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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3회 초인들의 세계 Ch 16. 초대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27 | 회차평점 0 0

 

 

 

 

 

***

 

 

 

  돌아오는 수요일. 도시 외곽의 낡은 교회는 발길 하나 없이 한적했다.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언제든 찾아오라고 초대했던 그 어르신께서 그때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기도 중이었다.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았는데도 그 주름진 온화한 얼굴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깊게 농익은 지혜로움이 흘러넘치는 듯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기도했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 수년 이상 간구를 드렸으나 응답이 없어 초조하던 차였지. 그런데 어느 날 세미한 음성의 응답이 있더구나.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이 주시는 메시지에 집중했단다.”

  ‘어르신은 어떤 내용으로 주님께 기도했을까?’

  문득 윤혁은 몹시 궁금했다.

  “어떻게 응답을 주셨나요? 하나님 목소리를 구분할 방법이 있을까요?”

  “허허, 육성으로 직접 계시가 왔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이 절레절레 손을 저었다.

  “주님 말씀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분간해야만 이해된단다.”

  “흐음, 그야 그렇겠죠.”

  하지만 깊이 체험해보지 못한 윤혁으로서는 여전히 감이 안 잡혔다.

  “최근 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이곳까지 이끌려왔단다. 그분 섭리를 배우다 보면 우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분별이 생긴단다. 이번 이끄심의 경우 내가 젊은 시절 일하던 곳 중 가장 큰 의미와 보람을 느꼈던 곳 중 한 곳으로 가보라는 생각이 문득 묵상 중에 전달되었지.”

  “그곳이 이곳인가요? 어르신께서는 무언가를 찾고 계셨던 건가요?”

  이에 노인은 잠시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젊을 적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뛰어다닌 땅 중에는 이곳 한반도 지역도 있었다. 현재는 통일되어 자유가 임했지만, 그 당시 북쪽 지역은 복음을 향한 탄압이 심했다. 몇 차례 정권 붕괴가 있었음에도 유독 기독교 핍박 문제만은 잘 해결되지 않던 고질적인 지대였지. 그 험한 방벽을 뚫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던 시절이 떠올랐다.

  “여러 선교지가 있었고 다 의미가 있었지. 하지만 왜인지 이곳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구나.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아왔지.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인도를 받더니 나도 모르게 이 기도원까지 이르렀구나.”

  “정말 신기하네요.”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인도하실 때도 있구나.’

  솔직히 말해서 어떤 식으로 해야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윤혁은 잘 몰랐었다. 적당한 때가 되면 그분 방식대로 이루어주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기다려도 좀처럼 기도의 해답을 얻지 못했던 경우도 수두룩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어르신께 그 원리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

  “항상 그분은 그분 나름의 방법대로 인도하고 응답하시지.”

  윤혁의 마음에 답하여 노인이 말했다.

  “그분의 자녀들은 말할 것도 없지.”

  노인이 소탈하게 미소 지으며 윤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만 우리가 귀가 어두워서 그분 대답을 놓칠 때가 많단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처럼 확실한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혹시 자신은 믿음이 부족해서, 혹은 올바르지 못한 모습이 있어서 주님의 응답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자 윤혁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주님께서는 보혈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신단다. 영적 갈망, 용기와 사랑, 참된 기쁨, 삶의 의미까지도.”

  “그건 알지만⋯⋯, 잘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은걸요.”

  노인은 조용히 청년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나이 든 탓에 조금 차갑긴 했지만, 마음속의 온기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윤혁에게는 조부모님들이 없었다. 만약 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주님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속내를 뚫어 보는 어르신의 말을 듣고 잠깐 놀랐다.

  “다만 그 방향을 아직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지만.”

  혹시 독심술이라도 하실 수 있는 걸까?

  “허허, 너는 표정 위로 속마음이 금방 드러나는 편이구나.”

  다행히 윤혁만의 멍청한 상상이었다.

  “그런 얘기 많이 듣지 않니? 속을 알기 쉽다던가 말이다.”

  “놀리지 마세요.”

