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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회 초인들의 세계 Ch 7. 공학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0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이어짐)

 

 

 

 

  “요새 컴퓨터 발전 속도가 무섭긴 하더라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까지 깨트린 이후로는 인공지능이 초월치 영역에까지 도달했다고 하잖아.”

  연아가 이번에는 자기 모습으로 변신한 홀로그램을 만지면서 말했다.

  “맞아. 확률함수 관측 기술을 기반으로 아예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날 미래까지도 높은 확률로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질걸. 예측을 넘어서 예지에 가까운 영역에 도달하는 중이라고 봐야겠지.”

  선민이 대답했다.

  “그렇게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과연 인간들에게 남는 존재 의미는 뭘까?”

  걱정스러운 말투로 윤혁이 말했다.

  “아마 그때는 인간 스스로가 초월 지성체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자 분위기가 섬뜩해졌다.

  선민은 그들의 황당한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정보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쉬쉬하면서도 거의 다 알려진 내용인데 뭘. 앞으로 빠르면 일 년 이내로 인간 뇌의 연산 성능을 행성급 양자컴퓨터 이상으로 진화시킬 기술이 완성될 가능성이 크다더라고. 부작용도 없이 말이야. 양자 컴퓨터가 아니라 양자 두뇌(Quantam Brain)라고 불러야 하려나?”

  며칠 전 형에게 들은 피코머신 기술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형은 그 피코머신이란 기술이 단순히 인간의 모든 병, 중독, 부상, 노화를 정복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노라고 말했었다.

  “인공 뉴런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야. 그 당시에도 엄청 유명했었지.”

  21세기 혁신 기술 중에는 인공 뉴런이란 것이 있었다. 뇌와 척수의 선천적, 후천적 손상으로 정신 기능이 퇴보해버린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었다. 실제로 많은 장애아를 구해주기도 했다. 지금 보면 원시적인 수준이지만.

  “쉽게 말해 초소형 로봇들을 넣어서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하는 거지. 외부 컴퓨터의 영향력은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뇌하고 초소형 로봇들만 융합하는 거야.”

  선민의 말에 연아가 감탄했다.

  “기존보다 수천억 배 이상 많은 뉴런을 갖는 효과가 발생하겠네.”

  “아마 실제 지능 지수는 그보다 상승 비율이 더 높겠지.”

  “하지만 안전성은 괜찮을까?”

  “아직 실험 단계라서 확신할 수는 없을걸. 하지만 분명 가능성은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초지능화’에 대한 논란은 꽤 많다고 한다. 이 기술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낼지도 아직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전에 인간 정신이 순수한 물질인지, 아니면 물질과 영혼의 합인지에 대한 결론부터 내릴 필요가 있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연구 방향이 전혀 다르게 흐를 테니까.

  ‘형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저런 기술도 완성했겠지?’

  윤혁은 문득 전신에서 소름이 돋았다.

  기술력을 통한 인간 지력의 확장. 그런 테크놀로지가 영혼에까지 모종의 간섭력을 미칠 수 있을까? 인간 내면에 잠재된 정신 능력이 견인되어 폭주한다면? 끝조차 알 수 없이 거대한 잠재력이 뿜어질까? 부작용은 무엇일까?

  ‘실제 실험을 해보아야만 알 수 있겠지만.’

  하지만 성공한다면? 과연 인간들은 본연의 모습대로 남을 수 있을까?

  아예 전혀 다른 본질의 존재로 영구히 변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

 

 

 

  동기들은 컴퓨터실과 바로 인접한 곳에 위치한 또다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위 ‘아트룸’이라고 불리는 이 방은 언뜻 공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사각형 구조도 아닌 육각 격자로 구성된 특이한 모양이었다. 방 안의 세부 구획들의 모습은 마치 벌집 같기도 했고, 프랙털 입체 같기도 했다.

  공대생들에게 눈요기를 주기 위한 미술관은 아니었다.

  이곳도 엄연히 실험실의 일부였다.

  “이곳에서 태일이는 도대체 뭘 연구한다는 거지?”

  윤혁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저 친구는 전형적인 분야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서.”

  선민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듣기로는 ‘C.O.D.E’라는 특수 분야를 연구한다던데, 솔직히 난 아직도 그게 무슨 테크놀로지인지 정의를 잘 모르겠어. 아직 한국에서는 제대로 실용화되어 활용되는 단계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이번에는 연아도 의문을 표했다.

  “프로그램 소스 코드나 플러그 할 때 그 코드를 말하는 건가?”

