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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2회 초인들의 세계 Ch 26. 귀가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2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윤혁아.”

  “말씀하세요.”

  “이제는 네가 물을 차례구나.”

  대화의 바통이 다시 윤혁 쪽으로 돌아왔다. 어르신은 윤혁에게 좀 더 자세한 증언을 요구했다. 제로원에 관해 조금이라도 더 단서가 필요했다. 윤혁은 이에 처음 말해주었던 내용을 넘어 시시콜콜한 것까지 빠짐없이 말해주었다.

  “내가 손을 놓은 사이에 벌써 이만큼이나 세상이 변했구나.”

  노인이 한탄했다.

  “하긴 초인은 세대를 넘을 때마다 도약 속도가 어마어마하지. 2세대만 해도 그러했거늘, 3세대는 오죽하랴. 지금의 아이들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우리를 아득히 뛰어넘었어. 그러니 이렇게까지 마지막 때를 바짝 당겼겠지.”

  그러고 보니 카이젤은 언젠가 식사 중에 현존하는 초인의 총 숫자를 말한 적이 있었다. ‘지구 내에서는’ 인구 대비 십만 분의 일 정도라고 언급했던가? 현재 지구 인구는 100억을 넘겼으니 초인의 수는 십만 명 이상 된다는 뜻이다. 우주 식민지 출신들까지 포함한다면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천여 명에 불과했다는 1세대와 비교하면 어쨌건 거의 백 배는 늘어난 셈이었다.

  “생체병기라.”

  노인은 특히 그 대목을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생체병기들은 뭐랄까, 단순히 몸만 강한 게 아니었어요.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무력을 부렸죠. 물리적으로 과연 가능하기나 할지 의심될 정도로요.”

  윤혁은 친선 경기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벌써 2세대 이후 그 정도까지 나아갔을 줄은 몰랐구나. 사실 네오 오더가 저질렀던 죄악 중에서도 생체 실험이 큰 비중을 차지했었지. 그것이 우리 세대 초인들이 인간의 탄생을 범하는 연구를 금지한 이유였거늘.”

  물론 지금의 인류연합도 조작된 인간을 만드는 행위는 금지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 뿐이다. 기존의 불법 실험에서 만들어진 생명체들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한다는 일이나 인간 이외의 다른 실험체를 창조하는 일은 허용된다는 뜻이었다. 윤혁은 형에게서 허락되는 실험과 허락되지 않는 실험의 범위를 똑똑히 들었다.

  “아무래도 지금 아이들은 필요악이라는 명목으로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양이구나. 자신들의 손을 직접 더럽히는 일만 피하되 어떤 식으로든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적재적소에 활용하기를 서슴지 않는구나. 우려했었던 일이 벌써 현실화하였어.”

  노인의 탄식에 윤혁도 십분 공감했다.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실험체들이 희생되었을까요?”

  무려 백만이 넘는 바이오닉 솔져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이전 세대의 실험체 중 인간인 것만 골라낸 컬렉션이니, 인체 실험의 희생양을 전부 합하면 실패작까지 족히 수억은 되리라.

  “형도 그들처럼 선을 넘는 인간이었을까요?”

  걱정이 들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 사람도 단숨에 신체 강화 실험에 성공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요?”

  혹시 바이오닉 솔져를 보강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험체를 소모한 건 아닐까?

  “어쩌면⋯⋯, 과거처럼 마루타를 사용하지 않고도 인체 실험을 완벽히 대체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초인들이 아무리 선을 넘는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도덕적인 집행력과 자가 규율은 있으니까. 자유 시민을 사용하진 않을 듯싶구나.”

  노인이 찬찬히 추론해냈다.

  “하지만 생물, 그것도 인체 대상의 연구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임상 시험 없는 성공률 100%의 생체 공학?

  윤혁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다.

  “흐음,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그 부분은 기회가 되면 다시 알아보거라.”

  예상외로 노인은 바이오닉 솔져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말하고 고민을 마무리했다. 다소 충격을 받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마치 어느 정도 이런 미래는 예상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정작 그는 다른 부분에 더욱 주목했다.

