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3회 초인들의 세계 Ch 33. 심연과 창공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1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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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달한 곳은 하늘을 뚫고 뻗어 있는 거대한 마천루였다.
마천루는 위쪽으로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도시의 층을 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마천루와 같은 탑을 이용해야만 했다. 마천루 내부의 투명한 승강기에 오르자 금세 거대한 도시 풍경 전체가 보였다. 면적만 보면 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대륙 같았다. 상층에 이르자 화려한 도시의 빛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몹시 현란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모습이 온 시선을 잡아끌었다.
윤혁도 알다시피 도시는 지상에서 상공까지 일흔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대륙이 중력을 거역한 채 하늘 위에 띄워진 모습이었다. 거대 기둥들이 그 층들을 꼬챙이처럼 관통해 지탱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불안정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반중력, 고정 결계, 그리고 공간 재조립 등의 기술을 적용한 덕에 지구 전체가 붕괴되어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이었다.
‘언제 봐도 굉장하네.’
층과 층 사이의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에는 기이한 원리로 태양 빛을 워프시켜 전송해주는 장치가 있었다. 기온과 습도와 일조량과 대기 순도를 실시간으로 최적화시키는 시설들도 있었다.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하늘이었다.
“아름답지 않나? 이 모든 것들이 말이야.”
“확실히 그렇네요.”
“여러 별 중에서도 특별히 이곳 지구에 많은 공을 들여 공사를 수행했지. 더 큰 요새야 많지만, 이곳만큼 미학적으로 완벽한 곳은 없어. 전 우주의 수도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니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카이젤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또렷이 말했다.
“전에 한 번 이곳을 거닐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 있어요.”
윤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배경이며 환경이며 소유며 너무도 풍족하게,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채워졌는데, 이상하게도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마치 영혼이 생기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가?”
대수롭지 않다는 태연한 답변이 윤혁의 마음을 발끈하게 했다.
원래 세상의 정점에 서려면 저렇게 냉혹하고 비정해야 하는 건가?
“이해할 수 없군.”
황금빛 눈에는 불만의 이채가 깃들어 있었다.
“확실히 나를 독재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철인정치는 초인들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는 줄곧 새로운 질서이자 원리였어. 누구도 그 당위성을 부정하지 못해. 그리고 나는 그 의무에 부응했지. 우리 종족 전체를 대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 사람들에게 부족함 없이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는 정말로 항상 풍요를 창출해왔다.
식량 부족을 종식했고 오염된 환경을 즉각 자동 복원할 방도도 완성했다.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각국 군사력을 회수했고 최고의 효율을 가진 에너지원들을 도입해 에너지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그도 모자라서 그는 인류가 평생 쓰고도 티끌만큼도 줄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양의 자원을 수중에 넣었다. 인간에게 몇천 년간 허락되지 않았던 하늘 위의 무수한 별과 행성. 거기서 나오는 물질 자원과 방대한 에너지들을 탈환해 강력한 제국을 이룩하였다.
그는 여기에 안주해 멈추지 않았다. 차원 너머까지 손을 뻗쳐서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물질까지도 취하였고 넓디넓은 은하 곳곳에 인간이 누비지 못할 곳이 없도록 미리 터를 닦아놓았다.
“과거 인류가 갈등하던 이유는 궁극적으론 제한된 파이와 무한한 욕망 때문이었지. 무한한 탐욕 쪽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끝났어. 그렇다면 다른 쪽을 해결하면 돼.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자원으로 바꿔야지.”
그런 신념 아래에 초인들은 여러 대에 걸쳐 업적을 쌓았다. 지구를 넘어 태양계를 차지했고 태양계에서 다시 은하로까지 뻗어나가며 종족의 무궁한 재산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분명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믿어왔건만.
카이젤에게도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왜 그토록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그 모든 욕망을 해결해주니까 이제 와서 자신들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걸까?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하지? 무엇을 더 채워 넣어야 하지?”
윤혁은 형의 말을 잠잠히 듣고만 하였다. 분명 허풍 부리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을 뿐이었다. 윤혁은 그 질문에 관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식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가 아니요, 체험에서 비롯된 차이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형과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선언을 믿느냐의 여부였다.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느 시대에나 항상 그래왔죠. 설령 인류 전체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능력과 지식에 있어 부자가 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소유가 많아도 사람들은 그 마음이 늘 허전할 수밖에 없어요. 영혼은 늘 항상 굶주린 채 해갈을 갈망하고 있거든요.”
카이젤은 윤혁이 처음으로 자신 앞에서 당당하게 신념을 피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내심 놀랐다. 내 앞에서 그토록 움츠려있던 그 아이가 맞던가. 녀석이 저렇게까지 담대했던가. 순간적으로 머리를 다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윤혁은 의연하고 부드러웠으며 굳은 확신에 차 있었다.
“가진 것을 잃을까 염려할 수는 있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누구든 무언가를 누릴 때는 순간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그 만족은 이내 사라져버리죠. 마치 물을 마셔도 마셔도 언젠가는 다시 목이 마른 것처럼요.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갈증은 커져만 갈 거예요.”
