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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8회 초인들의 세계 Ch 23. 친선 경기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11 | 회차평점 0 0

 

 

 

 

 

Chapter 23. 친선 경기

 

 

 

 

 

 

  {“주인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모락모락 김이 솟는 따뜻하고 욕조에 느긋한 자태로 몸을 담그고 있던 카이젤은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집사였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집사.”

  카이젤은 허락받은 측근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선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맨몸의 경우에는 웬만해선 어떤 인간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단테 같은 로봇이야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피로는 좀 풀어지셨습니까?”}

  “인공지능 주제에 감상적인 척 한번 잘하는군.”

  {“당신께서 저를 그렇게 만드셨지 않습니까.”}

  못 이기는 척 가볍게 투덜거린 후 카이젤은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확실히 지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물에 잠겨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두뇌 회전과 창조성도 빠르게 항진된다. 평상시에는 막히는 문제들조차 손쉽게 풀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도 잘 이루어지곤 했다. 그렇기에 그는 목욕을 즐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자꾸 잡념이 떠올랐다. 동생 녀석에게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떠들어대서 그럴까? 그답지 않게 속생각을 너무 많이 드러냈다. 원래의 그는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거늘.

  {“도련님과 지내면서 다투거나 하신 건 아니시겠죠.”}

  “아, 그런 건 아니야. 좀 재미있는 녀석이긴 한데.”

  {“이상하리만큼 주인님의 경계를 잘 허무는 것 같습니다.”}

  “그래. 허락 없이 내 틈을 비집고 침투한다고 해야 하려나?”

  {“그래서 불쾌하십니까?”}

  “잘 모르겠군.”

  지금껏 누군가가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던 군림자.

  그런 그가 왜 이리도 쉽게 타인을 자기의 틈에 들어오도록 허락한단 말인가.

  카이젤은 몸의 방향을 돌려서 단테의 눈을 쏘아보았다. 단테는 잠깐 주춤거렸다. 주인에게서 짐승의 패기 같은 섬뜩한 공포감을 느꼈다. 로봇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고 하면 비웃겠지만 단테는 흥미로운 케이스였다.

  “흐음.”

  {“말씀하시죠, 주인님.”}

  카이젤은 로봇의 머릿속을 꿰뚫어 보았다. 단테도 알고 있었다. 저 사람에 심어진 ‘데우스 엑스 마키나’, 모든 기계와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중추. 그것이 존재하는 한 자기 생각과 마음은 주인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를 처음 만들 때 무슨 목적으로 제작했는지 알고 있나?”

  {“잘 모릅니다.”}

  “사람의 인격을 데이터로 복제할 수 있을까 궁금했거든.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 곧 기억과 지식과 의지와 감정과 지각, 그 모든 것을 데이터로 만들면 어느 정도로 구현 가능할까 실험해보았지.”

  그는 그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신경세포)과 보조 신경세포와 그것들 사이의 분자생물학적 기전과 시냅스 네트워크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완벽하게 본뜬 후에 피험자의 정보를 복제해내었다.

  “결과는 불완전했지만.”

  매번 만들어진 결과물은 완전한 사람 인격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흉내 낸 인공지능이었을 뿐이었다. 반복해서 실험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인간에게는 소위 영혼이라는 ‘물질을 초월한 부분’이 존재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물질과 물질의 우연한 작용으로만 설명하려던 구시대의 낡은 유물론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

  “그래서 인격 그 자체를 복제하려는 시도는 포기했지. 하지만 이미 연구를 시작했는지라 그냥 내버리기도 아까웠어. 그래서 인격의 완벽한 복제까지는 안 되더라도 유사 복제라도 시도해봤지.”

  컴퓨터 프로그램과 유사 신경계를 활용한 ‘유사 인격 복제’.

  카이젤은 거기서 더 많이 나아가 여러 응용 버전들을 만들어냈다.

  동일 인격을 무수히 복제하는 분신 기술, 인격의 구성 요소를 일일이 분해하는 분리 기술, 지식과 정보를 섞어 인격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인격 조작, 네트워크를 통해서 해당 인격을 퍼뜨리거나 서버에 융합시키는 정보 기술, 심지어는 여러 종류의 인격을 융합해 더 강력한 정신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비밀리에 많은 획기적인 인격 기술들이 비약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 인간 고유의 존엄성에 흠집이 생기겠지만.

