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95회 백색파동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26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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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은 최대 출력의 에너지포 병기로 헬게이트를 세 번 직격하였다. 견디지 못한 AA 랭크 헬게이트는 달걀의 껍데기가 깨어지듯 서서히 붕괴하였다.
“더럽게 단단하네.”
사냥을 마친 헌터는 휴식을 위해 바닥에 걸터앉았다. 바로 그때 권역 격막이 산산이 부서지며 라이텔바흐가 들어왔다. 그는 농땡이 부리는 친구를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흘긴 후 손을 뻗었다. 라울의 공격으로 인해 헬게이트 속에 파고들었던 제9번 파형 백파가 공명 반응을 개시했다. 라이텔바흐 본인은 아무런 힘을 방출하지 않았다. 공간적으로 분리된 곳에 잔재한 백파가 원격 조종을 받아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양새였다.
“시간을 절약하자, 라울. 훈련받으려면 10분 내로 해라.”
“네, 네, 우리 잘난 당회장님.”
라울은 능청 부리는 와중에 속으로 연구하듯 고민했다. 저 힘은 안티-게이팅 파워와는 다른 모양이다. 보통 안티-게이팅 에너지는 그 최종 기원은 라이텔바흐라고는 해도 일단 몸에 심긴 뒤로는 개별 헌터에 귀속된다. 라이텔바흐라고 해서 타인의 안티-게이팅 에너지에 간섭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랬다면 진작 모든 헌터의 힘을 회수하거나 조종함으로써 최고의 자리에 올랐겠지.
‘백색 파동이라서 그런가.’
백색 파동을 맨몸으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헌터는 SSS급 헌터들, 그리고 소수의 SS급 헌터뿐이다. 이전에 탑 공략에 참전한 S급 헌터들은 그 힘을 쓰긴 했으나 라이텔바흐가 손수 발명한 전이 도구의 힘을 빌렸다. 아이템에 의존해 반칙으로 해결한 케이스지. 반면, 라울은 그 소수의 ‘재능 있는 자’ 안에 속한다. 특히 SS급 중에서 육체 안에 ‘파형 분리된 백파’를 담는 게 가능한 건 라울뿐이다.
하지만 어떤 헌터도 백파를 신체 내에서 직접 생성한 적은 없다. 라이텔바흐를 제외하고는. 말하자면 지금 유통되는 백파는 모두 그에게서 전달된 것이다. 최근에 도구를 통해 양산형 백파를 전달하는 기술이 상용화되긴 했는데, 제대로 된 위력으로 활용하려면 반드시 몸으로 전달하여 몸에 담아야 하며 이 프로세스는 라이텔바흐와의 일대일 대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팔 상태는 괜찮나?”
라이텔바흐가 냉담한 어투로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다.
“아, 이거.”
라울은 씁쓸한 표정으로 반쯤 마비된 왼팔을 바라보았다. 힘이 폭주하는 바람에 신경계의 이터널 셀이 마비된 상태였다. 일상적인 움직임은 가능하지만, 이 상태로는 왼팔로는 안티-게이팅 에너지 운용이 불가능하다. 분리되지 않은 원형이라면 모를까, 정제되어 파형 분리된 백파를 담는 건 헌터들에게도 리스크가 꽤 크다.
“해결해 줄 테니 빨리 와라.”
“땡큐, 큭, 너밖에 없다.”
반갑긴 했는지 라울의 입에 능글맞은 웃음이 걸렸다. 그 과한 붙임성이 거슬렸는지 라이텔바흐는 눈살을 찌푸렸다. 엄한 선생답게 그는 친구의 팔을 자기 손으로 세게 쥐어 비틀었다.
“우아아악, 아파 죽겠어. 살살 해라. 이 힘만 무식하게 센 근육 덩어리가!”
“시끄럽다.”
미동도 없이 라이텔바흐는 방대한 양의 백색 파동을 자신의 손과 라울의 팔 사이에서 순환시켰다. 엄청난 양의 스파크가 튀겼다. 번개와 불꽃 형태의 힘이 새어 나와 헬게이트 권역 안으로 번졌다. 가뜩이나 붕괴하여 가던 던전은 열기에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으악, 나 죽네.”
“엄살은 여전하군.”
한참의 교정 시술 후 라울의 팔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무식한 힘 때문에 손자국이 팔에 남아 멍이 들긴 했지만.
“어휴, 그래도 시원하긴 하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기대할게~.”
선을 넘은 농담에 라이텔바흐는 철부지 친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살살 힘을 조절했음에도 상당한 통증이 임했다.
“쳇.”
