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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7회 초인들의 세계 Ch 9. 노인과 청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09 | 회차평점 0 0

 

 

 

Chapter 9. 노인과 청년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드론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화재를 진압한 상태였다. 건물은 특수재질 덕에 완전히 녹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곧 형상 복구 시스템을 통해서 재건축되긴 할 테지만.

  “다친 데는 없니?”

  옆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병원으로 곧바로 데려다줄게.”

  돌아보니 한 사내가 슈트를 입고 서 있었다.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 겉보기에 서른 정도 되는 남자였다. 아마 조금 전에 벽을 뚫고 진입한 사내였으리라. 그는 전신 슈트를 둘러 입고 헬멧 부분만 해제한 상태였다.

  “괜찮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골절이나 화상이나 질식은 다행히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밀 검사가 필요해. 저 엔진은 Black X-2102. 블랙홀형 축퇴로를 일부 함유하고 있어. 특수 에너지장에 노출되었으면 혹시라도 신체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어.”

  다행히 곧바로 치료를 받는다면 별문제 없이 치유될 정도란다.

  에너지에 노출된 양이 유독할 정도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늦지 않게 발견해서 다행히야. 왜 엔진이 이유도 없이 폭주한 건지는 나로서도 의문이지만. 퇴근 중에 이 근방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큰일이었겠지.”

  윤혁 눈에 소방관 전용 슈트가 들어왔다. 단신으로 즉각 대형 화재 사건에 투입된 것으로 보건대 최소한 알파급 이상의 플레어 파이터(Flare Fighter - class α), 거의 영웅급에 근접한 특수 소방대원일 것이다.

  ‘영웅……, 인가?’

  자동화 시스템과 로봇을 통해서 화재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지금도 엔진 이상 반응 같은 극히 일부의 특수한 화재에 대해서는 전문 요원이 필요했다. 플레어 파이터는 이러한 계산 밖의 대규모 재난에 대처하여 인명을 구하고 폭발의 근원을 봉인해내는 현대판 영웅이다.

  하지만 오로지 검증된 소수만이 플레어 파이터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엔진에 대한 방대한 물리학적 지식, 뛰어난 신체 능력, 기계 슈트와 인공지능과의 협동 능력까지 요구되는 어려운 직종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알파급이라면 사실상 단신으로도 일인 군단이나 마찬가지다. 그 정도 레벨은 되어야 저 남자처럼 혼자서 전신 슈트를 입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부모님 연락처가 어떻게 되지? 연락드릴게.”

  “네, 잠시만요.”

  윤혁은 연락처를 전달해주면서 소방관의 얼굴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몸 군데군데가 그을려 있었다.

  “엔진 폭주는 어떻게 되었나요?”

  “중심부까지 진입해서 직접 동결시켰으니 걱정하지 마.”

  단신으로 폭주하는 엔진을 제어하다니.

  ‘굉장한 실력이네.’

  “죄송하지만⋯⋯,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로봇들이 자신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전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성함이라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무려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위기의 때에 구조를 받아서인지 강렬한 인상과 동경심이 남았다.

  “내 이름? 아, 난 김찬영이라고 해. 혹시 나중에 보게 되면 인사하자고.”

  그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일 마무리를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

 

 

 

  윤혁은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곧이어서 간단한 화상 처치와 치료가 진행되었다. 나노머신들이 전달되자 화상과 물리적 외상이 흉터조차도 없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다행히 혈액 검사나 영상 검사상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고 처치도 완료되었습니다. 실드 덕분에 부상 정도도 적은 편이었고요. 다만 특수한 에너지장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두고 경과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크게 염려하던 부분이었다. 호흡기나 피부에 가해진 열 및 독성 손상은 현대 의학 기술로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 입자나 특수 에너지와 관련된 물리적인 영향은 다르다. 관련된 케이스도 적고 신체에 발생할 영향도 예측하기 힘들다.

  {특수 산업 의학 관련 부서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편이 좋을 겁니다.}

  메디컬로이드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다.

