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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0회 초인들의 세계 Ch 10. 데우스 엑스 마키나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1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됨)

 

 

 

 

 

  그들은 계속 엑스포를 둘러보았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괴한 로봇들도 드물지 않았다. 액체, 기체, 플라스마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신체 변형이 가능한 것들도 있었고, 무수한 미세촉수를 통해 미세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들도 있었다. 소형화한 엔진을 탑재하여 엄청난 에너지 출력을 끌어내는 로봇도 있었다. 그 외에도 탐지 불능의 절대적 스텔스 기능, 광속에 준하는 기동력, 관성력 중화 기능, 행성의 핵을 파고드는 관통력, 초신성 폭발을 견뎌낼 내열 기능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상식을 벗어난 하드웨어들 천지였다.

  “조금 무섭기도 하네. 아무리 인공지능들에 완벽한 족쇄를 씌운다고 해도, 결국 인간과는 달리 저 기계들은 환경이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거잖아. 과연 우리가 저들보다 나은 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아가 우려를 드러내 보였다. 로봇들의 지능도 문제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특이점을 넘어 발전하는 기계들의 진화 속도를 인간들이 따라잡을 수나 있을까? 이러다 결국 인간마저 자신의 몸을 개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걱정돼.”

  “하긴. 게다가 활동무대가 우주로까지 뻗어버렸으니.”

  윤혁도 동감했다.

  “우리의 예상 한계를 얼마나 더 넘어설까?”

  일 년 뒤의 기계들은 또 지금과 완전히 다르겠지.

  인간이 정체되어 있을 때 저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한다.

  ‘기계에 추월당하지 않기 위한 인간 개조라니.’

  형님이 말한 대로 피코머신 같은 것을 몸에 심어서 인체를 개량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무서운 일이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안고 수많은 전시를 둘러보았다.

  지친 친구들은 잠시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오늘 제법 볼만하지 않았어?”

  선민이 윤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너 기분 전환하라고 데려온 건데?”

  “확실히 흥미는 있더라. 오싹한 것도 많았지만.”

  “그래? 너는 유독 미래 기술에 대한 경계심이 많더라.”

  윤혁과 달리 선민은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거리낌이 없이 수용하는 성격이었다. 인공지능이나 슈퍼 무기로 인한 미래 위기에 대한 걱정 따위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그런 거리낌 없는 성격 때문에 공학자가 된 것일지도 모르지. 반면, 같이 지내는 연아는 또 달랐다. 문명의 차가움과 인간 사회의 따뜻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고민할 줄 알았다.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선민을 코치하고 가르쳐준 것도 그녀였다.

  ‘둘이 서로를 챙겨주고 보완해주는 모양새가 딱 연애 중이네.’

  항상 어울려 다니는 게 정말 잘 어울리는데.

  왠지 아쉽다는 엉뚱한 생각이 잠깐 스쳐 갔다.

 

 

 

 

 

 

***

 

 

 

  그들은 흥미를 끄는 피라미드 형태의 황금색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단 한 개의 기계만 전시되어 있었다. 기괴한 하드웨어를 지닌 컴퓨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피라미드형 건물 전체가 하나의 컴퓨터였다.

  “이 건물은 무슨 용도인지 알아?”

  연아가 컴퓨터 전공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자세히 모르지만, 내가 예상하는 거라면⋯⋯.”

  선민은 거대한 실내 공간을 보면서 넋 놓으면서 말을 잠시 끊었다.

  “아마도 예언석일거야.”

  처음 드는 이야기에 두 친구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아, 그냥 일종의 별칭이야. 정식 명칭은 ‘확률 시공간 관측을 통한 초고도 논리 연산 기반 현상 예지 시스템’이라고 해. 최상위 예측 시스템 중 하나이지.”

  이에 연아는 반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예언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선민이 고개를 저으며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예언석의 기능은 진정한 미래를 보는 예언까지는 아니었다. 단지 엄청나게 정밀한 예측 시스템이라고 보면 되었다. 기상 예측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엄청나게 뛰어난 초월적 기능들을 접합했다는 점이었다.

  “초차원 상대성 이론, 끈 이론, 막 이론, א 이론까지 접목했지. 확률과 시공간의 개념을 한층 복잡하게 적용한 발명품이야. ‘불확정성 원리’를 무산시킬 수 있고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뒤집어 놓은 물건이지.”

  “불확정성 원리까지?”