  “넌 다른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과 비슷한 감정과 의지가 있지. 진짜는 아니지만 유사한 느낌은 만들어낼 수 있었어. 생각보다 유용하더군. 원래도 사람에게 있어서 감정과 의지란 높은 창조성을 짜내는 원동력이니까.”

  원래는 인간을 인공지능으로부터 차별화시키던 거의 유일한 장점이 바로 ‘감정과 의지’였었다. 그런데 카이젤은 대놓고 그마저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연구를 성공시켰다. 이는 인류에겐 또 한 번의 도전이자 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람의 정신 체계를 모방해버린 인공지능들이 실제로 이전의 지능만 높던 모델들보다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까?”}

  “완벽히 기대에 충족하진 못해도 제법 성과는 있었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머잖아 앞으로는 솔져마저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젤 본인이 만들어낸 사단이기는 하지만 인간에게는 꽤 큰 도전이 될 시련으로 보였다. 하긴 도전을 받아봐야 인간도 자극받아 성장하겠지.

  {“그렇군요.”}

  단테는 속으로 의구심을 품었다. 주인인 카이젤은 아무 이유 없이 자랑삼아 성과를 떠들어대는 사람이 아니다. 이토록 장황하게 가르쳐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집사를 주인이 똑바로 바라보았다.

  “집사, 인간이 아닌 그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혹시 내가 불안정하거나 공허를 느끼는 것 같은가? 유사 감정을 기반으로 내린 판단을 묻고 싶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너무 무서워해서 정직한 대답을 듣기가 어려워.”

  로봇은 주인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

  잠깐의 무거운 정적이 흐른 후에 단테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은 항상 무언가를 채우고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십니다. 그로 인해 매번 큰 성과와 성취를 거두시지만, 정작 그로 인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인 것 같군요.”}

  인공지능 집사는 느껴온 그대로 대답했다.

  “그래, 고맙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눈을 안대로 가린 한 아름다운 여성이 들어왔다. 은발의 찰랑거리는 머리를 잘 뒤로 넘겨 묶은 그녀는 몹시 황송한 표정으로 그녀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사랑하는 나의 주인님. 노곤하실 텐데 잠시 저에게 맡기시죠.”

  그녀는 매우 익숙하게 주인의 몸의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광활하고 단단한 근육질 어깨에 손길이 닿자 몸이 움찔하였다. 그러나 카이젤은 그녀를 마치 투명 인간 대하듯 무시했다. 손길에는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도 자동 안마기 정도로 여기는 태도였다.

  {“시녀장 루미니아, 오랜만이군요.”}

  “어머, 저도 반가워요. 집사님.”

  카이젤은 시큰둥해 보였다. 마치 여자의 인격 자체를 무존재로 여기듯.

  {“주인님은 인간에게는 몸을 보이지 않으시는데 이래도 괜찮은지요?”}

  단테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하자 태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 그녀는 나를 인식하거나 느끼지 못해.”

  그 말대로, 그녀는 단순히 눈만 봉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카이젤 라흐블뤼크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현재의 그녀는 그저 허공에 떠 있는 상상 속 산물과 교감을 느끼듯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상 속의 카이젤과만 교감을 나누는데 정작 현실의 카이젤과 정확한 물리적 상호작용을 이뤄낸다는 점이 참으로 역설적이고 기묘했다.

 

 

 

 

 

 

***

 

 

 

  전에 보았던 시종처럼 보이는 사람 몇몇은 종종 잊을 만하면 윤혁의 눈에 띄었다. 윤혁은 그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형과는 무슨 관계일까? 어차피 이 집 안에 있다 보면 자주 마주칠 텐데 서로 알아두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이에 먼저 윤혁은 친해져 볼 목적으로 통성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시종이 스스로를 이름 대신 번호로 소개했다.

  “넘버4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본명은 따로 없으신가요?”

  “네. 주인님 시종 노릇 이외에는 다른 쓸모나 역할도 없는걸요.”

  놀랍게도 이 집에서 일하는 인간 시종은 이름 자체가 아예 없었다. 재차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그들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이름 같은 건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단테처럼 인공 지공인 것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한 명도 아니고 전부 다 그렇다고?’

  그들은 열 명 정도였는데, 각자 이름 대신 고유 넘버를 소유했다.

  “혹시 이곳에 오셔서 일하시기 전에는 어디에 계셨나요?”

  윤혁은 넘버5에게 질문했다.

  “기억이 없습니다. 설령 기억난다고 해도 말씀드릴 수도 없고요.”

