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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2회 초인들의 세계 Ch 33. 심연과 창공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1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예전에 딱 한 번 납치당했던 적이 있었다.”

  윤혁은 숙연한 표정으로 형의 말을 경청했다.

  “스무 살 때……, 그때 한 번 방심해서 호되게 당했지.”

  인생 처음으로 실패란 걸 겪을 뻔했던 그 사건.

  “납치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고문이라는 강수를 두었지.”

  “그, 그런!”

  이어지는 내용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윤혁은 상상만으로 몸서리치며 입을 틀어막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일간 험한 짓을 당했지. 전통적인 중세 방식에서부터 최신식의 방법까지,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고문법은 다 동원됐어. 놈들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 몸을 망가뜨렸다. 아니, 수천 번도 넘게 죽이려 했지.”

  차라리 보통 사람이었다면 정신을 잃기라도 했었으리라. 하지만 초인적 정신 능력을 지닌 그는 그 절망적인 시간 내내 1초도 쉬지 않고 맨정신을 유지했다. 더욱이 압도적인 ‘초인의 육체’는 고문으로 망가지는 몸을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복구시키며 계속해서 끝없는 형벌을 받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형의 얼굴이 깊은 수치감과 트라우마로 일그러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제아무리 얄미운 사람이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던가. 윤혁은 형의 마음을 망가뜨린 그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혐오감을 투사했다.

  “형, 괜찮으세요?”

  상처의 기억을 떠올리며 부르르 떠는 형을 진정시켰다.

  “놈들이 여기를 가장 심하게 망가뜨렸지.”

  유일하게 재생되지 못한 곳.

  “찢고 자르고 뭉개고 둔기로 치고 불로 지지고 이물질을 넣고……, 그 짓들을 다 당하고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구조된 이후 치료는 받았지만 결국 영구적으로 일그러졌어. 기능을 완전히 잃은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부분은 윤혁도 조금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방금처럼 재생 기술을 사용하면 회복 가능하잖아요.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의학이면 어떤 치료나 복구도 손쉽게 시행 가능한데요. 신체 일부를 제작해 이식하는 것마저 가능한데!” 

  “그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거든.”

  카이젤은 쓰라림과 아련함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무서워 보이면서도 또 한없이 슬퍼 보이기도 하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동생에게 치부를 들킨 게 수치스러워서 그런 걸까?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종종 꿈을 꾸거나 할 때 내게 다른 ‘무언가’가 덧입혀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지. 재능, 기억, 인격, 능력, 그래 주로 그런 것들. 타인을 직접 만나 재능을 흡수할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본 적조차 없는 사람의 경험, 지식, 능력을 고스란히 내 몸이 흡수하여 소화하는 것이 느껴져.”

  이번에도 잘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이야기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정신질환이나 빙의 같은 건 아니다.”

  이상한 방향으로 오해할까 봐 그는 딱 잘라서 말했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매번 분명한 실질적인 능력 향상이 발생했지. 그렇게 받아들인 ‘무언가’는 영구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어. 마치 무한한 잠재력이라도 있는지 끝없이 소화해냈지. 물론 부작용도 있었지.”

  “부작용이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 그러니까 자의식이 조금씩 희석되었지. 그리고 나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오만’이라는 감정이 증폭되었어. 그것을 다스려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왕 가장 깊은 수치를 들킨 김에 카이젤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비밀들을 동생에게 잔뜩 이야기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술 동무 앞에서 마음속 깊은 고민들을 부담 없이 털어놓듯이.

 

  이것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 지속되었던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정확히는 죽은 사람이 일평생 쌓아온 지식과 재능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기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졌다. 초인으로서의 타고난 재능, 괴물 같은 학습 능력, 여기에 특이 기질까지 더해지자 상상을 초월한 성장세가 나타났다. 카이젤은 보통 초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게 자라났다.

  처음에는 ‘흡수하는 기질’을 제어하지 못해 약간의 곤경도 겪었다. 하지만 이후 흡수 기질을 온전히 제어하게 되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는 비슷한 격에 있었던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급속도로 벌릴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그릇 자체가 남다르기도 했으니 언젠가는 벌어졌겠지만.

  하지만 ‘흡수하는 기질’ 때문에 너무 많은 인격 데이터를 얻은 나머지 자의식이 그 흡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더욱이 카이젤의 자아는 흡수에 반응하여 내면의 오만함을 증폭시켰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런 불균형 현상이 지속되면 언젠가 자아를 잃어버리거나 오만에 집어 삼켜질지도 모른다고.

 

  “해결 방편이 딱 한 가지 있었지.”

  “그게 뭐였죠?”

  “결함을 가진 존재로 남는 것이었지.”

  약점을 갖고 있으면 그 약점은 오만함을 억제하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치명적인 열등감이라도 남아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기억을 떠올릴 단서가 하나라도 더 생긴다.

  치욕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그에게도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그는 원래부터 남성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것은 태생부터 지닌 원인 모를 약점이었다. 수치심과 콤플렉스의 근원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원래도 일부러 고치지 않고 놔두었지.”