  “네가 보았다던 집사와 시종들 말이다.”

  “네? 혹시 그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름은 전혀 없고 넘버만 붙어있던 몇 명의 시종들.

  사람과 거의 유사한 정서를 지닌 인공지능 로봇, 단테.

  노인은 도리어 그쪽이 더 미심쩍은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골머리가 아프구나. 로봇 쪽은 아마도, 사람의 인격을 복제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인 것 같구나. 아니, 사람의 인격을 담은 무언가인지도 모르지.”

  “네?”

  공상 속의 산물인 인격의 완전 복제.

  물론 먼 미래에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과 의지를 그대로 복제해서 컴퓨터 속 공간에서 영원히 살아가도록 만들리라는 괴담을 듣긴 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공상과학 속 이야기였다. 윤혁은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어쩌면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한꺼번에 복제했을 수도 있겠지. 그 정도의 성과물이면 이미 수없이 많은 아류작도 같이 존재하겠구나. 어쩌면 더 발전되어 나아간 프로젝트도 여러 버전으로 존재할지도 모르겠지.”

  “그런 사실을 직접 보시지도 않고 어떻게 아실 수 있죠?”

  윤혁은 대체 노인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비슷한 시도가 이미 내 시대에도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었거든. 그래서 묘사만 들으면 대충 감이 온단다. 지금까지는 모두 형편없는 실패로 끝났지만, 네 형 실력 덕분에 어느 정도는 성과물을 얻은 것 같구나.”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윤혁에게 대답했다.

  “그, 그러면 사람 인격을 정말로 옮겨 담는 게 가능하단 이야기인가요?”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사람의 정신은 영혼과 얽혀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각 사람의 고유한 실체이지. 어떤 방법으로도 그걸 복제하거나 흉내 낸다는 건 불가능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영혼을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인식하시지. 그분은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이해하신단다.”

  노인의 탁월한 지혜는 마치 현자의 명철 같아 보였다.

  ‘신학과 과학을 거의 완벽하게 아우르며 이해하시잖아?’

  윤혁은 잠잠히 그의 가르침을 경청했다.

  “넌 만물의 가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니? 질량? 크기? 밀도? 질서 정연함?”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단순히 피조물의 가치를 크기로 정의하자면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지극히 작은 티끌에 불과하니 한없이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윤혁은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믿었다.

  “만약 크기가 가치 재단의 기준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셨어야 할 이유도 없었겠죠. 차라리 별들을 구원하시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겠죠. 또 뛰어난 능력이 기준이 된다면 인간보다 강력하고 지혜로운 하늘의 천사들도 있으니 더더욱 인간을 아끼실 이유가 없었겠죠.”

  “생각이 깊고 사려 깊은 아이로구나.”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대로 피조물의 가치는 피조물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단다.”

  그는 자랑스러운 손자를 대하듯 윤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늘의 눈,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만 그 가치를 알 수 있지.”

  “하나님의 눈이요?”

  “너도 알다시피 모든 만물은 무(無)에서 시작했지. 또 그분이 작정하시면 언제든 무로 돌아가게 된단다. 게다가 만물, 곧 우주 위의 모든 우주들과 차원들을 합친다 한들 그분께는 한없이 작은 티끌과도 같지.”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맑은 표정으로 양팔을 하늘로 뻗었다.

  “그렇기에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귀하게 여기는 피조물이 가장 귀한 것이고, 반대로 그분이 가볍게 여기는 것이 가벼운 것이란다. 그분이 작은 돌 하나를 행성보다 귀하게 여기시면 그 돌의 가치는 행성보다 큰 것이란다.”

  머릿속에 쏙쏙 이해가 박혔다.

  “인간의 영혼도 마찬가지야. 우리의 영혼이 그 존재를 유지하는 이유, 그리고 존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혼들 하나하나를 인격적으로 알고 인격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란다. 그분은 만물과 사람의 영혼을 정보가 아닌 사랑을 통해 정의하시단다.”

  이전에 듣지 못했던 지혜로운 가르침이었다.

  “항상 애매했던 질문이 조금 정리된 것 같아요.”

