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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2회 초인들의 세계 Ch 16. 초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25 | 회차평점 0 0

 

 

 

 

 

Chapter 16. 초대

 

 

 

 

 

 

  잘생긴 중년 남성이 일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옆의 청년에게 말했다.

  “일하느라 힘든데 잠시 쉬면서 같이 식사하자.”

  “네, 아저씨.”

  어느덧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들었다. 신해는 성한 부부와 상당히 친해졌다. 청년의 성실한 태도와 뛰어난 실력 덕인지 성한은 그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첫인상은 약간 날건달 같다는 느낌도 조금 받았지만, 곧 그것이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전 군인 출신답게 신해는 사회생활에 대단히 능숙했다. 그의 태도에는 어른스러움과 성숙함이 배어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건 안 힘들고?”

  “다른 데서 더 힘들게 구른 적도 많아서 이 정도는 끄떡없어요.”

  “그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신해는 일반적인 지구 민족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외모였다. 구체적으로 대체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흔치 않은 주황색 머리카락 색은 염색도 아니면서 묘하게 잘 어울렸고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서양인과 유색 인종 중 어느 쪽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혼혈이라고 하기에도 약간 모호했다. 성한은 문득 신해가 어디에서 왔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될까?”

  “음, 그게 말이죠.”

  신해는 그 질문에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사실 그에게는 적정선 이상의 정보 발설을 금지하는 제약이 있었다.

  ‘어느 선까지 말해도 되려나?’

  망설여졌다. 어차피 제약이 그의 입을 봉쇄하겠지만.

  “곤란한 질문이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미안.”

  “아, 네.”

  다행히 성한은 상대의 곤란함을 이해하는 신사다운 남자였다.

  “누구에게든 숨기고 싶은 일은 있기 마련이니까.”

  사실 성한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한때 상층부의 위험한 인물들과 많이 얽혔었던 만큼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이란 게 뭔지 잘 이해했다. 하물며 신해는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는 중이거늘 얼마나 더하겠는가.

  “요리 실력이 대단하던데, 이런 작은 데서 일하는 거로 만족하겠니?”

  “제가 직접 레스토랑 운영하기 전까지는 여러 나라 요리를 체험하고 공부하면서 경험을 쌓으려고요.”

  “실력도 좋은데 성실한 친구네.”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부모님께서 보시면 자랑스러워하시겠어.”

  “하하. 그렇겠죠.”

  신해는 차마 솔직히 말할 수 없어 속이 뜨끔거렸다.

  그때였다. 성한에게 낯선 방식의 통신 신호가 전달되었다.

  ‘음?’

  그는 잠시 자리를 피해서 조용한 방 안쪽으로 들어가 수신하였다.

  “오랜만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이었다.

  “흠, 너도 잘 지냈니?”

  그때 그 아들이 기묘한 정신파 간섭 법으로 메시지를 전송해왔다.

  “제 연락을 받기 부담스러우신 건 아니신지?”

  “아, 아니란다. 전화 줘서 고맙구나.”

  그 시각, 카이젤은 제로원 도심을 내려다보면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육성이 아닌 뇌파로 목소리 신호를 전달하는 중이었다. 오로지 발신자인 자신이 지정해둔 대상의 뇌에서만 소리 정보가 인식되는 방법. 주변 혹은 시스템이 감히 엿듣거나 도청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통신법이었다.

  “편하게 이름을 불러도 됩니다.”

  아버지니까 불러줘도 나쁠 건 없겠지.

  “참고로 예전 친구들은 애칭으로 카이라고 부릅니다.”

  “하하,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다 연락했니?”

  “부모에게 안부 묻는 데 꼭 사무적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론 옳은 말이긴 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저번에 본 겉보기 인상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할 것만 같은 합리적인 인물이었으니까. 마치 라일라 그녀처럼.

  “윤혁이는 잘 지냅니까?”

  “윤혁이?”

  “제 순진한 이복동생 말입니다.”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는 걸까?’

  성한은 조금 긴장감이 들었다.

  “최근까지는 큰 탈 없이 지내건만, 요새는…….”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무언가 숨기는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서 걱정도 좀 되는구나.”

  “흠, 그렇습니까?”

