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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7회 초인들의 세계 Ch 4. 형제의 재회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7.30 | 회차평점 0 0

 

Chapter 4. 형제의 재회

 

 

 

 

  윤혁은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에 도착했다. 절친한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오래간만의 약속이었다. 친한 고등학교 선배가 본인 대학교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윤혁과는 두 살 차이의 선배로 고교 시절 유명한 최우등생이었다, 현재는 유명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오늘날은 워낙 자동화된 의학 기술이 초고도 단계로 발전해버린 시대. 필연적으로 인간 의사의 필요성은 크게 줄었고 의과대학 선발 인원과 인기도 줄어들었다. 다만 그럼에도 일부 탐구열이 뛰어난 사람들은 첨단 의학 연구에 뜻을 품고 의대에 진학하였는데 선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윤혁! 여기야, 여기.”

  염색한 남자 한 명, 짧은 단발머리의 여자 한 명이 손을 흔들었다.

  “정후 형! 지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

  달려온 윤혁이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괜찮아. 좀 늦을 수도 있지.”

  남자의 이름은 유정후. 윤혁과 같이 Y대 진학 중인 고등학교 동문이다.

  “윤혁이는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하하, 너도 잘 지냈어?”

  여자의 이름은 김지아. 현재 저널리즘 전공 중이었다. 명랑한 성격에 자기 소신을 부끄러워 않고 남에게 휘둘림 없이 의견 표현을 하는 성격이었다.

  “자주 좀 모임에 참석하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미안, 미안.”

  “너랑 나랑 정후 오빠랑 태헌 오빠랑 예전에는 항상 같이 붙어 다녔는데 요새는 각자의 길을 간다고 서먹서먹해져서 아쉬운 거 있지. 특히 윤혁이는 더 그래.”

  지아가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앞으로는 모임도 잘 챙길게.”

  “약속했다. 잊지 마.”

  오디토리움에 입장한 그들은 각종 학술 발표 포스터들을 하나씩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부 최첨단 홀로그램 프리젠테이션으로 되어 있었다. 입체감도 훌륭하고 역동성과 섬세함도 제법이었다. 연구 내용은 전공자가 아닌지라 생소했다. 언뜻 보기에 원자 단위로 이뤄지는 최신 치료 기전만 수천 가지였다.

  “기막힌 의학 기술들이 많네요.”

  지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하긴 나 같이 생물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렇게 개략적인 설명만 들어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확 드네. 요새는 너무 첨단화되어서 각 분야의 최정상이 아니면 선두를 따라가기조차도 힘들 것 같아.”

  정후의 말대로 한 세기 동안 비약적으로 이뤄진 과학 발달은 의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주축이 되는 기술이 바로 원자 수준의 조작력을 자랑하는 기계인 나노머신이었다. 또한 인류는 고성능 관측 기능을 통해 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질병과 생리 기전을 원자 단위에서부터 철저히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각종 맞춤형 치료까지 가능케 되었다. 약물을 사용하던 시대는 종결된 지 오래였다. 초소형 로봇들을 통해 모든 병과 부상의 치료가 가능한 마당이니까.

  “하긴 예전과는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윤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우연에 가까운 요행으로 얻은 물질을 약물로 썼죠. 그것도 대단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투여했고. 그래서 의사의 경험적 판단이 굉장히 중요했었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초소형 로봇들 자체가 판단력을 지니고 행동할 수 있죠.”

  더욱이 이러한 초소형 로봇들과 나노머신들은 자발적 협동, 정보 교류, 특수 장비들의 접목마저 가능하다. 심지어 인체 정상 세포들의 기능까지 대체 가능하며 부서진 인체를 조직학적 단위에서 재구축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제는 악마의 저주라도 없는 한 고치지 못할 몸이 없을지도요.”

  윤혁이 홀로그램 영상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하, 넌 기계공학 전공이니까 나노 로봇은 잘 알겠네.”

  “아니, 요새는 너무 전문 분야가 너무 깊어서 무리야.”

  윤혁도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탐구열과 영재성을 보이지는 못했다. 오늘날은 정말 극소수의 인재를 제외하면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기 어려우니까. 그 같이 천재가 아닌 범재는 예전 시대의 진도를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벅찬 신세이다.

  “넌 이대로 계속 엔지니어로 남을 생각이야?”