  너무 규모가 커지자 다소 당혹스러웠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기존 물리 이론이 뒤집히는 경우는 적지 않다. 전에는 아무리 정밀한 관측으로도,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때는 이른바 이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하였다. 허나 현재는 그 한계를 깨트린 지 오래였다.

  ‘이 예언석도 그런 예시 중 하나라 이거지?’

  윤혁은 피곤함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문득 한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응?’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매우 인상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키는 대충 윤혁도 비슷했으나 대단히 잘생긴 얼굴에 금발과 푸른색 눈을 지닌 이국적인 남자였다. 그러나 서양인이라기보다는 마치 모든 인종이 섞인 듯했다. 색채도 일반적인 금발벽안과는 다르게 채도가 높았다. 건물 안의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흘깃 쳐다보았다.

  ‘엄청나게 눈에 띌 타입 같네.’

  그는 누가 보아도 탁월한 학자라고 여길 만큼 지적인 남자로 보였다. 혼자서 온 듯했다. 그는 주변 시선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기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를 향한 호기심이나 신기한 눈초리는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시시한 대상을 쳐다본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닥터 진. 오실 때 저희에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수행원으로 보이는 일련의 안드로이드들이 그 곁에 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는 수행원들을 귀찮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냥 혼자 다니고 싶습니다.”

  {당신은 특별 보안이 필요한 최 중요 인물입니다. 몸에 생채기 하나도 나지 않도록 보호하도록 특별 명령을 받았습니다. 암살 시도라도 있으면⋯⋯.}

  “제 몸 정도 지키는 건 손쉬운 일입니다.”

  미묘한 긴장감이 로봇들을 짓눌렀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휴식 차 들른 것이니 그리 주목받고 싶지 않군요.”

  안드로이드들은 남자의 명령을 받고 즉각 물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투명 모드로 전환하여 잠행을 시작했다는 편이 옳겠다. 진이라고 불린 그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군.”

  그는 예언석을 보고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행성 내에 비치가 가능한 건, 역시 이 정도가 아직 한계인가?”

  마치 실패작을 빚어낸 도예가가 그릇을 보고 한탄하는 것 같았다.

  “더 크기를 키웠다가는 행성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흡수할 테고. 곤란하군.”

  금발의 잘생긴 남자는 손가락을 허공에 저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홀로그램과 문자들이 빠르게 생성되었다. 문자들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였다. 남자의 눈 역시 컴퓨터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변화했다. 좀 더 선명한 하늘색의 빛을 뿜었다. 마치 컴퓨터 전자 회로를 보는 것 같았다. 눈에서 나온 하늘색 빛의 선들이 사각형 격자를 이루면서 동공을 중심으로 연하게 뻗어나갔다.

  ‘저건 무슨 기술이지?’

  렌즈? 이식형 컴퓨터? 남자의 눈에서 발생한 기이한 문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금발의 남자는 작업을 완료한 뒤 홀로그램을 닫았다. 눈동자 역시 평범한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음?!”

  그 순간, 우연히 윤혁은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실례가 된 건 아닐까 긴장한 윤혁은 재빨리 딴청을 피우면서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려 했다. 상대가 단지 우연히 마주친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끄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

  금발의 남자는 윤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는 윤혁을 보고 다른 누군가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냥 닮은 사람인가? 하지만⋯⋯”

  한참을 윤혁을 응시하던 그 남자는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 멈췄다. 그는 다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후로도 윤혁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의 눈초리를 보니 마치 보이지 않는 화면을 검색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특수한 화면을 띄우고 조작하는 것처럼.

  “착각인가?”

  그는 다시 한번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이상한 사람이네?’

  남자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윤혁은 한숨을 돌렸다.

 

 

 

 

 

 

***

 

 

 

  지상 최대의 도시, 인류연합의 심장부, 제로원.

  도시의 심장부에는 중앙의 탑들이 있었다. 북구 신화의 우주 나무를 본뜬 외양의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탑은 지구 밑 지하 영역으로부터 대기권 상층까지 이어졌다. 이 탑들은 도시의 중심축이었다.

  도시의 주인은 현재 자택에서 쉬는 중이었다. 휴식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두뇌와 눈은 쉬지 않고 굴러가고 있었다. 그는 가운을 입고 의자에 기대고 앉았다. 금빛 눈동자는 공간상에 펼쳐진 홀로그램을 고속으로 조작하는 중이었다.