  “아니야. 어떤 복잡한 외국어 용어로 된 약자였던 걸로 기억해.”

  선민의 질문에 연아가 대답해주었다.

  “공용어는 아니었던 거 같아. 아마 인공 언어일걸?”

  “듣고 보니 더 궁금하네.”

  방 안에 들어가자 홀로그램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현란한 문양들이 공중에 가득 띄워져 있었다. 금빛의 실들이 엉켜진 것이 신경계의 모습 같기도 했고, 기이한 형태의 문양들도 그려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형형색색의 빛을 담은 구체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쪼개어져 분열하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했다. 마치 한 편의 영상 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곱상하게 생긴 점잖은 남자의 이름은 김태일. 그는 호기심이 많은 학생으로 미술, 수학, 공학을 동시 전공 중이었다. 그는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 기이한 영역을 탐구하기를 좋아했다. 복수 전공을 택한 이유도 C.O.D.E 연구가 양쪽 분야 재능을 모두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어? 선민이랑 연아는 벌써 퇴근하려고? 윤혁이까지 왔네.”

  태일이 고글을 벗어들고 세 명의 랩 동료를 바라보았다.

  “안녕, 태일이 형.”

  윤혁이 싱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진짜 오랜만이네. 연구실 좀 자주 오지.”

  태일도 활짝 미소를 띠고 답했다.

  “굉장히 신기한 걸 다루는 것 같은데 이게 뭔지 설명 부탁해도 될까?”

  연아가 먼저 몹시 근질근질했던 질문을 꺼냈다.

  “물론이지.”

  즉각 태일은 C.O.D.E.에 대한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내는 재주는 영 별로였다. 공대생인 친구들마저 반쯤은 외계어를 듣는 느낌을 받았다. 수학 전공인 태일이 온갖 난해한 공식들까지 곁들이는 바람에 더욱 이해하기가 난해해졌다.

  “반복해서 들어봐도 애매해.”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이 분야가 원래 좀 그래. 아직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인기도 별로 없고, 이론 자체가 마니아들에게나 어울릴 스타일이라서 말이지.”

설명자는 청중이 최선의 설명마저 못 알아듣자 아쉬워했다.

  “기초만 알려줄게.”

  결국, 태일의 노고 끝에 아주 기초적인 개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C.O.D.E.

  간단히 말해서 물리계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확률과 법칙을 관측하고 그것을 연산함으로써 역으로 물리계에 영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다. 언뜻 들으면 마법 이야기 같기도 했다. 이렇듯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많은 한계점이 있는 제한적인 기술이라고 한다.

  현재 태일의 C.O.D.E 제어 실력으로는 기껏해야 빛 흐름에 미세한 변화를 잠시 일으키는 것 정도가 한계란다. 기술 진척도 매우 느렸다. 참고로 이 기술은 미대생의 미술 감각을 요구할 만큼 미학적 요소가 많이 소요되는 기술이란다. 과학자보다는 예술가에게 익숙한 분야인 셈이다.

  “일반적인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언어 원리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C.O.D.E.는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을 기반으로 하거든. 그림을 아주 세밀하게 그려야 하고 조화도 완벽해야 해. 일반적인 공대생들이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지.”

  방 안을 떠다니는 흡사 마법 소환진 같은 기묘한 문양들, 그리고 그것들이 수천 겹 결합한 프랙털들은 모두 그런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이곳에 있는 기하학적 문양들은 모두 태일이 직접 연산하고 고안해낸 것이었다.

  “미대생답네. 그림을 기가 막히게 잘 그린단 말이지.”

  윤혁도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진우는 유사 과학이니 뭐니 하며 좀 부정적으로 여겨서 아쉽지만 말이야.”

  태일은 조금 뿌루퉁한 표정으로 반대쪽 방 쪽을 살짝 눈으로 흘겼다.

 

 

 

 

 

***

 

 

 

  네 사람이 모이자 얼추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났다.

  “잠시만 쉬어가면서 하자.”

  그들은 랩 내부의 휴게실에 앉았다. 각자의 대학 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교수나 동기들과 가벼운 갈등, 각 단과 대학에서 벌어지는 축제, 각자의 연애 이야기나 시시콜콜한 것들까지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러게. 떠들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

  연아와 선민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진우는 왜 계속 안 나오고 있지?”

  이번에는 윤혁이 물었다. 태일이 설명을 주었다.

  “에너지 실험은 일단 시작하면 오랫동안 외부랑 차단돼야 해서 그래.”