  “미안하다. 나도 비슷한 나이에 그런 고민을 했었단다.”

  어르신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막상 주님께 구원을 받아서 감사했는데, 그 뒤로 헌신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지. 널 보니 내 과거 모습이 많이 떠오르는구나.”

  그러자 윤혁도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기도하셨는데요.”

  조심스럽게 질문을 화두를 열어보았다.

  “한국까지 오신 건 무언가를 찾고 있으셔서 그러신 것 아니셨나요?”

  “물론 그렇긴 하지.”

  그 노인은 의미심장하게 잠시 뜸을 들였다.

  윤혁은 조용히 그의 다음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중요한 임무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 분주히 헤매고 있었거든.”

  “임무요?”

  “다음 세대 후배에게 인계해줄 사항이 있었단다.”

  대체 무슨 임무를 맡기려고 인계할 사람까지 찾을까?

  노인의 말이 모호해서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 천천히 설명해주마. 당장 네가 받아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다.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도 있을 테고 말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괜히 더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일인가요?”

  뭘 인계해주신다는 걸까? 지식? 경험? 교훈? 아니면 다른 유산?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운명과 직결된, 극히 중요한 일이지.”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씀하시는 바에 대해 감이 잘 잡히지 않네요.”

  순간적으로 혹시 자신이 속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너무나도 낯선 이야기들을 듣자니 혼동되었다.

  “강윤혁이라고 했던가?”

  “네.”

  “혹시 같이 사는 가족 이외에 다른 혈육이 있니?”

  돌발 질문에 윤혁은 꽁꽁 얼어붙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긴 한 모양이구나.”

  노인 말대로 윤혁은 표정 숨기기에 재능이 없었다. 윤혁에겐 조부나 친척이 없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고아여서 피붙이가 전혀 없었다. 당시 혼돈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럴만한 사유는 많았다. 그러니 노인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면 ‘아니요’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윤혁은 양심에 민감한 사람인지라 차마 거짓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널 쉽게 파악했단다. 너는 거짓말을 잘 못 하지.”

  노인이 유도신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미리 알고 떠본 것인지 알 길 없었다.

  “만일 친척이 있었다면 굳이 대답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겠지.”

  ‘이분은 두뇌 회전력이 장난이 아니구나.’

  어떻게 편안한 인상에 저런 예리함을 숨겼단 말인가.

  “혹시 배다른 형제더냐?”

  움찔하는 움직임을 노인은 포착했다. 윤혁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맙구나. 추측만 했었거늘, 네가 알아서 확인해주었구나.”

  “제대로 당했네요. 어르신께서 미리 알고 오신 줄 알았는데.”

  점차 어르신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나쁜 분 같지는 않은데.

  “오해하진 말아라.”

  그는 다시 한번 뜸을 들였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했다.

  “기계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더냐?”

  “그걸 어르신께서 어떻게 아셨죠?”

  “단순한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니까.”

  더 거대한 계획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큰 이변이었지.

  “그때의 넌 운 나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아니라 표적이었단다.”

  윤혁은 상대가 진실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도대체 그런 일들을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다급한 모양이구나.”

  “실례지만, 어르신께서는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요?”

  제 형제에 대해서, 기계 이변에 대해서 말도 듣지 않고 알고 있는 그를 수상쩍게 여기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이에 노인은 평소의 친근한 말투 대신에 진지하고 무거운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너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쉽구나.”

  “하, 하지만!”

  “나와 만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단다.”

  사뭇 진중하고 무거운 경고였다. 왠지 모르게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를 찾는 자들이 있다. 아직은 그들에게 발견될 때가 아니라서 말이지.”

  다시 말해, 아직은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뜻.

  “누군가가 어르신을 추적하고 있나요?”

  “현상 수배는 아니란다. 내 정보 때문에 날 원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노인은 태연한 기색이었다. 윤혁은 다시금 질문해보았다.

  “형님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요? 혹시 그분이 어르신을 찾는 중인가요?”

