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94회 진동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25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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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헬게이트가 순차적으로 함락되었다. 소모된 시간은 도합 네 시간. 아직 나머지 헬게이트들은 강림하지 않았다. 처음 계측했던 것보다 한참 미뤄진 셈인데 이는 라이텔바흐의 예측력에 오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의 의도적인 개입으로 인함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현재로서는 네 명의 헌터뿐이다.
또 한 명을 꼽자면 이 사태를 배후에서 유발한 흑막 정도인데, 그도 아주 미약한 의심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세나케립은 기이하게 여겼다. 배후에서 일을 유발한 자신도 헬게이트의 정확한 강림 시간은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늦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시간 지연이 점점 더 불어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헬게이트의 체급이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커지는 모양이긴 한데 그럼에도 뭔가 찝찝했다.
-이런 식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건 지상 위에 있는 ‘유사-심연’들 뿐이다. 더욱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중간관리자들은 권리의 열쇠마저도 없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라이텔바흐 일행으로부터 거리가 먼 곳일수록 이러한 변동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말 저쪽에서 간섭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바보 같으니, 그럴 리가 없지.-
인간이 헬게이트에 영향을 미칠 유일한 방법은 안티-게이팅 파워 외에는 없다. 그리고 안티-게이팅 파워란 기본적으로 이미 발생한 헬게이트에 물리적인 교란을 가하여 붕괴를 유발하는 것이다. 헬게이트보다 더 상위의 계에서 일어나는 질서에 지배력을 가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너무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몰입해 버렸군. 하지만 더 주목할 필요는 있군.-
처음에는 라이텔바흐를 적당히 도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더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물색해야 하리라. 필요하다면 담판을 봐야 하겠지.
-놈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인간에 불과해.-
현세에서는 제약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자신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리는 없다. 중간관리자의 능력은 봉인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도 탑 주인의 열 배 이상이다. 만에 하나 직접 맞서게 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
라울은 다섯 번째 공략에 돌입했다.
아슬아슬하게 막 전개된 헬게이트 권역은 작은 도시 외곽의 일부를 집어삼킨 상태였다. 민간인들은 다행히 모두 사전 경보를 듣고 대피한 상태였다. 휘말릴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라울은 마음껏 싸워도 좋겠다고 판단하며 안도했다.
“좀 전 싸움터는 시시했는데, 여기서는 약간 몸을 풀겠군.”
라울은 엔지니어이자 기업가, 동시에 헌터로서는 총사(銃士)였다. 마탄의 사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온갖 종류의 원거리 병기에 능통한 웨폰마스터였다. 또한 그는 선진 기술의 개발에 열심이었고 라이텔바흐의 동료 개발자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쯤에 라이텔바흐는 각종 헬게이트 산물을 흡수해 받아치는 빔 병기와 포 병기를 개발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라울 같은 마총사(魔銃士)들을 위한 베타테스트였다. 그는 이후에 더욱 다양한 버전으로 총기를 진화시켰고 이들 중 일부를 기술 거래 차원에서 라울에게 양도했다.
덕분에 지금은 예전에 라이텔바흐가 티폰을 사냥하는 데 썼던 원시형 빔 병기를 효율성이나 운반 면이나 위력 면에서 아득히 능가하는, 최신형 총기들이 개발되었다. 모두 라울의 고유 스킬에 특화된 것들로 라이텔바흐가 사용할 때보다 아득히 효율이 높다.
-크르르르르-
적진에는 수만 마리의 괴수들이 도사렸으나 그들로서는 SS급 헌터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상대라면 보스들인데, 이번에는 총 네 마리였다.
첫 번째 보스는 온통 황금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사자로 독수리의 날개 같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두 번째 보스는 은으로 만들어진 흉측한 곰이었는데 그의 입에는 세 개의 뼈가 물려 있었고 오른쪽 팔은 왼쪽 팔보다 거대했다. 세 번째 보스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표범이었는데, 날개가 넷이며 머리 또한 넷이었다. 마지막 보스는 형체를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존재였다. 그것은 강철로 된 괴물이었고 머리에는 열 개의 거대한 뿔이 존재했다.
콰아아아아앙.