인류는 그 갈증을 이기지 못한 채 더 높은 것을 추구해왔다. 매슬로는 이를 피라미드 공식으로 설명하려 노력했었다. 배고픔을 채운 자는 안전을 찾고, 그 뒤로는 인간관계를, 그 뒤에는 명예를 찾는다. 그러나 아무리 고상한 것을 찾으려 해도 다시금 갈증이 발생하는 쳇바퀴는 똑같다. 종국엔 ‘자기실현’ 혹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형이상학을 찾으려 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존재나 할까?
“소유가 아닌 ‘가치’의 추구를 말하는 건가?”
“자기만의 신념과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문제일까요?”
“흐음.”
“평생에 걸쳐 찾고자 했던 가치가 사실은 허상이었음이 밝혀진다면요?”
소유의 허망함을 알고 ‘고결한 가치’를 평생에 걸쳐 좇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초인들이야말로 그런 부류 아니겠는가. 그러나 윤혁은 의심스러웠다. 과연 그들은 자기가 간절히 찾고자 했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찾다가 낙망하겠지.
“중요한 건 가치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신실하냐가 아니에요.”
동생의 지적이 폐부를 따끔거리게 했다.
“그 가치가 ‘진정한 진리’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죠.”
“진정한 진리라.”
“그리고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인간 스스로는 알 수 없어요.”
카이젤의 입꼬리에 쓰린 실소가 걸렸다.
“신의 계시를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로군.”
“절대적이신 분, 모든 것을 창조한 분만 진실한 가치를 알고 계시죠.”
절대적이라는 낱말이 카이젤의 양심을 후벼팠다.
그토록 저 자신이 추구했던 경지가 아니었던가.
“그분 자체야말로 곧 진실한 가치이시죠.”
카이젤은 속으로 동생의 영민함을 칭찬했다.
‘허를 찔렸군.’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흔들릴 허술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의 신념은 ‘인간을 위하는 것’,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누리는 미래지. 그리고 너는 반대로 신을 믿고 따르는군. 인본주의와 대립하는 신본주의라. 겉보기에는 똑같이 선을 추구하니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너는 내가 완전히 틀렸다고 믿고 싶겠지? 하지만⋯⋯.”
그의 잘생긴 얼굴이 소름 끼칠 정도의 냉철함을 머금었다.
“나 역시도 신의 존재 정도는 알아.”
윤혁은 표정을 굳혔다.
‘그랬었지. 저 사람은 무신론자가 아니야. 오히려 그 정반대…….’
영적인 긴장감으로 인해 윤혁의 미간에 약하게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그가 불합리하거나 불완전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혼란을 제어할 힘이 있으면서도 일부러 자기 재미를 위해 내버려 둔 것인가? 아니면 그 완벽한 계획으로도 예측 못 할 변수가 존재했던 것인가?”
비난이라기보단 자조에 가까운 비평이었다.
“그분은 알면서도 개선하기를 거부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될 줄 알지 못했던 건가? 혹은 자기 뜻을 바꿀 능력이 없었던 걸까? 어느 방면으로 생각해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신의 완전한 선함’과 ‘신의 완전한 권능’은 조화되지 않는다. 신을 믿는 자들은 항상 이 질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
“아니면 마지못해 대답을 얼버무리는 게 전부거나.”
여태껏 많은 신학자와 믿음의 선진들이 ‘악과 고통의 문제’를 대답하려 애써왔었다. 나름대로 최선의 논리를 만들어내었고 그중에서는 제법 그럴싸한 대답도 존재했다. 그러나 논리의 허점을 꿰뚫어 보는 카이젤 앞에서는 그 무엇도 합격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신을 신뢰한다던 자들은 언제나 궤변 뒤에 비겁하게 숨어왔다.
“네가 한 번 대표해서 대답해 봐라. 우리는 왜 우리의 멸망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존재에게 복종해야 하지? 만일 그가 불완전한 존재라면 우리가 그에게 맞선다고 해서 윤리적으로 탓할 수 있는가? 혹은 그가 우리보다 강하기에 복종해야 하나? 그건 힘의 논리밖에 되지 않잖은가?”
고전적인 질문이지만 동시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저는……, 지금의 우리들로는 그 정답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윤혁은 구태여 해답을 자아내려 애쓰지 않았다.
“왜 세상에 악이 허락되었는지, 그분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신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제 주제에 알 수도 없죠. 주님께서 설령 보여주시려 해도 시공간 속에 갇혀 있는 우리들의 호두만 한 작은 뇌로는 깨닫지 못하겠죠.”
금색 눈이 당돌한 청년을 응시했다.
“설령 당신처럼 최고로 똑똑한 사람 조차도요.”
처음으로 형의 두려움을 극복해낸 기분은 상쾌했다.
