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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0회 초인들의 세계 Ch 5. 불로불사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7.30 | 회차평점 0 0

 

 

 

***

 

 

 

  식사는 지금껏 먹어온 어떤 음식보다도 훌륭했다. 하지만 먹는 내내 살얼음 걷는 것처럼 불편했다. 차라리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박한 밥상이 백 배는 더 나았다. 처음보다는 형님 대하기가 쉬워졌지만, 여전히 그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게다가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단하고 엄중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만 헤어지지. 더 시간을 나눴으면 좋겠지만, 나도 다른 볼일이 있으니.”

  “네, 대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윤혁은 공손하게 형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도 좋아. 네게는 시스템 보안을 우회할 수 있는 코드를 주지. 네 생체 정보를 동기화시키면 돼. 아무 때나 연결되기는 어렵겠지만. 사적인 담화여도 좋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일단 예의상 이렇게 말해두었지만, 윤혁 자신이 먼저 형에게 연락할 일은 없으리라고 여겼다. 여러모로 편안한 상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집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윤혁은 카이젤이라는 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재빨리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곁눈질하는 형님은 마치 배가 불러 한결 너그러워진 맹수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의 운송 장치는 떠나갔고 윤혁만 그 자리에 남았다.

  “십년감수하는 줄 알았네.”

  그래도 본능적인 핏줄의 끌림 때문인지 무서움을 상대적으로는 덜 느낀 것 같긴 했지만, 저 남자 앞에서 몇 시간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은 너무도 타입이 달랐다. 윤혁은 누구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순박함과 부드러움, 카이젤은 강한 존재감과 카리스마, 위압감을 띠고 있었다. 같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는 해도 형 쪽은 야망과 독기로 넘쳐났으며 동생 쪽은 겸허했다.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더 얽힐 일도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까.’

  애써 윤혁은 스스로를 안심시켜보았다. 형님이란 분은 이곳에서의 볼 일은 대강 마치신 것 같으니 어차피 다시 돌아오지도 않으리라. 엄청난 부와 권력에 더해 막대한 책무를 맡은 매우 바쁜 사람이니까.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윤혁의 가족을 다시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윤혁은 한숨을 돌렸다.

  식당과 연결된 통로로 집으로 들어가자, 아버지 성한이 보였다. 그는 가게 일을 돕기 위해 식자재들을 조리하고 있었다. 이틀 전 날벼락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평소보다 두 세배는 열심히 일하시는 중이다.

  ‘부모님께는 형과의 만남을 따로 말해줄 필요 없겠지?’

  괜히 걱정을 더 얹혀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윤혁은 팔을 걷고 아버지의 가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

  “아빠, 제가 할게요. 어제도 계속 일하셨으니까 가서 좀 쉬세요.”

  “윤혁이 왔구나. 아빠는 괜찮다. 발표회 갔다 온다더니 볼만한 건 많았니?”

  성한이 자상하게 아들을 맞아주었다.

  “네, 생각보다 굉장한 테크놀로지들이 많았더라고요.”

  “흠,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 보내줄 걸 그랬나?”

  “아니요, 거긴 기고 나는 사람들 천지라서 경쟁하느라 피 말릴걸요.”

  공대만으로도 충분히 피 터지는 경쟁인데 말이죠.

  “너랑 친한 그 고등학교 선배도 매번 의대 수석이라면서.”

  “태헌 선배야 워낙 독보적인 영재니까 그렇죠. 비교할 대상이 잘못됐어요.”

  독보적이라는 표현을 쓸 때 아주 잠시 형님이라는 사람이 다시 떠올랐다.

  ‘왜 이렇게 자꾸 생각에 밟히지? 요새 피곤해서 그런가?’