  {별다른 영향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안도가 섞인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죽을 위기에서 구원받은 것이라도 어디인가. 김찬영 씨가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더라도 하마터면 화염 속에서 흔적도 없이 타 죽었을 것이다. 감사해야 마땅하리라.

  성한과 유진 부부는 아들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화상을 입고 입원 중이라는 연락을 듣고 숨이 차도록 급하게 찾아왔다. 그들은 아들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며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예상보다 훨씬 부상이 경미한 걸 확인하자 아들을 꼭 끌어안고 안도하였다. 그들은 감사 기도를 하였다.

  “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까 염려 안 하셔도 돼요.”

  본인이 가장 충격받았으면서도 윤혁은 애써서 부모님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유진은 하마터면 아들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성한이 아내를 안고 한참 토닥였다. 부부는 가까스로 진정하였다.

  윤혁은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재빨리 설명하였다. 밤에 건물 지하에 있는 특수형 엔진이 잠깐 이상 폭주를 일으켜서 대규모 폭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엔진은 동결 이후 활동을 멈추었고 화재도 진압되었지만, 건물은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물론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소식을 전해 듣고 왔기에 대강의 정황은 알고 있었다.

  “위험할 즈음에 늦지 않게 소방관님이 구조하러 들어왔어요.”

  “정말 평생 감사드려야겠구나. 주님께서 그분을 보내셔서 너를 지켜주셨어.”

  유진은 계속 아들을 끌어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그래, 언젠가 꼭 한 번 만나서 감사를 표하고 싶구나.”

  성한도 감명받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윤혁은 병원에서 하루 정도 검사와 치료를 받은 후에 귀가하였다.

 

 

 

 

 

 

***

 

 

 

  <<첫 시도는 실패인가.>>

  검고 짙은 목소리가 말했다.

  <아쉽습니까?>

  조금 덜 짙은 목소리가 말했다.

  <<‘억제자’를 쉽게 해치도록 내버려 둘 리는 없겠지. 예상했던 바다.>>

  <그가 ‘억제자’가 맞긴 합니까? 다른 혈육 쪽도 의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차라리 잘 됐어. 심증뿐이던 후보자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

  그들은 곧 재잘거리며 토론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시하겠습니까?>

  <최대한 빠르게 제거할까요.>

  <<성급해서는 안 돼. 당장은 조금 더 지켜보면서 기회를 찾도록 한다.>>

  <너무 길게 끌수록 우리에게는 불리해집니다.>

  <맞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기회를 망쳐놓았습니다.>

  <늦어질수록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러자 가장 검고 짙은 목소리가 호통을 쳤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호의 권능이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억제자만 죽이면 곧바로 ‘마지막 계획’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가장 검은 목소리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번 차례에 의심되는 후보는 생각보다 특별함이 없는 인간이라 애매했다. 첫 번째 때처럼 특출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고 두 번째 때처럼 한없이 선량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미묘하게 방해가 뒤따를까? 게다가 이 위화감은 무엇일까? 가급적 일찍 제거하는 편이 낫긴 한데 생각만큼 그게 쉽지 않다.

  <<어차피 곧 다음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사용할 장기 말은 넘치고도 남아.>>

  그래도 가만히 있기보단 뭐든 시도해보는 게 도움이 되리라.

  <<다만 무리하게 행동하면 큰 제약이 걸려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미 골탕 먹어보았던 탓에 적의 계략에 걸릴까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이번 판에는 무려 ‘엄청난 본전’이 걸려있으니 신중히 챙겨야 하리라.

