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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회 초인들의 세계 Ch 11. 매드사이언티스트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14 | 회차평점 0 0

 

 

 

 

Chapter 11. 매드사이언티스트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시거든 언제든 말씀해주시지요.”

  호텔 지배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귀빈 앞에 서서 예를 표하였다. 로봇이 아닌 사람이 직접 나선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신보다 적어도 20살 이상은 젊어 보이는 새파란 청년이었지만 상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높은 몸값을 지닌 높으신 분이었다. 지배인은 혹여 손님의 기분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속으로 염려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됐습니다. 이대로도 편합니다.”

  귀빈은 능숙한 중국어로 답했다.

  “그러면 이만 편한 시간 보내시지요.”

  진은 지배인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필요한 짐들을 정리한 뒤 거실에 나와 의자에 앉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화려한 야경을 내다보면서 그는 긴 여행으로 노곤해진 자신의 몸에 오랜만의 휴식을 허락하였다.

  ‘본성에 내려오는 것도 제법 오랜만이군.’

  진은 지구 밖에서 태어난 인간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하늘도시’라는 이름의 억겁의 시간 감옥에 수용되어 있었다. 진이 태어난 곳도 그곳이었다. 조상 세대들부터 계속 있었다지 아마.

  하지만 그곳도 사실 워낙 넓었기에 주민들은 현실에 안주한채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았었다. 지구의 작은 대륙 정도의 면적에 모든 환경 자원들이 지속해서 공급되는 곳. ‘하늘도시’에 갇혀 살아도 크게 부족한 것이 없었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적당히 포기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물론 우물 속 개구리들은 대부분 밖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진 같은 극소수의 예외는 달랐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어 시스템의 눈에 띄었다. 그는 인류연합에 발탁되었고 더 탁월해지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차차 실력을 인정받으며 성장해왔다. 그러나 야심이 있었던 진은 더 널리 진출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수많은 동료와 경쟁해서 이겼고, 차근차근 간부로서 자리매김할 자격을 획득해갔다.

  그렇게 점점 성장하여 최고의 인재임을 인정받은 후, 또다시 더 강한 경쟁자들과 시험을 치러 이기고 또 이겼다. 때로는 동면도 했고, 때로는 압축된 시간의 흐름을 견뎠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겨냈다. 우주 인류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최상위의 초인으로 각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지구의 왕께서 진을 손수 부하로 발탁하였다.

  “당신을 우리들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진은 그때 왕께 충성을 맹세했었다.

  “너무 낮은 자세로 나올 필요 없어. 너흰 대단히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지구의 왕은 바깥 출신의 일곱 천재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

  항렬로는 먼 조상인 그분.

  실질적인 나이는 가늠도 안 가는 올드 원.

  그분은 우주 인류의 선조들이 살던 시절부터 충성을 받아온 자였다. 일곱은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쳤다. 그리고 지구의 왕은 양자, 양녀들에게 막강한 권력과 부, 그리고 각자에 걸맞은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진은 그중에서도 탁월한 과학자로서의 기질이 두드러졌다. 아버지는 그를 각별히 여겼고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의 후속 작품들을 많이 맡겼다. 진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고 맡은 일들을 완벽하게 해내 왔다.

  진은 임무 특성상 본성(지구)보다는 우주 기지들을 전전하는 일이 많았다.

  비록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뿌리인 지구에 대한 은근한 귀소 본능은 있었다.

  ‘기술의 진보 수준은 그저 그렇군.’

  지구 전반의 기술 이용 실태를 본 그의 평가는 딱 이 정도였다.

  대규모의 최첨단 시설들을 보아온 그에게는 흥미로울 것이 없었다.

  ‘일반 대중은 기술 급변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역량이 안 되겠지.’

  아마 엠페러들과 아버지께서 일부러 기술 공개 속도를 조절했으리라.

  ‘게다가 유인 행성이 감당할 수 있는 시설에는 한계가 있지.’

  항성계 전체를 갈아 넣어야 작동이 가능한 대규모 시설은 아무래도 지구 대기권 안에는 끌어들일 수 없다. 순식간에 생태계가 망가질 테니까. 그나마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제로원이라는 비상식적인 건축물 정도일까?

  “쓸 만한 건 몇 개 못 건졌나?”