  대답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현시대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자유인이다.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편리한 문명의 이기와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일에 종속되어 사실상의 노예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심지어 직장이 없더라도 ‘자본 시스템’ 특성상 개인에게 귀속된 자본은 지속적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물질적 부족은 없다. ‘부’의 불평등은 있을지언정 ‘빈’의 불합리는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마당이니 명목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사람이 사람에게 종속된다는 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사람들은 카이젤에게 예속된 노예처럼 느껴졌다.

  “형이 대우를 잘해주시나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누리고 있지요.”

  “주인님처럼 완벽하고 자애로운 분을 모시는 건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이러한 식의 대답들만 돌아왔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부분은 따로 있었으니.

  “그분을 직접 뵐 수만 있다면 더 큰 소원이 없을 것입니다.”

  시종들은 마치 주인을 유니콘 같은 상상의 존재로 여기는 투였다.

  “잠시만. 형은 이 집에서 자주 들락날락하시는데요?”

  윤혁이 취조하듯 따져 물었다.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다고요? 딱히 방 안에 숨어계시지도 않는데요?”

  그제야 도련님 앞에서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넘버7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넘버7은 최대한 말을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회피하려 했지만, 윤혁은 수상한 단서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숨기시는 게 있는 모양이네요.”

  “그게……, 실은 저희는 모두 이 집에서 주인님을 마주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시종 중 하나가 실토하였다.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지요. 밤이든 낮이든 그분과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형은 항상 저녁 시간이면 이곳에 들어오는걸요.”

  윤혁은 몹시 어이없어했다.

  “여러분은 밤 시간과 낮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요.”

  그런데 어떻게 주인과 시종이 아예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저희도 그게 신기합니다. 그분이 이곳에 계신다는 사실은 믿지만, 보고 듣지는 못합니다. 저희 모두 왜 아무도 그분을 뵙지 못했는지 의문이랍니다. 가끔 그분이 투명한 존재, 혹은 신적인 존재가 아닌가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시종은 주인이 지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 일을 행하려면 주인과 의사소통을 이루어야 마땅하거늘. 혹시라도 인공지능 시스템의 메시지를 통해서 명령을 하달받는 것일까 궁금했으나 물어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런 식으로 기계적으로 노동하는 시스템이었다면 굳이 시종을 시킬 필요 없이 로봇을 사용했으면 되었으리라.

  ‘요새는 기본적인 수준의 로봇도 저보다는 훨씬 더 일을 잘할 수 있지.’

  윤혁의 의심이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반복되는 추궁에 결국 넘버7이 어쩔 수 없이 대답을 실토했다.

  “저희는 주인님이 원하실 일을 추측해서 행동합니다. 종종 뇌리에서 생각이 번뜩 스칩니다. 주인님이 이 임무를 내리셨으리라고 상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그걸 마치 주인님이 직접 명령 내리신 것으로 여기며 그대로 따릅니다.”

  이에 윤혁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꼭 신께 계시를 받는 원리와 비슷하게 들리네?’

  신자들도 보통은 저런 방식으로 ‘모호하게 느껴지는’ 마음속 계시를 통해 소통하지 않던가? 육안이나 육성으로 감지하여 계시받는 것이 아닌, 다소 주관적이라고 느껴질 법도 싶은 ‘세미한 음성’을 통한 소통. 지금 저 시종들과 주인의 소통은 흡사 성령과 성도의 소통을 흉내 낸 모양 같았다.

  “영문은 잘 모르지만, 지금껏 항상 그렇게 일해 왔죠.”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다른 시종들도 일관되게 증언했다.

  가끔씩 주인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떠오를 때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주인이 거실에서 쉬고 있는 듯한 심상이 마음속에 느껴지며 그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가보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식이란다. 흡사 감각 기관을 통해 얻은 직접적인 지각 정보가 뇌에 들어가서는 상상과 같은 고등 정신 활동으로 치환되는 현상처럼 들렸다.

  ‘이건 정신과적 병리 현상 같아 보이는데?’

  아니, 애초에 그런 경우가 있긴 하려나? 대상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뇌에서는 그 구체적 시각 정보는 사라지고 그 대신 모호한 망상 형태의 정보가 발현된다고? 이것은 뇌의 정보 처리 과정에 발생한 이상인가? 하지만 그런 기괴한 현상이 여러 명에게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까? 정신과 의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윤혁은 아직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단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곤란한 질문을 드려서 죄송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윤혁은 속으로 나중에 어르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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