“시간이 적으니 여기서는 반만 충전해 주지. 나머지 반은 정결례 때 이식해 주마.”
“땡큐, 오늘도 뜨거운 시간을 나눠보자고.”
장난스레 윙크하며 농담하는 라울. 라이텔바흐의 이마에는 참을 인이 새겨졌다.
“헛소리하면 죽는다.”
“히잉.”
한숨을 내쉬며 라이텔바흐는 상대와 손을 맞잡았다. 저런 철없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보이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 앞에서만이다. 다른 이들 앞에서의 라울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계산적이고 냉철한 사람. 자신을 믿어주기에 저런 허술한 모습도 거리낌 없이 보이는 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었다.
두 사람의 이터널 셀 네트워크가 연결되었다. 맞잡은 손 사이에서 백색 파동이 오갔다. 단순한 힘의 전이가 아닌, 힘의 운용을 같이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의 시간이었다. 잠시나마 라이텔바흐의 이터널 셀과 하나로 연결된 라울은 힘이 흐르는 원리와 작동하는 메커니즘 하나하나를 체득하며 깨달았다.
“백 번쯤 수련해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너 정도면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다. 게다가 협회장님들한테는 너한테처럼 친절히 서비스해 주지는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실전에서 뛰는 네가 그들을 추월하게 될 날도 오겠지.”
“크윽, 고맙다, 친구. 역시 우리 자기밖에 없네.”
“제수씨한테 너 또 헛소리했다고 이른다.”
“우악, 잘못했어. 나 마누라한테 등짝 얻어맞는다고.”
그렇게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는 지극히 격조 없는 동네 아저씨들 대화가 오갔으나 그 와중에 손과 손 사이에서는 헌터들이 모은 모든 지식의 정수가 교차하였다.
*
“그나저나 항상 신기하단 말이지. 너 이 힘을 어떻게 발명한 거냐?”
라울은 문득 궁금해졌다. 천재라 좀 다른 건가. 조금 전에는 ‘힘만 무식하게 세다’라고 무심코 말하긴 했지만, 사실 굉장히 멍청한 망언이었다. 라이텔바흐의 두뇌는 이터널 셀을 제외하고도 인간 기준치를 넘어선 ‘상식 밖의 거물’이다. 섬멸물질이야 압도적으로 거대한 출력의 안티-게이팅 파워를 쌍소멸에 쓰다 보니 우연히 얻어걸려 발견한 능력이라지만, 백파는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불의 최초 발견, 전기 기술의 발명, 상대성이론의 발명, 이 세 위업을 합친 것 정도의 혁신이다.
“과연 천재는 좀 다른 건가.”
“글쎄.”
라이텔바흐는 잠잠이 이전 기억을 더듬었다.
백색 파동이란 본질적으로 하나의 진동 전달 현상이다. 매질 자체는 안티-게이팅 파워다. 모티브는 헬게이트가 창조해 낸 흑색 파동으로, 입자도 파동도 역장도 아닌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흑파처럼 파동 성질을 띠도록 모방하는 과정에서 발명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라이텔바흐는 백색 파동을 생성하기 위해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먼저, 안티-게이팅 파워에 시공간 회전을 가미하여 하나의 작은 극소점에 수렴하도록 집중시킨 뒤 그 점을 ‘부피 제로’의 형태로 압축하여 축퇴시킨다. 원래 압축이라는 게 불가능한 이 힘을 극소점에 눌러 담으려면 ‘진동형 회전’이라는 편법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그 진동형 회전의 알고리즘과 최적화 방정식이다. 이 공식을 풀어내려면 인류가 개발한 모든 슈퍼컴퓨터를 백만 년 이상 가동해 연산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이텔바흐는 극한의 발상력과 창조성, 그리고 무수한 행운과 동물적인 직감을 총동원했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그 어떤 헌터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극한의 과제를 완수했다. 온전한 최적화 알고리즘과 방정식을 발명한 그는 모든 상숫값을 오차 없이 조율하였고, 안티-게이팅 파워를 무한소 지점에 압축하여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의 파동 현상을 창조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색 파동은 안티-게이팅 파워와도, 흑파와도 전혀 공통점이 없는 특수 형질의 무언가가 되었다. 다시 안티-게이팅 파워로 환원되지도 않으며, 어떤 헬게이트 오염물과 부딪혀도 절대 상성 우위를 갖는다. 또한 보통의 헌터 능력과 달리 이 힘은 라이텔바흐에게 귀속되므로 다른 헌터가 사용하더라도 그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단계로 연구를 확장하였다. 먼저, 그는 백색 파동이 순수한 실체가 아닌, 다양한 원소들로 구성된 혼합물임을 밝혀냈다. 마치 태양 빛이 여러 색채의 합성물인 것과 비슷하다. 라이텔바흐는 오랜 시도 끝에 각기 다른 ‘파형(波形)’의 구성 성분들을 쪼개었다.