  최근 진이 맡은 임무 중에는 초고성능 ‘미래 예측 서버’의 차세대 버전을 완성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휴가 차 온 김에 지구에 만들어진 프로토타입들을 둘러보았다. 서부 섹터, 북미 섹터 쪽에 있던 것들이 그나마 좀 쓸 만했고 나머지는 실망스러웠다. 중국에서 본 예언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작 관심을 끈 부분은 임무와는 관련 없는 다른 일이었다. 우연히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일이 기억에 남았다. 관찰력이 뛰어난 진은 사람들의 얼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컴퓨터보다도 정확하게 분석하는 안목이 있었다. 그가 얼굴들을 보고 느끼는 직감은 틀리는 일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와 엄청나게 닮았었지?’

  검은 머리의 아시안 청년. 그 순박한 눈을 포식자의 눈으로 치환하면 딱 비슷하겠다 싶었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 보이고. 물론 아버지 쪽이 수천 배 이상 미남이지만 말이다.

  “혈연관계인가?”

  피도 눈물도 없으신 군주께 평범한 피붙이가 있다고?

  “전혀 안 어울리네. 그 꼬마도 참 안 됐군.”

  물론 진 본인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감시해두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기계를 쓰면 즉각 발각될테니 사람을 움직여보자.

  그는 곧바로 휘하의 비공식적 해결사에게 연락을 걸었다.

  “귀하신 분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곧바로 몹시 짜증을 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부탁할 일이 있어서.”

  “솔져는 관뒀습니다. 본성에 힘겹게 자리 잡았으니 귀찮은 일 사양입니다.”

  “이런, 우리 나름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의 농담에 맞은편 상대가 성가셔하며 툴툴거렸다.

  “내가 도와준 걸 잊은 건 아니지?”

  “크윽.”

  “덕분에 공도 세우고 임무도 성공했지.”

  진은 희희낙락거리며 흥얼거렸다.

  “반복적으로 우려먹으시네요. 생색입니까?”

  “한 번만 더 부탁할게. 아주 쉬운 일이야.”

  진은 태연히 웃으면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무리한 부탁은 안 됩니다.”

  “고마워. 솔져 넘버, 아니, 지구에 귀화하면서 이름 개명했나?”

  “차신해입니다.”

  “그래, 당신이 좀 지켜봐 줄 사람이 한 명이 있어.”

 

 

 

 

 

 

***

 

 

 

  회복을 마친 윤혁은 정상적으로 등교를 시작했다. 다시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갔다. 강의를 듣고,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랩 프로젝트까지. 평소처럼 정신없이 일하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삼 주가 지났다.

  윤혁은 이전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전에도 팀 스포츠를 즐기긴 했지만, 이제는 체력 단련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사고 때 받았던 충격이 계기가 되었다. 언제든 자신의 몸을 방어하거나 회피할 최소한의 체력은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마침 체육관이 있었기에 그곳에서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아버지도 종종 이용하는 곳이었는데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등록을 미뤄왔었다. 이제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빠도 참 대단하단 말이지.’

  아버지인 성한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신체가 정정하고 강건했다. 무려 예순이 넘었는데도 젊어 보이는 얼굴도 신기했지만,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의 단단한 몸이 더욱 대단했다. 젊은 아들인 자신 쪽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형님도 아빠 쪽 유전이라서 그런가?’

  문득 그 엄청나게 단련된 근육이 떠오르며 실소가 터져나왔다.

  ‘나 나름대로 부지런히 해야겠네.’

  운동을 하다보니 잡념과 걱정이 줄어든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뒤따랐다. 갑자기 너무 무리해서 운동했더니 근육통이 엄습했다. 힘들어서 포기해버리고 싶었지만, ‘위험할 때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지’ 하면서 자신을 다독였다. 신체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때 같은 물리적 충격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오후 수업 후 체육관에 들른 윤혁은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척 보기에 매우 무거운 바벨들을 정자세로 거뜬히 들어 올리면서 표정 하나 일그러짐 없는 건장한 남자였다. 잘 단련된 균형 잡힌 신체에서 용맹함이 뿜어져 나왔다. 그 남자는 윤혁과 구면이었다.

  “어? 너는 그때 그 청년!”

  김찬영이었다. 영웅 소방관.

  그는 윤혁과 눈 마주치자마자 먼저 아는 척하였다.