“하지만 영원히 감추시진 않으리라고 믿어요. 심판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명백히 알게 될 거예요. 그때는 누구도 하나님의 주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분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알게 될 테니까요. 아무런 강요가 없어도 절로 이해하게 되겠죠. 저는 그때까지 믿고 기다릴 생각이에요. 그전까지는 그분을 시험하고 따질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어요.”
청년은 오래전 들었던 그 말을 기억했다.
[기록된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윤혁은 그렇게 믿었다. 본인 스스로 온전한 신성을 지녔음에도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묵묵히 기다리며 순종하셨던 그분. 그분만이 그의 기준이었다.
*****
대화하는 사이에 제로원의 가장 높은 층에 가까이 이르렀다.
‘윤혁이가 언제 이렇게 대담해졌지?’
형은 논쟁을 멈추고 감상에 잠겼다. 말로 짓누르려면 더 할 수도 있겠지만, 괜히 부질없는 짓이 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동생과 더 앙금을 쌓기는 그도 원치 않았다. 정신지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체병기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더욱 자신을 경계하겠지. 이런 마당에 신앙관 때문에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가 제법 철도 들고 잘 자란 것 같아 이유 모를 뿌듯함도 느껴졌다. 이런 얼척없는 생각에 빠지는 자신도 어이없었다. 이런 소소하기 그지없는 변화들이 쌓이다 보면 우애에도 진전이 생길까?
둘은 올라오며 각기 다른 모습의 경관들을 목격했다.
드높은 고층 영역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영화로움과 웅장함이 증대되었다. 우주와 가까운 영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로부터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자원과 풍족한 물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 고대에 해안에 위치한 도시가 무역으로써 번성하는 것처럼 오늘날은 하늘과 우주에 가까운 곳일수록 더 풍성한 번영을 누리기 마련이었다.
하늘들 위로 어렴풋이 반투명한 배리어와 실드들이 보였다. 지구 전체를 두르는 구체였다. 온갖 종류의 재해로부터 막아내는 방벽이며 환경을 제어하는 제어 장치였고 동시에 허가 없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감옥이었다. 카이젤은 줄곧 자기 이외 초인들의 무역 행위를 저것으로 통제해왔다.
최상층에서는 궤도 엘리베이터들이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저게 바로 궤도 엘리베이터 본체군요.”
“본체를 직접 보긴 처음인가 보군.”
저 멀리에 지구의 다른 대륙과 다른 바다에서 탑처럼 솟구친 궤도 엘리베이터들도 보였다. 지구에서 가시처럼 솟구친 엘리베이터들은 하늘 위에 세워진 지구의 인공 고리인 오비탈 링에 닿았다. 오비탈 링은 큰 구조 내에 작은 구조가 연결되는 프랙털 구도를 이루며 여러 상공 궤도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일 거다.”
아마 달 궤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공위성, 우주 요새, 전함, 그리고 지구 전역을 둘러싸는 우주 게이트들이 존재할 것이다. 직접 건너본 적이 없는지라 이론과 소문에 기반한 추측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구 밖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쉽군.”
내심 형이 얼마나 자랑하고 싶어서 지금껏 근질거렸을지 이해가 되었다.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요. 지구 중심에서부터 상공까지 왔잖아요.”
“다음번에 올 때는 저 너머에도 데려가 주지.”
형이 선뜻 우주 너머를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윤혁은 놀랐다. 사실 그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인류연합은 허락된 자 이외에는 마음대로 지구 안팎을 넘나들지 못하도록 제어한다지. 호기심이 들었다.
형제는 잠시 경치 좋은 공중 정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그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척 없이 나타난 소리에 놀란 윤혁은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맑은 금발에 선명한 하늘색 눈, 눈에서 은은히 뻗어 나오는 반투명한 격자 문양의 선. 기억을 더듬어보니 박람회에서 한 번 마주친 적 있던 의문의 남자였다.
“진, 따로 조용히 만나자고 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방금 준비를 마치고 아버지를 뵙기 위해 왔는데…….”
공손히 묵례하던 금발의 미청년은 힐끗 윤혁을 보더니 살짝 웃었다.
“자리에 안 계셔서 부득이하게 찾게 되었습니다.”
그자는 윤혁을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숙부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동생을 노리는 그 시선을 눈치챈 카이젤이 호랑이처럼 작게 으르렁거렸다.
이에 눈치 빠른 금발 미남자는 재빨리 상관 쪽을 보며 웃어 보였다.
“기술 교류를 위해서 왔습니다. 분명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는 계획들을 진행하는 데 나름대로 소소한 도움이 될 겁니다. 기대되시지 않습니까?”
카이젤의 금빛 눈이 진의 푸른 눈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바로 지하 랩으로 들어오도록.”
밤이 늦었음에도 일을 미루지 않는 철두철미함에 윤혁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카이젤은 진이라는 남자와 함께 어딘가로 걸어갔다. 뒤에 홀로 남겨진 윤혁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뇌리로 직접 익숙한 신호가 들려왔다. 텔레파시였다. 신수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목소리는 조금 전 들었던 진의 목소리와 느낌이 똑같았다.
‘나중에 저랑 이야기라도 나누시죠. 강윤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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