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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1회 초인들의 세계 Ch 26. 귀가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28 | 회차평점 0 0

 

 

 

 

 

***

 

 

 

  윤혁은 그 주 수요일 저녁 한적한 시간에 기도실을 찾아갔다.

  어김없이 그 어르신이 기다리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로 최소 두 달은 지났다. 노인에게서 변함없이 곧은 자세와 강건한 혈색, 그리고 총명한 빛이 돋보였다. 어르신 곁에 다가간 윤혁은 공손히 인사했다.

  “돌아왔습니다. 별일 없으셨나요?”

  “허허, 나야 항상 똑같지.”

  별도의 약속도 없이 찾아왔는데 여지없이 기도실에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어르신은 한국에 아예 머무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윤혁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그에게 전수받아야 할 가르침이 많았으니까.

  “이 나이에는 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일 수는 없지.”

  노인이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과거에 알던 친구와 가족들은 모두 떠났지.”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리움으로 가득하였다.

  “내게 돌아갈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천국 외에는 없단다.”

  윤혁까지 같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나눌 이야기가 많았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리온은 윤혁과 형 사이의 사정을 모르지만, 이 노인은 달랐다. 그러니 세계의 심장부에서 목격한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전해줘도 되리라. 그는 어르신께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이제는 어르신이 본인이 아는 진실을 풀어줄 차례가 되었다.

  “외람되지만 질문을 해도 될까요?”

  “무엇이든 좋지.”

  “어르신께서도 그들에 관해서 잘 아시는지요?”

  “그들이라⋯⋯. 초인들 말하는 게니?”

  윤혁은 고개만 끄덕였다. 노인은 조용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역시나 어르신께서는 알고 계신 건가?’

  노인이 눈을 잠시 감자 윤혁은 숨을 조용히 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시대, 그러니까 21세기 초중반에 처음 나타났지. 물론 그 당시에는 ‘초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단다. 지금이야 선천적 초인이 많지만, 그때는 후천적으로 각성이 이루어졌거든. 게다가 그전까지는 역사상 한 번도 초인이 없었으니 초인이란 개념도 확립되지 않았지.”

  그는 기억의 흐름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목소리를 읊조렸다.

  “아마 내가 갇혀 있었을 무렵부터였겠군.”

  유창한 한국어.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할 때처럼 자애롭고 인자한 말투.

  “그 무렵 세계 곳곳에서 천여 명의 젊은 청년이 각성을 시작했단다.”

  윤혁은 친할아버지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온 신경을 기울였다.

  “물론 특별한 초능력을 각성한 건 아니었단다. 너도 알 테지.”

  “네.”

  “점진적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지적 능력이 초진화하기 시작했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본래 사람은 10대 이후로는 지적 능력의 진보가 일어나지 않는 게 상식이다. 뇌 발달이 종료된 스무 살 이후부터는 뇌가 쇠퇴해야 정상이다. 공부와 경험을 통해 지식이나 깨달음을 축적할 수는 있지만, 없던 재능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초인들은 재능이 끝없이 만들어지고 끝없이 향상되었지.”

  신해나 룩이나 카이젤에게 들었기에 윤혁도 얼추 알고 있었다.

  “각성이란 현상이 벌어진 이후부터 일반인과 다른 궤적을 걸어간 건가요?”

  노인이 웃으며 긍정하였다.

  “그래. 지능 지수가 날마다 조금씩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지.”

  “정말이었군요. 솔직히 소설 같은 이야기라서 긴가민가했어요.”

  “단순히 머리가 좋아지는 것을 넘어서 잠재력마저 계속 증가했단다. 돈을 다루는 감각, 정치적 자질, 예술적 영감, 학문적인 자질, 퍼즐을 풀어내는 천재성 같은 것 말이다. 모든 초인이 모든 분야의 능력들을 넘치도록 받고도 더 받았지. 신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달란트의 ‘과포화’ 상태랄까.”

  이전 시대를 산 증인의 증언. 듣고 보니 카이젤과 룩이 했던 말과 일치했다. 다만, 노인이 살던 초기 세대는 일반인이 후천적 각성으로 일반인에서 초인이 되었다면 카이젤 쪽은 태어날 때부터 초인이었으니 증언의 느낌 차이가 좀 있었다.

