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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1회 초인들의 세계 Ch 24. 바이오닉 솔져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14 | 회차평점 0 0

 

 

 

 

 

Chapter 24. 바이오닉 솔져

 

 

 

 

 

 

  각 경기장은 최소 수십 킬로미터는 가뿐히 넘는 큰 지름을 지닌 원형 공간이었다. 윤혁이 보는 건 모니터링 화면이었지만 마치 유리로 내다보는 것 같이 명료했기에 그리 먼 거리 같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관리실 내 삼차원 홀로그램 화면에는 각 솔져를 중심으로 경기장의 모습이 하나하나 동시에 담겨 있었다.

  이윽고 각 경기장에서 무수한 기계 괴수들이 하나의 솔져를 향해서 덤벼들었다. 도저히 연습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괴물 그 자체였다. 원거리와 근거리 무장에 방어력까지 완벽한 공방 일체의 악마들이었다. 윤혁이 영화에서 본 그 어떤 괴수들도 저들의 크기, 힘, 수효에는 미치지 못했다.

  “겁먹지 말고 얌전히 있어.”

  당장에라도 검투사가 맹수에게 다칠까 봐 조마조마해 하며 걱정하는 윤혁. 그의 옆에서 형이 동생과는 전혀 상반되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혁은 순간적으로 형에게서 로마의 잔인한 황제를 겹쳐 보았다.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는 경기장을 짓고 그 경기를 즐기는 무자비한 황제. 근 몇 주간 평범한 형제처럼 평범히 지내다 보니 그의 본 모습을 잊고 있었다. 냉담한 군주의 모습을.

  “처음 봐서 놀라겠지만, 사실 진짜 괴물은 저쪽이 아니야.”

  다음 순간 윤혁은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오닉 솔져들이 자신보다 최소 수배, 최대 수천 배 이상 거대한 기계 괴수들을 맨손으로 단숨에 부수어버렸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민첩함과 운동성도 놀라웠지만, 완력이 더 무시무시했다. 단순히 강한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뒤튼다는 느낌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몸풀기 정도에 놀라면 안 돼. 진짜는 다음이니까.”

  차츰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아까보다 기계들의 크기가 거대해졌다. 그 거대한 몸체에 도저히 거구로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빠른 속도와 가속도까지 선보였다. 더불어 믿기지 않는 반사 신경까지. 게다가 기계들은 액체 상태와 기체 상태와 플라즈마 상태를 넘나드는 신체 재질 변화를 보였다. 무척추동물보다도 관절 동작이 유연했으며 방출하는 화력은 지반을 깨트릴 듯 강대했다.

  그러나 검투사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응했다.

  그들은 마치 몸속에 초능력을 심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초인적 전투력을 발휘하였다. 순간 이동이나 매한가지인 초 신속의 움직임, 일반인의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유려한 무술 동작, 공간을 찢는 관통력, 물리 공격과 빔을 맞고도 견디는 단단한 피부, 그야말로 용을 사냥하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연습 대련은 허무하게 끝났다. 한참을 싸웠음에도 솔져들은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간혹 생채기 같은 상처는 있었으나 그마저 얼마 가지 않아 재생되었다. 싸울 때는 제법 많이 얻어맞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내상조차 없이 멀쩡했다. 오히려 몸을 풀기라도 한 듯 전투력이 더 활성화된 느낌이었다.

  “아무리 생체병기라 해도 그렇지, 물리 법칙을 벗어날 수가 있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생을 보며 카이젤이 웃었다.

  “기계와의 싸움은 어디까지나 몸풀기. 본 게임은 솔져끼리 대결이다.”

  마치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다치리라는 경고의 뉘앙스였다.

  “아마 아까와는 달리 꽤 치열할 거야.”

  덜컥 윤혁은 걱정되었다.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겠죠?”

  “그래. 일단은 힘을 제약할 거야.”

  참고로 지구 안에서는, 특별히 제로원 내부에는 능력 봉인 장치가 있단다.

  “녀석들이 실전에서 쓰는 힘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할 거다.”

  저 힘이 제한된 극히 일부분이었다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하긴 어렵지.”

  “그,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라. 다행히 현재까지는 아직 사망자가 없었지.”

  ‘그 말인즉슨, 이론상으로는 죽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 아닌가?’

