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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회 초인들의 세계 Ch 25. 유성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19 | 회차평점 0 0

 

 

 

 

 

Chapter 25. 유성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정장 입은 두 소년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좀 더 큰 소년 쪽은 액면가는 영락없이 10대였으나 몸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인 유색인종이었다. 히스패닉, 태평양 군도 주민, 아메리카 인디언 등 여러 인종의 모습이 조금씩 섞인 그는 총명하면서도 야심 넘쳐 보였다. 다른 한 소년은 갈색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보스 앞에서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좋을 겁니다.”

  갈색 머리 소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법 관용 있으신 분이지만, 상하 관계만큼은 분명히 하는 분이니까요.”

  “알겠다. 네가 모시는 분이니 믿을 만한 분이겠지. 나이는 많으신가?”

  인디언 소년은 이제 막 세상에 진출한 탓에 아직 세상 물정에 밝지 못했다.

  “아닙니다. 불과 우리보다 1년 위입니다.”

  둘은 현재 동갑으로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미 우리 세계에서는 나이 같은 건 의미가 없어요.”

  절대적인 실력 우선주의, 승자 독식, 반(反) 우중 정치.

  오로지 그것들만이 초인 시대에 허락되는 지배 철학이었다.

  “우리 부족의 세계와는 조금 색다르군.”

  인디언 소년이 중얼거렸다.

  “네가 스카우트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저 일족과 초야에 파묻혀 살았겠지.”

  “인력 낭비입니다.”

  갈색 머리 소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렇다곤 해도, 출사표 역시 조금은 기대되는군.”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입니다.”

  “그나저나 너마저 고개 숙일 정도면 여간 대단하신 분이 아닌 모양이군.”

  “그분은 세계의 일인자이십니다. 최대한 실력을 어필해 보시죠.”

  이윽고 둘은 전망 좋은 방으로 들어섰다. 방 중앙에 멋진 고급목재로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그들과 또래로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손님을 발견한 그는 방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보스께서도 별 탈 없으셨습니까.”

  “물론이지. 티아라와 레리엔은 초야로 물러났고, 나머지 둘은 축출했으니 당분간은 내부 통합과 세계정세 관리, 그리고 연구에만 몰두해도 되겠지. 마침 새로운 인력도 추가로 마련했고.”

  “다행입니다. 이제 확고한 단일화가 이루어지겠군요.”

  보스라 불린 젊은 남자, 카이젤 라흐블뤼크는 두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며 자리에 앉도록 명했다. 이 자리를 베푼 목적은 갈색 머리 동양인 소년 유성운과 함께 찾아온 두 번째 소년과의 대면에 있었다.

  “새로운 얼굴이군. 이 사람이 네가 말한 그 ‘퀴퀘그’인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출신입니다. 그들의 언어로 지어진 이름을 공용어로 번역하면 ‘태양을 삼킨 늑대’가 됩니다. 퀴퀘그는 어디까지나 제가 개인적으로 부르는 별명일 뿐입니다.”

  성운이 차분히 인디언 소년을 소개하였다.

  “이스마엘과 퀴퀘그라, 흥미롭군.”

  유명한 고전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 백인 주인공이 태평양 섬 부족 출신의 친구와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 확실히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속한 인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성운과 늑대도 주인공들과 비슷해 보였다.

  “당신이 현 인류 제국의 황제입니까?”

  태양을 삼킨 늑대가 당돌하게 카이젤에게 물었다.

  “제국이라는 표현은 조금 거북하군. 나는 그저 재정립된 신(新)인류연합의 대표자일 뿐. 그나저나 당당한 게 보기는 좋군. 실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카이젤이 웃으며 늑대를 시험해보았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만큼 입증해드리죠.”

  이에 카이젤과 늑대는 네 시간 이상 긴 토론을 나누었다. 철학, 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인문학, 역사, 언어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토론은 폭넓고 심도 있게 확장되었다. 이후 둘은 인류의 미래, 문명의 변혁, 세계정세의 흐름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나누며 앞으로 세계를 어찌 통치해야 할지, 인류를 어느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할지, 구체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계책을 논의하였다.

  ‘오호라.’

  카이젤은 상대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구체적인 능력을 확인해보려면 능력치 평가를 해봐야겠지만, 추측건대 최소한 트리플 스페셜(SSS) 클래스 이상으로 추정되는 능력임은 분명했다. 종합적으로 늑대의 지혜를 파악한 뒤 카이젤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일라이저나 성운, 마리아와 비교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라니.”

  “제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보스”

  “놀랍군. 최상위 초인 중에서도 내 최측근이 될 만한 수준이로군.”

  태양을 삼킨 늑대는 묵묵한 표정으로 칭찬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를 등용해서 내 세계를 조율하는 일을 맡기고 싶군. 함께 일해 볼 생각은 있나? 나를 따르면 후회하지는 않으리라고 약속해주지. 분명 네게도 무한한 도약의 기회가 되겠지.”

  카이젤이 초청하였다.

  “성운과 함께 동료가 될 수 있다면 나도 당신 밑에서 일하겠습니다.”

  “그거 좋군.”

  이제 조만간 태양을 삼킨 늑대는 자신의 실력과 자질을 얼마나 입증하느냐에 따라 더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한 성운을 비롯하여 모든 ‘시민의 수호자’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태양을 삼킨 늑대는 새 상관에게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봐.”

