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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0회 초인들의 세계 Ch 26. 귀가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25 | 회차평점 0 0

 

 

 

 

 

 

***

 

 

 

  제로원에서 귀환한 직후, 윤혁은 두 가지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하나는 친구인 리온과의 약속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도실에서 만난 노인과의 약속이었다. 우선 윤혁은 좀 더 다가가기 쉬운 친구 쪽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어르신과 대화하는 건 영적인 무게감이 더 무거웠다.

  ‘제로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에는 통신 감시 때문에 연락하기도 힘들었지.’

  하지만 이제 윤혁은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입으로 소식을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제로원에서 귀국한 지 2주가 지난 뒤 리온도 한국에 당도했다. 오랜만의 재회였다. 켄 할아버지의 집에서 두 친구는 만남의 기쁨을 만끽했다. 리온은 외국을 돌아다니며 고생이라도 한 건지 가뜩이나 짙은 피부가 더 타 있었다. 리온의 건실한 이미지와 잘 어울려 보였다.

  “그곳에서는 문제없이 잘 지냈어?”

  “아, 제로원에서 말이지?”

  아직 윤혁은 자신의 형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세한 경황이나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대충 필요한 정보만 추려서 리온에게 전해주었다. 눈치가 빠른 리온은 친구가 숨기는 게 있음을 알아채긴 했으나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으려니 하고 눈감아 주었다.

  대강 리온에게 전달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류연합의 경제, 산업, 군사 시스템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이한 생체병기인 개조 인간 군단의 존재였다.

  리온은 곧바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전자는 겉핥기식으로나마 이미 아는 정보가 꽤 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짧게나마 스승에게서 고등 교육을 받은 덕에 여러 학문은 물론 세계정세에도 눈이 밝았으니까. 하지만 후자의 경우 그에게도 대단히 큰 충격을 선사했다. 과거의 생체 실험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서 이렇게까지 진화했을 줄은 몰랐다.

  “점점 마지막 시대의 징조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둘은 전에도 모일 때마다 마지막 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마지막 때가 다가오는 징조를 논하곤 했었다. 믿는 신자라면 누구든지 소망하는 부활의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광을 위해 시련을 거쳐 가야 하는 두려운 때이기도 한 만큼 가볍게 다룰 주제는 아니었다.

  “나는 아직 감이 잘 안 서. 섣불리 판단해도 될까?”

  윤혁은 불확실한 염려를 넌지시 내비쳤다.

  “누가 알겠어. 그날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만 달려있으니 우리가 알 길은 없겠지.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는 느낄 수 있겠지만.”

  “역시나 그렇겠지.”

  윤혁은 제로원에 다녀온 이후로 부쩍 마지막 때에 대해 염려가 들던 차였다. 리온도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손에서 벗어난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지혜로우리라. 윤혁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깊은 고민에 빠지는 일이 아닌, 소망에 힘입은 돌파구였다.

  이에 리온은 예전부터 친구에게 제안하려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너는 앞으로의 진로는 충분히 생각해봤어?”

  “으응?”

  그 말을 듣고 윤혁은 고민을 들킨 것 같아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아직 용기를 내어 결정한 선로가 무엇 하나 없었으니까.

  사실 자신의 천직이 무엇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과학과 수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공학을 배우긴 했지만, 날로 급변하는 세상을 보니 고작 그 정도 재능이 무슨 의의가 있을지 의아했다. 현재의 문명은 지나치게 높이, 그리고 빠르게 진화하는 탓에 윤혁 같은 범재로서는 제대로 된 이바지를 하기가 어려웠다. 제로원을 다녀온 뒤로 그는 그 사실을 더 철두철미하게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의 재능에 대체 불가의 가치가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자신이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사가 자동화된 현시대에는 인간이 지닌 달란트의 가치가 손쉽게 부정되곤 했다. 이제는 무한 양산이 가능한 인공지능들이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뼈를 깎는 수련과 노력?’

  이젠 그런 것 정도는 마음대로 기계 속에 주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사람도 직접 뇌로 경험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기계는 순식간에 서로의 경험을 공유해버린다. 탁월한 지성 및 연구 능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술적 특이점이 이미 몇 차례 이상이나 도래한 마당인지라 인간 없이도 기계들끼리 스스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형국이었다. 비단 과학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철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만연했다.

  물론 이런 현실 속에서도 능력만으로 존재 의의를 증명할 방법이 있긴 했다. 인간됨을 포기하고 인공지능의 정신과 융합하여 초지능화 되거나 애당초 사람과 인공지능의 지능 한계를 초월한 무한한 잠재력의 초인으로 태어나면 되었다. 예컨대 윤혁의 자신의 형처럼 말이다.

  ‘새삼 초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네.’

  카이젤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최하급의 초인조차도 그 잠재력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천재의 한계를 뛰어넘으니까.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타고난 괴물이 아니고서는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증명할 방법을 찾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었다.

  윤혁이 천 년 동안 연구해서 겨우 얻을까 말까 한 성과를 초인은 하룻밤 밤참을 먹으면서 해결해 버릴 것이다. 이러니 일반인의 지성과 창조성이 빛을 발할 기회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조금 덜 창의적인 일을 하자니 그런 노동은 오히려 기계들이 압도적으로 더 잘 해냈다. 기계가 직접 우주로 진출해 자원을 캐고 요새를 짓고 항성계마저 정복하는 시대이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지성에 의존해 인간 가치를 재단하는 현 세태도 의뭉스러웠다.