  울상이 된 동생을 보고 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격투기 선수들도 치명적인 부상, 심하게는 사망의 가능성도 늘 염두에 두고 싸우지. 이것도 스케일만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아. 유희가 아닌 실전 연습이 목적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카이젤이 알기 쉽게 격투기로 비유했지만, 윤혁은 원래 격투기도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참가자의 자유의지로 겨룬다고 해도 자기 몸을 해칠 수 있는 경쟁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문화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면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해 보지.”

  카이젤이 가볍게 손뼉을 마주쳐 신호를 보내자 경기장들이 진동했다. 로봇들과의 격전으로 바닥이 움푹 파이고 무너진 경기장이 즉각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회수된 로봇들도 원래 형상으로 재생되었다. 특수 형상 기억 재질로 만들어진 데다가 나노기술을 통해 뼈대에 구조 데이터를 저장시킨 덕이었다.

  이윽고 보호를 위한 원형의 거대 배리어가 더 큰 규모로 확장되면서 도시 규모에 이르렀다. 이어서 경기장 주변에 배경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문명을 반영한 배경이었다. 자연환경과 인공물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배치된 배경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라도 하듯 뒤틀리거나 뒤집혀 있었는데, 마치 삼차원상에 미로가 설치된 모양이었다.

  “허상을 실체화시킨 거야.”

  카이젤이 간단하게 실체화 기술의 개요를 알려주었다.

  “원리는 네게 설명하려면 복잡하니까 이 정도로만 알아둬도 돼.”

  “홀로그램이랑은 아예 다른 건가요?”

  “허상 근원이지만 제한적으로나마 물체와 물리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지.”

  “기묘하네요.”

  물론 원리를 알려줘도 윤혁이 이해할 턱은 없었다.

  먼저 S 랭크 교류전이 전개되었다.

  120명의 S랭크 바이오닉 솔져들이 리그 식으로 개인 경기를 주고받았다.

  경기장의 안전성도 시험할 겸 먼저 시범으로 두 명이 출전했다. 한 명은 대머리 남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고글을 쓴 장발의 사내였다. 둘은 묵례를 나누더니 곧바로 격전을 개시했다. 윤혁의 동체 시력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 고속으로 돌진하였다. 둘의 팔이 충돌하자 이내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굉음과 진동이 멀리 퍼져나가며 지형지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엄청나잖아?’

  그 후 그들은 주먹과 팔을 휘두르며 난타전을 벌였다. 동작 자체는 단순한 맨손 무술이었지만 그 위력은 물리적으로 형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로켓보다 빠른 속도로 몸이 밀려나 건물 수백 채를 부수었다. 밀려나기 무섭게 선수들은 대지를 박차고 올라 적을 향해 재돌진했다. 재차 이어지는 충돌. 힘의 충돌이 어긋날 때마다 주변 지형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파괴됐다.

  ‘슈퍼맨들끼리 싸운다면 꼭 저런 모습일까?’

  영락없이 슈퍼맨 대결을 연상시키는 위력이었지만 실제로 구경해보니 그리 신나거나 우아한 전투는 아니었다. 만화 영화에서야 초능력자끼리의 싸움이 항상 흥미롭고 멋있게 그려지는 법이지만, 막상 그런 힘을 휘두르는 자들을 현실에서 보자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울타리 안에서의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정말로 서로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싸움이었다. 윤혁은 그 살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말리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옆에 있던 형이 낮고 무서운 목소리로 다시 앉을 것을 명령했다.

  “피하려 하지 말고 잘 봐둬.”

  왕은 이질적이리만큼 태연하고 이성적이었다.

  “무력(武力)이 주는 공포감의 본질을.”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도 저렇게 살기 위해 서로의 목숨을 노리면서 잔인하게 죽어갔을까? 어떤 로마 배경 영화가 떠올랐다. 서로를 아끼는 부하와 상관, 두 사람이 원형 경기장에 함께 던져져 싸웠었지. 둘은 상대방이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 손으로 상대를 단칼에 죽여주려고 사투를 벌였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눈앞의 격투에서도 그런 류의 진지한 살기가 느껴졌다.

  경기가 종료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이 이어졌다.

 

  곧이어서 S 랭크 120명 전원의 개별 리그전이 동시 전개되었다. 서로가 맞붙는 모든 조합의 경우의 수를 순차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기에 여러 경기장에서 리그전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조종실 내부에서는 그 모두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카이젤은 한꺼번에 경기들 전부를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러나 윤혁의 두뇌와 시력으로는 하나를 관찰하는 것이 한계였다.

  “고글로 보고 싶은 쪽 경기장 채널을 선택할 수 있으니 알아서 선택해.”