  “안녕하세요.”

  “몸은 이제 괜찮은가 보네?”

  “네, 덕분에요.”

  윤혁이 무사하다는 말에 그는 활짝 웃었다. 그날의 찬영은 윤혁의 눈에 영웅 그 자체였다. 아니, 애초에 사람 생명을 구하는 직종이니 객관적으로 봐도 영웅이 맞다. 비단 꼭 최첨단 슈트와 장비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김찬영 씨도 여기서 운동하시나 보네요?”

  “쉬는 날에는. 가까운 데서 살아서 말이지.”

  찬영이 악수를 청하자 곧바로 윤혁이 받아주었다.

  “그나저나 내 이름을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잊어버릴리가요.”

  두 사람은 통성명을 했다. 찬영은 스물여덟으로 여섯 살 위였다.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플레어 파이터, 자동화 시스템마저 능가하는 최정예 특수요원. 아무리 신체적으로 우수하다 해도 저런 젊은 나이에 경력과 지위를 갖추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

  “내가 좀 운동 봐줄까?”

  “부탁드릴게요.”

  찬영은 윤혁의 트레이닝 자세를 봐주기로 했다. 그 덕분에 둘은 말동무가 되었다. 찬영은 윤혁이 궁금해했던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윤혁은 플레어 파이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몰랐던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같은 체육관에서 단련한 그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찬영은 십 대 시절부터 최정예 소방관이 되고 싶어 관련 학과에 진학해 훈련과 공부를 병행해왔다고 한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원래부터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원체 위기 앞에서 물러나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과거 몇 세대 위에서는 소방관들이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했다지.”

  그는 옛날의 역사를 회고하였다.

  “그들은 힘든 조건 아래에서도 묵묵히 화재에 맞서 싸웠다고 해.”

  지금은 화재 대응 로봇과 장비들이 워낙 발전해서 자동화 시스템이 안전 유지의 핵심 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의 생명을 구할 때는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위기 가운데 생명의 소중함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들뿐이다. 이것이 아직도 인간 플레어 파이터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솔직히 과거의 소방관들이 더 존경스럽긴 하지.”

  그들은 제한된 조건 속에서 열악하게 싸워왔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목숨을 거는 일은 늘 두려움이 뒤따른다. 화재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 발생 빈도 자체는 최근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성능 엔진이 개발되면서 폭발 사고에 능수능란하게 대비하기가 어려워진 측면도 있었다. 지금이라고 딱히 안전한 직종은 아니었다.

  찬영은 지금껏 철저한 신체단련, 현장에 대한 이론 학습,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통한 무수한 반복 훈련, 기초 과학 공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학습하고 훈련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된 사람임에도 막상 처음 재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굳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 느낌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마땅히 사람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조차도 그렇게 두려운 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일반인은 얼마나 더할까? 윤혁은 엔진 폭주로 불이 난 건물에 갇힌 채 그저 피하기밖에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감지 장비도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헤치고 지나가야 했으니까 훨씬 더 두렵고 떨렸겠지.”

  찬영은 첫 임무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했었다. 그는 그 실패를 되새기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구조하는 사람의 어깨에는 막중한 책임이 걸려 있으니까. 한 번의 실수로도 수많은 생명이 사라질 수 있다. 그는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왔다.

  “후회했던 적은 없나요?”

  “후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잖아요.”

  “가끔 내가 이 일을 계속 버텨낼 수 있을까, 확신이 안 들 때는 있었지.”

  실력을 인정받고 특수 소방관 직위에까지 올랐지만 지금도 여전히 찬영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아니, 실력이 향상될수록 맡겨지는 임무의 난이도 역시 높아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는 늘 임무를 나서기 전 유서 쓰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래도 난 개인 활동이 가능한 특수요원이라서 편하기는 해.”

  “어떤 점에서요?”

  “팀으로 움직일 때는 내 판단과 고집을 철저히 죽여야만 했거든.”

  플레어 파이터는 특수 슈트 기능을 기반으로 비행, 난입, 감지, 소화, 동결은 물론 기계들을 지휘하며 조정할 수 있으므로, 단독 임무 투입이 가능하다. 유동적으로 민첩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부담은 있지.”

  현직 플레어 파이터의 입으로 듣는 그들의 사정은 흥미진진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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