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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5회 초인들의 세계 Ch 27. 남은 자들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친구들의 간증을 듣고 난 뒤 윤혁은 자신이 품던 고민도 털어놓았다.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신실하게 일하는 많은 청년에 비해 유독 게으르게 느껴지는 자기 신앙에 대한 자성의 고민까지도.

  “음, 리온 녀석이 너무 기를 많이 죽여 놓았나 보네요.”

  에일리는 자상한 목소리로 동생뻘인 윤혁을 위로하였다.

  “하지만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누구나 다 하는 염려이니까요.”

  그녀의 위안이 유독 편안하게 다가왔다.

  “생각해보세요. 잘 나가고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길 만큼 대단한 사람은 극소수죠.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한 때에는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가치 없다고 자책하기 쉬워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런 성과 같은 것으로 결정되지 않죠.”

  그녀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달란트를 다섯 받은 사람이나 둘 받은 사람이나 결국 성실하게 일했으면 주님께서도 똑같이 칭찬했잖아요. 내가 맡은 작은 곳에서 작은 일부터 성실히,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하면 그만이죠.”

  그때 조용히 있던 중국인 남성, 창이 정갈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우리 같은 전문 사역자가 이런 말 하니까 이상하긴 하지만, 굳이 하나님의 일을 세속과 종교로 나눌 필요도 없어요. 목사님들이나 우리처럼 전적으로 사역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직업 역시 고귀한 가치를 가진 하나님의 임무죠. 그 일을 통해 이웃 사랑과 선을 실천한다면 말이에요.”

  지금껏 윤혁은 ‘하나님의 일’과 ‘세속 직업’ 중 어느 쪽도 확실히 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내심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창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 외로 불필요한 염려를 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나저나 윤혁은 공학 전공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레브가 윤혁에게 물었다.

  “아, 별반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수준입니다.”

  지금 시대에 평범한 실력가는 불필요하다. 기계가 스스로 기계를 설계하고 구축하고 진화까지 해대는 마당에 웬만한 사고력의 공학자가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윤혁은 친구들 앞에서마저도 왠지 저도 모르게 수축되었다.

  “소명을 발견하려는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하셨겠네요.”

  “제 친구들도 그렇고 다 똑같죠. 재능 있는 소수의 사람은 다르겠지만.”

  윤혁은 시니컬하게 자기 상황에 대한 고민을 툴툴 털어놓았다.

  대화를 듣던 리온이 뭔가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공학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세속 세계에만 있는 건 아니야.”

  “어이, 리온!”

  에일리가 리온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눈치채고 외쳤다.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끼리는 한계가 있잖아.”

  리온은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우리에게도 실력자가 필요해.”

  아무래도 동료들은 윤혁의 의기소침한 자기 평가와 달리 그의 가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듯했다. 리온의 설득에 동료들은 하나둘 수긍하였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되자 리온은 윤혁에게 말했다.

  “과학 기술이란 것도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이야. 그렇지?”

  “그거야 물론 그렇지.”

  “사람에 따라 선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악하게 쓸 수도 있어.”

  만약 불신자들이 신에 대항하거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 과학을 사용한다면, 거꾸로 신자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과학을 얼마든 유용하게 다룰 수 있다. 말하자면 일반 은총은 동전의 양면이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유용하다면 그 자체로 악하거나 부당한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이상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이용해. 예컨대 홀로넷처럼 말이야. 다소 뒤떨어진 구세대 기술이긴 하지만.”

  홀로넷(Holo-net).

  완벽한 사람 형체를 모방한 홀로그램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통신 시스템.

  공학 전문 학도인 윤혁에게는 익숙한 용어였다.

  “말 나온 김에 잠깐 보여드릴 게 있어요.”

  창이 지구본 형태의 작은 기구를 꺼냈다. 요새는 보기 힘든 낡은 형태의 장치였다. 그것을 가운데 두고 다섯 청년이 자신의 생체 암호 코드를 제시했다. 이내 잠금이 풀리면서 거대한 지구 형태 홀로그램이 그 위로 떠 올랐다. 홀로그램 상에는 여러 개의 붉은 점이 흩어져 움직이고 있었다. 각각의 점들에는 일련의 텍스트들이 같이 붙어 다니고 있다.

  “점들은 우리하고 연락이 닿는 동료들이에요. 소통하기 위한 창구죠.”

  창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거의 모든 대륙에 흩어져 있네요.”

  윤혁은 찬찬히 홀로넷을 살펴보았다.

  “일부 거대 도시들만 제외하면은요.”

  제로원의 위치로 추정되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정중앙에는 인식되는 신호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정보 보안도 있고, 출입에도 제약이 따르니 당연한 이치겠지. 그리고 각 대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거대 도시들에도 선교사들이 없었다. 붉은 점들은 주로 외곽 지대이나 낙후된 지역들에 많이 몰려 있었다.

  “도리어 거대 도시들은 우리를 환영하지도 않아요.”

  “들어간다 해도 마음대로 선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지.”

  창과 리온이 조금 안타깝다는 듯한 어투로 답하였다.

  “그건 확실히 그럴 것 같네.”

  초고도 문명 제로원의 도심을 돌아다녀 본 윤혁도 즉각 공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홀로넷을 처음 선교팀 소통에 도입한 건 리온이었다. 그는 사부의 교육 덕택인지 현대 문물 변화에 민첩했다. 이 기술을 통해 선교사들은 각 지역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선교 요충지를 파악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지역 교회 간의 상호 협력을 유도하는 데도 유용한 기술이었다.

  “교회도, 선교팀도 소규모로군요.”