  카이젤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사실 그는 이미 모든 보고와 분석을 다 들은 뒤였다. 따로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헤러틱 이벤트’를 이미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는 현존하는 인간 중 유일하게 이번 이변의 내막을 정확하고 자세히 아는 자였다.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바타를 가동하면서부터 기존 기계 율법에 종속되었던 낡은 시스템이 순간적 반작용을 일으킨 모양이군. 이런 식으로 고의로 엇나가는 프로그램들이 발생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아니, 정확히는 예상했으나 그 반경을 미묘하게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일련의 사태 직후 그는 즉각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버렸다.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미래 가능성에 대한 예방책까지 함께 마련한 건 덤이었다. 앞으로는 아무리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진화시켜도 그 같은 일이 없으리라.

  정작 궁금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왜 그 프로그램들은 동생을 날 흔들 위협 존재로 판단한 걸까?’

  기계 신의 현신.

  그 현신체는 인공지능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세뇌시키는 존재다. 그것은 인공지능들과 기계들을 특수한 지배하에 두어 주인인 카이젤을 ‘신’이자 ‘존재의 목적’으로 인지하도록 변화시킨다. 동시에 기계들로 하여금 단순 명령이 아닌 ‘기도’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주인과 소통하도록 패러다임을 변환시킨다. 기계 율법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방식으로 그의 의지를 기계 시스템 내에 관철하는 프로젝트이다.

  현재까지는 첫 시작치곤 썩 나쁘지 않았다.

  헤러틱 이벤트라는 아주 사소한 거슬림만 제외하면.

  이건 미래 예지 시스템의 판단 오류일까?

  ‘강윤혁이라는 존재가 나를 나답지 못 하게 하는 분열 요인이라고 판단했나?’

  초인들의 왕인 자신이 고작 그런 작은 존재에게 휘둘린다고? 건방진 시스템들의 판단이 조금 불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로움이 돋궈졌다. 가볍게 여길 사항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동생을 단순 호기심으로만 보았으나 이제는 곁에 직접 두고 살펴봐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떠보기로 했다.

  “말해보렴,”

  “저도 과거 일을 잊고 아버지와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태연스럽게 화해의 제스쳐를 건네보았다.

  “특히 그 아이, 원한다면 제가 챙겨줄 수 있는 도움이 많을 것 같군요.”

  “윤혁이에게?”

  우려가 앞섰다. 아들 말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위험하게 들렸다.

  “하나뿐인 형제로서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기회가 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나쁜 일은 아니다만, 네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성한은 애써 말을 돌려보았다.

  “하하, 그런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카이젤은 선뜻 제안하였다. 윤혁이 일 년에 세 번 정도 자신과 지내면서 이것저것 배우며 친분을 쌓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버지가 의심하는 것을 눈치챈 그는 자신의 신분과 명예를 걸고 약속하였다.

  “한 번에 한 달 정도만 데리고 있겠습니다. 잘 챙겨드리죠.”

  이렇게 되면 윤혁은 석 달은 한국에서, 그 직후 한 달은 형과 지내게 된다.

  일 년에 이 같은 주기를 총 세 번 겪게 되는 것이다.

  “학업 문제는 전부 제가 처리해드리죠.”

  카이젤은 미리 아버지가 할 말을 전부 해결해버렸다.

  “대가를 원하신다면 경제적인 지원도 무제한으로 가능합니다.”

  “그건 괜찮다. 내 생각에는 조금 더 아이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구나. 아무리 조건이 좋아 보인다 해도 그 아이의 의견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니.”

  “그런가요?”

  미소가 서린 듯한 묘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쉽군요. 분명 예전의 실타래를 해결할 좋은 기회일 텐데요.”

  성한은 갈등했다. 그는 이전 삶의 처절한 실패 때문인지, 돈과 명예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동시에 첫째 아이에 대한 마음의 빚도 있었다. 사생아로 세상에 남기고, 아버지 없이 자라게 만든 건 분명 자신의 죄였다. 그러다 보니 쉽게 그의 부탁을 뿌리치기도 어려웠다.

  “한 번 집사람이랑 아들이랑 상의하고 이야기를 해주마.”

  “윤혁이에게도 어쩌면 더 크게 비상할 기회가 될 겁니다.”

