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6회 초인들의 세계 Ch 8. 폭발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0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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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공대생들의 회식 시간.
“내년부터는 YS 테크에서 본격적으로 일할 것 같아요.”
한진우의 깜짝 발언에 네 친구는 놀라면서도 활짝 웃었다.
“오! 그러면 벌써 3차까지 면접이랑 공모전도 통과한 건가.”
“이야, 요새 연구직 취업하면 진짜 뛰어난 수재 아니냐? 대단하다, 진우야.”
“이제 슬슬 바빠지겠네. 그래도 부럽다.”
연아와 태일과 선민이 차례로 칭찬의 말을 꺼내면서 부러움을 표했다. YS 테크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에 걸쳐 유명한 기업으로 독보적인 기술력과 거대한 경제력을 보유한 곳이었다. 진우는 이미 그곳에서 일 년 전부터 인턴으로 일해오던 중이었는데 그새 정식 평가와 면접을 모두 통과하고 연구 성과까지 인정받아서 정규직으로 올라오게 되었단다.
“정말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네. 축하한다, 진우야.”
“고마워요, 윤혁이 형.”
일부러 놀래 주려고 취업 현황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정작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본인은 덤덤해 보였다. 항상 입이 무겁고 진중하고 우직한 게 진우다웠다. 그런 담담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가 그의 매력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로 이번에 저녁 한턱내야 하는 거 아냐?”
연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그렇게 따지면 집 잘 사는 연아랑 선민이가 내야지.”
태일이 놀리듯 말했다.
“형, 저희 저번에 샀어요. 기억하시죠.”
선민도 응수했다.
웃고 떠들면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윤혁은 생각했다. 친구가 잘된 것은 정말로 축하할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 갈피를 못 잡은 자신의 진로 때문에 아주 조금은 근심되었다. 연아나 선민처럼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태일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확실하게 꽂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태헌 선배처럼 독보적인 수재도 아니다. 정후처럼 전공과는 다른 분야로 시선을 틀자니 마땅히 뛰어난 재주도 별로 없었다.
그도 노력을 꾸준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단히 공부해왔고 연구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럴듯한 결과물도 여럿 만들어 보았다. 실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크게 인정받을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 애매한 재능으로 발목 잡히면 결국은 힘과 시간만 잔뜩 소모되는 법이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인지도.’
그도 이미 받아온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각박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점도 감사했다. 늘 주어진 것에 만족해왔다. 그래도 내심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찾고 싶었다. 물질적 부족이 없는 시대라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의 만족이 채워지는 건 아니니까. 사회에 이바지하고픈 마음이 과한 욕심은 아니지 않겠는가. 자신도 정말 잘해볼 수 있는 일을 찾아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소명도 이뤄내고 싶다는 소원이 들었다.
“일단 주머니 사정이 아주 풍족하지는 않으니까 간단한 거로 살게요.”
진우의 목소리에 윤혁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부모님이 용돈을 끊어 버리셔서요.”
친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손을 저었다.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불효자라고 혼 좀 나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너무 너를 착취하는 것 같잖니.”
뜨끔 찔린 연아가 말했다.
“착취 맞는데요, 누나.”
진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농담마저도 진지한 남자다웠다.
“어머, 얘는!”
“때리지 마세요. 누나 힘 센 거 알죠?”
그렇게 친구들은 시끌벅적 떠들며 즐겁게 웃었다.
카페에서 다 시간을 보낸 그들은 근방의 부대찌개 집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간 문명이 수십 번도 넘게 발전했지만,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양식들도 있다. 음식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개인별 맞춤 영양제가 만들어져서 한 번에 모든 영양소를 최적화하여 섭취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러 요리를 즐겼다. 또 인공지능이 요리 기술 습득을 넘어 요리 창조까지 하는 시대임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직접 사람 손으로 요리해 먹었다. 아마 식문화 속에 인생이 잘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진우야.”
부대찌개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코에 향긋이 전달되었다. 윤혁은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은 요리를 참 잘하시지. 공부 말고 가진 재주가 그나마 요리인데 자신도 이참에 식당 일이라도 도와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
식사 후 자리를 파한 일행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연아와 선민은 과제도 마무리했고 실험 성과도 나쁘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은 귀가하기로 했다. 태일은 아직 남겨둔 도면을 완성하겠다고 설쳤으나 그가 원체 밤잠을 생략하는 걸 아는 진우가 좀 쉬어가라면서 만류했다. 그렇게 연아와 선민은 집으로 돌아갔고 진우와 태일은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문득 랩 건물에 두고 온 가방이 생각난 윤혁은 고민했다. 집으로 곧바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가방 기억이 나자 조금 고민이 되었다. 내일 챙길까? 아니면 늦은 시간에라도 챙겨갈까? 고민 끝에 그는 산책 겸 건물로 돌아갔다.
무형 학생증 코드에 반응하여 잠겨 있던 문들이 차례로 열렸다. 원래는 안전 문제 때문에 오후 9시 이후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부에서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다. 시계는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들어왔다면 가방을 못 가지러 왔으리라는 생각에 윤혁은 안도하였다.
그때 기묘한 한기와 불안감이 잠시금 스쳐 지나갔다. 착각이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일한 불길함이 반복적으로 스며들었다. 무언의 경고가 머리에서 반복되었다. 윤혁은 발걸음을 재촉해 최대한 빠르게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혹시 몰라 실드 코팅이 된 코트를 사복 위에 덮어쓰고 미리 자동 방어 모드로 조작해두었다.
‘기우겠지?’
건물 문에 도달한 윤혁은 안도했다.
‘그래. 실험실 코트까지 있는데 걱정할 이유는 없겠지.’