  점의 분포 패턴을 읽은 윤혁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배교하지 않고 남은 자들은 몇 안 되니까.”

  거대 교회도 존재는 하지만 대부분은 배도하거나 종교통합 운동에 가담해버렸기에 마지막까지 원래의 신앙을 고수한 교회는 극소수였다. 그런 교회들은 대부분 소규모 크기인데다 낙후된 지역에 흩어져 있었기에 협력이 쉽지 않던 차였다.

  그렇기에 첨단 통신의 도입은 확실히 지혜로운 전략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믿음을 지키는 싸움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교회에만 앉아서 세상과 담을 쌓으면 결국 바깥세상은 타락할 수밖에 없지. 우리가 정말 빛과 소금이라면 용감하게 나서서 행동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신념을 지닌 사람들끼리 확고하게 뭉쳐야만 하지.”

  리온의 담대한 포부에 윤혁은 속으로 경탄했다.

  그는 친구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준비해 왔는지 알게 되었다.

  “참고로 홀로넷을 쓰면 원격으로 대면 개인 전도하는 것도 가능해요.”

  레일리가 현지 사람과 홀로그램으로 만나 대화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설교하는 것과는 확연히 색다른 맛이 있죠.”

  “또 다른 장점으로는 감시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

  레브도 들뜬 목소리로 거들었다.

  “음, 현 민간 사이버 네트워크와는 별도인 구식 네트워크를 이용하나 보네요. 효율성 자체는 완벽하지 않겠지만, 첨단화된 양자 통신보다는 실시간 외부 간섭으로부터 좀 더 안전히 떨어질 수 있겠어요.”

  윤혁이 차근차근 구조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현재 모든 통신 시스템은 연합의 컨트롤 아래 있지.’

  주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리라.

  ‘물론 우리야 떳떳하지만, 감시나 방해는 성가시니까.’

  이미 인류의 통신 패러다임은 전자 기반의 통신에서 광년 단위까지 적용 가능한 양자 통신으로 전환된 지 오래였다. 아니, 현재는 이미 양자 통신 패러다임마저 몇 세대나 뛰어넘어 더욱 고도로 발전하였다. 그 모든 통신 기술이 초인들한테서 나온 기술임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감시를 온전히 피해 마음 놓고 선교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가 올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에 당신처럼 조금이라도 공학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합류한다면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유익할 것 같습니다.”

  창이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말씀은 잘 알겠지만, 지금 제 수준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주저하는 윤혁의 기색을 알아차린 에일리가 부담을 덜어주었다.

  “우리가 쓰는 기술들은 현 인류연합이나 타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구시대에 해당하죠. 전공자 정도만 된다면 어렵지 않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요.”

  윤혁은 진지하게 이들과 함께할지를 고민하였다. 이들의 일은 지극히 선하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인종이나 능력에 대한 차별 없이 의지가 있는 신자라면 누구나 선교에 동참시킨다. 기회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도 없으니 궁색한 변명을 내세울 틈도 없으리라.

  ‘어쩌면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

  단기간의 경험조차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내게는 다른 이점도 맡겨졌지.’

  세계의 중심부에 침투하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복음 전파와 마지막 시대의 흐름, 그 두 가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끈으로 얽힌 만큼 남들이 모르는 깊숙한 비밀을 미리 파악해낼 수 있는 윤혁의 처지는 선교팀에게는 대단히 유용한 달란트였다.

  ‘적 수장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스파이라 이건가?’

  형을 적이라고 표현하자니 조금은 형에게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영적 위치로는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으리라. 어르신께서 설명해주셨던 대로 그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세상 세력을 이끄는 초인들의 수장이니까.

  ‘조금 더 긍정적으로 고민해보자.’

 

  그 후로도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가 이어졌다.

  리온의 동료들은 전부 공손하고 친절이 흘러넘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허울이나 가식도 없었다. 덕분에 윤혁은 선교팀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윤혁은 그들에게서 여러 나라의 일화를 전해 들었다. 과연 불신이 팽배한 세상 가운데에서 선교하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선교지마다 한둘 이상의 영혼은 믿음의 여정으로 거둬들였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들은 이런 작은 성과에 일일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표했다.

  ‘큰 부흥이 없어도 상관없다, 이건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상과가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의 가치를 기뻐하는 마음, 그들에게서는 확실히 그러한 마음이 엿보였다. 과연 어르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마음은 각 영혼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었다. 하나님을 따르는 선교팀을 보니 그것이 사실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친구의 합류를 기뻐하며 가벼운 저녁 식사를 나눴다.

 

  흩어지기 전 윤혁은 리온에게 몰래 다가가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우선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삼 년만이라도 너희와 함께해보고 싶어. 내겐 과거 조상들과 달리 군 복무 의무도 없으니까 그 정도 시간은 온전히 다 바쳐도 불평할 것 없겠지. 전 인생을 기꺼이 헌신한 너희와 비하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일단은 내가 바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전부 드려보고 싶어.”

  그 말을 듣자마자 리온은 기뻐하였다.

  “무리한 선택은 아니겠어?”

  물론 내심 걱정도 있었다. 친구에게 현실적 손해를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해 봐야지. 마음만 더 준비되면 더 오래 뛰어볼 생각도 있어.”

  도전도 안 해보고 물러나는 일은 이제 윤혁도 사양이었다.

  “고맙다. 그래도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마.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

  그래도 윤혁의 합류가 큰 반향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너라면 잘 해낼 거야.”

  리온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는지 윤혁의 눈빛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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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이 소설의 존재를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믿지 않는 분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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