  만약 인간의 정신을 ‘수많은 신경 세포들의 전기적 배치’ 혹은 ‘여러 정보와 데이터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그 가치는 인간 인격보다 더 거대한 정보 앞에서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각 영혼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창조주의 걸작이자 그분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주체로 이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누구도 창조주의 그 사랑을 멸시할 자격이 없으리라.

  “인격을 복제한다는 건 역시나.”

  깨달음을 얻은 윤혁의 생각이 투명해졌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받는 주체가 아닌 일개 정보 덩어리로 보려는 시도겠죠?”

  “그렇단다.”

  노인은 슬슬 소름 돋는 이야기를 베일에서 꺼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해 만물을 바라보고 이해하신다면 이 세상에는 정반대의 시각 또한 존재한단다. 만물을 ‘객관화된 정보’로 이해하는 시각이지.”

  “무신론자들처럼 말인가요.”

  “그들도 그렇지만, 사탄도 그런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단다.”

  순간 윤혁은 긴장감에 굳었다.

  “사탄이 하나님만의 영역인 창조를 감히 넘보려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 적당한 지식만 갖춘다면 그 역시도 모든 것을 짓고 다스릴 수 있다고 착각했단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세계관은 잘못된 것이고.”

  윤혁은 현세대의 초인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형의 행태가 우려되었다.

  이들도 악마가 행한 실책과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격 데이터 복제는 심각한 영적 위기였군요.”

  “그렇지.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도 있단다. 이미 인공지능의 수가 인간의 수의 수억 배를 넘어선 지금 시대에 복제 인격, 그것도 수를 무한히 복사할 수 있고 융합과 분열 등 온갖 조작까지 가능한 인공 인격체를 만들어낸다면?”

  “인간 존재 가치가 위협을 받게 되겠군요.”

  등 뒤로 털이 쭈뼛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다양한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지. 사람의 인격을 함부로 복사할 수 있다면 남의 기억을 함부로 파헤치는 일도 가능하지. 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격체를 군사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일도 버젓이 마구잡이로 일어나겠지.”

  그리고 그 외에도 무서운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으리라.

  문득 제로원의 인간들의 영적 실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로봇 단테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그의 말은 배교한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어쩌면 자신을 만들어낸 인간들을 향한 비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스스로 제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피조물인 인공지능마저 비웃고 있었던 셈이다.

  ‘확실히 두려운 흐름이네.’

  이제 마지막으로 윤혁은 한 가지 의문점을 물어보았다.

  “그 시종들은 대체 뭐였을까요?”

  자기 주인인 카이젤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그의 말을 신봉하고 순종하던 그 이상한 사람들. 그들에겐 마치 기이한 정신질환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 잘라서 뭐라고 진단하기가 어려웠다.

  노인은 역시나 이번에도 단서를 갖고 있었다.

  “내가 네오 오더를 적대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사탄숭배 때문도, 경제 사범 행위 때문도, 인구 감축 정책 때문도, 유전자 조작 실험 때문도 아니었단다. 그들이 연구한 또 하나의 금기 때문이었지.”

  “유전자 조작 인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위험한 행위라고요?”

  ‘대체 무슨 실험이길래?’

  노인의 이어진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정신 지배.”

  “⋯⋯네?!!”

  “세상 사람들의 정신을 자기들 마음대로 지배할 작정이었지. 완벽한 지배까진 아니더라도 효율적 세뇌를 기반으로 프로그래밍해서 자신들이 다루기 좋은 개돼지로 만들어버리려는 계획. 이 때문에 나는 그들을 용인할 수 없었단다.”

  “그런 정신 나간 일들이 어찌!”

  윤혁의 입에서 하마터면 험한 말이 나올 뻔했다.

  “심증뿐이지만, 지금 세대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는구나.”

  인류 역사를 거쳐 간 모든 독재자에 의해 유용하게 쓰였던 수단인 세뇌. 그리고 그것의 진화 판인 정신 지배. 과거 속에 묻힌 그 위험한 악습의 잔재가 새 시대에 들어와서는 경이로운 기술력으로 옷을 입고 부활할 조짐을 보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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