요새 의복에 장착된 실드는 아예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일종의 반-영구 장비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착용자의 표면 전체를 특수 실드로 덮어 즉각 물리 피격과 에너지 피격에 대비할 수 있다. 비록 군용이 아닌 실험실용이라지만 몇 년 전의 최신 군용 장갑보다도 나은 성능이다. 한계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충격은 웬만큼 쉽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앙.
그런데 그 순간 뒤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몇 분 동안의 기시감과 불안감의 정체가 벌거벗겨져 드러났다. 내심 품고 있던 불안에 굉음의 충격이 섞이자 심장이 덜컹 가라앉으며 온몸이 얼어붙었다.
‘폭발?’
이어서 방대한 양의 섬광이 뿜어졌다. 순간 뒤를 돌아보았지만, 너무 빛이 강렬하여 곧바로 눈을 감았다. 윤혁은 조금 전 식탁에서 진우와 태일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Y대 공대에서 최신 버전 엔진을 몇 기 수입했었다던가?’
에너지 공학 전공자인 진우가 그 엔진들이야말로 대단한 최첨단 장비라면서 들뜬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지. 안정성 때문에 수입이 보류됐었다고 했던가? 극히 드문 확률로 내부 회로가 불안정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언뜻 대화 중 엿들은 것도 같다.
윤혁은 잠시 식탁에서 나왔던 그 대화의 일부를 회상했다.
엔진 폭주 가능성에 대해서 진우가 이야기했었지.
“다행히 엔진 폭주 시 즉결로 얼려버리는 기술도 몇 가지 있어요.”
그때 진우가 말했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온 냉각은 아니에요.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봉인한다는 개념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일곱 번째 힘을 통해서 말이죠.”
20세기까지만 해도 인류는 만물의 기본 상호작용을 네 종류의 힘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위 차원의 발견으로 물리학이 확장되면서 제5, 제6의 힘 등이 순차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미 알려진 것만 500가지가 넘어가고 대부분 기술력으로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제7의 힘을 쓰면 일시적으로 입자 움직임을 가둬버릴 수 있거든요.”
“신기하네. 봉인이라니? 꼭 마법 같잖아?”
연아가 호평을 하였다.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면 마법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하니까요.”
참고로 이번에 대학에서 수입해온 일련의 엔진들은 교수진이 연구에 쓸 목적으로 수입해온 것이란다. 아마 학생들이 직접 다룰 기회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미를 끌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다. 나중에는 언젠가 한 번 이상은 구경할 기회가 생길 테니까.
그때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별로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처음부터 불안감이 들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었나?’
어쩌면 그때 하필 나온 그 대화 내용은 일종의 경고였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일을 조심하라는 하늘의 경고였을까? 회상을 마친 윤혁은 재빨리 몸을 던져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며 화염이 몸을 휘감았다. 이어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도 들렸다.
***
잠시 잃은 의식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불길이었다. 다행히 옷에 코팅된 실드가 가동되어서인지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무너진 돌에 맞아 질량 충격은 있었으나 실드가 완화해주었다. 뼈나 살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정작 문제는 아래서 들려오는 굉음이었다. 깊은 격리 지하실 쪽이었다. 보통 위험한 실험체를 지하에 배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순 화재가 아닌 모양이다. 일반 화재 양상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특수한 재질의 에너지가 땅 밑에서부터 솟구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섬뜩하고 오싹했다.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허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충격파 때문에 넘어지면서 인대에 부상이 생긴 것 같았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의 충격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문은 가까이 있었으나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거기다 문 앞 길목도 막혀 있어.’
유독 가스가 올라왔다. 이 가스도 어떤 에너지를 띠고 있을지 예측 불가다.
대부분의 건물은 보통 즉각 화재와 폭발을 제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건물 자체도 열에 강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엔진 폭주로 인해 특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경우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일반적인 방화 재질이나 실드가 견디지 못하는 특수 입자들이 함유되어 있으니까.
윤혁은 가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입자와 방사선을 걸러내고 호흡을 보조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마스크였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으려나.’
조금씩 뜨거운 열기가 몸에 전달되었다. 특수 에너지에 의해 실드가 서서히 마모되어간다는 증거였다. 이러다가 화염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것 같은데.’
무거운 돌을 혼자서 치우는 일도 불가능했다. 윤혁은 일반인치고 힘은 좋은 편이었지만 슈퍼맨은 아니었다. 차츰 화염이 강화되면서 등 쪽으로 더 큰 열기가 느껴졌다. 실드의 열 중화 기능이 조금씩 소모되고 있었다. 미리 충전해두었다면 좀 더 상황이 나았겠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윤혁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빠져나갈 틈을 동분서주 찾았다. 혹시 힘으로 비집고 나갈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쪽 출구를 찾아볼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반대쪽은 기이한 에너지의 방출량이 너무 많아서 접근이 어려웠다.
‘이대로 틀린 건가?’
식은땀이 흐르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
특이한 에너지에 노출되어서 그런지 계속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콰아아앙.
그때 벽이 무너지면서 움직이는 실루엣이 등장했다.
특수 슈트로 무장된 사람? 혹은 로봇? 화재 때문에 불명확했다.
아무튼 그 존재는 윤혁에게 무언가를 투척한 뒤 사방으로 어떤 에너지체를 발사하였다. 투명한 막이 바닥, 벽, 천장을 타고 흐르면서 불길을 삼키기 시작했다. 이어서 드론 같은 무언가가 윤혁의 몸을 공중으로 끌어당겼다. 다른 드론들이 빔을 쏘아서 장애물들을 제거한 뒤 보호막을 펼쳐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윤혁은 슈트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화염만 보였다.
‘누구지?’
이내 의식을 잃은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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