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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회 초인들의 세계 Ch 15. 리온 마흐무드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23 | 회차평점 0 0

 

 

 

 

 

***

 

 

 

  경찰 로봇의 공격 이후로는 별다른 기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몰라도 그간의 인공지능들의 정신 이상 행태가 아예 중단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발적으로 습격이 다시 개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윤혁은 철저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해는 당분간은 윤혁과 가까운 곳에 있겠다고 말했다. 외출할 때까지 일일이 따라다닐 수는 없겠지만, 대신 주기적으로 안전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영문은 몰라도 고마운 노릇이었다.

  “아르바이트요?”

  “그래, 일단은 네 부모님 식당 일을 내가 돕도록 하지. 일손이 모자라 보이던 것 같은데 나쁠 것도 없겠지? 아, 보수는 따로 필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처음에는 반대하려 했지만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말리지 못했다.

  이후 윤혁은 부모님에게 신해를 소개했다. 식당 일을 배우기를 원하는 친한 형이라며 간단한 소개를 붙인 뒤 말이다. 부모님도 별 의심 없이 승낙했다. 그런데 의외로 신해를 들여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며칠 만에 증명되었다. 애초에 실력 자체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새로운 요리사가 오더니 갑자기 맛이 엄청 좋아졌다면서 사람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류급이었다는 게 과장은 아니었나 보네요.”

  “이것도 적당히 완급 조절한 거야.”

  윤혁은 신해의 능숙한 주방 일솜씨와 요리 실력에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저 정도 실력자라면 지금 당장 자기 가게를 내도 괜찮을 터인데. 정작 본인은 아직은 더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곳곳의 전통 요리를 하나씩 통달하던 참이었단다.

  “그런데 왜 하필 한국에 오신 거죠? 이름도 한국식으로 개명하셨던데요?”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거든.”

  처음 지구 서부 섹터에 정착했을 때 자리 잡는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한국 출신이었다나? 지구식 이름도 대충 그 사람의 개명 전 이름을 베낀 것이라고 했다. 은인과는 특별히 깊은 정까지는 없어서 금세 헤어졌지만, 귀찮기도 하고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타입이었기에 지금까지 놔두었다고 한다.

  “가게는 언제 내실 생각이고요?”

  “아직은 좀 더 배울 게 많거든. 딱히 꽂히는 분야를 정하지도 못했고.”

  “응원할게요.”

  한편, 성한과 유진은 아들이 새로 데리고 온 청년이 제법 마음에 드는 눈초리였다. 싹싹하고 시원한 성격, 좋은 사교성, 믿음직한 체격 같은 점들도 합격 요인이었지만, 사소한 업무에도 열정적인 모습이 결정적으로 점수 따는 데 기여한 모양이었다. 성한 부부는 굳이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신해에게 반강압적으로 많은 보수를 챙겨주셨다.

  “그 청년 고작 이런 데서 일할 만한 실력이 아닌 것 같은데?”

  유진이 아들에게 새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요. 저분도 개인 사정이 좀 있어서요.”

  “흠, 그래. 개인 사정은 존중해야지. 아무튼,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더라.”

  물론 부모님께서도 차신해라는 청년이 잠시 일하다 금방 떠나갈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남아서 계속 일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신해 본인도 그리 여기는 것 같았다. 미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지만.

  한편 경찰용 로봇들이 부서진 사건이 있었음에도 당국에서는 아직까지 별 조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윤혁은 이 점이 좀 의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분명한 기록도 남아있을 테니 추적이 이어지리라 생각했었는데. 물론 피곤한 일이 없는 게 그에게도 좋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도 따랐다.

  ‘혹 누군가의 간섭이 있었던 걸까?’

  의심스러운 부분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신해였다. 전직 군인이라는 개념도 너무 낯설었지만, 그런 사람은 왜 자신 곁을 감시하는지도 궁금했다. 단순히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에 윤혁은 슬쩍 떠보듯 호기심을 얹어 물어보았다.

  “솔져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신해는 원래 솔져가 시행하던 임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본래 우리가 맡는 임무는 주로 내란의 제어인 경우가 많아.”

  제한된 지식의 윤혁으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기계들의 반란 혹은 기계 오류로 인한 사태도 그중에 포함되거든.”

  사실 저번 사태도 상부에 보고가 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사태란다.

  “지금은 내가 은퇴한 뒤라 공식적 보고는 어려워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한테만 전해두었어.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당분간은 네 주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지만 감시할 거야. 원인에 대해 단서도 물색할 겸.”

  “그랬군요.”

  윤혁은 현 세상의 군대와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를 궁금해했다. 이미 전 지구상의 국가들은 군대를 청산하고 모병 및 징병을 금지하는 협약을 체결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솔져란 대단히 낯설고 신기한 개념이었다.

  “휴먼 솔져는 어떤 임무들을 맡죠?”

  “모든 종류의 가상 재난 시나리오에 대처하지. 너희들이 상상해볼 법한 모든 이야기 말이다. 외계인 침공, 로봇들의 반란 행위, 생물학적 테러⋯⋯, 심지어는 좀비 사태 같은 것도 있지.”

