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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6회 초인들의 세계 Ch 25. 유성운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2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그때 문이 열리면서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오셨나?’

  서너 명 정도의 대화가 들렸다. 형이 세 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각 잡힌 태도를 보아 부하 같았다. 상하 관계는 분명했으나 흔히 떠올리는 군기 잡힌 모습은 아니었다. 도리어 상사에게 자기 주관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편한 분위기였다. 형 역시 그들을 대등한 존재로서 존중해주는 모습이었다.

  윤혁은 손님들과 잠시 스치듯 마주쳤다. 그들은 못 보던 사람이 있는 걸 발견하고 잠시 호기심으로 바라보았으나, 이내 상관과의 대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윤혁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나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참 있었을까? 방 안에만 갇혀 있기가 조금 답답했다. 약간의 호기심도 들었다. 윤혁은 잠시 지나치듯 다이닝 룸의 모습을 문틈으로 살짝 구경했다. 그들은 식사하면서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세 명의 손님은 풍채가 상당했다. 형만큼은 아니어도 고유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는 것도 같았다.

  ‘다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해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전부 세계적인 유명인들이었으니까.

  ‘상석 오른편에 앉은 분이 Another World의 회장인가?’

  맨바닥에서 창업한 뒤 불과 스물이 되기 전에 아시아 경제 전체와 세계 상당 부분을 독식한 초거대기업 'Another World' 그룹. 현재 세계 경제의 주축 중 하나였다. 그런 조직을 순수 본인 실력만으로 일궈낸 천재, 유성운 회장.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최고의 경영인이자 동시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천재 공학자인 그는 무수한 발명품들과 첨단 기술들을 만든 위인이었다.

  ‘젊은 나이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업적들을 이뤄낸 사람⋯⋯.’

  혹자는 농담 삼아 유성운이란 인간은 미래에서부터 회귀해 과거로 돌아오기를 수천 차례 반복한 사람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었지. 그리고 비단 업적을 떠나서도 Another World 회장은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똑 부러지는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인간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상당한 미남에 근육질 몸매에 젊기까지 했으니 대중에게도 인기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가 입사하게 될 YS테크 역시 Another World의 작은 잔가지였지.’

  유성운 회장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졌다.

  ‘저 사람도 형과 친분이 있는 걸 보니 역시 최상위 초인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 엄청난 실력과 두뇌도 조금 설명이 되리라. 신해가 설명해준 대로 초인이란 존재가 모든 재능에 있어서 한계를 초월한 자들이라면, 그리고 룩이나 비숍처럼 유성운 회장도 초인 중 정상급이라면, 지금껏 보여준 화려한 성공 신화는 어쩌면 저 사람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으리라.

  카이젤과 동료들과 더불어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유 회장은 친화력도 상당해 보였다. 인망이 두텁다는 대중의 평처럼 나머지 두 손님을 카이젤을 잘 연결해주면서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리드하는 중이었다. 카이젤 역시 유 회장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독 두터운 신뢰가 느껴졌다.

  나머지 둘은 유색인종이었다.

  윤혁은 흑인 쪽이 누구인지 곧 기억해냈다. 일부러 얼굴을 잘 드러내지는 않아서 낯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신 아프리카 연합, 별칭으로 사바나 연합의 수장이었다. 21세기 중반부터 경제력이 급부상하기 시작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근세기 들어서 마침내 완벽한 통합과 번영을 이루어내면서 문명과 문화 전반에 걸쳐 대도약을 이루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최근 들어서 그 지역 국력과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랐었지?’

  저 흑인도 유 회장에 비견되는 대단한 실력자인 듯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한 명도 기억이 났다. ‘네오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대륙 연합과는 조금 색다른 시스템을 다스리는 최고 운영자였다. 현재 북미 전체를 장악한 주인이었다. 6~7년 전쯤 세계 질서를 완전히 개편한 뒤 구시대 초강대국의 마지막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려서 이목을 끌었던 자였다.