라울이 양손에 쥔 장총으로부터 섬광의 창이 발사되었다. 대기로부터 흡수해 낸 어비쓰론을 농축하여 안티-게이팅 파워를 섞은 에너지 공격. 탄환은 수십의 어비씨언들을 관통한 뒤 녹여버렸다. 놈들과 같은 구성 물질, 즉 어비쓰론으로 된 탄환이기에 상호작용이 쉬운데 일단 표적의 몸에 파고든 뒤에는 내부에서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방식이었다.
다시 수십의 적군이 덮쳤다. 라울은 그 모든 개체의 경로를 일일이 눈으로 예측한 뒤 한 발도 빗나가지 않게 명중시켰다. 한없이 정확한 표적 능력에 탄환 자체에 내장된 유도성 기능이 더해졌다. 더불어 한 번에 여러 적을 관통하는 것도 모자라 폭발 시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미지 방식까지 힘을 발했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양민 학살이 따로 없었다.
어비씨언들의 부서진 시신과 잔해가 점차 산을 이루었다. 경각심을 느낀 황금 사자가 직접 라울의 등 뒤를 덮치고자 돌격했다. 반사적으로 반응한 라울은 웨폰박스에서 무기를 교체하였다. 웨폰박스의 편리한 점은 이렇게 인공지능과 운반형 로봇 암의 조력으로 실시간으로 민첩히 무기를 교체할 수 있다는 점. 아울러 무기의 완벽한 보호와 재충전도 가능했다.
세 개의 총구가 한 머리를 이루는 삼중 캐논을 쥔 그는 괴물의 이동 경로를 계산하여 정확히 빔을 발사했다. 푸른 섬광 덩어리 하나, 녹색 번개 덩어리 하나, 핏빛의 수정체 하나가 튀어나와 아광속으로 공간을 가르며 질주했다. 세 발사체는 삼중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면서 엮여 날아갔다. 세 가지 탄환은 한 지점으로 수렴하여 날카롭게 가다듬어졌다.
-크아아아악.-
사자의 어깻죽지가 첫 번째 탄환에 관통되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탄환이 이어서 그 위에 겹쳤는데 공명 작용이 발생했다. 대폭발과 함께 사자의 오른팔과 반신이 녹아내렸다.
“아직이야.”
라울은 또다른 총을 꺼내 탄포를 방출했다. 이번에 그는 미약하게 ‘백색 파동’을 탄환 위에 섞었다. 라이텔바흐로부터 미리 빌려두어 몸에 저장한 힘인데 보스를 잡기 위해 아껴둔 것이었다. 방출된 것은 질량 탄으로 백색 파동이 섞이는 순간 모든 흑파를 교란하여 해체하는 성질을 띠도록 연성된 헌터웨폰이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첫 번째 보스의 머리통과 심장이 그대로 파열하여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충격파로 인해 황금 사자는 그대로 반토막이 나 땅에 떨어졌다.
두려움에 빠진 은빛 곰과 청동 표범은 부하들을 바리케이드로 삼고 숨었다. A급 던전의 보스로는 SS급 헌터를 상대로 견디지 못한다. 놈들도 본능적으로 그 격차를 깨닫고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어보려는 책략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끝없이 재생될 수 있는 잡졸들을 상대하느라 탄환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경험이 풍부한 라울은 그런 가락에 놀아주지 않았다.
“아이언돔 사출.”
{오케이.}
그의 명령대로 웨폰박스가 최신형 캐논을 사출하였다. 라울은 아이언돔을 자신의 어깨와 팔에 입힌 다음 한 번에 백 발이 넘는 유도형 섬광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하나하나가 순수한 빛처럼 생긴 포였는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장애물을 회피하는 기능이 있었다. 수십의 빛의 로켓이 바리케이드를 이루는 어비씨언들을 가뿐히 건너뛰어 질주한 뒤 사방에서 곰과 표범을 향해 내리꽂혔다.
-끄아아아악-
-꿰에에에엑-
수백 발의 빛의 탄환은 목표물 위에서 거대한 광구(光球)를 형성하며 불꽃을 작렬하였다. 마치 푸른 태양 수십 개가 하늘에 떠오른 듯한 장관이 만들어졌다. 여파에 휘말린 잡졸들은 녹아내렸다. 두 괴물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화염에 태워졌다. 직전의 공격만큼은 아니어도 착실히 피해를 누적시키는 데는 특화된 병기였다. 라울은 거듭 탄환을 쏟아부어 두 괴물을 녹여버렸다. 몇 분 뒤 커다란 크레이터 아래에 국물처럼 녹은 금속만 남았다.
