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87회 곤란한 질문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14 | 회차평점 0 0

 

 

 

에어크래프트는 평야를 질주하였다. 사실상 포장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운행 수단으로 험준한 광야나 툰드라마저도 무리 없이 이동하도록 설계된 물건이다. 이런 점은 골치 아픈 당국의 감시를 무시하고 우회하기에 적합하다.

 

 

물론 세계 정부 측도 드론을 비롯한 무인 감시 시스템을 애당초 오래전에 완성하긴 했다. 하지만 애써 구축해 놓은 인류 감시 시스템은 헬게이트의 등장으로 허물어졌다. 헬게이트가 어느 권역에 나타나면 해당 지대는 물론 그 인근의 대지, 대양, 대기권까지도 영향을 받는 데 그 가운데는 전자 신호 교류의 교란을 일으키는 작용도 포함된다.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자원으로 쓸 수 있는 헌터들의 문물이라면 모를까, 일반 인류의 기술은 속수무책이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정부 감시망의 상당 부분에 허술하게 구멍이 뚫렸다.

 

 

그들이 권력을 내세워 작정하고 악을 쓴다면 훼방을 놓기에 충분하겠지만, 헌터들과 정부 사이에는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있었다. 서로가 상대방에 걸어놓은 계약과 올무의 종류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정치적인 복잡다단함 때문에 보통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시비 걸지 않고 넘어가려는 분위기였다.

 

 

플레먼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라이텔바흐 일행이 정부 측 기관이나 행정력이나 경찰력과 충돌할까 봐 조마조마해하던 참이었다. 자신이 정부와 얽히는 것도 껄끄럽지만, 그 이상으로 헌터들이 염려되었다.

 

 

“저를 걱정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라이텔바흐는 좌불안석인 플레먼의 태도를 간파한 것인지 단호하게 말했다.

 

 

“당회장 직급의 헌터라면 아무리 세계 정부 측이라도 무식하게 대놓고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가하길 꺼립니다. 이미 관련된 계약이 수장님들과 저치들 사이에서 여럿 체결되었으니까요. 헬게이트를 제거해 주는 우리의 눈치를 그들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라이텔바흐 소장님, 이미 그들은 한번 불의한 일을 당신에게 행했습니다. 두 번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편하게 친구처럼 부르라니까 그러네.”

 

 

직급으로 높임말을 쓰는 플레먼에게 라이텔바흐는 아쉬운 투로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곁에 있는 세 명의 대령급 헌터를 의식하고 예의를 갖춘 것이겠지. 뒷좌석에 앉은 세 사람은 졸거나 책을 보거나 휴대용 관측 장비 또는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어떤 작업에 열중 중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라이텔바흐와 그 옆 좌석의 플레먼에게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뭐, 그때는 제가 만만한 상대였으니까요.”

 

 

“직급이 낮았기 때문입니까?”

 

 

“네, 길드장 정도라면 불법적으로 몰래 제거한다고 해도 정부 측에서 충분히 덮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상식이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입니다. 법에 의한 다스림이 아닌, 법을 이용한 다스림을 모토로 삼는 자들이죠.”

 

 

그 말에는 플레먼도 격하게 동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기는 꺼려졌다. 뒷담화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오랜 세월 숨어 살면서 형성된 조심스러움 때문이기도 했다.

 

 

“뭐, 그들로서는 제가 가장 탐을 낼 만한 존재이기도 하죠.”

 

 

“소장님이 가장 강력한 헌터라서요?”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제게는 헌터로서 여러 특수성이 있어서 말이죠. 무엇보다 저는 ‘근원’에 가까우니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자원이죠.”

 

 

플레먼은 실험체 시절의 라이텔바흐의 삶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어니스트에게 언젠가 얼핏 듣기로는 그의 몸에 흉터 없는 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 전에 정결례 때 얼핏 보기로도 그랬었지.

 

 

 

 

 

“저희 혹시, 어느 길로 여행할 예정인지 물을 수 있을까요?”