  ‘과거의 복수를 이루었느니 어쩌니 이야기도 많았지.’

  과거에는 힘이 없어서 수모를 당했던 민족들이 근세기에 들어와서는 세계의 큰 구획을 차지하는 강력한 신세력으로 떠올랐다. 가난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부강하게 발전시켜 세계의 축으로 성장시킨 ‘사바나 연합’의 ‘쿠에시’, 그리고 쫓겨났던 민족의 대표자로 시작해서 과학력, 산업, 경제력으로 기존 패권국을 상대로 승리한 인디언의 후예, ‘태양을 삼킨 늑대’. 형과 동석하고 있는 저 두 사람은 그런 역사를 손수 이끌어내었던 위인이었다.

  ‘거물이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몹시 충격적이네.’

  세 사람 모두 한명 한명은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인데, 형 앞에 서니 일개 부관일 뿐이었다. 새삼 형이 소유한 권력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할지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어쩌면 바이오닉 솔져들 때 보여준 형의 카드 패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올 때 못 보던 분께서 한 분 계시던데요?”

  그때 유 회장이 형에게 하는 말을 듣고 윤혁은 움찔거렸다.

  “크게 신경 쓸 거 없다.”

  “말씀하셨던 가족분입니까?”

  ‘초인들은 무슨 사람 혈연 구분하는 능력도 뛰어난 건가?’

  비숍도 그렇고 매번 한번 슬쩍 본 것만으로도 눈치채는 것이 참 신기했다. 윤혁은 마른침을 꿀꺽 넘기며 긴장했다. 형이 가급적 손님들의 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낭패였다. 오늘은 형에게 제대로 꾸중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눈치가 빠르군, 성운.”

  “저번에 저희 섹터에 찾아오셨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죠?”

  윤혁은 계속 있으면 들킬 것 같아 일단 방으로 물러났다.

  ‘손님들의 눈에 걸리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나?’

  본래 권력자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존재는 자칫 소소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카이젤에게도 곤란하겠지만, 윤혁 자신도 괜히 정치 문제에 휘말리거나 다른 초인들의 주목을 받아서 좋은 것은 없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는 더 이상 주목받지 않도록 조심하리라 다짐했다.

  식사 시간은 한 시간 조금 넘게 지속되었다.

  카이젤과 손님들은 다소 심오하고 중대한 문제들로 한참을 토론하며 상의하였다. 아무래도 중요한 세계적, 우주적 이슈들을 다루는 듯했다. 개인 자택에서 만난 것치고는 너무 공적인 분위기였다.

 

  그 시각 윤혁은 답답함도 해소할 겸 건물에 연결된 공원으로 나갔다.

  며칠 전에 본 무서운 생체병기에 이어 이번에는 여러 대륙을 제 맘대로 조율하는 정치인 겸 기업인들까지 나타났다. 제로원에 와서 비로소 마주하게 된 넓은 세상의 문물들은 좀처럼 감당하기가 어려운 충격이었다.

  ‘앞으로는 뭐가 더 튀어나오든 이상하지 않을 것 같네.’

  상식의 한계를 이미 포기한 윤혁을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때 정중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눈치도 못 챈 사이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상대는 다름 아닌 유성운 회장이었다. 조금 전 언뜻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새록새록 했다.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낫다는 평가가 들었다. 192cm가량의 훤칠한 키, 약간 곱실거리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 머리와 동일한 색의 눈동자, 그리고 영민함이 엿보이는 인상. 워낙 유명하고 높은 사람이다 보니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일단 윤혁은 최대한 정중히 인사했다. 그러자 유 회장은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만류했다.

  “불편하게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위로 따지면 당신 형님, 그러니까 보스께서 훨씬 높은 분이지 않습니까.”

  그 기묘한 온화함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리어 제 쪽이 보스의 가족인 당신께 예를 갖춰야 하겠군요.”

  “천만에요.”