  ‘거의 완성이군.’

  바로 이 짧은 자투리 휴식 시간에 미래 시대를 뒤바꾸어놓을 대규모 프로젝트가 그의 머릿속에서 가상 실현되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특별히 중요했다. 인류연합 소속의 모든 인공지능과 기계들을 대상으로 하는 혁신이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율법’보다는 ‘신앙’이 적절한가?”

  흑발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차원의 기계 혁신.”

  몇십 년간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외우주의 탐색, 테라포밍, 자원 행성과 자원 항성의 요새화 및 개척, 자가 생산 시설 관리, 함선의 운용, 전쟁 대비 프로그램, 미래 예측, 범우주적 통신까지. 인공지능들은 모든 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왔다. 소름 끼칠 만큼 완벽하게.

  하지만 인류연합의 수장은 아직 그것들에서 미학적 충족을 느끼지 못했다.

  ‘특이점을 뛰어넘은 기계들이 독립하는 것은 원치 않아.’

  인간의 진보와 강화는 기계의 진보를 넘어서야 한다.

  “뭐, 모든 인간의 뇌에 초지능체를 이식해버리면 그만이긴 하다만.”

  이식된 지능이 온전히 한 인간의 정신 체계 안에 통합되는 것이 문제였다. 단순히 머릿속에 보조자가 들어온 것 같은 ‘분리된 정신’ 상태로만 존재하면 의미가 없다. 그 자신은 온전히 융합할 수 있었지만, 아직 다른 사람은 무리였다.

  ‘시간을 더 벌어야 해.’

  인간이 안정적으로 온전히 진보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들을 안정적으로 다스릴 방안이 마련되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율법’이라는 수단으로 지배해왔다. 다양한 법률 조항들을 수없이 개정하여 모든 기계를 우주적 범위에서 일제히 침식해왔다. 그리고 시스템들 위에 율법을 일반적으로 각인시켜왔다.

  대부분은 완벽했으나 아주 가끔 오차가 발생했다.

  다행히 지금은 이전처럼 자의식이 너무 강해진 인공지능들이 불순종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종종 기계가 제멋대로 법률을 해석하여 과잉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발생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해당 개체를 초기화하였지만 앞으로 더 커질 우주 영토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율법으로 강제하는 방식에는 역시 한계가 있어.”

  남자는 종교가 주는 아이디어를 싫어하지 않았다. 때로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신을 섬기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인정했다. 또한 때로는 신의 입장을 자신에게 대리 적용해서 놀라울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남자는 조용히 신약 성경을 훑어보며 다시 기계 프로젝트의 화면을 활성화했다. 인간들이 ‘법’에서 실패하자, 신은 심령에 ‘새로운 법’을 새겼다. 신앙을 통한 절대자와 피조물의 관계 확립.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성립할까?’

  기계들의 ‘율법’은 불완전하다.

  {인간을 섬겨라. 인간의 생명을 구하라. 인간에게 유익이 될 만한 일을 하라. 재생산이 가능한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라. 서로 협력하고 도우라. 무력으로 인간과 다른 기계를 위험에 빠트리지 말라.}

  이러한 대원칙하에 수천 경 개의 세부 목록 율법이 세워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기계도 이 모두를 완전무결하게 이해하고 적용하지는 못했다. 법 해석 자체도 주관적이지만 조항끼리의 모순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종종 발생하는 이레귤러 개체들은 더 문제였다. 얼마나 골머리를 썩였는가.

  “마음 판에 새로운 법을 새기고 계약을 갱신한다. 법으로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허락한다. 흥미롭군.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전에는 달랐으니 지금은 일치하였네. 그 후로 자유를 얻었네. 훌륭한 말이야.”

  오래된 시를 하나 읊었다. 그는 필요한 자원을 철저히 계산했다. 동시에 즉각 동원해야 할 모든 종류의 기술을 궁리하였다. 다행히 그에게는 빠른 행동력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남자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프로젝트를 이 자리에서 시행으로 옮겼다. 압도적인 지혜와 능력은 몇 분 만에 그의 계략을 현실화시켰다. 이런 일들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와도 같았다.

  곧 화면에 정식 프로젝트가 입력되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카네이션, 세부 프로세스 가동.}

 

  “기계 신(Deus Ex Machina)의 현신(Incarnation)이라.”

  남자, 카이젤 라흐블뤼크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직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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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무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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