  신해에 따르면 아직 인간들은 인간의 주체적인 자기방어 능력을 포기하고 기계에 방호를 떠맡기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단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인간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만한 수단을 남겨두어 최후의 보루를 확보해두었다고 한다. 휴먼 솔져는 그러한 보루 중 한 방편이었다.

  “아무리 기계가 효율적이긴 해도 만약의 사태란 게 있을 수 있으니까.”

  휴먼 솔져는 군대의 단순 부품이 아니었다. 한명 한명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특수 요원과 같은 개념이었다. 군인보다는 오히려 기사, 혹은 전사, 영웅에 가까운 전투원이었다.

  “더 이상 사람이 군인이 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네요.”

  “영원한 평화라는 건 없어. 앞으로 인류의 영역이 더 확장되면 어떤 식으로든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 그걸 대처해두지 않고서는 평화를 누릴 자격도 없어. 스스로를 보호할 의지도 없는 종족은 쇠퇴하기 마련이지.”

  신해는 자세한 부분은 감추었지만, 윤혁의 질문들에 대해서 나름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만 고향에 대해서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이야기를 피했다. 그저 자신이 어떤 콜로니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그 도시가 우주 공간에 있다는 점만 언급했다. 도시의 운영 방식, 체계, 인구, 주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윤혁은 그의 말을 듣고 한 가지 지레짐작을 해보았다.

  휴먼 솔져 모병 제도가 우주 출신 인간에게 있어서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취업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이 얻으려는 권리란 식민지 주민과 지구 시민 사이의 태생적 권리 차이를 메우는 것인지도. 말하자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했던 과거의 용병들처럼 말이다. 자세한 사항은 신해가 알려주지 않으니 추정밖에는 할 수 없었다.

  ‘과연 뭘 얻으려고 목숨까지 걸면서 수많은 위험에 맞서 싸운 것일까?’

  그는 전투 경험도 꽤 있었다고 했으니 지구 밖에서 전투에 투입된 적도 제법 있었으리라. 어쩌면 그 과정에서 정신적 상처를 쌓아두었을지도 모른다. 윤혁 자신도 몇 번 사고를 당한 것만으로 이렇게 힘든데, 전직 군인이라면 얼마나 트라우마 축적량이 많을까?

  ‘좀 더 친해지고 나면 비밀을 털어놓으려나.’

  신해가 쌓아둔 비밀의 장벽이 조금 아쉬웠다.

 

 

 

 

 

 

***

 

 

 

  그 무렵, 윤혁에게 일생의 큰 반향을 일으킬 변곡점 중 하나가 찾아왔다. 인연이라는 형태로 다가와 인생 행로를 자신도 모르는 새 바꾸어 놓기 시작한 계기. 앞으로의 소명들을 같이 짊어질 동료가 찾아왔다.

  로봇 공격 사태가 얼추 잊혀질 만한 어느 날, 그는 켄 할아버지네 집에 초대받았다. 종종 켄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에이든과도 놀아준 덕에, 이제는 낯설지 않을 만큼 그 집과 인연이 깊어졌던 차였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중 문이 열리면서 못 보던 얼굴이 나타났다. 그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얼굴에는 지혜로움과 여유가 배어있었고,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세상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구분되어 보이되, 긍정적인 의미의 특별함이 돋보였다. 키와 체격은 윤혁보다 작았으나 담대한 기세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그 상대는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발성했다. 짙은 갈색에 가까운 피부 색조, 자주색과 회색과 고동색이 배합된 듯한 머리카락, 이국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낯설지 않은 친근감.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났다.

  “리온, 손님분을 안에 모셔드리렴.”

  저 멀리에서 켄의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군. 이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네 가족사진에 있던 남자로구나.’

  윤혁은 속으로 놀람을 감추었다.

  ‘에이든이 기다리던 그 사람, 곧 돌아온다더니 정말이로구나.’

  “네. 바로 갈게요.”

  청년은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윤혁더러 ‘안으로 가시죠.’라고 말하면서 다시금 편안함 주는 어투로 공손히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성적인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왠지 저런 유형의 사람이라면 친구가 되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저렇게 사람 편하게 하는 웃음은 오랜만에 보네.’

  윤혁은 그의 첫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

  “두 사람은 오늘이 처음 만남이겠구나.”

  켄 할아버지는 간식거리를 가져다주면서 서로를 소개할 기회를 마련했다.

  “반가워요.”

  지금까지는 공용어로 말하던 리온이 돌연 한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마 가족끼리 이곳에 정착한 뒤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 같았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윤혁이 먼저 머뭇거리며 말을 텄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음, 이곳 한국 기준으로 환산하면 스물둘이요.”

  “저랑 똑같으시네요.”

  둘은 금세 편하게 말을 놓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친구처럼 지내도 될까.”

  “물론이지.”

  “내 이름은 리온 마흐무드. 편하게 리온이라고 불러.”

  “난 강윤혁. 나도 반가워.”

  막상 인사하고 보니 어색함은 생각보다 빨리 깨어졌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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