 

 

 

 

 

 

***

 

 

 

  이틀 만에 지구 전방에 걸쳐 총 여덟 군데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엔진의 이상 작동 현상은 사실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항상 새로 개발된 에너지원을 도입할 때면 제아무리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도 사고의 위험성이 있었으니까.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문명 초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고성능의 첨단 엔진은 대개 우주 식민지의 시스템 내에서 처음 사용해보고, 차츰 기술의 발전으로 안전한 제어 및 소형화가 이루어지면 그제야 일반 시민 거주 구역 내에서도 사용을 허락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차차 실드를 포함한 안전장치가 고도로 발전하였고 인류연합의 신에너지 제어 노하우는 완전에 가까워졌다. 이제는 고의적인 테러가 아닌 이상에야, 기술적인 오류 때문에 엔진이 폭주하는 일은 실상 없어지다시피 했다. 만약 그렇게 발전하지 못했다면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신에너지 이용이 가로막혔으리라.

  그렇기에 이번처럼 아무런 오류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폭주 현상은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겹겹이 쌓인 안전장치들이 오차 없이 작동하는 데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것은 단순히 ‘인재(人災)’나 사람의 실수로 이해할 영역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3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련의 현상들이 있었다. 6년 전에도 그러했다. 패턴으로 보아 3년 주기인 건 맞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우주 요새에서만 사건들이 벌어졌다. 이번처럼 지구에서까지 사고가 발생한 건 드문 일이었다. 다행히 조기에 빠르게 진압되었고 대규모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인명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심각하게 고려할 사항이었다.

  세계 리더들은 폭주 현상 보고를 받고는 골머리를 썩였다.

  “감마(γ)형 레이첼-엔진, 제타(ζ)형 리만-엔진, XR-1203호까지⋯⋯. 유형도 다양하군. 소형화 엔진이어서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재앙이 될 뻔했어. 이래서야 대기권 내에서 동력원을 사용하기가 영 꺼림칙할 텐데.”

  갈색 머리의 키 큰 청년, 유성운은 보고된 자료들을 살폈다. 지구 내의 사고들과 우주권에서 벌어진 폭주 사고들. 천만다행으로 지구 내에서는 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우주 쪽 같은 경우에는 사용하는 엔진의 규모가 천문학적인 만큼 폭주도 어마어마했다. 작은 행성을 소멸시킬 정도의 폭발이 번졌으리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피해는 무마할 수 있겠지만.

  “저쪽 관리자는 제법 고생하겠군.”

  그때 비밀 통신 회로로 신호가 도달했다.

  “이 친구들도 똑같은 문제로?”

  본성 섹터의 수장들을 연결하는 핫라인이었다.

  동료들이 연락을 제의해오자 성운은 곧바로 연결을 허락하였다.

  “일라이저, 마리아. S-Unvs가 아닌 현실에서의 핫라인 사용은 자제하시죠.”

  “어머, 매정하기도 하셔라.”

  잔뜩 신이 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태부리는 음성 같았다.

  “매번 업무 중독으로 치어 사는 성운이 혼자 쓸쓸히 늙어가지 않도록 우리라도 자주 연락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어때? 고맙지 않은가?”

  이번에는 조금 능글맞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성운은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새는 우리 일곱이 얼굴 보고 대화할 시간도 없고, 참 아쉬워.”

  브리타니아의 일라이저, 남미 연합의 마리아 살바도르.

  둘은 성운의 정치 파트너들이었다. 왕가 출신에 능력도 우월한 일라이저는 탁월한 감각으로 광활한 영역에 걸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세계들 간의 교역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그녀는 천재적인 업적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양으로 존재감을 자랑하였다.

  “매번 홀로그램으로 회의하면서 뭘 아쉬워합니까?”

  성운이 신사의 가면을 벗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서로의 임재를 마주하고 대면하는 건 색다른 의미가 있다고.”

  마리아가 희희낙락거리며 대답하였다.

  “잡담하려는 건 아니야. 주군 명령이 있어서 그랬지.”

  일라이저가 호쾌한 음성으로 대화 주도권을 가져갔다.

  “동력원 이상 폭주 현상 말하는 겁니까?”

  “그래. 성운 그대가 공학에는 제일 뛰어나니, 소견을 듣고 싶군.”

