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회 초인들의 세계 Ch 24. 바이오닉 솔져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17 | 회차평점 0 |
(이전 회차에서 계속)
2급들의 랭킹 전도 어느새 종료되고 1급들의 경기가 곧바로 이어졌다.
1급들은 전부 반투명한 방어용 슈트를 입고 있었다. 우주전에 준하는 격한 화력으로부터 몸을 방호하기 위함이었다. 1급들은 피코머신을 힘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거기에 더해 체내에 삽입된 초소형 특수 엔진들까지 활용하는 솔져들이었다. 그렇기에 거대한 에너지를 마음껏 방출 가능한 1급 SS 랭커들은 가히 재앙이라고 불리기에도 부족지 않았다.
재앙급 싸움이 거듭되자 이제 거울상 공간마저 한계에 다다랐다. 바이오닉 솔져들의 방대한 특수 에너지 집속 공격들은 너무 강대했다. 힘의 난무를 견디지 못한 아공간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붕괴할 징조를 보였다.
“쓸데없이 화력을 너무 높였군. 밸런스를 좀 보완해야겠어. 인간 형태 전투 개체 특성상 창의적이고 유연한 힘의 활용이 중요한데 이번 시리즈는 화력의 크기에 너무 치중하는 바람에 인간형의 장점이 너무 죽는 감이 있군.”
카이젤은 조금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화력은 인정할 만하지만 좀 더 효과적인 힘의 제어에 중점을 둬야 했어.”
이것이 그가 SS 랭크 1급들의 경기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평가였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그는 점점 흥미를 챙기기보다는 체계적인 분석에만 집중하였다. 상위 랭크 솔져들은 인류의 중요한 전략 자산인 만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냉정히 분석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SS 랭킹 전이 마무리되고도 아직 사망자나 그에 준하는 부상자는 없었다.
의료기술과 더불어 생체병기의 질긴 생명력과 재생 능력 덕택이었다.
***
남은 경기는 총 4회로 총 3명의 SSS 랭크 솔져들의 리그 전,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룩과 비숍의 친선 경기였다. 현재 제로원에 찾아온 솔져들 중에는 Ex 랭크가 없었기에 얼티밋 워리어인 룩과 비숍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솔져 랭크는 트리플 스페셜(SSS) 랭크였다.
“지금부터는 불편하면 눈을 가려도 좋아. 잔인해질 수도 있거든.”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요?”
“주요 전력이니 최대한 죽는 일은 막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지.”
윤혁은 이제까지보다 더 싸움이 커지리라는 경고에 기가 질렸다.
심지어 이젠 카이젤도 느긋한 표정을 짓지 않고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조금 위험한 능력이 사용될 거다. 시공간에 간섭하는 능력 말이다.”
“네? 시공간이라고요?”
인간급 개체가 직접 시공간에 간섭하는 힘을 무력으로 사용한다?
“물론 시간이나 공간 자체를 마음대로 조작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아주 미세하게 시공간에 간섭하는 정도지.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기존의 능력과 조합하면 매우 무서운 살상 능력이 돼.”
사실 시공간 관련 과학 기술 자체는 이미 상당히 발달하여 있었다.
더 나아가 광범위한 산업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중이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3대 기술이었으니, 곧 미리 좌표를 분석하여 광년 단위의 장거리를 순간 만에 이동하는 ‘워프’, 고정된 두 좌표에 지속해서 유지되는 통로를 만들어 다수의 물체를 편리하게 이동하게 하는 ‘게이트’, 그리고 상위 차원과 통상의 공간을 연결되는 ‘포탈’이었다.
물론 세 기술 이외에도 다양한 공간 조작이 존재했다. 공간을 일시적으로 압축하거나 확장할 수도 있으며 비틀거나 절단해서 오려 붙이는 일도 가능했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용해 높은 파괴력을 일으켜 행성급 물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고 항성계 내에서 단거리를 초광속으로 순간 이동할 수도 있었다.
시간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과학 기술이 있었다. 아주 짧은 간격의 미래에 벌어질 물리계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확률 관측 기술, 그리고 그런 예측 기술을 인공지능과 연계시킨 미래 예측 시스템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거대한 장치가 있어야 가동 가능한데?’
일개 사람 크기의 소형 개체에 그런 기술을 접목한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아직은 들은 바가 없었다. 물론 공상 과학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버젓이 현실화시킬 정도로 탁월한 능력자라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저런 개조 기술들은 형이 직접 주도한 작품이겠지.’
전에 윤혁과 태헌을 습격했던 초인의 인형들은 생체병기 룩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바이오닉 솔져들이 소유한 진정한 힘에 대해서는 다른 초인들조차도 거의 모르고 있다는 뜻이리라. 아마 카이젤의 단독 프로젝트라고 보아야 옳겠지.
‘그럼 내게는 왜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거지?’
단순한 변덕일까?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동생이라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당최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편, 경기에 참석한 SSS 랭크 솔져들은 모두 고유 이름을 가진 네임드 솔져였다. 솔져는 대개 번호와 알파벳으로 불린다는 점을 생각할 때, SSS 랭크부터는 나름대로 명성을 획득한 개체들인 모양이었다.
이번 친선 경기에 참여한 세 명의 이름은 레비안, 카릴, 샤샤였다.
먼저 레비안이라는 여성은 회색에 가까운 검은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피부가 창백하고 눈빛이 매우 차가웠다. 그리고 카릴이라는 남자는 어려 보이는 외모에 약간 작은 체구를 지녔고 천사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라색의 머리를 한 샤샤라는 키 큰 여성은 약간 성숙미가 돋보이는 외모에 한쪽 머리를 밀어버린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레비안과 카릴의 대련이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경기장 공간이 개편되었다. 정육면체 형태 공간이 무한히 반복되던 거울상 공간이 이제는 수많은 반사면을 기준으로 동시에 회전하였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각도의 거울 공간들이 마구 겹치며 혼잡하게 섞였다. 이내 원래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하좌우로 무한히 펼쳐진 ‘유사-무한 공간’이 구현되었다. 시공간 능력의 여파를 방어하기에 더 적합한 형태로 개조된 것이었다.