  윤혁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후 능숙하게 채소들을 씻고 썰고 데치고 조리했다. 그리고 양념장을 담갔다. 어머니가 아들더러 공부에만 전념하라면서 매번 말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윤혁은 요리를 꽤 재미있어했다. 부모님 일을 도와드린다는 점도 즐겁지만, 취향과 재능에도 잘 맞았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보고 배우면서 요리를 직접 따라 해왔는데, 그 덕에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곧잘 맛있는 식사를 만들곤 하였다.

  “아빠는 일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젊은 사람 같다니까요.”

  윤혁은 건장한 근육질 아버지가 앞치마 두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체력도 동이 나지 않고 아무리 무거운 물건도 손쉽게 드시는 걸 보면요.”

  성한은 그 말대로 체력과 근력이 젊은 사람들 이상이었다.

  “녀석, 쓸데없는 소리 하기는.”

  “진짜예요. 얼굴도 너무 젊어서 저랑 형제인 줄 오해하는 애들도 있다니까요.”

  확실히 성한은 단순히 신체 나이가 젊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건강했다. 대부분 그 나이대에는 조금씩은 뱃살이 처지기 마련인데 성한은 운동선수 이상으로 잘 짜인 순 근육질의 몸과 젊은이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손님들이 종종 그보고 뱀파이어냐고 물을 정도였다. 언뜻 보면 윤혁과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는 형제 사이로 보였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한다지만 신기했다.

  “아빠는 딱히 병원에 가거나 미용 시술을 받지도 않는데 신기하단 말이죠.”

  “하하, 그러게. 왜 그럴까.”

  성한은 다소 어색한 연기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아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모르는 척 넘어가 줬다.

  “하긴 요샌 나이가 들어서 심장, 폐, 신장 등이 망가져도 모두 젊은 장기로 교환할 수 있잖아요. 불치병도 완치할 수 있고요. 이제는 누구든 오래오래 신체 기능을 안정화해서 장수할 수 있겠죠.”

  “의학 세미나에서 배운 모양이구나. 그래. 이제는 네 말대로 사람들이 병으로 죽는 일이 없어지다시피 할 거야. 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문제를 내포하지.”

  “고령화 문제요?”

  “그래. 앞으로는 연세 있으신 분들의 비중은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은 서서히 그 숫자가 줄어들 거다. 어쩌겠니. 죽기는 싫어하는 데 자녀를 낳는 것은 귀찮아하니 말이지. 참 어렵고 복잡한 숙제야.”

  그때 문득 윤혁은 형이 말했던 노화 역행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구 구조의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 이런 해결책을 선택한 것일까?’

  “노화 자체를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윤혁의 질문에 성한은 설거지를 하던 손을 아주 잠시 멈췄다.

  “죽음을 아예 막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일생의 대부분을 젊은 육체로 살 수 있도록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흠, 그렇지 않아도 그런 연구들도 요새 성과를 보인다고는 하더라.”

  아버지의 상식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윤혁은 오늘 이면적 세계에서 어떤 초월적 기술들이 범람하고 있는지 아주 살짝 맛보기를 보았다. 이미 누군가가 비밀리에 노화의 해결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가르쳐드리면 얼마나 놀라실까? 게다가 그게 아버지네 아들이라면?

  “노화를 막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물론 인구 구조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죽는 것을 피하는 게 지혜로운 건지 모르겠어요.”

  “어렵지. 사실 가장 어려운 질병이 노화이니까 그걸 극복하면 인간의 모든 병을 정복하는 셈이지. 그렇게 되면 모두가 지상에 묶여 있는 꼴이 되겠지.”

  윤혁은 미간을 약하게 찌푸렸다.

  “제 수명만큼만 젊게 살고 순리대로 죽을 수는 없으려나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다. 자연사라는 개념은 없어. 자연사도 결국 ‘병사’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노화로 인해 몸이 연약해지면 병이 발생해서 사망으로 이르는 원리니까. 그러니 노화와 질병이 없어지면,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고서는 죽을 일이 사라지겠지?”

  만약 그렇게 아무도 죽지 않게 되면, 지구가 인구 증가를 수용할 수 있을까?

