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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회 초인들의 세계 Ch 25. 유성운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2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한참 대화하던 도중 로봇 하나가 조각 케이크를 대령했다.

  “잠시 후식이라도 좀 드시면서 하시죠.”

  둘은 디저트 맛을 본 후, 다시금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 가지만 더, 경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봅시다.”

  경제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수요를 지구의 유한한 자원에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류 활동 영역이 행성 한 개로 제약받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반면, 지금의 인류는 드넓은 은하 방방곡곡을 식민지로 둔 상태였다.

  “초대째 위버멘쉬는 인류 발전의 미래를 논할 때 항상 ‘공간적 임계점’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의 문제를 중점적인 쟁점으로 고려했습니다.”

  이제 성운은 워프와 관련된 물리 공식들을 허공에 그려내었다.

  “인류가 우주에 널린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개척할 만한 역량을 갖추느냐 아니면 그 먼 거리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지구의 자원을 모두 소비하고 멸망할 것인가. 당시 인류의 눈앞에는 두 종류의 운명, 두 종류의 가능성이 놓여있었죠.”

  결과론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인류는 공간적 임계점을 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를 이미 아는 지금 판단한 것이고, 두 운명을 진지하게 저울질해야 했던 당시로서는 우주를 정복하느냐 마냐는 심각한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바깥 세계를 개척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개발에만 의존하며 지구에서 궁핍하게, 빈궁하게 버텨야 할 것인가? 당시 초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고 한다.

  “물론 워프와 게이트의 이론은 갖춰졌죠. 하지만 언제 실용화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태양계 너머로 넘어가는 경제적 이동 체계가 확립될 때까지는 제한된 자원으로 버틸 수 있는 합리적 경제 구조가 필요했죠.”

  합리적인 경제 구조가 없으면 인간의 소비 체계는 도를 넘어 균형을 잃는 법이다. 그런데 21세기 초반까지 유지되던 기존 화폐 기반 경제 체제는 여러 현실적 장애물로 인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였다. 과도한 인플레이션, 세계화에 따른 환율의 대혼란, 통화의 과도한 생산과 남용, 저성장의 악순환까지,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있었다. 그 상태로는 우주 개척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인류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장 자생력, 질서, 도덕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잃어버린 빈껍데기 하드웨어로서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네오 오더의 손에 희생당할 제물이나 다름없었죠. ‘빚의 경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흡사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의 꼴이었습니다. 이를 빌미와 명분으로 삼아 네오 오더는 그레이트 리셋을 통해 경제의 룰을 자신들의 아가리 속에 집어넣으려 계획했었죠.”

  당시의 경제는 빚을 기반으로 증폭되는 것이었기에 끝없는 악순환으로 부풀려지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구조였다. 그런 식으로 소비 규모만 늘리다 보면 결국 필연적으로 인류의 실제 자산인 자원과 물질은 고갈되어 버린다. 인류 경제가 폭삭 무너지거나, 아니면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합법적으로 권세를 넘겨주어 인류 전체가 영원한 경제적 노예가 될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에 당시 새로운 세계 지도자로 떠오른 초대째 위버멘쉬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유지하고 동시에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색다른 개혁을 개시했다. 그의 천재성은 놀라운 빛을 발하였다.

  “그럼 그 개혁이란 게 설마!”

  “오버 리셋(Üver-Reset).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의 대대적 재창조였죠.”

  위버멘쉬는 기존 화폐와 전혀 다른 유형의 혁신적 자본을 창조해냈다. 또한 새 시스템을 통해 부적절한 병폐를 종식해 더는 부패한 자들이 물질만능주의와 속임수를 통해 인류 물질 자원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교정했다.

  “원래라면 그 당시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위업이었겠죠.”

  이번에 성운은 당시의 여러 경제 문제들을 도표로 그려내었다.

  “저도 얼핏 현대사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그런 대규모의 경제 혁명을 단기간에 성공시킨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짐작도 안 가더군요.”

  “시행자의 놀라운 지략, 치밀함, 추진력, 정치 기술 덕이었죠. 당시로선 말도 안 되는 기염이었죠. 하긴 지금의 우리조차도 그 업적에 놀랄 정도니까요. 절대적으로 비교하면 우리의 지능이 높을지 몰라도, 그 당시 초인들의 능력과 상황에 우리가 놓일 때 그들만큼의 성과를 냈을지는 자신이 없군요.”