  정후가 윤혁에게 질문했다. 일단 공대 진학 중이지만 남들보다 그다지 특별하지 못한 자신을 진작 냉정하게 파악한 정후는 새로운 진로를 발견한 차였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형은 작가 쪽으로 마음 굳히신 거예요? 벌써 공모전에서 두 번이나 수상하셨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요새 사람들은 여가 시간이 많으니까 문학에도 관심이 많잖아요. 꽤 전망이 괜찮을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하진 않아. 잠깐 뜨다가 지는 작가도 많은 게 현실이라서 좀 불안하기도 해. 문학적 소질은 딱 평균 수준이고 그나마 내세울 게 상상력인데…….”

  정후는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내신 책 재미있게 봤어요. 형도 학교에서 첨단기술들을 많이 접해봤으니까 계속 공상 과학 분야로 전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윤혁 자신도 슬슬 진로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요즘은 탁월한 창의력과 차별화되는 재능이 없으면 엔지니어로 활동할 만한 기회가 그다지 없다. 단순 노동직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되었다. 자신은 사회를 위해 일할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지.’

  어느덧 기계가 스스로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자가 증식 및 자가 변형과 자가 조립이 가능한 세포 형태의 기계가 개발되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자연적 생명체의 정미함과 효율성에는 못 미치겠지만, 충분히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기술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우주 함선부터 초소형 기계까지 모든 물건을 플랜트에서 증식시켜 내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게이트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으니까.’

  게이트를 통해 은하계의 여러 행성에 자율 생산 기계를 파견하면 어떻게 될까? 기계들이 스스로 탐색하고 자원을 채취하고 자신들 같은 개체들을 조립한 후 더 크고 복잡한 거대 요새들을 세워서 행성을 장악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러면 대체 사람들의 역할은 뭐지?’

  극소수의 뛰어난 천재들에게만 활약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나머지는 실상 빈둥빈둥 생활하며 일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사람 간의 감정적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직종들은 좀 더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도 언제까지고 버티리라는 보장은 못 하겠지.

  물론 오늘날은 다행히 자원과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면서, 누구든지 직업 없이도 무한정에 가까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직업이란 게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지 않은가? 직업이란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가치와 보람을 추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귀중한 소명이기도 하고. 점차 많은 사람이 그럴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슬펐다.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할까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혁은 목에 닿는 따뜻한 기척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고동색 머리카락과 다정한 얼굴상이 인상 깊은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윤혁과 거의 비슷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지닌 그 남자는 방긋 웃으며 호감형의 미소를 드러냈다.

  “태헌 선배, 놀랐잖아요.”

  “오랜만이야, 윤혁아.”

  기태헌. 윤혁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오늘 만날 주인공이었다.

  태헌은 이곳 S대 의대에 재학 중으로 나이는 윤혁보다 두 살 위였다.

  “선배네 발표 부스는 어느 쪽이세요?”

  “우리는 저 맞은편 쪽. 지아랑 정후는 아직 안 왔어?”

  “아뇨, 둘 다 같이 왔어요. 저쯤에 있을걸요.”

  잠시 후, 지아와 정후도 곧 태헌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태헌은 그들을 데리고 자신의 팀이 발표하는 곳으로 같이 이동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니?”

  태헌이 윤혁에게 물었다.

  “저야 뭐 특별한 일은 없죠. 형은 공부하시는 데 어렵지 않으세요?”

  “뭐,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있지.”

  태헌이 보통 이렇게 말하면 아주 완벽하게 잘 해낸다는 뜻이다.

  “이번 학기에도 수석이시죠?”

  “응, 어쩌다 보니 또 그렇게 됐네.”

  “엄청 당연하게 말씀하시네요. 남들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그래요.”

  “하하, 그런가.”

  태헌은 윤혁에게 늘 거리낌 없이 다가와 친절히 챙겨주곤 했다. 고교 때에도 윤혁을 각별히 대해주었고 종종 공부할 때면 멘토 역할까지 해주곤 했다. 윤혁 역시 똑똑하고 성격도 좋은 태헌 선배를 줄곧 잘 따라다녔었다.

  “이번에 발표하시는 주제가 인공장기 이식과 관련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정확히는 수술용 촉수에 소형 나노머신을 접합시키는 건데.”