  “역시 그들 때문에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이겠군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하리만큼 빠른 문명 진보 속도.

  이제는 그 진정한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래, 아마 초인이 없었다면 인류는 환경과 공간의 한계에 도달했겠지.”

  초인 등장 직전까지 인류는 하향의 변곡점을 마주하고 있었으니까.

  “최악의 경우 자원과 환경을 다 소진하고 쇠퇴했을 거다.”

  그런데 하늘이 내린 천재들이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켰다.

  그들의 강림은 과연 인류에게는 무엇을 뜻했을까?

  “과연 그들의 도래가 선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질문에 노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소 모호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좋은 징조는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나님께서 관여하신, 최소한 허락하신 일임은 분명하단다. 재능이란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그들의 재능도 하나님의 선물이지. 다만 하나님의 목적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죄로 얼룩져있는 인간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으로 노력해도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초인도 마찬가지이리라. 노인은 초인이란 존재가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험에 가깝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전에 없던 발전된 문명과 제도를 도입해 많은 개혁에 성공했지. 그럼에도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그대로였단다. 도리어 인간들은 새 시대의 업적들을 두고 투쟁하고 싸웠단다.”

  심지어는 나중에는 초인 자신들마저도 그 훌륭한 선물을 갖고 사랑의 원리가 아닌 경쟁과 지배의 길을 선택했다. 그 여정을 역사의 한 증인으로서 지켜본 노인은 현재 벌어지는 세상의 변화 역시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청년과 동일한 관점이긴 했으나 막연한 추측이 아닌 연륜과 경험에서 비롯된 판단이었다.

  “어르신과 같은 세대의 초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죠?”

  그러고 보니 노인과 동세대, 아마도 1세대일 그 세대는 본 일이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첫 세대는 이제 뒤안길로 사라졌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자연사했을 리는 없을 텐데요?”

  초인은 원래 잘 늙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린 윤혁.

  “뭐, 권력 분쟁 과정에서 하나둘 사라졌다고 해야겠지.”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세대교체 과정에서 숙청이라도 임한 걸까?

  “두 번째 세대는요?”

  “그들이 네 아버지 세대란다. 혼돈의 시대의 주역들이었지.”

  참고로 그들은 서로 다투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단다.

  “그러면 지금 세상을 다스리는 주역들은요?”

  “지금은 3세대 초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란다. 이전 세대는 그들 손에 처단되거나 퇴출당하였지. 그들 3세대가 흐지부지된 인류연합의 기치를 부활시켰지. 다만 지금의 그 아이들은 너무 기틀에서 벗어나 변질된 것 같구나.”

  윤혁은 노인의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변질이라고요?”

  “1세대 초인들은 기존의 악한 지배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인류를 번영과 행복의 길로 이끌려는 철학에 철저히 뿌리를 두었단다. 나는 신본주의, 그들은 인본주의적인 경향이 짙다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행동 노선을 취했지. 악을 버리고 선을 추구한다는 공통 기치가 있었단다.”

  “악한 자들이라면, 혹시 네오 오더 말씀이신가요?”

  현대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났다.

  “그래. 한때 내 숙적이기도 했던 무리지. 그들은 수백 년간 무대 뒤에서 세상을 지배해왔지. 돈과 권력을 통해서 말이다. 이들 비밀 조직은 많은 해악을 일으켜왔지. 세계 대전, 경제 공황, 대학살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이야 이미 그 실체가 벌거벗겨져 역사책에까지 박제될 만큼 부관참시당했지만, 과거 네오 오더는 오랜 시간 비밀리에 숨은 채 세상 대부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었다. 탐욕스러운 소수 엘리트 비밀 결사인 그들은 권력을 통해 온갖 악행들을 버젓이 행하고 다녔다. 빚을 기반으로 한 화폐 시스템으로 가난한 나라들을 노예로 만들고, 초강대국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했으며,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전쟁과 전염병까지도 일으키거나 방관해왔다.

