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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4회 초인들의 세계 Ch 24. 바이오닉 솔져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1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룩과 비숍의 대결이 메인이니, 그동안은 잠깐 쉬고 있어라.”

  카이젤의 냉담한 말에 윤혁은 얼어붙었다.

  “음?”

  카이젤은 동생이 분노와 적개심을 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가 난 모양이군. 뭐가 그렇게 이상하지?”

  “형!”

  기가 막힌 나머지 언성이 올라갔다.

  “아, 목 잘린 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형의 너무도 태연한 태도에 기가 막혔다. 저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항의하려던 차에 카이젤이 태연하게 반대쪽을 가리켰다. 그는 윤혁에게 다음 장면을 보여주었다.

  “잠시 진정하고 저쪽을 보지 그래.”

  그곳을 본 윤혁은 경악했다. 화면에서 더 기괴망측한 일이 중개되고 있었다. 목이 잘린 카릴의 몸뚱이가 태연히 움직여 자신의 머리통을 줍더니 원래 자리에 그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현실감 없는 끔찍한 광경을 구경한 윤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주, 죽지 않았다고?”

  “미안하군. 많이 놀랐겠어. 저들의 세포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우리의 세포와는 달리 준 영구기관을 따로 함유하고 있다. 체내에서 생산과 복제까지 가능한 나노 엔진이지. 클라우드 방식으로 공명하여 상위 차원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기에 영양소의 보충 없이도 무한히 작동한다.”

  룩을 만났을 때도 태헌이 그런 말을 했었다. 에너지 생산 패턴 데이터를 관측해봤더니 체내에 준 영구기관이 다수 탑재되었다고 했던가? 다시 말해 산소와 영양분을 따로 섭취하지 않아도 끝없이 마르지 않는 에너지원을 지녔다고 했었다. 다른 바이오닉 솔져들도 룩과 같은 원리의 신진대사로 생존하는 걸까? 머리로만 배웠던 것을 실제로 보자니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사람의 머리가 잘렸을 때 죽음이 임하는 이유는 바로 뇌 쪽으로의 혈액 순환이 차단되기 때문이지. 거꾸로 말해서 뇌세포가 혈액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만 있다면, 목이 잘리더라도 며칠 이상은 거뜬히 살 수 있지.”

  “하아!”

  카이젤의 말을 들으며 윤혁은 바이오닉 솔져의 정체성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인격체인 점을 보면 분명 사람은 사람이다만 그런 점을 제외하면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했다.

  ‘신체 개조를 반복한 나머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닐까?’

  아무튼, 둘의 결투는 레비안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카릴은 아주 잠시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지만 움직이고 생존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 보였다. 전투력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 이상으로 복귀될 것이다.

  충격적인 일들을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이 목격한 윤혁은 이미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더 경기를 지켜볼 여력도 없었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형은 나머지 두 회의 SSS 랭크 리그전은 화면에 띄우지 않았다.

  “가자. 이제 마지막 순서야.”

  기운 빠진 그의 어깨에 형이 손을 얹었다.

  “힘든 건 알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험하게 하지는 않으마.”

  그는 위로하듯 동생에게 속삭였다.

  “비숍과 룩의 대결이 하이라이트지. 그들은 무력으로도 히든카드고 SSS 클래스 초인이기도 한 만큼 절대 함부로 다루지 않아. 인류의 전략 자산이 흠집 나는 건 나로서도 사양이지. 둘의 싸움은 적당히 투덕거리다 곧 끝날 거다.”

 

 

 

 

 

 

***

 

 

 

  준-무한 공간은 붕괴 직전이었다. 실제 크기가 무한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편법으로 흉내 공간인 만큼, 과도한 공간 간섭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구 내부에서 싸우는 것은 불안정하겠다고 판단한 카이젤은 무대를 바꾸었다.

  “안타깝지만 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는 없겠군.”

  “비숍과 룩, 그 둘은 지금 어디에 있죠?”

  “지구 바깥. 태양계의 한적한 빈 공간 쪽으로 워프시켰다.”

  “우주요?”

  “자칫 싸우다가 행성이 영향을 받으면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거든.”

  지구 내부에서 그 둘이 싸우면 아무리 지구의 억제력으로 힘을 억눌러도 무리란다. 자칫 둘의 대결 여파만으로 지구의 맨틀과 외핵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제로원의 막강한 방어력 덕에 무너지진 않겠지만 엄청난 위력임은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경기에 등판했던 바이오닉 솔져들과는 확연히 급을 달리하는 존재들임이 분명했다.