  ‘부담스럽게 무슨 존대냐?!’

  형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당혹스러운 캐릭터였다.

  성운은 잠시 쉴 겸 공원 근처 카페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윤혁에게 선뜻 제안했다. 딱히 거절할 만한 명분도 없었기에 수락하고 따라나섰다. 성운은 윤혁과 대화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몹시 많은 모양이었다.

  “보스의 부친이 저와 동향이라고는 들었는데 아우분까지 있었군요.”

  “하하, 그렇게 됐네요.”

  “타지에서 이런 인연으로나마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게 돼서 기쁩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예의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윤혁의 마음은 불편했다. 룩의 경우는 권력자라기보다는 군인의 신분이었고, 또 워낙 붙임성도 좋고 성격이 털털해서 친해지기가 쉬웠지만, 유 회장은 미묘하게 달랐다. 예의 바르고 친절했지만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당최 짐작이 가지 않았다.

  “윤혁 군의 가족은 보스 이외에는 부모님 두 분뿐입니까?”

  “네, 일단은요.”

  부모님 양쪽 모두 일가친척이 없으니까.

  “그렇군요. 제 경우는 어머니의 가문이 북쪽 지역 출신이었죠. 외가와 함께 이남으로 내려오신 후에는 당시 남쪽에서 소규모 사업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셨죠.”

  성운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제분들도 계시나요?”

  너무도 자연스러운 대화 유도에 윤혁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네, 대외적으로는 알리지는 않았지만, 동생들이 있습니다. 제가 첫째고 밑으로는 여동생 하나, 세쌍둥이 남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으로 총 육 남매죠.”

  사실 유 회장 정도 위치의 인물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자기 가족을 언론에 노출하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어떤 경우는 철저한 보안 아래 감춰두는 예도 있다. 본래 실력 제일주의가 기본 모토인 현 세계의 특성상, 자수성가한 천재에게 가족이란 존재는 약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형에게 있어 나도 비슷한 의미겠지.’

  윤혁의 입에 쓴웃음이 스며들었다.

  “그래도 가족들은 다들 맏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네요.”

  “꼭 그런 것도 아니죠. 여동생은 오빠는 일밖에 모른다고 구박하더군요.”

  성운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자조했다.

  “세쌍둥이 녀석도 형처럼 갑갑하게 살기는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죠.”

  “최소한 형제 사이에 거리감은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하하. 그런가요.”

  윤혁의 경우 2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복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살아온 세상이 달랐던 탓에 큰 장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둘이서 한 달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조금이나마 간극이 줄어들었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지난번 친선 경기 때 그 기대가 막연한 망상이었음을 깨달아버렸다.

  ‘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때 성운이 갑작스러운 말을 꺼내 윤혁의 상념을 깨트렸다.

  “윤혁 군은 보스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치 조금 전의 윤혁의 상념을 읽어내기라도 한 질문이었다.

  “네? 형님을요? 그건⋯⋯.”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유 회장의 통찰력을 보아 ‘존경할 만한 분이다’ 혹은 ‘대단한 사람 같다’ 같은 식의 식상한 대답은 먹히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솔직히 느낀 두려움과 위기의식을 비출 수도 없었다. 저 사람은 무려 형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그에게 충성하는 부관이니까.

  “제게는 부담 갖지 않고 대답해도 됩니다.”

  성운은 상대의 무장 해제를 유도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하였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지요?”

  “이를테면⋯⋯, 그래, 독재자라는 평가라던가요.”

  “그, 그건!”

  성운은 윤혁이 당황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미소 지었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죠.”

  유도신문에 걸려든 윤혁은 긴장감에 침묵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으니까요. 솔직히 사실이기도 하고요.”

  윤혁은 상대가 몰고 가는 페이스에 순순히 응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더 지켜보아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능글맞은 유 회장이 썩 살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차라리 형과의 대화가 속마음을 털어놓기 편하겠다 싶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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