  “네 덕분에 내 추측을 확신하게 되었구나. 고맙다.”

  노인은 대답 대신 계속 모호한 답변만 주었다.

  “네 형에 대해서 많이 궁금하겠지?”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지혜로운 일일까요?”

  “이미 그쪽에서 너에게 직접 접촉했나 보구나.”

  그의 질문에 윤혁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뭐, 그렇다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어쩌면 나도 이미 그에게 포착되었는지도 모르지.’

  노인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는 이 늙은이의 다음 행보를 일부러 기다리는 것일까?’

  그는 한참의 상념 후 청년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 됐구나. 너도 네 형에게 다가가거라. 그와 가까워져서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알아보렴. 가능하면 네가 궁금했던 모든 것을 그에게서 알아내거라. 네 눈으로 직접 알아봐야만 올바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놀라웠다. 윤혁이 생각하는 계획과 일치한 의견이었다.

  “현 세계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보려면 그와 접촉해야겠지?”

  “어르신은 어떻게 형님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아시는지요?”

  형님의 추적까지 받는다는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허허, 일단은 여기까지. 일단 그자를 만나보거라.”

  노인은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하듯 자상히 윤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그를 만나고 난 뒤에 보자꾸나. 궁금증은 그때 가서 풀어주마.”

  그렇게 짧은 말만 남기고 노인은 자리를 떠났다.

  ‘이상하네.’

  너무 의아스러운 대화의 연속인지라 당혹스러웠다.

  ‘내가 설마 천사라도 만난 건가?’

  기이하리만큼 수상함이나 의심이 안 들었다. 물론 그가 이복형을 비롯해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아는 것은 신기했으나 이상하게 노인에게서는 위험한 감이 들지 않았다. 속셈을 갖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감을 믿는 게 좋은 태도가 아닌 건 알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어떤 신령한 인도에 이끌린 만남으로 치부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딱히 손해 볼 일도 없으니까.

  윤혁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오늘 만남을 곱씹었다.

  ‘어르신은 내 속내나 사정을 무서울 정도로 잘 파악했어.’

  마치 형님처럼.

  ‘아니, 형과는 미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그 사람은 기이하고 두려웠다면, 어르신과는 마음이 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

  일단 먼저 스스로 찾아보고 판단을 내려야겠다. 리온과 어르신이 말한 대로.

 

 

 

 

 

 

***

 

 

 

  투명한 재질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험관 안에 맑은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신경 다발처럼 생긴 얇고 가는 섬유들이 마치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처럼 뻗어 있었다. 섬유들은 서로서로 연결돼 복잡한 그물망을 이룬 뒤 이내 하나의 중점을 향해 일제히 모여들었다.

  촉수의 끝이 닿는 곳에는 물체가 하나 있었다. 사람의 형상처럼 생겼으나 검은색 물체였다. 이따금 물체 안쪽에서부터 여러 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검은색 표면의 질감은 마치 액체 상태와 고체 상태를 오가는 특수 물질과도 같았고 입자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유리관 바깥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들이 있었다. 기계들은 유리관과 그 내부 물체와 연결된 상태였다. 경기장보다도 몇백 배는 넓은 실내 공간, 그 내부에 채워진 무수한 물품과 첨단 실험 장비와 특수 에너지원과 양자컴퓨터들이 저마다 얽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었다.

  마침내 신호음이 들렸다.

  {워리어 ‘비숍’, 생체 활동 회복 완료.}

  {각성 상태로 전환합니다.}

  중앙부에 있던 메인 컴퓨터가 생물체의 생체 징후가 회복됨을 알렸다.

  곧 이제 내부에 봉인된 실험체가 깨어날 것이다.

  인류연합의 가장 강력한 단일 소형 개체 병기 중 하나가.

  콰아앙.

  굉음과 함께 유리가 깨어지면서 증기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커다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묻어 있던 칠흑 같은 검은 물질은 녹아 없어졌다. 그 안의 물체는 영락없는 인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으로 꽉 짜인 사람.

  “벌써 끝난 건가.”