  형이 건네준 관람용 고글에는 가상현실 기술이 접목되어 있었다. 특정 경기장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선택한 뒤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 이상으로 실감 나게 체험하는 일이 가능했다. 마치 싸움 현장 한복판에 옮겨진 기분이었다.

  S 랭크에도 세부 분류가 있었다. 최하 3급부터 1급까지.

  가장 하위 급수인 ‘3급 S 랭크 솔져’는 조금 전 첫 전투에서 본 두 사람 같은 경우였는데, 초월적인 스피드와 힘과 내구성만을 지닌 타입이었다. 그들은 총 40명이었다. 40명의 ‘3급 S 랭크 솔져’들의 경기가 리그 식으로 먼저 진행되었다. 살기와 가공할 파괴력이 담긴 대혈전이 펼쳐졌다.

  “역시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나 보죠?”

  윤혁은 저 원리를 도무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일개 사람의 몸으로 어찌 괴수들과 로봇들마저 부수고 주변 지형을 갈아엎는 위력을 낸단 말인가. 개조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관성 조정 장비, 특수 중력 소자, 반중력 형성 장치를 체내 세포 및 기관에 융합시켰다.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지. 그 덕에 솔져는 자신의 몸과 외부 세계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 관성, 기본 물리 작용, 충돌 현상을 제어할 수 있다.”

  참고로 관성이나 중력을 제어하는 기술은 이미 지구에서든 우주에서든 보편화된 기술 중 하나였다. 그 기술 덕에 뉴턴 고전 물리학의 세 법칙의 틀을 제한적으로나마 벗어버리게 된 인류는 우주를 향해 비약적인 도약을 이룩할 수 있었다. 윤혁도 얼추 그런 내용을 들어보았다. 하지만 관성 계열 및 중력계열 능력을 사람 세포에까지 융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바이오닉 솔져들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관성을 조정해 일정 범위 이하에서는 어떠한 타격이 가해져도 몸 입자 배열이 흐트러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물리적 충격을 받아도 손상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체 관성을 마음대로 바꾸어 자신의 질량마저 조절할 수 있었으며 중력을 제어해 허공에서 서커스 같은 화려한 동작들을 선보일 수도 있었다.

 “관성과 중력을 적절히 제어하면 엄청난 속도와 움직임, 가공할 파괴력과 방어력을 갖게 되지. 물리력과 관성의 안정적 제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의 슈퍼 파워를 빚어낼 비법이지.”

  윤혁과 카이젤은 계속 경기를 관람했다.

  그때 특이한 점이 윤혁의 눈에 들어왔다. 강한 힘을 지닌 솔져일수록 광기에 가까운 호전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상대를 제압하고 전장을 휘젓기 위해 태어난 것마냥 광전사의 기개를 보였다. 힘에 점점 취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 같았다. 윤혁은 그 무시무시한 표정들을 하나하나 세밀히 지켜보았다. 긴장감에 당장에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40명이 40번의 리그 식 로테이션을 거친 뒤 대련이 완료되었다. 길게 느껴졌지만, 경기 대부분은 1분 내로 종료되었다. 도합 1시간도 안 되어 3급 S 랭크들의 싸움이 정리되었다. 대련 중 치명상을 입은 자들도 의료 기술 덕분인지 신체 개조 때문이지 순식간에 원상 복귀되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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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시리즈는 기독교적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판타지/스페이스오페라/공상과학 소설입니다. 그러다보니 소재 자체는 매우 폭이 넓고 다양하며 세부적인 양념으로서의 테마도 많습니다. 로맨스, 액션, 전투, 휴먼드라마, 모험, (유사)음모론, 피카레스크 등 다양한 요소들도 부분적으로 함유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독자층도 기독교인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 또한 포함하기에 순수 종교 장르라기보다는 복음과 성경적 세계관이라는 큰 그림을 나타내기 위한 포괄적인 서사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지는, 그렇기에 종종 앞으로도 (당장 겉보기에는) 신앙 생활과 크게 관련없어 보이는 주제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할 것이라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싶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당장 내용적으로 이해가 안 되거나 흥미가 없을 수 있으며 그런 부분이 나오면 그냥 간략히 훌훌 넘어가며 보셔도 좋습니다. 다만, 6부까지 이미 마무리한 작가의 전지적 입장에서 보증해드리지만, 작품 속 모든 요소들 (과학, 철학, 신학, 상상, 악인의 이야기, 선인의 이야기)은 궁극적으로 성경적인 주제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하나로 엮일 것입니다. 당장은 그 퍼즐들의 맞춰짐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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