  “생체병기인 동시에 초인인 경우는 극히 드물어. 얼티밋 워리어들은 실험체이지만, 선천적 초인들이지. 여타 솔져들과는 넘을 수 없는 격의 차이를 지녔다.”

  카이젤이 이렇게 평했다.

  기계가 발달한 현시대에도 인간이 유용한 전투원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특유의 창조성에 있었다. 특별히 초인은 이러한 창조성에 있어서 매우 우월했다. 따라서 탁월한 창조성에 더해 생체병기로서의 힘까지 지닌 얼티밋 워리어들은 시너지 효과를 통해 보통의 바이오닉 솔져를 압도했다.

  “고글을 받아라. 네 시신경을 일시적으로 룩의 눈과 동기화시켜준다.”

  윤혁은 형이 건네는 얇은 렌즈형 고글을 받았다.

  “너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지.”

  잠시 망설인 윤혁은 무게감 없는 그 고글을 장착했다.

  “참고로 내 것은 비숍과 동기화되어있지.”

  곧 주변 배경이 사라지고 대신 넓은 빈 우주 공간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실제 그 위치에 온 것처럼 착각될 지경이었다. 단순히 시신경만 연결된 건 아닌 모양인지 차가운 우주 기온과 무중력까지 함께 느껴졌다.

  그 순간 고속의 물체가 자신을 향해 돌진해왔다.

  콰아아아앙.

  충격파만으로 주변 소행성들이 찢어져 가루가 되었다. 윤혁의 눈으로는 따라가지 못했지만, 고글의 컴퓨터가 뇌와 간섭을 일으킨 덕에 물체 이동 경로가 저절로 분석돼 인식되었다. 비숍이었다. 그 무례했던 남자. 가뜩이나 평소 모습도 난폭해 보였는데 전투에 취해 광기 어린 눈을 보자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타격이 이어졌다. 단순한 난타전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속도가 빨랐다. 완력도 어마어마했다. 둘 다 공간 능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공간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결정타에 윤혁의 몸(실제로는 룩의 신체)이 후방으로 발사체처럼 빠르게 밀려났다. 배경들이 워프할 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등에 묵직한 물체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바위가 튀는 모양을 보아 위성인 듯했다. 조금 전까지 위성이었던 물체가 충돌과 동시에 가루가 되어 우주로 흩어졌다.

  싸우는 규칙에 제약이라도 있는지 둘은 대부분 몸으로만 격투를 벌였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육체만으로도 일전의 다른 솔져의 싸움을 벌레 싸움처럼 느껴지게 하는 규모인데, 전력을 다하면 얼마나 큰 재난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비숍은 다시 룩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이에 반격하여 룩은 두꺼운 몽둥이를 꺼내서 상대를 후려쳤다. 단순히 단단한 무기는 아니었는지 비숍이 야구공처럼 퉁겨져서 멀리 튕겨 나갔다. 대강 손에서 느껴지는 촉각으로 보아 자신의 물리력을 손잡이에 주입할 때 타격하는 부위가 본래 주입된 물리력의 제곱 이상의 위력을 발산하는 것 같았다.

  비숍도 질세라 철퇴 형태의 비슷한 무기를 꺼냈다. 원리는 비슷해 보였지만 물리력뿐 아니라 특수한 에너지까지 발산하였다. 비숍의 손에서 분출된 뇌전이 철퇴에 의해 더욱 증폭되어서 분출되었다. 수백 겹의 실드가 막아내었지만, 다시금 반복적인 타격이 지속되자 빠르게 깨어져 나갔다. 무기끼리 충돌하면서 거듭 큰 폭발이 발생했고 끝내 무기는 서로 녹아 엉겨 붙었다.

  둘은 다시 맨손으로 서로를 사정없이 팼다. 주먹과 발로 피코머신을 분출시켰고 특수 에너지까지 응축해 서로를 타격했다. 관절은 360도 제약 없이 움직였다. 몸의 길이, 크기, 형태마저 공간 조작을 통해 마음껏 늘고 줄었다. 스치는 충격파만으로도 별을 부술 파괴력이었으나 정작 비숍과 룩 둘은 직접 그 엄청난 타격을 몸을 받고도 끄떡없이 견뎌냈다.

  결투는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대부분의 공격은 물리력 상쇄로 흘려보낼 수 있었고, 상처를 입더라도 상처 입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재생해버렸다. 둘의 실력이 워낙 엇비슷해서인지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 두 시간을 넘기고서야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근소하게 룩의 점수가 더 높았지만, 양쪽 모두 부상이나 전력 손실은 없었다.

