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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4회 초인들의 세계 Ch 21. 인류연합 수장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09 | 회차평점 0 0

 

 

 

 

 

Chapter 21. 인류연합 수장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넓고 쾌적했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다만 엄청나게 높으신 분이라기에 사치스러운 집을 상상했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치보다는 실용성과 경제성이 돋보였다.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던 모양이다.

  ‘하긴 외부에서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이니.’

  단순하게 자랑할 목적으로 사치스럽게 지을 필요는 없겠지.

  그때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실 쪽으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윤혁도 키가 182cm로 나름 큰 편인데 그 남자는 윤혁조차도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거의 2m에 육박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단단하고 건장한 체격과 무인의 그것처럼 훌륭한 근육이 몹시 인상적이고 근사해 보였다. 단순히 강해 보일 뿐 아니라 미(美)적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윤혁 앞에 나타난 남자의 이름은 카이젤 א. 라흐블뤼크.

  그는 현 인류연합의 대표였으며 초인들의 사회 곧 U-society 조직의 최고 수장이었다. 나아가 그는 자타공인 역사상 존재했던 최강의 인간이자 최고의 천재요 인류의 특이점으로 인정받는 위인이었다.

  “처음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식사라도 함께하지?”

  카이젤은 흡족한 눈으로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만. 식사는 이미 하고 왔습니다.”

  “그래, 아쉽군. 처음일 테니 소개도 할 겸 둘러보지.”

  이복형을 다시 대면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그때 아버지 성한을 만나기 위해서 낡은 식당에 몸소 행차하셨지. 그때 윤혁의 가족은 전부 깜짝 놀랐었다. 이번 대면은 홈그라운드가 바뀌었다. 인류연합 영토의 심장부, 카이젤의 본진에서 그를 마주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그나저나 윤혁은 몹시 부담스러웠다.

  ‘사람이 잘생기려면 저렇게까지 잘생길 수도 있구나.’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다시 보니 새삼 충격적이었다.

  윤혁은 맹세코 지금껏 저 정도까지 훌륭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적응이 안 될 정도로 탁월한 아름다움 앞에서 왠지 이질감까지 느꼈다. 최고의 조각가가 만든 가장 정교한 조각상조차 빛이 바랠 것 같았다. 아마도 저런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하나님만 가능하시겠지.

  카이젤의 기본적인 외양 베이스 자체는 윤혁이나 성한과 제법 닮았다. 다만 아름다움의 격차가 어마어마했다. 사실 윤혁도 나쁘진 않은 편이라지만, 유명한 미남 배우급인 아버지와 비교해서는 한참 모자랐다. 하물며 형은 그런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화려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이었다. 신비로운 오드아이가 신경 쓰였다. 황금색 눈의 동공 위로 동심원을 그리는 엷은 빛의 고리가 선명하게 빛났다. 한쪽 눈은 루비 같은 붉은 색, 다른 쪽 눈은 짙은 푸른색 고리였다. 렌즈를 착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빨려 들어갈 듯한 신비로운 기시감이 뿜어졌다.

  “혹시 네게 무례하게 대한 건 아니겠지?”

  “네?”

  “큐오즈린, 아니 룩 말이다.”

  “아하, 그 사람⋯⋯, 그분 덕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죠.”

  평소에는 애교부리는 대형견이지만 여기선 룩에게도 존칭을 쓰는 게 맞겠지?

  “그래? 다행이군. 네가 지낼 방은 저쪽이다.”

  형이 동생에게 거할 곳을 보여주었다.

  “감사합니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도무지 틈을 찾기 어려웠다. 왠지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속을 쉽게 꿰뚫어 보는 예리함까지. 윤혁으로서는 너무 부담이 드는 상대였다.

  ‘쉽지 않네. 잘 지낼 수나 있을까?’

  그때 생각에 잠긴 그에게 형이 가까이 다가왔다. 잠시 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몸을 마비시켰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만약 산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눈앞에서 포효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크르르르르르르르

  느닷없이 그때 진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인가 의심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허상이 아니었다.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무거운 질량감과 뜨거운 체온까지 함께.

  “!!!!”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윤혁 뒤에 근육질의 커다란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다시 포효를 외치려는 순간.

  “케일. 손님에게 착하게 굴어야지.”

  카이젤이 부드럽게 그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커다란 호랑이는 기분이 좋은 듯 애교를 부리며 고로롱거렸다.

  ‘무슨 기괴한 광경인가?’

  윤혁이 황당해하고 있자 형이 빙긋 웃었다.

  “내 애완 호랑이다. 내 가족인 너에게는 친절히 대해줄 거다.”

  호랑이 주인의 대답이 호랑이보다 더 가관이었다.

  ‘그나저나 호랑이가 애완용이라고?’

  게다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니. 무슨 보장으로?

  -그르릉.

  그 호랑이는 윤혁을 물끄러미 쭉 훑어보더니, 앞발로 살짝 툭 쳐서 바닥에 넘어뜨렸다. 나름 힘 조절을 한 모양인지 아프지는 않았다. 호랑이는 누워있던 윤혁 위에 올라타더니 혀를 내밀었다. 물리는 줄 알고 질끈 눈을 감았는데, 머리카락에 혀의 촉감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촉촉했다. 그루밍이었다.

  “워, 원래 이렇게 온순하나요?”