  깨어난 그것은 따분한 듯 하품을 내뱉었다. 그는 흠뻑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물을 털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임에도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어색함도 없이 실험실을 걸어 나갔다. 그를 호위하기 위한 전투 형 로봇들이 일렬로 복도에 대기 중이었다. 호위보다는 감시라는 편이 옳겠지만.

  “젠장, 언제까지 이따위 감시 받는 생활을 해야 하나?”

  남자가 외부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자 안드로이드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신체검사와 검문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의 험상궂은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이내 그는 로봇의 목덜미를 쥐어짰다. 그리고 멱살을 잡은 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최고급 신소재로 만들어진 군용 로봇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겼다.

  “거슬리는 짓 보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기억 안 나?”

  포악한 입술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숍께서도 다른 ‘바이오닉 솔져’ 들과 같은 규칙의 적용을 받습니다.}

  “호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내 앞에서 설교하는 건가? 깡통 주제에?”

  살벌한 남자의 낮고 차가운 중저음.

  감정 없는 로봇 프로그램조차 위협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거기까지. 인류연합 대표께서 분노를 자중하라고 하셨을 텐데요?}

  이번에는 여성형의 다른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타나 남자를 만류했다. 양산 타입과는 다른, 최신 모델의 전투 병기이다. 비숍이라 불린 그 남자는 마지못해 로봇을 찌그러트리던 손을 내려놓고 혼자 분을 삭였다.

  “쳇, 휴가도 없이 매일 부려 먹기만 하는 주제에.”

  {당신은 연합에 단 넷뿐인 ‘얼티밋 워리어’. 인류 무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로봇은 차분히 대응했다.

  {당신 직분이 연합의 신뢰를 받는 무거운 자리임을 자각해주시죠.}

  “닥쳐.”

  괜히 심통이 난 비숍은 툴툴거렸다.

  “그건 그렇고, 그 자식은 왜 없지? 이곳에서 함께 점검받던 것 아니었나?”

  {워리어 ‘룩’ 말씀입니까?}

  “걔 말고 또 누가 있어. 잠들기 전까지는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룩. 얼티밋 워리어 급 생체병기이자 비숍과는 악연 중의 악연.

  둘은 성향도 정반대에다가 툭 하면 싸워서 함께 징계를 받곤 했다.

  {‘룩’은 지구로 송환되셨습니다.}

  “그 녀석이?”

  {대표님께 개인적 임무를 전달받은 것 같습니다.}

  “뭐라고? 아니, 킹이 왜 그 녀석을 지구로 불러?”

  비숍은 심히 어이없어하며 항변했다.

  “굳이 능력을 제약받는 지구 대기권 안으로? 그 무슨 전력 낭비냐?”

  {저희는 내막을 잘 모를뿐더러, 알아도 발설할 수 없습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화를 내려던 비숍은 잠시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고민했다. 은하계를 돌아다니면서 전전한 지 벌써 십 년이다. 지금까지 본성 땅을 밟아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게 일 년 전이었지.

  “나도 그곳으로 찾아간다.”

  {특별한 사유 없이 투입되셨다가는 징계받으실 텐데요?}

  “난 당장 맡을 임무도 없어. 마침 휴가라도 거기서 보내지 뭐.”

  {저번처럼 힘을 남발하다가 사고를 내시면 곤란합니다.}

  {게다가 그곳 사람들에게는 바이오닉 솔져의 존재가 비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로봇들은 마치 인격이라도 지닌 존재인마냥 인간을 진지하게 꾸짖었다.

  “아, 잘 알았어. 그러니까 잔소리는 그만하라고.”

  남자는 귀를 틀어막으면서 로봇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룩 그 자식이 무슨 일을 맡았는지는 모르지만 혼자서 재미있는 꼴 보게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이참에 나도 잘나신 킹 얼굴도 좀 뵙고 말이야.”

  여성형 전투 로봇은 앞으로 벌어질 귀찮은 일들을 떠올렸다.

  뒤처리할 다른 로봇들의 고생길을 생각하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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