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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회 초인들의 세계 Ch 3. 괴물들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7.30 | 회차평점 0 0

 

 

Chapter 3. 괴물들

 

 

 

 

  윤혁은 그날 밤 내내 뒤숭숭한 기분에 제대로 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여섯 살 위의 이복형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기도 이전에 이미 태어났다던 형. 게다가 이복형이라는 그 사람에게서는 범인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압감과 위대함과 위엄이 느껴졌다.

  ‘초능력자, 반인반신 같은 것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딱 그런 모습일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미모, 극한의 무(武)를 연마한 것 같은 단단한 금강석 같은 육체, 가만히 있어도 타인을 압도하는 특유의 눈빛과 분위기. 그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처음 그가 가면을 쓰고 있던 것도 이런 탓이었을까?’

  그때 윤혁은 형의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언뜻 내면에 품은 깊은 어두움도 느꼈다. 그는 윤혁이 자기 눈을 똑바로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신기해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맹수 앞에 발가벗겨진 초식동물마냥 벌벌 떨었을까? 평범한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 마땅히 그랬으리라.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형제라는데⋯⋯.’

  자신과 외모 격차가 지나치게 큰 것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 유전자가 불균일하게 전달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머니가 달라서?’

  아버지께 어머니 이전에도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썩 달갑지 않았다. 부모님께 배운 이상적인 결혼관은 서로에 대한 존중, 배려, 상호 간의 전적인 신뢰와 의지, 같은 가치관을 바라보는 방향성 같은 것이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을 미덕처럼 여기는 현 세태에 대해서 비판하시던 분들이셨다. 그랬던 아버지였으니 어제 드러난 과거는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를 만나면서 인생관이 크게 바뀌신 걸까?’

  아마 그렇겠지? 어머니와 교제하기 전에는 신앙의 길 밖에 계셨다니까. 아버지의 과거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가 최대한 상처를 덜 받으셨으면 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문득 또다시 형이라는 사람이 생각 속에 떠올랐다.

  워낙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맺혀서 그런 것일까?

  만약에 역사책에나 나오는 한 세기 전의 전설적 지도자인 위버멘쉬를 눈앞에서 본다면 꼭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무대 위로 올라오자마자 세계 흑막들을 청산하고 국제 질서를 재편하여 문명, 문화, 기술, 사회, 복지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전설적인 위인. 형도 그런 부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척 보아도 그는 윤혁 본인의 가족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았다. 고귀한 느낌이 역력했고 엄청나게 부유해 보였다. 형의 어머니란 사람도 당대의 강력한 세력가였다고 했었고. 그런 자가 뭐가 아쉬워서 자신에게 볼일이 있겠는가. 어제는 그저 피붙이에 대한 잠깐의 호기심에 찾아왔을 것이다. 두 번 다시 형과 얽힐 일은 없겠지. 윤혁은 그렇게 믿었다.

 

 

 

 

***

 

 

  성한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한국 외곽의 중소 규모 도시였다. 자연환경이 제법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도심과 자연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호수와 강이 있고 수풀과 숲, 공원과 산이 있었다. 이곳의 시민들은 일상에 지칠 무렵이면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멋진 자연환경 속에 조성된 공원을 찾아와 심호흡과 함께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지친 몸을 추스르곤 했다.

  “분위기는 제법 나쁘지 않군.”

  맑은 호수를 앞에 둔 경치 좋은 벤치 위에 키 큰 남자가 한 명 앉았다. 무슨 볼일이 더 있다고 이곳에 계속 미련을 두었을까? 본인 스스로 느끼기에도 자신의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평소와는 달랐다. 항상 뭔가를 새롭게 계획하고 행동하기에 바빴던 그가 과거나 뿌리 따위에 미련을 갖다니.

  ‘무슨 바보 같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버지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과 달리 그려낸 듯 사랑스러운 가정에서 자라난 그 녀석에 대한 질투 때문에? 어느 쪽이건 사실 그에게는 이제 별 상관없는 문제이지 않은가?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그는 잡념을 버리기 위해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금번에 시행 중인 실험들,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세계 규모의 프로젝트, 개편해야 할 여러 국제 문제와 우주 문제, 자원 분배에 대한 문제, 골치 아픈 정치 싸움 컨트롤, 본격적으로 시행 예정인 확장 정복 계획, 새로운 방정식과 과학 이론들의 정립,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익숙하고 쉬웠다.

  이미 어릴 때 그의 지능은 기존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자랄수록 그의 지능은 지수 함수적으로 성장하였다. 다른 이들은 감당해내지 못하는 무한한 생각들의 연쇄조차도 그에겐 손쉬운 장난과 같았다. 그 탓에 머릿속은 늘 간지러웠다. 그걸 긁어주기 위해서는 끝없이 새로운 과제를 주어야만 했다.

  그의 능력은 현재의 폭주하는 기술의 시대에 최고로 적합했다. 인류로서는 혼돈을 잠재우고 동시에 다시금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모두가 기다려온 위인, 궁극적인 천재들의 총합, 그는 그런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그는 모든 권력과 부를 한 손아귀에 넣었다, 나아가 그는 그것들을 더욱 지혜롭게 운용해서 인류의 전체 소유량을 비약적으로 증폭시켰다.