  초대째 위버멘쉬가 새로 고안한 신형 자본은 특이한 성질을 띤 것이었다. 어리석은 사회주의 따위의 인위적, 법적, 제도적 간섭을 일절 가하지 않고도 오로지 자본에 내재된 본질적인 속성만으로도 세 가지 병폐를 차단하거나 다스릴 수 있었다. 그 병폐란 첫째는 부동산과 주식과 고리대금업과 가상화폐를 막론한 모든 류의 ‘부적절한 사행성 탐욕적 투기’, 둘째는 ‘부채’의 반영구적 축적과 인간 노예화, 세 번째는 재화가 순환을 포기한 채 병폐적으로 영영 고이는 병목 현상이었다.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었죠.”

  시장의 자생력과 장점은 오롯이 흡수하여 몇백 배로 증폭시키되, 시장을 도와줄 소프트웨어의 부재는 능동적으로 보충해주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올바른 경제 주체가 되도록 ‘경제적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선에서’ 영도해주는 유도 시스템. 외관상의 강제적 개입은 일절 없되 강제적 개입 이상의 합리적인 분배를 물 흐르듯 유도해내는 흡사 마법 같은 반칙급 시스템.

  “초기 단계에는 진통을 겪었지만, 위버멘쉬는 새 시스템을 기어코 정착시켜 버렸죠. 당시 급격히 파국으로 치닫던 경제 체제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네오 오더의 디지털 소셜리즘 계획을 원천 봉쇄한 동시에 화폐 기반 경제 체제의 한계를 초월해냈죠.”

  “어마어마하게 굉장하긴 하네요.”

  “위기를 완전히 기회로 바꾼 셈이죠. 최악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단순히 차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야를 넓혀서 극상의 결과로 반전시켰습니다. 강윤혁 씨에게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런 재주가 바로 위버멘쉬와 초인이 함양해야 할 자질입니다.”

  성운은 자랑스러운 어투로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물론 그마저도 위버멘쉬가 구상하던 최종 단계는 아니었지만요.”

  당시의 초대째 위버멘쉬는 경제 시스템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장차 인류의 문명이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우주 자원마저 무한정 확보하는 미래까지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미래에 꼭 맞는,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차기 경제 시스템을 오로지 상상력과 예측력만으로 구상해냈다. 당시에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이번 세대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그 구상이 온전히 실현되었죠.”

  “포인트 시스템 말입니까?”

  윤혁을 비롯한 모든 일반인에게도 이미 익숙한 현 경제 시스템.

  “그렇습니다. 정확한 용어로는 ‘생명에 유착된 자본’이죠.”

  오늘날의 돈은 전자 화폐나 종이 화폐로 지급되지 않는다. 갓난아기부터 늙어 죽기 전까지의 노인까지 모든 인간은 그저 생명만 유지하고 있다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생명력 자체에 자본 포인트가 저장되어 유착된다.

  흔히들 전문가들과 초인들은 이러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을 ‘생명 유착 자본’이라 불렀다. 마치 게임을 할 때 저절로 캐릭터 속에 포인트가 축적되는 것처럼 각 사람에게 ‘자본 포인트’가 부과되는 식이기 때문이었다. 대중은 그 시스템을 편리하게 사용하면서도 정작 이러한 원리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사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너무도 완전무결했으니까.

  신체에 무언가를 넣을 필요도, 시민권을 등록할 필요도, 부작용이 발생할 필요도 일절 없으며 오로지 태어나 호흡만 할 수 있으면 그 경제권 안에 들어와 절대적인 안정성을 지닌 경제를 누릴 수 있었다. 좀이나 동록이 절대로 파고들 가능성이 없는, 흡사 하늘의 보고마저 연상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각 사람의 자본 포인트는 어떤 식으로도 타인이 줄이거나 없앨 수 없었고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별도의 장치가 없이도 포인트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설령 신원 불명이어도 살아있는 인간이기만 하면 보편적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쌍방 합의에 따라 양도할 수 있으며 모든 경제 활동에서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더욱이 포인트 자본은 물가 변동마저 없는 절대화된 가치의 화폐였다. 이전 세기만 해도 소설 같았을 일이 가능케 된 것은 우주 속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확보하였기 때문이었다. 항성계들의 요새화 덕에 금속, 물, 탄소 화합물과 유기체 자원, 심지어 특수 신물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원이 준 무제한이 되었다. 아무리 소비해도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공급량이 증가하였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공급량이 무한이 된다면 차라리 가격이라는 것을 없애버려서 완전무결한 경제 유토피아를 만들면 안 되느냐고. 하지만 그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위버멘쉬와 초인들도 그렇게 단순 무식한 이상론자는 아니었다.