  “초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지. 그때 정의감과 숭고한 사상에 젖어있던 몇몇 젊은이들이 각성했단다. 그들은 지금껏 아무도 해내지 못한 네오 오더의 척결을 시도했단다.”

  부드러웠던 눈매가 순간적으로 의분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당장 갓 각성한 청년들에게는 자신들의 탁월한 지혜 말고는 힘이 없었단다. 대부분 부유함이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배경 출신이었지.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바로 그가 나타났단다.”

  “그라니요?”

  “리더 말이다.”

  위버멘쉬. 이전 세기의 최고의 영웅. 세계 지도자.

  “그는 각성한 청년들을 발굴했지. 그리고 적에게 대항해 깃발을 세웠단다. 그는 동료와 연합한 후 치밀한 준비를 통해 힘을 키웠단다. 긴 싸움을 벌이면서 혁신을 꾀했지. 그리고 수차례의 인류 멸망 위기를 막아낸 끝에 우리가 승리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라는 표현이 걸렸다.

  단순히 1세대 중 하나인 것을 넘어 협동까지 하셨던 건가?

  “어르신께서도 그들과 동맹 관계이셨다는 말로 들리네요.”

  “허허, 그래도 눈치가 있구나. 그래, 나 역시 네오 오더를 파멸시키는 일을 도왔지. 개인적으로도 나도 그 사탄숭배자들을 증오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악행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지.”

  어르신이 점점 더 신비로운 인물처럼 다가왔다.

  “실례지만⋯⋯, 어르신께서는 위버멘쉬와 잘 아는 관계이셨나요?”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인지 청년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히 서로 잘 아는 관계일 수밖에.”

  노인은 허허 웃은 뒤 청년의 눈을 직시했다.

  “나는 그 아이의 형제였으니까.”

  “형제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복형이었지. 내 동생 쪽이 사생아, 내가 적자였단다.”

  “그건 마치.”

  “그래. 마치 너와 네 형처럼 말이다.”

  어르신은 생각보다 엄청난 거물이셨다. 그의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니 증거가 없었지만, 도무지 거짓말을 하는 표정 같지는 않았다. 초인에 관한 정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허투루 들을 일은 아니었다.

  “마침 묻고 싶은 게 또 있습니다.”

  윤혁은 황급히 노인의 정보를 캐물어 보았다.

  “반쪽짜리 초인에 대해서도 얼핏 형에게 들었습니다.”

  탁월한 육체, 탁월한 정신.

  둘 중 한 가지만 각성한 특수 케이스의 초인.

  “흠, 벌써 그 부분까지도 알려줬구나.”

  아버지인 강성한은 불로에 가까운 ‘초인의 육체’만 타고난 경우였다. 마치 노아의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문득 윤혁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초인의 정신’, 즉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두뇌와 재능만을 지닌 ‘반쪽짜리’도 존재하지 않을까? 혹시나.

  “내가 ‘초인의 정신’만 지닌 반쪽짜리 초인인지 궁금한 모양이구나.”

  노인이 청년의 조급함을 손바닥 내려다보듯 읽어냈다.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단번에 수긍하였다.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군. 반쪽이라. 자신들 수준에 미치지 못한 열등한 자라는 의미겠지. 우리 시대에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하긴 우리 땐 위버멘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초인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었지.”

  어르신 본인의 증언대로 그는 초인이었다. 그의 탁월한 현명함을 보자니 초인의 재능을 최소 일부나마 지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초인과 비교하면 나이가 몹시 많아 보였다. 각성이 21세기 초에 이루어졌다고 했으니 그의 현재 나이는 현재 백이십 세 무렵일 것이다. 백이십 세에 비하면 조금 정정해 보이긴 했으나 노인의 외모는 그리 젊지 않았다.

  ‘육십 대를 넘겼으면서도 나랑 형제 정도로 보이는 아빠랑 비교한다면.’

  어르신은 초인의 육체 쪽은 보유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노인은 반쪽짜리라는 멸칭에도 전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자랑스럽게, 내지는 기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는 초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전혀 자부심이 없어 보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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