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2회 초인들의 세계 Ch 20. 제로원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06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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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때 많은 도시 기반이 파괴된 이후 대대적인 재건이 연합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현존하는 도시의 절반 이상은 소속 국가와 인류연합의 공통 관할 하에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연합의 권한이 전부이지만.
한편 육지와 바다 영토의 삼 분의 일 이상은 아예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연합의 고유 영토로써 환원되었다. 다른 영토들도 전부 연합의 부속품이었으나 이 삼 분의 일은 아예 공식적으로 지정된 영역이었다.
십 년 전부터 이런 공식 연합 소속 영토에 도시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곳의 도시들은 일반 도시를 능가하는 규모, 첨단 기술, 인구를 단기간에 구축하였다. 이 신도시들은 규모, 경제력, 기술 수준에 따라 분류되었다.
F급에서부터 A급까지는 (예컨대 ‘D-23’ 같이) 알파벳과 번호로 명명됐다.
S급 이상의 특별시들은 따로 특별한 도시 명칭을 소유하였다.
하지만 한 부류가 더 있었다.
일반적으로 특별시이건 아니건 이러한 인류연합 신도시들은 건설 시작과 끝 연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외부에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다가, 5년 전 갑자기 뚝 떨어지듯 만들어진 도시가 둘 있었다. 그것들은 이전까지 건설될 계획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도시들이었다.
아엘브론(AELLBBRON). 레뮬로스(REMYULOS).
두 도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희한한 비밀의 세계였다.
혹자는 우주에서 내려왔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은 아닐까 추정했다.
기이하게도 두 도시는 위성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감지 장치에 위치, 형태, 심지어 존재마저도 감지되지 않았다. 완벽한 불가시 모드가 상시 유지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도시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기권 항로나 해상 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이용해야 한다. 경로는 도시 측에서 완벽하게 통제했으며 그 기술조차 베일에 싸여있었다. 세간에서는 게이트를 이용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대기권 내 소규모 게이트 설치가 과연 가능한지는 논란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비밀의 땅 같지만, 두 도시는 전혀 폐쇄적인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 경제 및 정치의 심장부로서 인간, 물자, 기술의 교류가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장소였다. 게다가 등장 초기부터 도시 인구가 억 단위를 넘겼는데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불가사의였다.
지금도 두 곳은 수많은 소문과 이야기가 넘쳤다. 수백 년 이상 앞선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이 만들었다, 비밀의 왕국이다, 지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류 멸망 이후에 대비하기 위한 최후의 요새다. 이런 류의 근거 없는 설왕설래가 많았다. 내부 지도도 공개되지 않았고 세부 구조 또한 비공개였다. 사람마다 각자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이야기하다 보니 올바른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여하튼 윤혁이 이번에 찾아갈 곳은 그런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윤혁.”
“고마워.”
“나도 곧 있으면 떠날 거야. 마침 외국 지역 교회 방문 계획도 있어서.”
“그래. 꼭 몸조심하고. 기도할게.”
리온은 웃으면서 윤혁과 악수하였다.
“다음에는 동료들도 데리고 올게. 좋은 친구들이니 너와도 잘 맞을 거야.”
“고마워. 벌써 기대되네.”
“기대해도 좋아.”
마지막으로 리온은 한 가지 부탁을 당부하였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 네가 현세대와 관련해 중요한 영적 비밀을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도 좀 전해줄 수 있겠어? 아, 굳이 모든 비밀을 터놓을 필요까지는 없으니 부담 갖지는 마. 그저 우리가 도움이 좀 될까 해서 말이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선교사들에겐 세상의 변화를 영적으로 분석할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정보가 너무도 비대칭적이었다. 선교사들은 정부 측에 항상 감시당하는 데 반해 세계정세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일방적으로 당해오기만 했었다. 리온은 이번 기회에 그 격차를 줄여볼까 생각해보았다.
“그저 최소한의 영적인 분석을 할 정보 정도면 충분해.”
“흠, 스파이 같은 건가?”
그러자 윤혁도 은근 흥미를 느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우니 시대를 올바르게 분별하려면 네 정보가 필요해.”
리온은 윤혁의 역할이 귀중하다며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고마워.”
“별말씀을.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기꺼이 약속을 맺었다.
***
시간이 흘러 마침내 약속한 날이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며칠 내내 여행 가는 아들이 걱정되어 이것저것 잔소리하며 조언해주셨다. 이를 달게 받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미리 나름의 준비를 해두었다. 필요한 것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니까.
약속 시간이 되자 윤혁은 거주 지역 근방의 지정해둔 장소로 향했다.
덩치가 큰 회색 머리 사내가 앳된 얼굴을 활짝 빛내며 웃고 있었다.
“오셨어요, 형.”
“안녕.”
룩은 기분이 좋은지 십년지기 친구처럼 윤혁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룩은 생체병기 출신이라는 이유로 생긴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붙임성이 좋았다. 무거워서 떼어내 보려 했으나 힘에서 밀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요? 좀 웃어봐요.”
“퍽 그러겠다.”
“그래도 형네 형님이잖아요. 뭐 설마 별일이 있겠어요?”
“베일에 감춰진 강력한 권력자이기도 하지.”
마치 고전 문학 ⌜1984⌟에 등장하는 대형(大兄, Big Brother)처럼.
그러니 어찌 경계심과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가 떠나는 곳이 어디라고 했더라?”