“한 마리 남았나.”
바로 그때 이상 반응이 감지되었다. 헬게이트 본체가 에너지 방출률을 급격하게 높이며 꿈틀거렸다. 마치 알의 껍데기가 깨지며 작은 새가 나오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에너지가 급격히 증가하며 흑파와 어비쓰론과 다크포스의 농도가 폭발적으로 솟았다. 라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AA 랭크로 상향된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을 감지한 라이텔바흐는 중얼거렸다.
“최대한 조심해야겠군. 감춰둔 수를 누가 먼저 들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어.”
그래도 그는 라울을 믿었다.
“신속하게 정리해라, 길드장.”
라울은 보스를 사냥하기 위해 무기를 꺼냈다. 특수형 진동을 무기로 사용하는 레일건. 헬게이트에 침식된 시공간과 대기를 권역째로 진동시키는 그만의 스킬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 원래는 라이텔바흐의 백색 파동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하던 도중에 나온 실패작이긴 한데, 지금은 잘 가공된 뒤 라울만의 스킬로 빚어졌다.
동시에 녹아내린 곰과 표범, 반토막 난 사자 괴물의 잔해가 마지막 보스의 몸체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AA급으로 업그레이드된 헬게이트로부터 검은 안개처럼 생긴 촉수가 형성되어 어비씨언과 연결되었다. 그것은 이내 사자, 곰, 표범들의 머리에 더해 공룡과 같이 생긴 머리까지 지닌, 키메라 형태의 합체 괴수가 되었다. 두 앞발은 곰의 것이었으며 날개는 총 여섯 개, 그리고 뿔은 모두 열한 개로 열한 번째 뿔은 이빨 달린 상어의 입이 있어 혀를 날름거렸다.
라울의 레일건은 그것의 설계된 기믹대로 여러 조각으로 전개되었다. 자기장과 전기장 같은 어떤 인력이 나뉜 파츠들을 일정 배열로 묶어두었다. 벌어진 틈새 사이로 보랏빛 전류가 흘렀다. 이어서 사방으로 번지는 정체불명의 녹색 빛의 파형이 레일건 포환이 지나가는 통로 내부에서 용솟음치고 공명하였다.
라울은 포효하는 괴수의 가장 큰 머리를 향해 레일건을 겨냥했다. 헌터의 몸으로부터 발생한 녹색의 번개 형태의 파동이 총구 내부로 응축되었다. 전류가 압축되더니 가시적으로 나타난 섬광 덩이가 장전되었다. 엄청난 양의 진동과 빛이 스며들어 그 후방에 밀집되더니 곧 굉음과 함께 입자 가속이 개시되었다.
타아아아앙.
빛의 창날이 직선 형태로 궤적을 형성하며 공간을 질주했다. 동시에 엄청난 굉음과 녹색 빛의 진동이 헬게이트 침식 권역 전체를 덮었다. 땅이 흔들리며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진동하는 빛의 강렬함에 궤적으로부터 50m 반경 내에 있던 어비씨언들이 모두 녹아내렸다.
진동을 일으키던 근원인 탄환은 보스의 가장 큰 머리를 소멸하듯 관통했다. 파열음과 함께 세 개의 뿔이 증발하였고 남은 여섯 개의 머리 중 셋은 오른쪽으로, 셋은 왼쪽으로 벌려졌다. 몸통 내부에는 삼분의 일만큼의 부피가 사라진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캬아악-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괴물을 향해 이번에는 근접 공격이 가해졌다. 총기를 다시 박스에 수납한 라울은 직접 어비씨언 위에 올라탄 뒤 막 재생되려는 괴물의 상처 위에 손을 얹고 두 힘을 방사했다. 오른손에는 조금 전에 발사한 것과 동일한 진동 계열의 안티-게이팅 파워, 왼손에는 미리 받아둔 ‘제9번 파형’의 분리된 백색 파동이 있었다. 두 힘이 공명하였고 괴물의 몸은 입자 단위로 흩어졌다. 충격파는 그대로 촉수를 타고 전이되어 헬게이트의 본체까지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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