  “물자에 값을 아예 안 매길 수는 없었죠. 소비 습관을 방종하게 만들어 인류 전체를 게으르게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분배량을 제어할 화폐는 꼭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절대 화폐, 생명에 유착된 자본이죠.”

  이로서 인류는 완벽해 보이는 균형을 얻었다.

  각 사람의 포인트는 시간이 흐를 때마다 상한치도 없이 저절로 축적된다. 그러므로 노동하지 않아도 자연 축적되는 것만으로도 풍요 이상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에는 하등 지장이 없다. 다시 말해 빈곤층이 존재할 여지가 없어졌다. 더욱이 우주 개척 덕분에 인류의 총생산량은 꾸준히 점점 더 부유해지므로 개개인의 포인트 회복 속도는 절대 줄지 않고 끝없이 상향 평준화된다. 파이의 분배 형평성도, 파이 전체의 크기도 둘 다 무제한 상향되는 셈이다.

  또한 개개인은 노동 및 생산을 통해 기본치보다 훨씬 더 많은 인센티브 포인트를 능히 획득해낼 수 있다. 또한 사회 발전에 공헌해도 포인트 충전 속도는 급증한다. 큰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 구성원일수록 큰 우대가 주어졌다. 반드시 크고 거창한 활동만 보상받는 건 아니었다. 물론 세계적으로 큰 업적을 창출하는 자들의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건실하게 일하며 공동체에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상향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경쟁에 따른 빈부 격차의 결과물인 극빈층은 완전히 없애면서 열심히 경쟁하고 일하게 만드는 동기와 보상까지 주어지니, 오로지 모든 시스템의 장점만을 극대화한 극상의 해결책처럼 보인다.

  ‘사실 시스템 자체의 우수함이라기보단 무한한 자원 덕택이겠지만.’

  “그런데 어떻게 아무런 전자기기도 없이 체내에 자본이 저장될까요?”

  윤혁이 이해가 안 되던 점을 물어보았다.

  “저희도 원리는 대강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원리처럼 생명을 일종의 확률 함수처럼 간주하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해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핵심 레시피는 설계자이신 보스만 알고 있겠죠.”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윤혁도 알 것 같았다.

  형은 군사 시스템뿐 아니라 경제 시스템까지 완벽하게 다스리는 중이다.

  “사회와 문명의 진보에 크게 기여한 자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겠죠?”

  “사실이긴 합니다만, 모두 보스께 구걸하고 있는 셈이라서 말이죠.”

  성운은 돈의 액수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형님은 얼마나 부유하신 거죠?”

  “하하! 그분께는 따로 포인트 개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예 보유한 포인트 자체가 없으시죠. 애초에 그분께는 별 의미가 없어요. 원 소유주이시니까요.”

  “네? 원 소유주요?”

  “모든 실질적인 재화들과 자원들의 주인이란 뜻입니다.”

  사실 화폐란 실질 자산인 물자와 노동력을 교환하기 위한 수단, 즉 구매력을 지닌 약속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재 실질 자산 전부를 생산하는 건 기계들의 시스템이니 그들의 주인은 곧 생산을 독점한 주권자나 마찬가지였다. 즉, 현 세계의 지도자인 인류연합 대표는 비교 불능의 절대적인 부자. 단순히 돈이 최고로 많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생산력 본체를 소유했다는 의미였다. 결국, 왕 이외의 나머지 모든 인간은 포인트를 매개체로 사용해서 왕에게 구걸만 하는 셈이다.

  ‘겉모양만 경제 거래이지 실상은 적선인 셈이군.’

  현 경제가 돌아가는 실상을 깨닫고 나자 어안이 벙벙했다.

  “거부감 느끼실 분들도 있겠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현 시스템은 과거의 실패한 경제구조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성과를 입증했죠. 앞으로 은하 너머로 도약한다면 보스에게로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폭발적으로 가속될 것입니다.”

  뒤엎거나 부정할 명분조차도 전혀 없다. 카이젤에게 쿠데타나 여론이나 의회 따위의 권력 억제는 전혀 무의미하리라. 윤혁도 비로소 그것을 이해했다.

  “내 귀여운 동생에게 쓸데없는 바람을 불어넣는 중인가?”

  그때 대화 주제였던 인간이 불쑥 나타났다.

  ‘호랑이도 저 말 하면 온다더니.’

  “하하, 죄송합니다. 잠깐 아우 분과 친목의 시간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카이젤은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변명하는 성운을 슬쩍 노려보았다.

  “그럼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웠습니다, 강윤혁 군. 다음번에 또 뵙죠.”

  “조심히 들어가세요.”

  성운은 정중한 인사만 남긴 채, 매섭게 쏘아보는 상관을 피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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