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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1회 초인들의 세계 Ch 20. 제로원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05 | 회차평점 0 0

 

 

 

 

 

Chapter 20. 제로원

 

 

 

 

 

 

  카이젤은 거대한 슈퍼컴퓨터들의 집합체 앞에서 각 섹터 및 우주 식민지에서 모인 데이터들을 최종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는 실험 결과물들을 통폐합하여 여러 공식을 가뿐히 연산한 후, 성공적으로 완수된 사업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분류하였다. 무수한 천체 급 인공지능들이 옆에서 보조하였다.

  {프로젝트 ‘물질 복제 Class XI’ 최종 확인 완료.}

  {프로젝트 ‘암흑 에너지 11단계 순수 분리’ 최종 확인 완료.}

  {프로젝트 ‘블랙홀 기반 게이트 생성’ 최종 확인 완료.}

  오늘로써 한 달 사이에 진행하던 세 개의 메인 프로젝트 연구가 완료되었다. 실험부터 모델링 및 실용화까지 전 과정이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에다 메인 프로젝트와 연관된 각종 보조 연구 및 응용 산업들까지 더하면 오늘만 수천 개 이상의 성과물이 확보될 예정이었다.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붉은 머리의 비서 데미안이 축하의 말을 전하였다. 그는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리 호들갑 떨 성과가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수년간 대표가 직접 추진해온 일들은 항상 실패 없이 신속히 완료되어왔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 앞으로 ‘독립형 증식 플랫폼’도 제작해야 하는 데 갈 길이 아직 멀어. 십 년, 어쩌면 그 이상 소요될지도 모르겠군. 지금보다 더 빨리 성장하지 않으면 기술 문명 발전 속도를 단축할 수 없겠지.”

  흑발의 남자가 홀로그램 화면들을 주시하면서 손가락으로 입을 매만졌다.

  그의 차가운 황금색 눈동자에는 만족감이 조금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지금도 이미 충분합니다. 대표님이니까 이런 공상 과학 같은 일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지, 다른 초인들이었으면 수백 년 이상 발버둥 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었습니다. 목표를 이루기까지 대표님께 필요한 건 시간뿐입니다.”

  최고 상관부터 가장 낮은 부하들에 이르기까지 잔인하리만큼 공평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데미안. 그는 아부를 절대 하지 않는 인간이다. 주인인 카이젤을 향한 이 평가도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론이었다.

  “그래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최대한 앞당겨봐야지. 독립형 증식 플랫폼이 상용화되면 물리적 우주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우선 3차원 공간, 그 이후로는 상위차원과 더 위의 상위차원까지도 넘어서야 해.”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할 때 보이는 신중한 살기가 눈에 스며들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듯 손을 천천히 쥐었다. 마치 하늘의 모든 별을 자기 손아귀에 쥐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듯이. 그의 금안은 지극히 냉정하고 차분하고 신중했다.

  “그러면 이번에도 사다리를 걷어차실 예정입니까?”

  “조금 적절치 못한 표현이로군.”

  잠정적인 분열의 가능성을 예방한다고 해야겠지.

  카이젤은 빙긋 웃으며 비서의 답변을 정정해주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다리를 걷어찬다.

  원래는 부유한 상류층이 중산층의 성장을 막는 경제적 횡포를 표현하는 의미이다. 카이젤의 정책도 약간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는 항상 우주건 기술이건 무엇을 손에 넣으면, 인류연합 외에 다른 개인 세력이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자원과 영토를 미리 선점해버리곤 했었다.

  “어차피 다른 초인들 실력으론 현 기술 10분의 일도 못 따라잡을 텐데요?”

  “우주는 넓지. 통제에서 벗어난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

  대표는 딱 잘라서 냉담한 답을 내렸다.

  “앞으로 우주 인구가 늘어나기 전에 선점 조치를 해두는 편이 좋아.”

  데미안은 과연 그다운 발상이라 생각했다. 비판하거나 욕할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찬양할 생각도 딱히 없었다. 단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라는 점만 동의할 뿐. 그의 상관은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도 당분간은 야근을 좀 피해야겠어.”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비서는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상관을 쳐다보았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지.”

  일밖에 몰랐던 인간의 입에서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극히 온당한 말인데도 데미안은 대표의 말을 의심했다.

  “하지만 친구로 여기는 분도 별로 없으시고, 독거 중이시지 않습니까?”

  “하하, 너무 신경 쓰지는 마. 내게도 사생활이란 게 있으니까.”

  카이젤은 간만에 즐거움과 호기심을 얼굴에 띄웠다.

  ‘녀석이 찾아오면 집에도 사람 사는 느낌이 좀 생기려나?’

 

 

 

 

 

 

***

 

 

 

  두 청년이 벤치에 앉았다. 둘은 미팅 겸 아침 조깅으로 도시 주변을 몇 바퀴 뛰던 참이었다. 한 시간 달리자 힘이 소진되어 버렸다. 윤혁은 친구 리온에게 물병을 건네었다.

  “체력이 좋네. 전혀 지쳐 보이는 기색도 없고.”

  윤혁이 감탄했다. 자신보다 연약해 보이는 데 의외였다.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며 고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나 봐.”

  리온은 감사를 표한 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 내일이면 출국이라고?”

  “응.”

  리온은 윤혁이 떠나는 곳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

  “지구의 수도라던데? 정확히 어느 곳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어.”

  공식적으로는 아직 세계 수도는 없었다. 비록 각 국가가 허울뿐인 껍데기로 전락했다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연합이 재건된 이후, 그들은 국제적인 재편을 벌여 모든 권한을 독식했지만, 대중에겐 그들의 운영방침과 조직 내부 구조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인류연합의 중추에 관해서는 더욱 베일에 싸여있었다.

