 

 

더욱이 라울은 엔지니어 겸 발명가이기도 했는데 현 인류의 문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이템들을 시장 안에서 점유하여 막대한 이익을 쌓아왔다. 한 마디로 성공한 슈퍼 리치라고 부를 수 있겠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

 

 

그런 유명인을 직접 마주하고 보려니 별세상에 온 것 같아 현실 감각이 무뎌지는 듯했다. 하기야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영향력까지 고려한다면 저 라울조차 라이텔바흐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 자신이 새삼 두려운 위인과 친분을 맺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플레먼은 시선을 조금 돌렸다. 라울 옆에 선 흑갈색 머리의 남자는 키나 체구는 라울에게 아주 조금 못 미쳤으나 얼굴은 훨씬 더 지적인 이미지였다. 일을 잘하게 생겼다는 인상도 주었고 신중함과 냉정함이 골고루 섞여 어딘가 모르게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목구비로 보아 동양인 같았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서재석이라고 소개했는데 사정을 모르던 플레먼은 중국 계열이냐고 물었다. 이에 재석은 자신은 오래전에 멸망한 반도 지역의 동방 민족의 후손이라고 대답했다. 하긴 모든 나라가 제3제국 손에 공평히 멸망하긴 했으니, 지역을 구분하는 것도 의미 없겠다.

 

 

‘그래도 묘하게 신뢰감은 드네.’

 

 

재석은 반듯하고 말끔한 데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라 그런지 예의도 바른 사람이었다. 라이텔바흐가 대령이었던 시절부터 거의 측근처럼 그를 도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가 애지중지하는 부관이라고 한다나. 라이텔바흐가 믿는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은 아니리라는 추측을 섣부르게나마 가져보았다.

 

 

참고로 서재석 대령의 헌터 이외의 특기는 ‘정보’를 취급하는 일이었다. 그는 유명한 정보상이었는데, 헌터들이 운영하는 여러 ‘음지의 수단’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재석의 통제 아래 경영되는 수많은 카르텔과 그 하청업체들이 세계 전 대륙에 포진해 있었고 재석은 탁월한 경영 감각과 상업적 두뇌로 그 권세를 이용하였다.

 

 

아울러 그는 라이텔바흐와 4세대 헌터들이 최근 개량한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해 민간계 내에서 정보 권력을 획득했다. 앞으로 헌터 일을 은퇴한다면 그는 이러한 정보 사업을 기반으로 라이텔바흐에게 힘을 실어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헌터로서의 실력도 상당했고 등급도 S 랭크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남자는 이전에 메인주의 악몽을 공략할 때 라이텔바흐와 협력하였던 테무친 대령이었다. 매우 짧게 깎은 머리에 두터운 근육질의 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플레먼은 곰 앞의 토끼가 된 듯한 기분에 주눅 들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라이텔바흐가 플레먼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안심시켰다.

 

 

“다들 좋은 친구들입니다. 게다가 이제 직위상으로 제가 가장 높으니 저 동료 자격으로 다니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대해주시죠.”

 

 

“하지만.”

 

 

플레먼은 이 상황에 빨리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좋은 점수를 얻고 싶었다. 아직 헌터들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친구인 라이텔바흐도 헌터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들에게 상냥하고 살갑게 대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저들도 분명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여러 수난을 겪어왔을 희생자들 아니겠는가. 비슷한 류의 고난에 희생된 자로서 이유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실례지만 대령님들은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언뜻 보기에는 모두 20대 후반의 외모였다만, 라이텔바흐도 동안인 점을 생각한다면 저들도 보통 사람과는 달리 노화가 느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현시점 테무친은 라이텔바흐와 같이 39세, 라울은 37세, 재석은 플레먼과 동갑인 36세였다. 다섯 명 모두가 비슷한 연배의 또래 친구들인 셈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길드장 레벨의 헌터들은 저희처럼 4세대입니다. 재능이 비상하게 뛰어난 사람은 라이텔바흐 저 친구처럼 승진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례적이죠. 길드장 직위 이상부터는 정치적인 영향력도 승진에 매우 큰 변수라고 말이죠. 대개는 1세대부터 3세대의 선배들이 맡습니다.”

 

 

라울이 설명해 주었다.

 

 

“제게 견문이 적어서 그런데, 헌터들도 세대 개념이 나뉘나 보네요.”

 

 

플레먼이 조심스럽게 질문하였다.

 

 

“혹시 헬게이트 전(戰) 데뷔 시점으로 나뉘는 건가요? 아니면 그…….”

 

 

“헌터로서 ‘개조’되기 시작한 시점을 말씀하시고 싶으신지?”

 

 

재석이 말을 못 잇던 플레먼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신 선수 쳤다.

 

 

“……네.”

 

 

너무 실례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던 플레먼은 쭈그러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둘 다에 해당합니다.”

 

 

재석이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1세대 선배들은 최초의 개조 인간 프로젝트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후보자들이 모집되었는데, 이때 실험체들이 훗날 2세대가 되었죠, 이후로도 순서대로 각 세대의 프로젝트가 개시되었습니다.”