 

 

플레먼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시더우드라는 곳을 정류지로 먼저 거친 후, 본격적으로 이동할 때는 북쪽의 알래스카를 통과할 겁니다. 툰드라 지대를 지날 텐데, 꽤 추울 테니 미리 준비해 둔 겨울용 의복을 덧입으시죠.”

 

 

라이텔바흐의 말을 들은 플레먼은 속으로 걱정했다. 호주에서 오래 지내느라 추위에는 썩 익숙하지 않다만. 잘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라이텔바흐와 헌터들의 옷차림은 매우 단출해 보였다. 예전에 헬게이트 권역 안에서 보았던 것처럼 슈트나 특수복을 착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장 차림도 아니었다. 북방으로 향한다는 데 옷이 그리 두꺼워 보이지도 않는다.

 

 

‘하긴 저분들은 보통 체력이 아닐 테지.’

 

 

극한의 환경도 거뜬히 견뎌내는 준 초인급 개조 인간들이니 덥고 추운 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일례로 최근 라이텔바흐는 성층권 높이의 탑에서 맨몸으로 싸우기까지 했다. 빈약한 소시민으로서 아주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알래스카라면, 거기에 헬게이트라도 발생할 예정인가요?”

 

 

“아, 알래스카가 목적지는 아닙니다. 단지 경유하는 길이죠. 거기를 지나 해협을 통과한 뒤 시베리아 대륙으로 향할 겁니다.”

 

 

“시베리아라면.”

 

 

플레먼은 문득 부모님께 구전으로 들었던 과거의 역사가 떠올랐다. 한때 그곳은 세계를 주름잡던 막강한 군사력의 체제가 통치하던 권역이었다. 유럽, 북미와 더불어 세계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던 집단, 소비에트 연방. 그곳은 또 하나의 독재 체계였고 제3제국과 맞먹는 악명을 지녔다. 차이가 있다면 이데올로기의 방향성이었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결국 본질적인 모습은 제3제국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전쟁 때 패배하여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핵폭탄 몇 발에 수도와 주요 도시 및 요새 전체를 잃었으며 이어지는 전투에서도 오합지졸처럼 파죽지세로 점령당했다. 제3제국은 소비에트 전체를 합병했으며 이후 시베리아 땅은 극악의 수탈에 시달리며 모든 자원을 갈취당했다.

 

 

헬게이트 시대에 이르러서는 땅 전체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불모지가 되었다. 교통 체계도 무산되었고 통신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몇몇 소규모 집락만 남았다.

 

 

“정확히 어떤 목표물을 노리시는 것인지.”

 

 

이 질문에는 라이텔바흐도 솔직하게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글쎄요. 아마도 그곳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라이텔바흐가 아무것도 모른 채 목표성도 없이 무턱대고 여행을 떠난 것일 리는 없다. 더욱이 그런 방랑에 플레먼 같은 일반인을 참여시킬 이유는 더더욱 없지. 그가 숨기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 시더우드에 잠시 쉬는 동안 한 명의 동료가 추가로 더 합류할 예정입니다.”

 

 

화제를 돌리려는 목적으로 라이텔바흐가 말했다.

 

 

“그분도 헌터인가요?”

 

 

“아닙니다. 저와 업무상 협력하는 일반인이죠. 당신과도 좀 친해질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군요.”

 

 

플레먼은 새로운 만남에 대해 기대해야 할지 부담감을 가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원래도 낯선 사람을 즐겨 만나는 성격은 아니거늘. 이번 여행에서는 본연의 약점을 극복해야 할 일이 많겠구나 싶었다.

 

 

“플레먼 씨.”

 

 

“네.”

 

 

상대의 어조에서 심상치 않은 색채 변화를 감지한 플레먼은 긴장했다.

 

 

“저 친구들을 의식하지 말고 자유롭게 대답해 주셨으면 하는데 말이죠.”