SSS 랭크 솔져들은 아까 전의 전사들보다 더 많은 장비를 입고 있었다. 보호복, 방패, 특수 슈트 등 대부분 방어를 위한 장비였다. 전투 위험도가 더 높아졌다 했으니 아마 그에 대한 대책으로 보였다.
이윽고 솔져들 간의 대결이 펼쳐지자 격렬한 진동이 조종실까지 전달되었다. 아 공간 차폐 기술까지 사용했음에도 완벽히 진동이 차단되지 않을 정도로 격한 싸움이었다. 하위 랭커들과 속도, 움직임, 완력 자체도 차원이 달랐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현란한 특수 기술들이었다.
‘우와!’
레비안은 공간을 쥐어짜듯 좌표를 교란함으로써 상대를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기거나 튕겨내는 능력을 지녔다. 또 그 능력을 응용해 거대한 물체나 에너지를 끌어당겨 적에게 가격하거나 반대로 적의 공격을 되돌리기도 했다. 공간의 경로를 휘어서 도주하기도 했다. 거의 워프에 준하는 수준으로 짧은 거리 순간 이동을 선보여 기습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젠 보이지도 않네.’
카릴은 조금 다른 형태로 공간 능력을 활용했다. 그 역시 시공간을 휠 수 있었지만, 레비안처럼 거대한 범위로 사용하기보다는 좁은 영역에서의 휘어짐을 극대화해 그 휘어짐 자체를 무기로 활용했다. 공간 간섭을 이용해 막아낼 수 없는 수준까지 무기의 관통력을 증가시키기도 했고 짧은 거리에서 공간을 단절시켜 물체를 검으로 베듯 갈라버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거대한 규모의 에너지 포격과 메테오 급 질량 무기들을 마음대로 던져대던 레비안 쪽이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점차 카릴의 작은 몸이 빨라지면서 유효타를 모조리 피하였고, 도리어 카릴이 레비안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레비안도 매번 공간 베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공격인 탓에 차츰 팔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말리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위험해 보이는데요?”
당장에라도 누군가가 죽을 것 같아서 윤혁은 조마조마했다.
“아직이야.”
그러나 카이젤은 여전히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점점 싸움이 아슬아슬해지는 데도 도중에 중단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도리어 그는 관측 데이터를 하나라도 놓칠까 몰두하고 있었다.
한편 수세에 몰린 레비안도 거대한 공간 절삭용 검을 활성화해 사방으로 휘둘렀다.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마다 붕괴가 일어나며 가상 무한 공간이 근간부터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카릴이 민첩한 맨손 무술을 써서 반격했다. 그는 검격에 타격받지 않도록 예측 불가의 경로로 단거리 순간 이동을 반복했고 기회를 잡자마자 자기 발아래 쪽으로 공간 압축을 발동해 그 탄성력으로 초고속 돌진을 감행했다. 외모로는 어린 천사같이 생겼지만, 호전성은 오히려 악마를 연상시켰다.
이윽고 날카로운 손날이 레비안의 심장 근처를 관통했다.
“위험하잖아요. 이제 승부도 난 것 같은데 중단해주세요!”
놀란 윤혁이 외쳤지만, 형은 거절했다.
“트리플 스페셜 랭크면 어차피 저 정도 상처로는 전투 불능에 빠지지 않아.”
“하지만!”
“잠깐만 버티면 금방 재생되니까. 실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야.”
그때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다. 레비안의 뚫린 심장 상처 부근에서 검은색 생체조직들이 꿈틀거리다니 수천 개의 거대한 촉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카릴의 팔을 옭아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카릴은 공간 베기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공간 제어 능력을 억제하는 물질 내지는 에너지가 저 검은 생체조직의 세포 속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놀랄 것도 없어. 생체병기인 이상 굳이 물리학적인 무기에 의존할 필요는 없지. 저 신체 변형 형태가 저들의 원래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저쪽도 한 번 봐라.”
카이젤이 동생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세상에!’
이번에는 카릴도 레비안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작은 팔을 거대한 크기로 증폭시켰다. 단순히 팔의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색과 형태도 바뀌었다. 마치 수많은 외골격으로 겹겹이 싸인 괴물의 팔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은 고속으로 회전하며 시공간을 절단했다. 그 후 곧장 레비안의 머리를 노렸다.
촤아아아악.
레비안의 눈은 카릴의 신체 변형 공격에 대응해 섬광을 뿜으며 빛났다. 잠시 후, 보이지 않는 두 힘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근처 공간들이 붕괴하며 특수 에너지들이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엔진 폭주 사태의 기억이 떠오른 윤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바짝 움츠렸다.
“몇 초 후 승부가 나겠군.”
카이젤의 중얼거림이 적중했다. 재생력이 더 높았던 레비안이 더 빠르게 회복한 후, 카릴에게 다가가 자신의 등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날개로 양단해버렸다. 그 위력으로 경기장 전체가 반파되었다. 아무래도 레비안이 피코머신에다가 특수 엔진까지 사용한 것 같았다.
사아아아악.
카릴의 머리통이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대체 무슨⋯⋯.”
윤혁은 화면 속에서 벌어진 그 잔인한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아무리 군인이고 생체병기라지만 인격을 가진 생명체가 단지 ‘실험과 정보 획득’이라는 명목하에 목숨을 잃었다. 분노로 머리가 차갑게 식어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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