  유성운. 현 인류 기술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구 최대 규모 초거대기업의 수장, 현재 Top 10순위 안에 드는 엔지니어, 그리고 모든 과학 기술에 일가견을 지닌 인간. 저 두 거물이 자문할 만큼 성운도 대단한 위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칼리드와 진과 연락해 토론했습니다. 진의 말에 따르면 이번 현상들은 그 근본 발생 원인은 밝힐 수 없지만, 대신에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게이트의 원리를 접목시킨 엔진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더군요.”

  삼차원 공간보다 더 높은 상위 차원과 연결되는 통로, 게이트.

  이 게이트라는 기술은 일차적으로는 드넓은 은하 급의 공간 속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을 서로 연결해주는 순간이동 목적의 교통수단이지만, 동시에 오늘날에는 에너지와 신물질을 생산하는 수단으로도 요긴하게 이용되곤 한다.

  “물론 축퇴로, 초 순환로, 양자로를 본체로 쓴 모듈들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대체로 효율적인 제어를 위해서 초소형 게이트를 생성해 보조 장치로 만든 융합형 엔진들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물리적인 이상이나 인간적 실수나 자연적 이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현상이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벌어졌다면? 그리고 그 공통점이 오로지 하나 게이트뿐이라면?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성운은 잠깐 뜸을 들이며 간을 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진지하게 다음 말을 꺼냈다.

  “외계, 아니 초자연의 간섭이라도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

  “초자연?”

  물론 성운도 본인이 말을 꺼내놓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리지 말아 주시죠. 솔직히 저답지 않은 발언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리 설명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물론 제가 말한 외계란 다른 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차원의 존재를 의미한 것입니다.”

성운은 일단 변명하듯 해명해보았다.

  “흡사⋯⋯, 신처럼?”

  이에 마리아가 호기심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혹은 천사 같은 존재라던가.”

  일라이저가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아,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설이자 추측일 뿐이니까요.”

  성운은 손을 저었다. 그러나 이는 비단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었다. 수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 기현상에 대해서 차분히 고찰한 결과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이런 식의 가설을 내세우기도 했다. 과학적인 증명을 할 수 없었기에 제대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흠, 하지만 마냥 무시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현재의 세계관은 어차피 극히 제한적이야. 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알아 왔던 세계가 더 거대한 실체의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밝혀왔으니까.”

  일라이저가 일부 수긍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라이저. 더 높은 차원, 더 거대한 세계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발견돼왔습니다. 세계관은 끝없이 확장되는 중이죠. 미지의 실체들을 단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제할 수는 없는 법이죠.”

  정말 미지의 실체들이 실존할까? 만일 그렇다면 그 존재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 다루지 못할 제어 불능의 두려운 존재들이리라. 눈으로도 볼 수도 없고 실체도 명확하지 않으며 다스릴 수도 없는 위험성. 과연 그 존재들은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이 될까, 아니면 뜻밖의 재앙이 될까?

  ‘설마 게이트가 그것들에 문을 열어준 꼴이었을까?’

  성운은 엉뚱하고 불길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하지만 이내 외면했다. 무섭다고 해서 다시 원시적 수준의 문명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미 게이트 원리를 접목시킨 특수 엔진들이 고도로 발달하여 방대한 우주 영토 곳곳을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엄청난 동력 겸 자원을 기반으로 발전할 경제와 문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한국 쪽에서도 사건이 있었다면서. 피해는 크지 않고?”

  마리아가 재차 성운 쪽의 안전을 물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그것참 다행이군. 불행히도 이쪽에서는 해저 기지에서 큰 폭발이 있었지.”

  일라이저가 투덜거리듯 끼어들었다.

  “아직 추가적인 피해가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영역 내에서 모든 가능한    위험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재차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들은 한참 동안을 정보와 의견을 교류하며 지혜를 나누었다. 최악의 경우 현재 지구상에 놓인 특수 에너지원 전체를 점검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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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매우 위중한 존재감(?)이 스쳐간 것만 같은 심상찮은 느낌이 드신다면 정상입니다. 2. (예고) 이번 챕터에서 중요한 인연과 만남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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