  웬만한 용기 없이는 이렇게 대놓고 밝히기 어려웠을 텐데.

  “고문 이후엔 더 일그러졌지만 대강 내부만 치료하고 모양은 내버려 뒀다.”

  동생은 형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듣고 쓰라림을 공감했다.

  “일상생활에 불편하시진 않으세요?”

  “그건 문제없어. 이따금 환상통이 느껴져 심하게 따끔거리긴 하지만.”

  적응된 건지 체념한 건지 모를 그 태도가 슬퍼 보였다.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볼 생각은 없으시고요?”

  “글쎄. 생각해본 적 없군.”

  “하지만…….” 

  남들에게는 당연한 평범한 삶이 형에게는 비참하게 박탈되어 있었다.

  “죄송해요. 이런 식으로 아픈 기억을 들춰내서.”

  카이젤은 쓰게 웃으면서 자비롭게 용납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윤혁도 형을 향해 느껴지는 감정의 내용이 조금은 달라졌다. 전에는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한 벽 같았는데, 의외로 깊은 상처를 받은 모습을 보려니 속이 쓰렸다. 만일 자신이 품은 이 연민을 형이 알아차린다면 수치스럽게 여길까? 틀림없이 그러겠지. 부디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

 

 

 

 

 

 

*****

 

 

 

  그 후, 윤혁은 며칠간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그는 이종족으로 분류되는 신수에 관해서 고민했다. 생명도 기계도 아닌 이질적인 인공 창조물.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범한 실수가 떠올랐다. 여기에 정신 조작 계열 기술들까지 생각하자니 더욱 지끈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믿는 중이었다. 모든 종류의 능력들을 쟁취하기를 갈망하며 과학과 문명의 힘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직 원시적인 시절에는 그런 욕망이 있어도 실현으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으리라. 한정된 자원과 적대적인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인정했겠지. 그러다 서서히 자연을 극복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인간은 온 땅 위를 마음대로 개척하였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자만심에 취해 설쳤다. 결국, 인류는 하나뿐인 행성 지구를 탐욕 때문에 더럽히고 망가뜨렸다. 아직 지구를 벗어나지도 못한 시절에도 주제를 알지 못하고 과도한 개발로 몰락의 길을 자초했었다.

  그렇게 처절히 한계를 체감하며 굴복할 무렵.

  기적처럼 초인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존재들의 출현을 허락하셨을까. 그분의 뜻이 무엇이건 인류는 어쨌든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유한한 자원의 한계를 벗어났고 시공간의 제약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으며 무궁무진한 지식을 발견하였다. 초인의 등장은 가히 특이점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다시 성장한 인류는 이번에도 선을 넘어 자신들의 오만한 야망을 이루려고 작정하는 중이었다. 생명을 개조하거나 유사한 생명을 제작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마음에까지 손을 대고, 심지어는 전 우주의 자원을 소모해가면서 끝없이 개척을 시행하는 중이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우두머리가 바로 형…….’

  카이젤은 왜 스스로 인간성을 탈피하고 초월적 존재가 되려 하는 걸까? 어쩌면 과거의 여러 불행했던 시간 탓일까? 아니면 초인으로서의 성장 본능 때문에? 그토록 많이 갖고도 왜 멈추어 설 줄을 모르는 걸까? 그의 치부와 약점은 자아를 고정하는 닻인 동시에 끝없이 갈망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까? 콤플렉스라는 무서운 흡수력은 때로는 강력한 동력이 되는 법이니.

  ‘너무 잡생각이 많아졌어.’

  윤혁은 머리를 식히고자 잠깐 바깥에 나가 산책하기를 청했다.

  “내가 함께 나가지.”

  이번에는 카이젤도 동생을 홀로 내보내지 않고 직접 나섰다.

  “혼자 내보내기에는 걱정이 돼서 말이야.”

  신수가 공격했던 날 이후로 그는 이상하리만큼 동생의 안위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금껏 어떤 유능한 부하에게도 그렇게 했던 적은 없었거늘. 그 자신도 스스로의 태도를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고마워요.”

 

  그렇게 두 형제는 제로원의 거대한 도심을 활보했다.

  카이젤은 아우에게 도시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남김없이 보여줄 수 있었다. 도시의 왕인 그에게는 다가가지 못할 금지 구역은 없었다. 화려한 문명과 넘쳐나는 재화가 모두 그의 것이었다. 인류연합의 권력, 초인이라는 유능한 인재들, 여러 별에 인류가 건설한 찬란한 대(大)문명이 그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로원은 특별히 아끼는 진귀한 보물이었다.

  인류의 고향이자 본성인 지구의 본체나 다름없는 제로원.

  지하로는 총 7,000층, 아니, 지구 중심에서 뻗어 나와 양방향으로 이어졌으니 총 14,000층이었다. 그중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구역만 해도 50층이었다. 각 층은 지하 동굴처럼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었고 여러 위성 도시들이 그 내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무인 지대에는 허다한 생산 플랜트, 연구소, 초대형 컴퓨터, 발전소, 통신 중개 시설, 실험체를 감금하는 구금 시설이 있었다.