  그는 쉬는 시간조차 없이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몸은 쉬어도 두뇌는 쉴 새 없이 회전시켜왔다. 막대한 세월을 그렇게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피로와 허전함이 느껴졌다. 한 번도 안식을 취하지 못한 두뇌가 참지 못한 채 항의라도 하는 것일까? 딴청 부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생각에 더 집중하지 못한 그는 몸을 편히 벤치에 눕혔다.

  -냐아옹~

  그때 문득 고양이 우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 위에 촉촉한 감촉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검은색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의 손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모양새는 꾀죄죄하지만, 몸매는 제법 늘씬했다. 손을 치우려 했으나 그 고양이가 제법 집중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들어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당돌한 녀석이군. 나한테 당돌한 동물은 오랜만인데.”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고양이가 깜짝 놀라며 발로 손을 할퀸다.

  다행히 발톱이 무뎌서 그런지 상처는 나지 않았다.

  “호랑이보다도 까칠하군.”

  집에서 기르는 애완 호랑이가 떠올랐다. 아기 적부터 길러서 지금은 자신의 세 배 이상의 덩치를 가진 성체가 되었지. 카이젤과 친구들에게는 고분고분하고 온순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 녀석이었다.

  그는 고양이를 조용히 안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고양이는 카이젤의 넓고 탄탄한 대흉근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주장이 뚜렷한 흉근 위에 올라가 앞 다리로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카이젤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그는 작은 동물이 계속 놀도록 놔두었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허상 홀로그램 생성 장치로 허공에 화면을 띄운 그는 뇌파와 텔레파시를 활용해 신호 연결 조작을 시행하였다. 이윽고 별도의 음성 장치조차 없이 곧장 보안 신호가 머리 안쪽으로 직접 전달되었다.

  ‘녀석이군.’

  자신이 불시에 방문한 것을 이곳의 부하가 알아차린 모양이다.

 

 

 

 

***

 

 

  대도시 경관이 한꺼번에 보이는 거대한 마천루 건물 최상층.

  나라 전체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관인 이곳은 아무에게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장소였다. 주요 인사들이나 국빈들조차도 최소 한 달 전부터 약속해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도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특별히 중요 식사 모임 용도로 쓰이는 최상층은 세계를 좌지우지할 의제가 오고 가는 장소인 만큼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였다. 극상의 서비스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사내는 예약조차 없이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입장했다. 마치 동네 분식집을 드나드는 듯한 당당함이었다. 레스토랑 운영자들은 곧바로 완벽한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왕의 눈에 티끌만큼이라도 거슬려서는 곤란했다. 손님의 성격이 제법 자비로움을 알면서도 모두 황제 앞의 시종들처럼 바짝 군기가 들었다. 남자는 황제 이상의 존재였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딱히 중요한 회의 때문에 미리 마련해둔 자리는 아니었다. 단지 그의 동료이자 친구이자 부하인 사람을 한 명 만나서 같이 식사나 나누는 친목의 자리일 뿐이었다.    카이젤이 먼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서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한 젊은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 카이젤만큼은 아니었지만, 체격이 크고 탄탄하고 호감 가는 지적인 외모를 지닌 젊은 신사였다.

  “오랜만이군, 유성운.”

  “한국, 아니 저희 섹터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유성운이라는 남자가 공손히 물었다.

  “보스께서 직접 행차할 만한 일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딱딱하게 굴긴. 친한 상사와 부하가 식사나 한번 할 수도 있는 거지.”

  “보스와 제가 그렇게 수평적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만.”

  둘은 가볍게 음료를 잔에 따르고 건배를 하였다.

  “여전히 알코올은 안 드시는군요.”

  “두뇌 회전에 방해가 많이 되어서 말이지.”

  성운은 가장 중요한 수하 중 하나였으며 최고 부관에 버금가는 자였다. 동시에 그는 카이젤의 맨 얼굴을 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아시아 전체를 자신의 안방 정도로 여기는 유력자이며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친 막강한 세력가였다. 분명 대단히 높은 위치의 사람이었다.

  “U-society의 내부 정리는 별다른 문제 없습니까?”

  “꼰대들을 다루고 길들이는 게 조금 골치 아픈 것만 빼면.”

  “그래도 당신을 지지했던 원로들 아닙니까.”

  “머지않아 교체할 거야. 사고도 경직되어 있고 변화를 무서워하는 겁쟁이들.”

  그는 가장 친한 부하들 앞에서는 무뚝뚝한 원래 말투를 보이곤 했다.

  예의 바르고 정중한 말투보다는 이쪽이 더 본 모습에 가까웠다.

  “결국은 어느 쪽이건 보스께서 의도하신 대로 흘러가겠죠.”

  성운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그쪽 섹터 운영은 잘 되고 있나?”

  “제 Another World가 패권을 전부 장악했으니 당분간 확고한 기반을 다져놨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맡기신 프로젝트들도 조만간 실전 성과를 보일 겁니다.”

  메인 요리에 앞서 제공되는 애피타이저 메뉴들이 나왔다.

  “그런데 놀러 오셨다면서 또 업무 이야기로군요.”

  “그런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

  카이젤이 피식 웃었다.

  “이왕 오셨으니 몇 개만 보고드리겠습니다.”

  보스의 성격을 잘 아는 성운은 알아서 그의 관심사에 맞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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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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