 

 

 

 

 

 

***

 

 

 

  친선 경기가 종료되고 방에 돌아온 윤혁은 침대에 걸터앉아 맘을 정리했다.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정보의 관찰. 그 일부를 달성했음에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상식 밖의 일들이 대대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이젤이라는 형이 없었다면, 평생 이런 것들은 존재조차 몰랐으리라. 막상 진실의 파편을 보고 나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시절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인들의 지배를 받는 인류, 대중의 상식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 그로 인해 변해버린 지구와 우주의 구조, 인간의 탐욕에 의해 제작된 실험체, 그리고 지금도 지속해서 진화 중인 생체병기 전투 기술까지. 이제는 공상의 이야기가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아직 난 이런 걸 감당할 채비가 되어있지 않은 건가?’

  윤혁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냥 순응할 수도 없었다. 오늘 본 현 인류의 과학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물질적인 풍요를 얻은 인류는 그 대가로 겸손함을 잃어버렸다.

  윤혁이 고민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던 차에.

  “쉬고 있었구나.”

  막 몸을 씻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는지 머리가 촉촉이 젖은 상태인 카이젤이 동생의 방으로 들어와 간단한 음료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감사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불편했던 윤혁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충격이 좀 컸던 모양이군. 왜 내가 그곳으로 데려갔는지 궁금한가?”

  “굳이 제가 없어도 될 자리였죠.”

  무슨 의도로 보여준 것인지 윤혁도 묻고 싶었다.

  “너도 실은 이런 걸 알고 싶어서 원해서 초대에 응한 것 아니었나? 나와 마주치면서 필연적으로 우리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접했을 테고, 의혹과 호기심이 들었을 테지. 그래서 그 답을 알기 위해 찾아왔겠지. 아닌가?”

  역시 카이젤은 상대의 의중을 읽는 데에는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불편한 진실일 줄은 몰랐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탐구를 그만둘 건가? 편해지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주지.”

  카이젤이 동생의 의지력을 은근 꺾을 심산으로 말했다.

  “내 애완동물처럼 귀염을 받으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호강해도 좋아.”

  “적어도 그게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닌 것 같네요.”

  이미 진실을 보게 된 이상, 예전의 세계관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했다.

  “뭐,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카이젤은 동생에게 가혹한 광경들을 구경시킨 일이 약간은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경기 관람 때 보여준 냉철한 면모도 그의 모습이었으나 부드러움과 온화함 또한 그의 모습이었다. 원래 그는 그 두 면모를 적재적소에 이용해 상대를 구워삶는 데에 능숙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당근과 채찍보다는 진심 어린 배려로 동생을 대하고 싶었다.

  “난 훨씬 더 가혹한 세상의 이면을 일곱 살 때부터 수없이 봐왔다.”

  그는 남들에게 숨겨온 자신의 입장을 동생 앞에 솔직히 드러냈다.

  “네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비열한 음모들과 맞닥트려 이기고 이겨왔지.”

  어린 나이부터 끝없는 권력 투쟁과 처벌의 여정을 겪어온 카이젤.

  “마음이 갑갑하셨겠네요.”

  지금의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기까지 그는 그런 갈등과 진통을 거쳐 왔구나.

  “항상 하던 것이라서 익숙했어.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고, 어른들을 제압하고, 인류를 지탱할 만한 압도적인 능력을 모두에게 입증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아마 세계 뒷면에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치열한 싸움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난전을 감당해온 형이니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모습을 모두 잃어버리는 게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 시절 이야기도 해주실 건가요?”

  “그리 유쾌한 내용은 아닐 거다. 내게도 썩 기분 좋은 기억은 아니거든.”

  오늘 살짝 보여준 진실 일부분도 감당하기 힘든 큰 충격이었다.

  “나중에라도 마음이 내키면 들려주지. 그때도 네가 내 곁에 남아있다면.”

  윤혁은 더 많은 것을 보고도 자신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형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설령 잔인한 진실일지라도. 이제 형이 동생에게 흥미를 가졌던 것처럼 동생도 형에 대해 관심 어린 궁금증이 생겼다.

  “오늘 힘들 때까지 몰아붙인 건 미안했다.”

  의외의 진심 담긴 사과를 듣자 윤혁은 마음이 착잡했다.

  ‘그에게도 따뜻한 양심이 아직 남아있겠지?’

  기대감과 두려움의 양가감정이 윤혁을 괴롭혔다.

  “아니에요. 형도 들어가서 쉬세요. 과로하지 마시고요.”

  “걱정해줘서 고맙군.”

  카이젤은 동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고 방을 나섰다.  

  윤혁은 형의 태평양처럼 넓은 등이 멀어지는 걸 조용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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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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