  “제가 제 실력을 입증하여 관할 구역을 분배받을 때가 되거든 다른 곳들은 필요 없으니 과거 북미연방의 영토를 전부 제게 내어 주십시오. 당신께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 그 조건이면 충분합니다.”

  “호오, 흥미롭군.”

  인류의 과거 시대에는 한때 초강대국이었던 미연방.

  비록 초대째 위버멘쉬 때 인류연합이 설립되면서부터 연방 정권을 해체당해 뿔뿔이 쪼개졌으며 현재는 권위가 쇠할 대로 쇠락해버린 ‘저물어가는 별’이었지만, 아직까지는 가까스로 위엄과 위세를 유지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인디언인 늑대 손에 넘겨주면 이제 그 흔적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북부 섹터라는 행정 구역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리라. 카이젤은 그 흐름을 내다보았다.

  “민족적 악감정이라고 이해하면 되려나? 재미있군.”

  “사사로운 감정이라고 비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하, 아니야. 그런 트리거로 각성한 초인도 제법 많이 봐서 익숙해.”

  “저는 제 조상들의 몫을 받은 후에야 경영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조상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원한에 대한 값.

  인디언의 후예는 당돌하게 그 삯을 황제에게 요구하였다.

  카이젤은 아주 잠깐 생각했다.

  아무 기반도 없는 무지렁이 청년의 요구로 한 대륙을 건다? 보통 같으면 어리석은 정치적 판단으로 여겨질 법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카이젤에게는 일개 북미 대륙 따위는 값싼 계륵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에게는 과거 초강대국의 위상을 지녔던 인구 집단 따위보다는 한 명의 위대한 인재가 값비쌌다. 늑대에게는 대륙 전체를 아득히 뛰어넘는 가치가 있었다.

  “실력과 비교해서 배포는 좀 작은 편이군. 그런 싸구려 대가 갖고 되겠나?”

  “괜찮습니다.”

  “인류연합의 힘을 가볍게 봤군. 좋아,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카이젤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제안을 흔쾌히 수용했다. 사실 아까울 건 없었다. 어차피 현 지구 국가들은 허수아비이니까. 그리고 이미 모든 권력은 단일화되었고 인류연합과 초인들의 왕 밑에 철저히 복속되었다. 국가를 재편하는 일은 그에게 보드게임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최상위 초인이라는 훌륭한 인재를 수중에 얻을 수 있다면야.’

  물론 마냥 믿고 다 맡기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도 네게 한 가지 조건을 걸지. 실전을 통해 네 자격을 입증해라. 세계를 지배할 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네게 증명하면 돼. 다른 ‘시민의 수호자’들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곧 초인 등급 측정도 치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질을 다 파악할 수 없거든.”

  “저도 간절히 원하던 바입니다.”

  초인 특유의 거대한 야심이 인디언의 패기 찬 표정에 뚜렷이 드러났다.

  “얼마든지 마스터께서 만족하실 만큼 해드리죠.”

  “패기롭군. 인간의 상식을 넘는 임무일 수도 있는데?”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럼 잘 부탁하지, 태양을 삼킨 늑대.”

  카이젤이 흡족해하며 악수를 청했다.

  “너를 ‘잃어버린 세계의 왕’ 중 하나로 편입해주지.”

  “감사합니다, 초인들의 왕. 앞으로 당신을 모시며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늑대는 고개를 조아리며 마스터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

 

 

 

  윤혁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였다. 매일 남의 집에서 무위도식하기는 미안했기에 오늘은 형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기술을 활용할 좋은 기회였다. 요새는 요리 같은 집안일도 로봇들이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정성이 담긴 손맛이란 게 있지 않은가.

  퇴근한 형은 동생이 분주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고생하는군.’

  그는 동생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윤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식사는 무사히 완성되었다. 이 집에서 매일 먹던 호사스럽고 훌륭한 식탁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모양새와 향기가 있었다. 핀잔주던 카이젤도 나름 동생의 솜씨가 입맛에 맞는지 군말 없이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윤혁은 흐뭇해했다. 형이 생각 외로 고급스러운 겉모습과 달리 입맛은 까다롭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란하게 둘이서 식사하던 도중 카이젤이 입을 열었다.

  “내일은 저녁 시간에 집에 손님들이 올 거다.”

  따로 말을 꺼내는 걸 보아 나름 중요한 미팅인 듯했다.

  ‘개인적으로 직접 초대할 정도면 아마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겠지?’

  윤혁은 알아서 피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면 저는 내일은 조용히 피해 있을게요.”

  “그래. 사실 네가 집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건 괜찮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과 너는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듯싶군. 그런 비범한 녀석들 눈에 띄어서 썩 좋을 건 없거든.”

  윤혁도 곧바로 형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심히 평범치 않은, 상식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리라.

 

  이윽고 이튿날이 밝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윤혁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형과 운동한 후, 혼자 집에 남아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형이 퇴근할 즈음이 되자 집 안이 한적해졌다. 평소에 드나들던 시종들이나 안드로이드들도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전날 들은 손님이 찾아오리라는 예고를 기억한 윤혁은 슬슬 눈에 안 띄도록 자신이 생활하는 개인 방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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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번 챕터는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주제가 나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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