  태헌은 언어로 설명하기 애매한지 머뭇거렸다.

  “음, 일단 자세히 설명하려면 오래 걸리니까 부스에서 보여줄게.”

  윤혁은 잡지에서 줄곧 보아온 장기이식 기술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타인의 장기조차 필요 없이 본인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완벽한 새 장기를 제작해 이식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팔, 다리, 간, 췌장, 신장, 심장, 폐, 위장, 소장, 대장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실제 장기와 형태, 기능, 해부학, 조직학까지 99% 이상 동일하게 재현이 가능하다. 3D 프린터에 초미세 조작이 가능한 로봇들을 통해서 조직별 세포를 적절히 배치하고 섬유조직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제작하면 정말 순식간이다.

  ‘이러다가 인간의 몸 전체를 만들겠어.’

  물론 팔이나 다리와 같이 많은 신경, 혈관, 근육, 인대 등의 세부 조직을 연결해야 하는 장기들은 조금 더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생체와 기계를 섞은 의수를 이용한다면 섬세한 운동과 미세한 감각까지 복원할 수 있다.

  태헌의 동료들이 이번에 참여한 학생 연구는 장기 및 의수를 신체 거부반응이나 부조화 없이 융화시킬 수 있는 수술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도 병원이 아닌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응급 시술 범위 안에서 말이다.

  “지금은 어떤 장기든, 설령 부상이나 질병이나 노화로 망가졌다고 해도, 언제든지 젊고 싱싱한 새것으로 교체가 가능한 단계에 이미 이르렀지.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 말이야. 누구든 괴로워할 이유가 없어.”

  “아프신 분들에겐 정말 잘된 일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기도 하네요.”

  ‘사람의 몸이 기계처럼 부품 교체가 가능한 것이 되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존엄성이 짓밟힌 기분이었다.

  “그러게. 부유한 사람들은 수명을 연장하려고 몸 전체를 갈기도 한다더라.”

  “좀 무서운 일이네요. 과연 인체가 어디까지 인체로 남을까요.”

  “글쎄?”

  태헌은 이런 과도한 시대의 변화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다.

  “어차피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매일 매일 신진대사를 통해 새것으로 교체되지.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물질을 먹고 배출하니까. 한 달만 지나도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완전히 다른 입자들로 물갈이되는걸. 그러니 새로운 장기로 교환한들 크게 문제 될 일이 있을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딱히 반론할 말이 없네요.”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윤혁이었지만 사람의 구성 본질에 대해서는 늘 궁금했다. 어떤 이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사람을 순수한 분자 덩어리라고 이해하겠지. 하지만 윤혁은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그의 신앙관 때문이었다. 

  ‘영혼은 과연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몸 내부? 아니면 물질 차원과는 또 다른 영적 차원? 아니면 3차원 세계보다 더 고차원의 영역에? 만약 그렇다면 사람의 본체는 영혼이고, 육신은 그림자일 뿐일까? 몸과 영혼의 연결 지점은 어디일까. 뇌? 아니면 생명을 담은 몸 전체? 몸은 다 떼어내고 뇌만 보존해도 그것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무슨 고민이 그렇게 깊어?”

  태헌의 목소리가 윤혁의 잡념을 깨트렸다.

  “아, 아니에요.”

  “그래. 슬슬 나도 나가서 발표할 차례니까 가볼게.”

  “긴장하지 말고 잘하세요. 선배는 항상 완벽하지만.”

  “자식, 고맙다.”

  태헌은 윤혁의 등을 가볍게 토닥인 후 발표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발표는 제법 흥미로웠다. 전문적인 지식이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팀원들은 직접 생체 모형을 가져와 이식 수술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다. 컴퓨터 인공지능의 보조와 로봇 촉수의 지원을 힘입어서 말이다. 그들은 실제와 거의 똑같은 신공 신체를 손수 몸에 연결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안 보이는 내부 조직 역시 홀로그램 영상으로 모두가 볼 수 있게 드러내 주었다.

  “아무리 인공지능 보조가 있다고는 하지만 의대생 수준에서 저런 복잡도 높은 수술을……, 그것도 현장 기술들만으로 시행하기는 몹시 어려울 텐데?”

  정후가 놀란 표정으로 보고 중얼거렸다.