  “내게는. 다만 내가 적으로 규정한 상대에겐 야생의 본능이 되살아나지.”

  난폭한 사냥개에게 입마개도 안 씌우는 무례한 개 주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는데 그보다 한 수 더 뜨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카이젤이 명령을 내리자 케일이라고 불린 호랑이는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이거 무서워서 어떻게 한 달을 보내야 하려나?’

  부담감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일단 들어가서 쉬어라.”

  “아……, 네.”

  손님맞이를 마친 카이젤은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윤혁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간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아서 영 어색했다.

  “네 방 안에 필요한 건 다 있을 거다. 편의 시설로는 대충 체력 단련실, 구기 경기장, 수영장, 온천, 음악회용 오페라 하우스, 도서관, 영화관 정도는 있으니까 마음껏 즐겨도 좋아. 어딘지 모르면 물어보고.”

  개인 저택에 그런 것들까지 다 있다니. 소시민 강윤혁은 순간적으로 경제 관념에 혼란이 왔다. 하기야 풍요의 절정을 구가하는 때에 시대를 주도하는 선두주자이니 그 부유함의 크기는 이루 말하기 힘들겠지. 앞으로는 더한 것도 자주 볼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

 

 

 

  쉽게 적응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무색하도록 며칠 만에 윤혁은 그곳 생활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지나치게 편리하고 안락해서 도리어 걱정되었다. 이런 곳에 익숙해져 버리면 나중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인지 의식주 이외의 다른 사치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같은 초인이면서도 사교성이 좋은 룩과는 달리, 카이젤에게는 친해지기 힘든, 보이지 않는 장벽이 느껴졌다. 너무 완벽한 사람이라서 거리감도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스로를 남들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초인들은 다 그런 건가?’

  초인은 본래 모든 재능이 한계를 넘어섰기에 평범한 사람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카이젤은 여기서 한 수 더 나아갔다. 그는 다른 초인들마저도 가볍게 내려다보았다. 드러내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확연한 우월감과 오만함이 느껴졌다.

  그는 보통 바깥에서 식사했다. 정치와 비즈니스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동생이 온 뒤로는 최소 이틀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때마다 윤혁과 카이젤은 탁자에서 마주 보고 앉았는데, 그 덕에 윤혁은 적잖은 불편함을 인내해야 했다. 윗사람과 겸상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인류연합 대표야 더 할 말이 있을까? 형제라는 유전적 특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격차였다.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군.”

  “아. 아닙니다.”

  “편하게 말해라. 형이라고 불러도 좋아.”

  “알겠어요……. 형.”

  기어가는 듯한 작은 소리로 겨우 불러보았다.

  저번에 밖에서 형과 마주했을 때는 그래도 좀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홈그라운드라는 위치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지배하는 압도적인 세계의 위용을 보아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형은 간간이 동생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일례로 같이 있을 때는 한국어를 사용했다. 윤혁이 공용어를 사용 가능함에도 말이다. 또 식사할 때도 미리 동생이 무얼 먹고 싶은지 의견을 물은 뒤 요리를 준비하였다.

  학업과 관련해서도 윤혁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형의 배려 덕에 원격으로 대학 강의를 수강하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건물 안 실험실에서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 장비들은 양과 질 모두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집에 혼자 계실 때에도 연구를 많이 하시나요?”

  “이곳 건물이 내 직장이기도 해. 일부러 집을 가까이 둬서 거리상 이점을 둔 거지. 그리고 과학 기술 발전은 나의 가장 주된 임무 중 하나다. 어느 곳에서든 쉬지 않고 연구해야 마땅하지.”

  그 건물 안에는 공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첨단화된 연구소들이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은 출입조차 허가되지 않았다. 윤혁이 대여받은 건 낙후된 여분의 작은 공간뿐이었다.

  종종 윤혁이 자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난관에 부딪힐 때면 형은 잠시 구경하듯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해결 방법을 알려주었다. 몇 번의 손짓만으로도 몇 달간 고생했던 난제를 쉽게 처리해버리니 고마우면서도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카이젤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나 구구단보다도 쉬운 일이었겠지.

  “전공 분야가 어떻게 되시죠?”

  윤혁의 우문에 태연한 현답이 돌아왔다.

  “직책은 인류연합의 대표니까 일단은 정치인이지. 은하계 콜로니들의 소유주이니 경제인이자 경영자이기도 하겠군. 학자이기도 해. 모든 학문 분야에 있어 최정상이지. 특별히 그중에서도 진짜 주력 분야는 자연 과학자나 공학자 쪽이지. 물론 딱딱하게 그런 일만 하는 건 아니야. 예술가로서도 자부심이 꽤 크거든.”

  가히 초인답게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엄청난 프로필이었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면서 지치지도 않으세요?”

  “어릴 적부터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다.”

  별것 아니라는 가벼운 태도였다.

  “대단하네요. 바쁘실텐데.”

  그때 문득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다. 방금 스쳐지나가듯 언급된 ‘은하계 콜로니’, 그 단어가 의문의 생각을 연상시켰다. 그렇다면 유인 콜로니도 이 사람이 관리하는 것인가? 물어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솔직히 눈앞의 이 사람 말고는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절호의 기회이거늘.

  ‘솔직히 그 질문이 가장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부담스러움 때문인지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불편해도 그와 반드시 친해져야 할 명분이 생겨버렸다.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동생 행세라도 해야 할까?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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