 

 

라이텔바흐는 차량 내에 격막을 활성화하였다. 완전한 방음이 가능한 장치로 앞 좌석에 이뤄지는 대화가 뒷좌석에 전혀 들리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뛰어난 헌터라 해도 헬게이트 권역 밖에서는 물리적, 생물학적 한계에 종속된 인간일 뿐이니 도청할 수는 없으리라.

 

 

“이건 당신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친구로서 진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고 싶은 의도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라이텔바흐의 커다란 손이 플레먼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저는 보통의 사람일 뿐입니다.”

 

 

“이런, 친구여, 우리 둘뿐이니 좀 더 정직해져도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교활한 전사답게 예리하게 찔러 들어오는 라이텔바흐.

 

 

“솔직히 면역자인 것부터도, 그리고 ‘에이티피아’를 띤 것도, 아주 평범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에이티피아(Atypia)라 하는 용어는 라이텔바흐가 임의로 정의한 단어이다. 그는 플레먼이 지닌 ‘기이한 특수성’을 정의하고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이름 붙였다. 에이티피아는 오로지 면역자들만 띨 수 있으며, 면역자끼리의 교제를 통해서 다른 면역자에게 전이되기도 한다. 에이티피아를 띤 사람의 총 숫자는 곧 ‘자유도’로 정의되며 이 수치는 헬게이트 측과 그 배후의 생산자들에게 중요하다.

 

 

“소장님.”

 

 

“친구로서 대해주시죠.”

 

 

“라이텔바흐, 제게 심문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서운하군요. 심문이라니. 저는 ‘그자’들과는 다릅니다. 나는 인간을 존중하며 특별히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사람입니다.”

 

 

라이텔바흐가 말한 ‘그자’들이라 함은 세계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 자명했다. 그는 그들과 동급 취급받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플레먼,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그저 친구에게 베푸는 신용으로 생각을 나눠주시길.”

 

 

커다란 근육질의 청년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작은 청년을 교묘히 달랬다.

 

 

“당신의 철학적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아니고요?”

 

 

“눈치는 꽤 좋군요. 맞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플레먼은 마른침을 목뒤로 넘겼다.

 

 

“불의한 일을 행하는 정권이 인류 위에 군림할 권세를 잡았다면, 그들을 심판하여 무너뜨리는 일은 정당합니까?”

 

 

이것은 플레먼이 가장 회피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라이텔바흐, 당신이 원하는 답안의 방향성은 정해진 듯하군요.”

 

 

플레먼은 최대한 신중하게,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며 부드러이 답했다.

 

 

“하지만 정당성이 만일 있다면 그 칼날은 누구에게 허락된 것일까요?”

 

 

그로서는 감히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부를 무서워하는 본성이 몸이 밴 탓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곳은 폐쇄된 사적 공간이고 라이텔바흐가 자신을 고발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플레먼에게는 양심이 있었고 그 양심은 감정이 아닌, 더 분명한 원칙을 순종하는 중이다.

 

 

“불의한 권세를 전복한다는 개념,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있어왔죠. 분명 그들 모두에게 내세울 만한 이유와 정당성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일어난 격변이 과연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는지, 저는 의문스럽습니다.”

 

 

플레먼은 깊이 생각했다. 잘못된 자들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봉기한 세력이 더러 존재해 왔다. 인류 역사는 언제나 그런 순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하나의 악이 축출된 이후에 형태만 달라졌을 뿐, 다른 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결국 악을 심판하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일어선 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도 동일한 수준임을 증명할 뿐이었다.

 

 

 

 

 

“저는, 만유의 주재자가 아닌 일개 작은 피조물로서, 제가 어떤 이들을 심판하고 판결할 자격이 있는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이것이 플레먼이 내린 스스로에 대한 진단이었다. 라이텔바흐는 기대했던 방향과 다른 대답이 나오자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친구의 생각을 존중하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더 토론을 나누고픈 욕구에 입가가 근질거렸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픈 욕구일까.

 

 

“그렇군요.”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86회 원정대 (2)
등록일 2025-12-06 | 조회수 36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88회 불의한 정부
등록일 2025-12-20 | 조회수 59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