  “수술 테크닉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이 기술의 목적이니까요. 아예 일반인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훈련으로도 완전한 이식 수술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거든요.”

  보조 설명을 위해 대기 중이던 태헌의 팀 소속 의대생이 설명해주었다.

  아름다운 긴 머리의 지적이고 도도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위험한 수술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윤혁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요.”

  “일반적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항상 평화로운 시절이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죠. 불과 30년 전에만 해도 곳곳에서 교전과 내전이 벌어졌으니까요. 지금은 온 세계가 단일화를 이루었다지만 미래란 게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죠.”

  긴 머리의 여성이 대답했다.

  “흠, 전쟁 시를 대비한 기술 중 한 가지란 말씀이시군요.”

  지아가 이해했다는 듯 끄덕거렸다.

  “어느 정도 비슷하네요.”

  신체 이식 수요가 급증하되 공급할 만한 의료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질 상황을 염두에 둔 연구. 이를테면 전쟁 중 많은 이가 불구가 되었을 때, 보급형 의수나 장기를 빠르고 쉽게 이식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번 태헌 팀의 프로젝트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한 기술이었다. 학생들 머리에서 나올 아이디어는 확실히 아니었다. 아마도 교수 주도 하의 프로젝트겠지. 물론 일개 학생들이 저 정도 수준까지 이해하고 실전 응용에 숙달하는 건 굉장한 일임이 분명했다.

  “태헌 오빠가 유능한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대단하네.”

  지아가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으며 감탄했다.

  “원래 그런 양반이었잖아, 저 형.”

  정후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지금 발표 중인 태헌 팀의 멤버들은 전부 의대 내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성적은 물론 연구 성과까지도 걸출했다. 극소수의 인재들이 모인 의과대학, 그런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이들이니 저런 역량을 보이는 것이리라.

  윤혁도 속으로 고등학교 선배가 내심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발표를 마친 후 태헌, 그리고 함께 발표한 동료 채인우가 같이 내려왔다. 두 사람은 어려운 질문들도 척척 대답해냈다. 태헌은 발표를 경청한 여러 교수와 악수하였고 자신의 가족들과도 가볍게 포옹한 뒤 일행에게도 돌아왔다.

  “발표 정말 훌륭했어요, 오빠.”

  “형 장난 아니던데.”

  “수고하셨어요, 선배.”

  이에 태헌은 신사답게 빙긋 웃으며 답례했다.

  “다들 바쁜데도 와줘서 고마워.”

  그때 윤혁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속으로 흠칫했다.

  ‘뭐지? 내가 통신 코드를 전해준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같이 모였으니까 점심 함께하는 게 어때. 내가 낼게.”

  태헌이 통 크게 제안했다. 윤혁은 당황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같은 팀원들이랑은 안 모이세요?”

  “아, 오후에도 또 다른 발표 일정이 있어서 저녁때 모이기로 했거든.”

  지아의 질문에 태헌이 답했다.

  “정후랑 지아 너희는 특별한 일정 없지? 윤혁이는 괜찮고?”

  이에 둘은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윤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오늘 점심에는 다른 분과 약속이 있어서요. 어려울 것 같아요.”

  태헌은 제법 아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번에는 꼭 함께할게요. 미안해요, 선배.”

  갑작스러운 소환만 아니었다면 함께했을 텐데.

  ‘그래. 잘 됐어. 너무 자주 신세 지는 것도 별로지.’

  이상하게 예전부터 태헌에게는 이런저런 빚을 많이 졌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두 학년 차이라 그리 편한 상대가 아니었는데도 태헌 쪽에서 거리감 없이 다가와 친절을 베풀었다. 외식을 잘 안 하는 윤혁에게 밥도 자주 사주고 공부도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었었다. 그때마다 은근 묘하게 심리적 부채감이 많이 쌓였었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선배한테 미안하고.’

  일행과 인사하고 헤어진 윤혁은 즉시 아까 왔던 메시지를 점검했다. 불과 몇 분 전에 갑작스럽게 통보된, 선약되지 않은 약속. 일방적인 소환에 가까운 명령이었기에 도무지 무시하고 넘길 배짱이 없었다. {1시 20분까지 와라} 아주 짧고 불친절한 메시지와 함께 약속 지점 위치가 약도를 통해 전송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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