  물론 아이를 안 낳으면 된다. 그러나 순환되지 않는 상태는 결코 건강한 구조가 아니리라.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지 않으면, 차츰 기존의 사람들은 세월의 풍파로 정신적인 마모를 겪을 것이다.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쇠퇴하리라. 이러한 낡은 사람들은 새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해결책이 존재한다면?

  “다른 행성에 인간이 살도록 테라포밍 기술로 행성을 개척하면요?”

  이제야 형이 왜 그때 우주 개발을 언급했는지 조금 이해되었다.

  “그 경우에는 인구가 무한정 폭발적으로 증가하겠지.”

  성한이 실소를 터뜨렸다.

  “다만 은하계도 무한하진 않으니, 언젠가는 다시 포화 상태에 이르겠지.”

  “글쎄요?”

  형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은하에서 머무르지 말고 더 넓은 세계를 정복하거나 아예 인공적인 거주지를 대량 생산하면 된다고. 하지만 지구만큼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척박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인체를 개조하려나? 만약 그런다면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복잡하네요.”

  “그래. 그리고 어차피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더라도 이 우주에서의 삶은 영원할 수 없어. 인간이 하나님께 대적해 타락한 이후로는 모든 피조물이 인간과 함께 망가졌거든. 이 세상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지.”

  아버지께 배운 신앙관에 윤혁도 동조했다.

  “그건 그렇죠.”

  그와 부모님은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고 믿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구태여 지구에서의 불완전한 삶에 집착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만물의 종말 이상으로 오래 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무리 먼 우주를 정복해도 천국까지 다다를 수는 없겠지.’

  윤혁은 부모님께 배운 가르침을 떠올리며 끄덕였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고민으로 괜히 마음을 어지럽힌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오래 사셔야 해요.”

  “젊은 네가 더 오래 살아야지.”

  성한이 윤혁의 등짝을 장난스럽게 세게 때리면서 말했다. 워낙 아버지의 근력이 좋은 나머지 등에서 얼얼한 감각이 느껴진다. 솔직히 지금의 정정함으로 보면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오래 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윽! 아파요. 좀 살살 하세요.”

  “젊은 녀석이 비실비실해서는.”

  윤혁도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꽤 건장한 편이었건만 역시 건장한 아버지에게는 밀리는 느낌이다. 어머니가 들어올 때까지 둘은 웃고 떠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둘은 실수로 접시 하나를 깨트리는 바람에 쌍으로 어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쓰라리면서도 포근했다.

 

 

 

 

 

 

***

 

 

 

  저녁을 먹은 후, 윤혁은 산책 차 잠시 동네를 걸어 다녔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호수의 수면은 야경을 비추면서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거리를 수놓고 있었으며, 저 멀리에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시의 모습은 매년 빠르게 변하는데 자연의 모습은 그대로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미래적인 풍의 건물들의 숲은 그저 상상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당대 공상 과학 속 이야기도 십 년만 지나면 현실이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이러한 급변의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자연의 모습만은 항상 원래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고 서 있는다.

  ‘어떤 것이 더 대단한 걸까.’

  수천 년의 시간을 견고하게 버티는 자연.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세계.

  ‘하나님의 솜씨와 인간의 솜씨라.’

  숙고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덧 평소에 자주 보이던 작은 예배당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가족들과 같이 다니는 지역 교회와는 다른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것으로 보아 사실상 폐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예배당은 주일이 아닌 날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때에 마음껏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윤혁도 종종 한적할 때면 이곳에 들어가 조용히 묵상하거나 기도를 하곤 했다.

  지금의 22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종교나 신앙을 과거의 유물로 터부시하고 관심을 내다 버렸다. 이러한 탈종교 경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몇 차례의 시대적 급변을 계기로 더욱 가속되었단다. 번영의 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겨 하나둘 신을 등한시했다. 혼란의 때가 찾아오자 사람들이 제각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따르느라 뿔뿔이 흩어졌다.