이렇게 분리된 ‘특수 파형 백파’는 흰빛을 띠면서도 조금씩 옅은 독립적 색채를 띠었다. 또한 혼합된 상태일 때보다 그 효율성과 위력은 극대화되었다. 마치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된 상태에서는 전기의 힘이 작동하지 않으나, 분리될 때는 전기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이어서 라이텔바흐는 분리된 각 파형을 고도로 응축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응축 이후에는 ‘자가 확대재생산’을 시도했다. 특수 파형 백파가 스스로를 응결핵 삼아서 밀도와 부피를 팽창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결과, 그는 전투의 효율을 수천 배 이상 높일 수 있었다.
가장 최근 들어 터득한 스킬은 서로 다른 ‘분리된 특수 파형 백파’를 두 종류 이상 결합하여 공명시키는 기술이었다. 다시금 혼합 상태로 되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파형을 그대로 유지하여 극도로 분리된 상태로 공명만 높이는 것. 원래는 이론상으로만 예견되던 경지였으나 그는 이를 완성했다. 참고로 오의인 마카베우스 해머를 완성할 때도 백파 공명 기술이 중요한 축을 차지했다.
“하여간 대단하다.”
대련을 마친 라울은 혀를 내둘렀다. 두 사람을 에워두르던 던전 잔재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돌아가서 씻도록 하지.”
두 사람은 에어크래프트로 복귀했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둘은 오염물을 제거하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매번 씻으려니 귀찮네.”
“어쩔 수 없지. 동행자 중에 일반인들이 있으니 오염 제거에 철저해야겠지. 헌터끼리만 있는 공략전이라면 한 달 내내 더러워진 채로 있어도 되겠지만, 저들은 우리보다 약하니까. 배려해야지.”
“와우, 우리 당회장님 스윗한 남자네.”
다시금 농담에 대한 응징으로 매서운 손바닥이 등짝을 후려쳤다.
“아야.”
“네 차례 돌아올 때까지 두 시간 정도 쉬고 있어라. 난 다음 차례 출정이라서 먼저 일어나보지.”
라이텔바흐는 엘릭서가 섞인 휴대용 욕탕에서 일어나 샤워기로 말끔히 씻어낸 뒤 수건으로 신속하게 몸을 닦았다.
“그나저나 라이텔바흐.”
“왜.”
“질문하나 해도 돼?”
“해라.”
“그 다음 경지는 뭐냐?”
“백색 파동 말인가?”
주어나 목적어 없이도 곧바로 척척 이해하는 두 사람의 대화.
“응. 너라면 이미 다음 단계에 관한 연구도 마쳤을 것 같아서.”
라이텔바흐는 친구의 호기심에 어디까지 응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옷을 걸치는 것도 잊은 채 손바닥 위에 어떤 힘을 모으며 극한까지 집중을 동원했다. 라울은 친구가 뭘 하려는지 몰라 골똘히 주시하였다.
‘오오?’
잠시 후 희미하게 진동이 발생했다. 라울은 흠칫했다.
‘말도 안 돼.’
안티-게이팅 파워와 거기에서 유래한 모든 힘은 헬게이트와 무관한 공간에서는 아무 작용을 하지 않는다. 이는 백색 파동이나 섬멸물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분명한 공간 진동이 전해지는 중이었다. 아주 미약하기에 물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물리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너 설마!”
“진동수 변환.”
라이텔바흐의 말에 라울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내가 처음 찾아낸 ‘최적화 진동수’만이 적용되었지. 백파를 다양한 파형으로 분리하기는 했어도, 이 ‘진동수 값’은 절대적 고정치였어. 압축이나 증폭이나 공명을 통해서도 진동수 변환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해킹 능력을 얻은 영향으로 라이텔바흐는 몇 가지 추가 혜택을 획득했다. 백색 파동 진동수의 자유로운 전환이 그중 하나였다.
“그, 그렇게 하면 어떻게 달라지는 건데?”
라울이 당황하며 질문했다. 그의 머리로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나도 잘 몰라.”
라이텔바흐는 새 옷을 걸쳐 입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검증해 보려니 다음 무대가 좀 아깝군. 여기서 바로 드러내긴 뭐해서. 만일 추후에 SS 랭크에 가까운 헬게이트를 만난다면 시험해 볼 가치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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