 

 

추가적인 설명에 따르면 한 세대의 실험체들이 완성작이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인체 개조 프로젝트의 개최 주기가 실제 헌터 세대 완성 타이밍의 주기와 동일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대체로는 앞선 세대의 실험체들이 완성될 때도 먼저 헌터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개인별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어느 세대에 속했느냐보다는 영향이 적다고 한다나.

 

 

현재의 1세대 헌터들은 인류 최초로 여러 종류의 ‘미지 이능력의 가능성’을 몸에 주입 당했다. 사실 처음 뽑혔던 1세대 피험체 상당수는 사망했고 오직 10%만 생존했고 그들이 지금의 헌터 수장들을 비롯한 최상위 지도자들이다.

 

 

1세대 때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얻은 세계 정부는 2세대 선발 때에는 처음부터 일정 조건에 맞는 대상만을 모집했다. 그래서 2세대는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미 1세대 실험 때 대부분의 ‘좋은 가능성’을 띤 보물들은 걸러진 탓인지 2세대의 평균 잠재력은 1세대에 못 미쳤다.

 

 

이후에는 1세대나 2세대의 생식 세포를 통해 인위적으로 합성한 시험관 아기들이 3세대의 씨앗으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실험을 완성할 방법은 부재했다. 살아남은 실험체들조차도 완벽하게 안정화된 ‘이능’을 발현하지는 못했다. 이런 난항을 뒤집을 가능성의 재료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5살 당시의 라이텔바흐였다. 원래의 그는 이능력 제작 프로젝트에 투입된 실험체는 아니었고 다른 용도로 희생되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그의 몸이 기묘한 이변을 일으켰다. 이 이변은 그가 8살이 되던 무렵에 가시적인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여기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꼬마 라이텔바흐를 새로운 감옥으로 옮겼다. 이미 미궁에 빠져서 폐기 직전에 이른 인류 진화 프로젝트를 개선의 국면으로 인도하여 구조할 ‘촉매제’로서 말이다.

 

 

그렇게 혁신적인 ‘원자재’를 확보한 세계 정부 측 과학자들은 기존에 이미 진행되던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생존자들, 곧 미완성작인 개조 인간들을 라이텔바흐에게서 유래한 물질들로 새로이 개조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안정화되었다. 아울러 강력한 세 종류의 ‘특수성’을 공통적으로 획득하였고 여기에 더해 기존에 진행되던 실험의 영향이 잘 융화되어 각자 ‘개별성’도 획득하였다.

 

 

그리고 라이텔바흐 본인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아이가 다시 한번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4세대다. 말하자면 4세대는 앞선 세대들과 달리 처음부터 성공이 보증된 확실한 방법을 기반으로 개조되었던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잠재력 면에서 가장 우수했다.

 

 

이후 5세대부터 7세대까지의 실험이 추가로 이뤄졌으나 이들은 라이텔바흐에게서 나온 물질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 배양되어 나온 것을 받은 자들로 말하자면 양산형이었다. 수적으로는 1세대부터 4세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으나 질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세대가 같은 게 나이대가 비슷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지요?”

 

 

궁금증이 든 플레먼이 다시 질문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테무친이 입을 열었다.

 

 

“100%에 가까운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양산형으로서 만들어진 이후 세대와는 달리, 선배들부터 우리까지는 목숨을 내건 실험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실험들은 특성상 시작할 수 있는 연령의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라이텔바흐가 처음 이능의 씨앗을 각성한 나이대인 5살에서 8살 사이. 이 시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매우 중요한 ‘Window period’로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때부터 실험을 받기 시작했다. 인간이 성공적인 이능을 띨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시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4세대 헌터님들은 대체로 저와 비슷한 연령대였군요.”

 

 

“뭐, 보통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전하고 활약할 나이대가 30대이긴 하죠.”

 

 

라울이 장난스레 라이텔바흐의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치워라.”

 

 

“승진했다고 빡빡하게 굴기냐.”

 

 

라이텔바흐의 농담 없는 타박에 라울은 입술을 비죽였다.

 

 

 

 

 

“자, 슬슬 시더우드로 이동합시다.”

 

 

라이텔바흐는 그의 자가용인 전투용 에어 크래프트 슈퍼카를 작동시켰다. 세 명의 길드장이 뒷좌석에 올라탔고 플레먼은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저 사람들과 동행해야겠지? 이것이 한편으로는 걱정을 주었다. 일단 저런 거물들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이 여행이 단순한 소풍이 아님을 암시하니까. 혹여 세계 정부 측의 사람들을 마주하거나 위험한 헬게이트 파생물과 접촉하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지난번에 마주했던 헬게이트 융합체 ‘레기온’이 S급 헌터 수준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레벨이었다고 들었다. 하물며 이번에는 EX 급, SSS급, SS급, S급이 한 명씩 합류한 팀이다. 웬만해서는 전력 면에서 밀릴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나마 유일한 문제라면 바로 자신이 발목 잡는 걸림돌이 되리라는 점이지만. 헬게이트 쪽이든, 세계 정부 쪽이든, 그들이 자신과 얽히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둘 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하다.

 

 

‘하필 난 헬게이트들이 주목하는 특이 성질을 지닌 데다가 정부 측에는 사상범이니까.’

 

 

플레먼은 부디 자신으로 인해 동행자들이 손해 보거나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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