  “리온, 너는 인류연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윤혁은 리온에게서 종종 다른 나라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 내용을 보면 썩 세계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을 만한 일이 없었다.

  “증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뢰하지는 않아.”

  “혹시 예전에 그들과 연관되어서 나쁜 일을 겪은 건 아니고?”

  에이든의 어머니, 아버지, 형이 이집트에 있던 당시 화재 폭발 사고로 한 날에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게다가 에이든의 친형이라는 사람은 리온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같은 사부를 둔 동료였단다. 리온에게 있어서는 꽤 가슴 아픈 기억이리라고 여겨졌다.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아.”

  “불편하면 이야기 안 해도 돼.”

  “괜찮아. 참고로 현 인류연합 수뇌부가 직접 관련된 건 아니더라.”

  리온의 맑은 미소에 언뜻 수심이 스며들었다.

  ‘조금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지만.’

  비단 그날의 사고만 걸리는 건 아니었다.

  리온은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러 수년을 돌아다녔다. 별다른 외부 경제적 지원도 없었고 현지인들이나 해당 지역의 종교 세력의 악의적인 증오도 많이 받았다. 이렇듯 그는 어릴 적의 고난을 뛰어넘는 어려움과 위험을 몸소 감수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런 고난의 여정 중 세계 정부는 온당한 조율을 손 놓은 채 핍박을 방치하기만 하였다.

  “세계 정부는 나 같은 선교사들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겨.”

  “무장도 없는 선교사들을? 포교 활동의 자유는 보장되는 거 아니었어?”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그는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너 혹시 세계단일정부가 인간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통일 요소가 뭔지 알아?”

  밝아 보였던 리온이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거대한 적을 앞에 둔 것처럼 경계심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었다.

  “종교야. 기존 모든 종교를 무리 없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이슬람, 불교, 가톨릭, 심지어는 개신교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를 버리는 추세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래도 종교란 건 언제든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요새 종교 화합이니 통합이니를 주야장천 외치는 것도 그 일환이려나?”

  윤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비슷하겠지. 물론 인류연합 입장에서는 종교 따위는 무시해도 얼마든지 세계를 통제할 수 있어. 하지만 큰 갈등 없이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세계의 통합을 추진하려면 어느 정도는 종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둬야 하거든.”

  참고로 리온의 사부라는 인간은 인류연합과는 조금 다르되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지닌 종교관을 가졌었단다. 복음주의자들과는 극과 극의 차이였다나. 아마도 두 사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대척점에 있었던 듯 했다. 사부를 거론하면서 리온은 의분으로 이를 악물었다.

  “종교의 통합이라.”

  윤혁도 친구의 공분을 공감했다.

  “그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진리와 거꾸로 가는 방향이지.”

  안타깝게도 대부분 교회는 여기에 타협하거나 흡수되어 버렸고 이미 진리를 배반한 상태였다. 배교는 현재진행형으로 진행 중이었다. 반대로 종교 통합과 희석은 날로 전성기를 갱신하였다.

  “과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수백 년간 기독교가 서서히 배도를 했던 것처럼 지금 시대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중이야.”

  “나도 불쾌해. 어쩌면 우리도 부모 세대에서 성경 가르침대로 올바른 믿음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신앙을 갖는 것조차 어려웠을 거야.”

  하마터면 진리를 분간하지 못 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리온처럼 아직 깨어있는 신실한 신자들은 이러한 종교 통합의 움직임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각국에서 발 벗고 나섰다. 뜻 있는 자들은 마지막 시대가 다가옴을 인식하고 최후의 의로운 싸움을 감당하기 위해 편안한 고향 땅과 집을 제쳐두고 한마음으로 연합했다.

  그렇게 하여 여러 선교팀과 각 지역 개척 교회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자는 의지로 움직였다. 그들은 안락한 생활 대신 선교, 훈육, 가르침에 모든 걸 걸었다. 핍박도 개의치 않고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통신 기술의 급속 발달은 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국적 관계없이 바른 뜻을 지닌 자면 어디서든 뭉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들은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처럼 연합되어 각지에 흩어져 선교하였고 서로에게 현지 정보를 보고하며 전략을 정립했다. 모든 부당한 방법을 배제하고 오로지 비폭력과 사랑으로 활동하였다. 동시에 최대한 현실적 지혜도 발휘하여 모든 돌발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낙담해서는 안 되겠지만.”

  리온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인류의 믿음이 끝물에 이른 게 아닌가 싶어. 심각한 상황이지.”

  깊은 한탄의 어조이긴 했지만, 윤혁은 친구가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알기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아직 그는 직접 발 벗고 나서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

  ‘이제부터라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

  리온과 동료들에게도 훌륭한 소명이 주어졌다.

  그러니 그도 마땅히 자신만의 헌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잘못된 길로 가는 건 막아보자.’

  분위기가 조금 침울해지려던 차에 리온이 화제를 돌렸다.

  “지구의 수도라고 말했던가?”

  “응. 정확히는 본성의 수도라고 했지.”

  “내 생각에는 인류연합의 심장부를 말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도 결국 물리적인 본부는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가장 합리적인 추측대로라면⋯⋯.”

  리온은 조금 감이 잡혔다.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의 도시들.”

  “설마……, 아엘브론과 레뮬로스, 그 두 도시인가?”

  힌트를 받은 윤혁이 단번에 눈치채며 손뼉을 치자 리온이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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