  에너지 공학 전공인 한진우. 그는 주로 다양한 형태의 엔진과 특수 에너지를 다루는 실험을 수행했다. 원래 에너지 실험은 다소 위험성이 높아서 기본적으로 차폐된 상태로 진행된다. 실험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실험실 문이 굳게 닫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친구들은 실험실 문 앞에서 삼십 분 정도를 기다리며 담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차폐용 실드가 해제되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업용 특수 슈트를 입은 키 큰 사람 한 명이 나왔다. 실험실 문이 완전히 재차단되자 슈트가 해체되어 분리되었다. 실험복을 사복 위에 걸쳐 입은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너 안 나오니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

  태일이 장난스럽게 진우를 툭툭 두드렸다.

  진우는 귀찮은 듯 살짝 밀어내는 시늉을 했다.

  “더우니까 들러붙지 말아요, 태일이 형.”

  짧고 투박한 말투, 큰 키와 탄탄한 몸, 굵은 이목구비 선과 짧은 머리의 진우는 누가 보면 체육과 학생으로 착각할 법도 했다. 윤혁은 교내 체육 대회 때 딱 한 번 진우와 경기를 해본 적 있었는데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자신 있게 평할 수 있었다. 생긴 것만 보면 뇌까지 다 근육으로 차 있을 것만 같은데 정작 자기네 과에서 차석일 정도로 우수하단다. 은근 부러운 친구였다.

  진우는 평소에는 말이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인상도 진했다. 언뜻 보면 화를 내는 것 같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해지고 나면 오해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남에 대해서 앞에서든 뒤에서든 함부로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요새 취업 준비한다면서? 잘 되어가?”

  “네, 일단은요.”

  윤혁의 물음에 진우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에너지 공학은 비교적 길이 많이 열려있으니까요.”

  각 시설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에너지원이기도 하고, 지난 수십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분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영구기관, 준영구기관, 특수 형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민간 시설들에는 공학 전문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으니 일자리를 구하기도 쉬운 편이다.

  “하긴 그렇지.”

  인류는 골칫거리였던 화석 연료 의존성을 오래전 극복하였다. 그 이후로는 저온 핵융합도, 양자 에너지로 등을 성공시켰다. 또 게이트의 개발로 상위 차원으로부터의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끌어들이면서 온갖 에너지 기술을 완성했다. 이후 각종 이론 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에너지 매개 형태 역시 전기 이외의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다.

  현재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원과 매개 에너지들은 문명 전반에 걸쳐 효율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먼 우주로 진출하려는 인류의 정복 계획 역시도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나중에는 별까지 갈아서 에너지원으로 써도 이상하지 않겠네.’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뻗어나갔다. 그때 진우가 물었다.

  “윤혁이 형도 잘 지내셨고요?”

  “나야 늘 비슷하지 뭐.”

  “요새는 랩에서 자주 안 보이던데요?”

  “요 몇 주간이 시험 기간이어서. 개인적인 일로 바쁘기도 했고.”

  “자주 랩에 오세요. 암기 공부는 별 의미 없는 시대잖아요.”

  과거에는 힘들게 되새기면서 암기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뇌파 공명과 가상현실을 통해 지식을 뇌에 각인하는 일도 가능하다. 주먹구구식 공부법과 비교해서 모든 면에서 우월한 방식이었다. 기억 각인도 강하고, 단시간 내에 시행도 가능한 데다 저장량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별다른 침습적 조작도 필요 없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모든 교육 기관들이 그 방식을 응용하는 중이었다.

  “하긴 그건 그렇지.”

  윤혁이 허탈해하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이번에 하는 실험은 무슨 주제인데?”

  호기심 가득한 태일이 진우에게 질문했다.

  “Σ형 순환에너지원 소형화 버전의 안정성을 높이는 거요.”

  “수입이 허가됐나 보네? 작년까지는 안전 때문에 Δ형까지만 허락되었잖아.”

  “이제는 거의 모든 엔진이 소형화되는 추세라서요.”

  궁극적으로는 초소형 로봇에 탑재 가능할 수준으로 초 고화력 엔진 크기를 축소하는 게 목표란다. 참고로 한국만 해도 이미 그 목표를 코앞에 두고 있단다. 발전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험실에만 너무 오래 박혀 있었으니까 갑갑하네요.”

  답답했던 차에 연아가 제안을 던졌다.

  “바깥 공기라도 좀 쐰 뒤에 회식이라도 어때요.”

  이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찬성하였다.

  다섯은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 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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