  수천 개의 축이 지하층들을 한꺼번에 관통했다. 그중 하나의 축이 가장 깊은 지구 중심까지 이어졌다. 지하 탐사용 함선 하나가 그 축을 초고속으로 수직 왕래하는 승강기 역할을 하였는데 형제는 제일 먼저 이 함선에 탑승했다. 바깥은 지하인지라 뜨거워야 마땅하거늘 열기조차 전혀 닿지 않았다.

  “아무리 특수 재질이라고는 하지만 괜찮을까요?”

  “원래 항성 핵 진입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니 거뜬해.”

  실제로 카이젤은 요새화할 항성을 직접 탐사할 목적으로 여러 차례 별의 중심을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니 불과 섭씨 7천 도에 불과한 지구의 중심 정도는 어린아이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형제는 지구 중심의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지켜보았다. 윤혁은 그게 무얼 하는 물건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딱딱한 금속 덩어리인 내핵 전체가 기이한 재질의 물질로 치환되어 하나의 거대 인조 시설물로 개조되어 있다. 깊은 땅속이기에 빛이 없어야 하거늘 특수 관측 장비 덕에 내핵 전체가 생생히 보였다.

  ‘핵 전체가 무언가로 바뀌어 있다?’

  좀 더 상층부로 올라가자 녹아내린 뜨거운 금속의 바다 곧 외핵이 보였다. 여기에는 에너지 발전소를 포함한 수많은 무인 도시와 시설물이 벌집처럼 얽혀 정교한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제로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구나.’

  도시의 진정한 본체는 훨씬 더 거대하고 깊은 이곳이었다.

  지구 핵을 송두리째 구조물로 개조했을 줄 누가 감히 상상했을까.

  ‘이런 걸 만들려면 얼마나 오래 공사를 진행해야 하지?’

  어쩌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애당초 인류가 지구 중심을 파헤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니까. 즉 그 짧은 시간 안에 제로원의 개조는 완료된 셈이다.

  ‘과연 개조당한 건 지구가 전부일까.’

  우리 은하에만 무려 수조 개의 항성과 행성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정복된 상태였다. 그것들도 지구처럼 속살까지 파헤쳐졌을까? 항성이나 행성 전체가 구조물로 개조되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빠른 공사를 할 수 있었지?’

  지금껏 왜 이 점을 간과했을까? 아무리 극한의 열과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물질, 영구 동력원에 가까운 에너지원,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통신 및 교통 시스템이 있더라도 개간에 필요한 ‘부족한 시간’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텐데. 도대체 인류는 그 짧은 시간 만에 무엇으로 그 어마어마한 양의 공사를 해냈을까?

  ‘시간을 다스리는 무슨 술책이라도 있나?’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골똘히 궁리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카이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너무 덥군.”

  “이글거리는 고철 덩어리와 용암 바다니 당연하겠죠.”

  “여기보다 서늘한 곳으로 나가자. 좀 더 위쪽으로.”

  그가 정적을 깨고 신호를 내렸다. 특수 전함이 제로원의 축을 따라 상층으로 빠르게 치솟았다. 이윽고 그들은 순식간에 맨틀에 도달했다. 외핵이나 내핵과 다르게 맨틀은 전체가 통째로 개조된 상태는 아니었다.

  “외핵과 닿아있는 일부 층과 수직축들의 근방만 개발했지.”

  “지각 변동을 염려해서 그러신 건가요?”

  “그래.”

  하긴 지구는 다른 별들과 달리 표면 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그러니 대대적인 행성 단위 개조를 시행하려고 해도 다른 별보다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을 것이다. 더욱이 맨틀은 지각 변동 에너지도 공급하며 지각과 맞닿은 영역이니 사람 몸을 수술하듯 신중히 제어해야만 했으리라.

  “그 대신 지표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진, 화산, 지각 변동 현상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한 특수 중개 기지들을 맨틀 곳곳에 설치해두긴 했지. 제로원이 통제탑 구실을 한다.”

  맨틀 깊이에 해당하는 제로원 층들은 여러 다양한 시설들을 보유했다. 하나하나 살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카이젤은 빠르게 도시 전역의 웅장한 광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펼쳐 보여주었다.

  ‘아마 지금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

  이후 마침내 그들은 지각층을 지나 지표로 올라왔다.

  지상 일 층에 도착하자마자 카이젤은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기를 따라오라며 우아한 자태로 손짓했다. 대단히 기품 있고 고상한 모습이었다. 둘은 대로를 따라 걸어갔다. 화려한 문명의 이기, 풍족한 재물, 아무 구속 없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리는 시민 등 익숙한 장면들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카이젤은 품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불가시 모드를 쓸 수 있지 않나요?”

  “뭐 그렇지. 그래도 한 명의 행인이 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

  지나가는 많은 행인이 저도 모르게 정체 모를 남자를 향해 눈을 힐끗거렸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2m에 근접한 큰 키, 다부진 근육, 근사한 체형, 그리고 무엇보다 특유의 카리스마가 시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애꿎은 윤혁은 옆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어서 비껴가기를 기다리며 불편한 걸음을 재촉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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