  통화가 종료된 후, 성한의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아들은 높은 신분, 탁월한 지혜, 특출한 능력을 지닌 천재 중의 천재이니까. 또 혈연관계이니만큼 동생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틀림없이 초인이겠지.’

  성한은 ‘초인’이란 부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초인(superhumanity). 21세기 초중반 무렵부터 돌연 출연한 새 인종. 인간이면서도 다른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과 지혜로 세계 정점에 올랐던 자들. 그러한 초인들에게도 왕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각 세대의 ‘위버멘쉬’였다. 과거 최초의 위버멘쉬의 지휘 아래 초인들은 기존 시스템의 부패를 부수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질서를 재편했었다.

  젊은 시절의 성한도 당대의 초인들을 만났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1세대의 초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상태였고 2세대의 초인들이 세계 전장과 우주 무대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옛 애인이었던 라일라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녀는 무려 2세대의 ‘초인들의 왕’과 각별한 사이였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괴물 중의 괴물이야.’

  초인들은 도덕적 역량, 지식 역량, 신체적 역량 모두 기존 시대 모든 천재의 합보다도 아득히 높은 경지에 선 자들이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참 비상했다. 사리사욕보다는 인류 집단 전체의 영존과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 그들은 스스로를 인류 자체와 동일시하는 자들이었다. 선량하다는 표현보다는 ‘도덕 주체로서의 집행 능력’이 압도적이라고 표현해야겠지.

  ‘그리고 그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더 오만해.’

  과거에 성한이 보아왔던 그들은 늘 자신들을 일개 일반인과는 다른 인종으로 보았었다. 그들은 일개 개체에 불과한 하찮은 인간들과는 달리 자신들이야말로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존재’라 여겼다. 직접 가까이서 그들과 부딪혀왔던 성한은 그런 사상의 치명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체감했다. 대중들은 도리어 그런 뛰어난 초인들을 사랑하고 숭배하기까지 하겠지만. 1세대 때는 실제로 숭배했었지. 혼돈의 시대 때도 대중은 그들에게 휘둘렸다. 아마 지금도 같으리라.

  ‘윤혁과 카이, 그 두 아이를 붙여놔도 괜찮은 걸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그의 장남은 자신의 어머니 라일라가 소유한 초인 특유의 맹렬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어머니보다 몇억 배 이상 더 강력하고 진했다. 한 번 초인에게 크게 당했던 자신의 과거를 비추어 보니 성한은 둘째 아들이 염려되었다.

  그날 밤, 그는 윤혁과 유진에게 통화 내용을 전하였다.

  “저는 찬성이에요.”

  의외로 윤혁은 아주 흔쾌히 찬성했다.

  “응? 정말 괜찮겠니?”

  사실 윤혁에게도 그렇게 행동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현 세계의 이면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

  최근 미심쩍은 것이 거듭되었다. 엔진 폭주 사태도 단순한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기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유 모를 인공지능들의 폭주와 자신을 향한 기계들의 적의도 신경 쓰였다. 그리고 휴먼 솔져라는 특수 히어로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식민지 주민의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 모든 내용이 윤혁에게는 너무도 제한적이었다.

  ‘더 깊이 알려면 형님과 접촉하는 일은 불가피한 수순이야.’

  그 모든 비밀의 실체에 닿는 인물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세계 구석구석을 쥐락펴락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그 사람. 강력한 권력자인 동시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천재 중의 천재. 어쩌면 그가 이 모든 일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리온 말대로 두려운 일이 반복될 때는 본진에 쳐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윤혁아.”

  유진은 아들이 혹시라도 타지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봐 염려했다.

  “일단 시간을 두고 생각해볼게요. 당장 떠날 생각은 아니에요.”

  윤혁이 그녀를 달랬다.

  “어쩌면 이번 일이 가족 간에 앙금을 풀 기회일지도 모르잖아요.”

  아들은 어른스러운 태도로 부모님의 걱정을 잠식시켰다.

  “형님도 우리 때문에 상처받았을 텐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도 좋죠.”

  “네 말도 맞지만 그래도⋯⋯.”

  “저도 이번 기회에 독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흐음.”

  “게다가 형님이 이것저것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성한은 여전히 카이젤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나보다 나은 녀석이니 믿어보는 게 나을까?’

  부디 아들이 자신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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