윤혁은 확인차 슬쩍 떠보았다.
“아틀란티스, 무, 심지어는 누메노르 같은 별명도 있더라고요.”
전부 다 신화나 소설에 나오는 섬나라 제국들이었다.
“역시 아엘브론 아니면 레뮬로스인가?”
“더 정확한 정식 명칭은 ‘제로원’이죠.”
전설 속에 멸망한 도시 아틀란티스와 무.
톨킨의 소설 속 세계에 등장하는 인류의 전성기 제국, 누메노르.
이번에는 고전 영화 속 기계들의 심장부, 제로원인가?
“작명 센스 한 번 참.”
윤혁의 투덜거림에 룩은 옆에서 키득대며 웃었다.
“형네 형님이 지은 건데 어쩌겠어요.”
“도시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심통이 난 윤혁은 화두를 재빨리 돌렸다.
“위치도 모르는 곳이잖아. 항로나 해로도 없다면서.”
“기다리면 알게 될 거예요.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못 들어가요.”
“그럼 뭐. 무슨 북유럽 신화처럼 워프용 무지개다리라도 쓰려나?”
“비슷해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룩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았다. 반쯤 농담 삼아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그러나 룩은 대단히 진지해 보였다. 어쩌면 속으로 윤혁을 도시에 처음 온 촌놈 정도로 여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왜 이래요, 형. 아마추어처럼.”
“워프나 게이트는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잖아. 원래는 우주에서만 사용 가능한 거 아니었나? 아니면 이번에도 내가 모르는 기술력이 있는 건가?”
“에이, 우주용 게이트라니, 그건 원시시대에 이뤄진 이야기죠. 이미 소규모 안정화 워프, 그것도 사람 대상으로 적용 가능해진 워프가 개발된 지가 언제인데. 물론 지구의 특수 시설들 때문에 제로 원 밖에서는 쓰기 어렵긴 하겠네요.”
“허허, 그것참.”
문명 발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빠르다는 것이 참으로 실감이 났다.
‘조금만 정신 놓으면 금세 시대에 뒤처지게 생겼구나.’
그때 뒤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개를 돌아보니 어느새 회색 단발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기계 형태의 동공을 보아하니, 아마 인간형 안드로이드인 듯했다.
“우와!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출현에 윤혁은 심장이 덜컹했다.
{얼티밋 워리어 룩, 그리고 이쪽은 대표님께서 언급하신 그분이로군요.}
취조당하는 느낌에 윤혁은 잠시 긴장했다.
{실례지만 간단한 신분 및 유전 정보 조사가 필요하니 응해주시겠습니까?}
한때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전 정보가 개인 신분을 대변하는 자료로 쓰이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유전병도 정복되고 의료 혜택 제공도 차별 없이 이뤄지는 마당인지라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활짝 공개하는 데 거부감도 전혀 없게 되었다. 혈액 채취조차 필요 없이 흘린 세포 한 개만으로도 모든 유전 정보를 읽을 기술력이 생기는 바람에 사실상 당사자의 유전 정보 제공 의사는 완전히 무의미해졌지만.
안드로이드는 윤혁의 신분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였다.
“이거 기분은 좀 불쾌한데.”
“어쩔 수 없잖아요. 시대가 원래 이런걸.”
더 이상 개인 정보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게 되었다. 나노머신 치료를 효과적으로 만민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부작용이었다. 나노머신은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하기에 개인별 맞춤 치료를 하려면 각 개인의 의학적 상태가 반드시 확보되어야 했다. 그 때문에 인류는 이미 한참 전에 개개인의 유전 정보 보호권을 포기한 상태였다.
{정보 대조 확인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강윤혁님. 제로원으로의 출입 권한이 인증되었습니다. 즉시 생체 정보와 워프 허가 코드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자신을 AT-Z2039451이라고 소개했다. 그것은 그들이 대표라고 부르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 윤혁을 목적지까지 안내하겠다고 하였다.
“조금 전에 무지개다리라고 말했나요?”
룩이 옆에서 심심하다는 듯 윤혁에게 말했다.
“그랬지? 영화에서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던데.”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워프를 할 거예요.”
그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우선 지금 나눠 준 이 워프 카드를 장착한 팔찌를 착용하셔야 해요.”
먼저 워프 신호를 수신하고 반응하도록 팔에 특수 장비를 착용해야 했다. 마치 유령처럼 투명하고 촉감도 들지 않는, 가볍고 편리한 장비였다. 참고로 팔에 장착한 건 매개체에 불과하고 실제 워프를 가동해 대상자를 소환하는 장치가 도시 안쪽에 있다고 하였다.
“사람 워프는 예전부터 안전성 확립에 우여곡절이 많지 않았나?”
“그건 옛날이야기에요. 이건 100% 안전해요.”
룩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공간 자체의 좌표를 전환하는 방식이라 인체에 영향을 안 주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네.”
이윽고 AT-Z2039451은 올바른 좌표로 실수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룩과 윤혁의 신체를 붙잡았다. 사실 룩은 개조된 신체인지라 별 상관없었지만, 보통의 인간인 윤혁은 처음 워프를 체험할 시 약간의 공간 불확정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매우 미미한 확률이겠지만.
{강제 송환 워프 진행됩니다. 생체 반응 2기. 안드로이드 1기.}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 눈앞에 강렬한 섬광이 엄습하였다.
전신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무뎌지더니 강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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