  오늘날은 다시 번영이 찾아왔다. 신앙은 더욱 빠르게 소멸하였다. 교회 대다수는 세속화되거나 희석되어 사라졌다. 올바르고 순결한 신앙을 간직한 이들은 극소수만 남게 되었다. 신실하지 않은 자는 무신론적 본색을 드러내고 떠나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탈 종교 현상이 진짜 알짜배기들만 남게 만드는 일종의 알곡 타작인지도 모르겠다.

  윤혁의 가족은 현시대에 몇 안 되는 순전한 기독교 신앙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서는 어머니가 최초로 믿었고 그녀를 만난 직후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윤혁은 자라나면서부터 늘 성경을 배웠다. 어린 시절 어느 날, 그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죄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구세주에 대해서 깨닫고는 체험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의 신앙에 대해 뭐라고 왈가왈부하든 윤혁은 자신이 의지하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한적하구나.’

  낡은 예배당 기도실에는 자리가 충분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증조할아버지 세대쯤 되면 그나마 복을 빌기 위해서라도 왔었겠지.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없을 때는 신께 의존한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처럼 인간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시대라면 신 자체를 찾을 이유가 거의 없어진다.

  ‘어쩌면 형님 같은 분들 때문일지도?’

  과거의 위버멘쉬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그런 초월적이고 대단한 지도자가 나타나 지구상의 모든 문제, 곧 환경, 에너지, 질병, 인구, 식량, 경제 등의 물질적인 문제를 모조리 해결해버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지도자를 섬기고 자발적으로 자기 운명을 맡길 것이다.

  ‘과거에 유대인들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려 했지.’

  사람들은 현세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영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두지 않으니까. 그나마 조금 선진적인 안목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조차도 얕은 도덕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일에만 머문다. 모든 시대 인류가 줄곧 그래왔다. 그렇기에 윤혁도 사람들에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형님은 좀 측은한걸.’

  유독 며칠 전 만난 그 사람은 마음에 걸렸다. 사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전부 사용하는 자. 그 헌신 자체는 분명 나쁜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을 돕는 일은 분명 선량한 일이지. 그러나 과연 그에게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진지하게 성찰할 시간이 있을까? 그는 인류와 동일시된 자신을 인류와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너무 부질없는 걱정이려나?’

  실소가 흘러나왔다. 윤혁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기도실에 있는 낡은 피아노를 열고 잔잔한 노래를 연주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혼자서 피아노를 독학해왔었다. 그 덕에 지금도 아마추어 이상은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예배실 피아노로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했다. 유명 영화 OST, 혼자서 느낌 가는 대로 연주하는 즉흥곡, 그리고 복음 송가까지. 장소에 걸맞은 잔잔하고 부드러운 곡을 연주했다. 흥겹고 빠른 음악들도 중간중간 한 번씩 넣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유로이 소리를 내다 보면, 답답한 감정도 해소되고 억눌린 스트레스도 풀린다. 이렇게 연습하다가 실력까지 늘면 더욱 기분이 고양된다.

  한 시간 정도 연주하고 나니 생각나는 곡이 바닥나버렸다. 원래 그저 혼자 즐기려는 취미인지라 전문가들처럼 손이 아플 때까지 훈련하지는 않았다. 남들에게 실력을 자랑하거나 보여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옆에서 듣는다면 편안하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소리가 예쁘네요.”

  분명 혼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했었던 거 다시 한번 들려주시면 안 돼요?”

  “누구?”

  그제야 윤혁은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온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내렸다. 예닐곱 살 정도 되었을까? 회색 머리와 짙은 피부의 어린아이가 피아노 옆에서 윤혁을 올려보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매우 귀엽고 예쁘게 생겼는데 이국적으로 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토종 한국인은 아닌 것 같았다.

  “전 에이든이에요.”

  ‘역시 외국인이었구나.’

  귀여운 아이는 똘망똘망 청년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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