  분명 현재의 세상은 그 지성 덕택에 모든 것이 풍요롭고 편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불안해 보였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선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 죄를 저질러도 그 대가를 모두 지성과 기술로 손쉽게 해결해버리니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누구도 책임을 짊어지지 않은 채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행하는 세상.

  ‘이게 과연 정말 인간답게 살아가는 걸까?’

  이게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지시하신, 세상을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청지기 임무에 비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심각하게 지금 세태를 조명해보았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유 가치는 외모나 힘이나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능력에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기계도 인공지능도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만의 모습 아닌가? 그런데 정작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 놀라운 선물을 외면하기만 하는 중이었다.

  ‘현 세태의 흐름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

  단순히 능력 부족으로 임무를 관두려는 자포자기의 마음은 아니었다. 세상 직업들의 소중한 가치를 무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인간을 오직 성능만으로 평가한다면, 종국에는 인간 모두의 존엄성이 사라지게 되리라는 우려가 들었다. 결국, 모두를 지배하는 초인들만 존엄성을 독점하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 어쩌면 초인들마저도 지도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쇠퇴할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면 꼭 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윤혁은 진정으로 자기 영혼에게 질문했다. 너는 어떤 길을 소망하느냐고. 필경에는 사라질 물질문명 위에 벽돌 하나를 쌓으려고 부질없는 손을 보탤까? 오히려 절실하게 그 손을 필요로 해주는 다른 의미 있는 일에 써야 옳지 않을까? 난생처음으로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이 절실해졌다.

  “너 지금 다니는 대학도 곧 있으면 졸업한다고 하지 않았어?”

  리온은 윤혁의 궁리를 헤아려보며 질문했다.

  “올해가 마지막이던가?”

  “맞아. 내년부터는 학생 신분이 아니지.”

  윤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로가 잡힌 것도 아니지만.”

  “너도 꽤 능력이 뛰어나잖아.”

  “공학자들은 괴물 같은 실력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쓰임 받기 어렵거든.”

  그러자 리온은 친구의 고민에 공감하는 투로 고민하였다.

  “네가 열심히 준비하고 고민했으니 좋은 길이 있겠지.”

  상대를 초대하고 싶었다.

  “다만⋯⋯.”

  그렇다고 상대의 자존심에는 상처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 시대가 널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가치함을 느낄 필요는 없잖아? 우리에겐 영원한 가치를 담은 더 소중한 임무가 있잖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잠깐 시간을 들여서 우리랑 경험을 나눠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우리라고?”

  “선교사들 말이야.”

  윤혁에게도 그런 큰 소원이 있을지는 아직은 불분명했다.

  그래서 리온은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내게는, 아니 전 세계 선교팀들에는 더 많은 동료가 필요해.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한 명의 이웃에게라도 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지. 추수할 분량은 많은데 일꾼은 늘 부족하거든.”

  “그렇겠지 역시.”

  윤혁도 조금 흔들리는 기색이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더 지역이나 교파의 장벽에 묶여 있지 않아.”

  리온이 덧붙였다.

  “진리 안에 있는 지구의 모든 남은 자들은 이제 힘을 하나로 합치고 있어.”

  즉, 지역이나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주님의 종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진리에서 떠나가고 신실한 자들이 차츰 고립되어 외로워질수록, 남은 이들은 더욱 똘똘 뭉쳤다.

  “네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긴 아깝지 않을까? 물론 나는 네가 생각하는 모든 계획을 존귀하게 생각해. 세상일들도 모두 주님의 일이지. 그래도 한 번쯤은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봐도 손해는 없지 않겠어?”

  그는 선명하게 눈에 힘을 주고 대담한 제안을 하였다.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어디까지나 네 의견이 중요하니까.”

  리온이 윤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기대가 많이 돼. 너처럼 신실한 청년은 요새 보기 쉽지 않거든.”

  친구가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할지 고민되는 윤혁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평가를 최대한 낮추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네 생각처럼 선한 사람이 아니야.”

  거짓 겸손이 아닌, 진심이었다.

  “부족한 것투성이고, 용기나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지.”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쓰셔서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지.”

  당돌한 리온의 반박에 입이 막혔다.

  “게다가 너 정도나 되는 녀석이 부끄러워할 게 뭐 있겠어.”

  사실 윤혁도 리온처럼 열정적이고 신앙이 올곧은 청년이 내심 부러웠다. 세상의 흐름에 전혀 동조하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의 활약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이라면 과연 그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리온은 고난과 역경을 기꺼이 감당하여 그것을 단련하는 불로 삼아 성장했거늘 자신은 어떤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아직 내게는 열정이 없었던 것 같아.’

  신중한 성격은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아직 용기 있게 망설이는 친구를 위해 리온이 다시 배려를 베풀었다.

  “그럼 이건 어때? 내 친구들, 그러니까 내가 현재 소속된 팀 동료들과 다른 팀 리더들을 소개해줄게. 그들과 친분을 나누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신실한 신자들이야. 세상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감시와 핍박마저 마다하지 않은 친구들이지.”

  혹 그들과 가까워지면, 윤혁도 열망을 더 불태울지도 모르겠다.

  리온은 진심으로 윤혁의 속의 거룩한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를 원했다.

  “그래, 그건 전혀 문제 될 것 없지.”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윤혁은 친구의 손을 맞잡았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는 친구가 여럿 있지만 믿음을 나눌 만한 친구는 드물었다. 신을 멀리하는 현세대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런 때 신실하고 용감한 청년들을 만나 교제한다면?

  ‘나름대로 큰 도전이 되고, 은혜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그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는 마음이 싹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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