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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4회 초인들의 세계 Ch 34. 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20 | 회차평점 0 0

 

 

 

 

 

Chapter 34. 진

 

 

 

 

 

 

  윤혁이 홀로 침대에 누워서 쉬는 중 다시 한번 텔레파시가 전송되었다.

  “이번 한 번이 한계인 것 같군요. 지금도 아버지의 눈을 피하느라 조금 애를 먹고 있습니다. 날짜를 정해드리죠. 그때 먼저 한 번 만나보고 그 뒤에 새로 일정을 잡도록 합시다.” 

  생각을 읽거나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기나 다른 매개체를 우회하여 직접 머리로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 텔레파시 송수신 능력이 체내에 없는 윤혁은 상대가 보내는 전음을 듣기만 할 뿐 대답은 불가능했다.

  그날의 산책 이후 형은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구하느라 바쁘신가?’

  본래 그는 늘 생활 방식이 강박적일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24시간 주기로 10시간은 공식 임무, 나머지 시간은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공부하거나 계획을 구상하거나 연구를 했었다. 또한 그는 수면을 줄여가면서까지 몸을 망치진 않는다. 아주 중요한 연구 주제를 다루거나 매우 급한 정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잠과 식사와 운동만은 철저히 잘 챙겼다.  

  ‘그만큼 중대한 일을 논의할 만한 사람이라면 분명 최측근이겠지.’

  대강 그 진이라는 사람이 어떤 자일지 감이 잡혔다.

 

  그리고 이내 얼마 안 가 다시 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텔레파시가 아닌 통신 메시지를 통해서 ‘3일 뒤 정오, 란스톤 132번 광장’이라는 짧은 신호가 찾아왔다. 홀로 걸어가도 될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공장소였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의심을 살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윤혁이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텍스트는 흐릿하게 변하였다. 즉각 뭔가 다른 종류의 무의미한 문자의 나열로 바뀌었다. 텔레파시와 메시지를 기술적으로 연동시켜서 일시적으로 수신자만 암호를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든 듯했다.

  ‘솜씨가 화려한 사람이군.’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었다.

윤혁은 저택 관리인들에게는 산책하러 나가겠다고 일러둔 뒤 조용히 밖으로 나와 진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감시가 붙지 않도록 일부러 자연스러운 태도를 고수하였다. 약속 장소에는 과연 평범한 옷차림의 미청년이 후드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주셨군요.”

  인파 속에 섞여 못 알아볼 법도 한데 저 멀리에서 순식간에 알아보다니.

  “만나게 돼서 기쁩니다, 숙부님.”

  진이 대형견처럼 웃으며 손을 높이 들고 붕붕 흔드는 모습이 어색했다.

  “저를 어떻게 알아보셨죠?”

  “저는 눈이 좀 좋은 편이거든요.”

  “그 눈, 아니, 렌즈? 그건 별도의 생체 테크놀로지인가요?”

  “하하!”

  사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신기하다고 느꼈다. 특수 효과나 기계 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운 문양이었다. 푸른색 보석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반투명한 선들이 직선으로 뻗어 나오다가 직각을 이루며 여러 각도로 꺾여 뻗어나가며 점점 흐릿해지는 모습이었다. 진의 눈은 마치 사이버 세계에서 튀어나온 화신 같아 보였다. 소프트웨어와 현실을 넘나드는 열쇠 같다고 할까?

  “현자의 눈이라고도 합니다.”

  진이 뚱딴지같은 대답을 했다.

  “현자의 눈?”

  윤혁이 눈을 찌푸리자 진이 재빨리 손을 저었다.

  “마법이나 미신이 아니에요.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여러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집적시킨 비밀 무기죠. 수량도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강력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훈련을 해야만 다룰 수 있는 기술이죠. 아버지께서 만든 일급 비법이랍니다.”

  듣자 하니 일종의 초월적인 과학 기술인 모양이었다.

  윤혁도 호기심이 생겼다.

  “현자의 눈은 어떤 능력, 아니 어떤 기능을 다루죠?”

  “다양합니다. 다용도로 쓰일 수 있죠. 보통 저와 같은 동류들은 기본적으로 광역 탐지, 차원의 관측, 움직이는 물체의 흐름을 읽는 반(半) 예지, 기계 시스템의 간섭과 조종, 텔레파시, 최면 등은 기본적으로 다 다룰 수 있죠. 물론 개인별로 특수한 기능도 추가로 달렸고요.”

  거대 시설이 필요한 관측을 압축된 소형 장치만으로 해낼 수 있다니. 조금 감탄스러웠다. 그동안 워낙 괴이한 차원의 기술들을 많이 봐왔기에 이제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제 형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던데?”

  아버지와 아들 관계라니, 이해가 좀처럼 안 되었다.

  “그분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죠?”

  형은 고작 스물여덟 살 아니던가? 아이를 못 갖는 몸이기도 하고.

  “입양되었죠. 일반적인 의미의 입양과는 다르지만요. 주인에게 택함을 받은 부하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물학적인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그분이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거든요.”

  진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동류라고 하셨죠? 비슷한 사람이 더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형제자매들입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이죠.”

  듣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카이젤의 양자라니.

  “그분의 부하 중 양자, 양녀는 우리 일곱이 전부입니다.”

  진이라는 청년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언뜻 듣기에도 몹시 수상했다.

  ‘거기다가 저런 부류가 여섯이나 더 된다고?’

  “이런, 의심하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처음 만난 사이니까요.”

  “경계심이 많은 분이군요. 보통은 이쯤 하면 방심하던데……. 뭐, 상관없죠.”

  진은 나긋나긋하고 친근한 어투로 사람을 갖고 노는 타입이었다.

  “이 만남은 나보단 당신에게 더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그 말에 윤혁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당신에게서 별반 얻을 게 없지만, 당신은 내게 얻을 것이 많다는 거죠.”

  “저는 당신께 요구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만.”

  “그런가요, 하지만 지금 이미 호기심을 품은 것 같습니다만.”

  순간적으로 윤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 그의 의식 속에 떠오른 생각을 상대가 정확히 잡아내었다. 요령껏 찍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생각을 읽었나? 갑자기 형이 떠올랐다. 그도 유독 남의 심리를 잘 간파했었지. 고수라서 그런지 진처럼 티가 나도록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인류연합 대표에 대해, 아니 당신 형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당신께 두 가지 감정이 뒤섞인 것 같군요. 한 가지는 일반적인 가족에 대해 느끼는 따뜻한 정서, 비록 미약하고 흔들리기 쉽지만, 어쨌건 애정이로군요. 아버지가 아시면 뿌듯해하실 수도 있겠어요.”

  생각이 읽히는 상황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로군요.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진이 정말로 자기 생각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지레짐작을 바탕으로 장난을 치는 것인지 의구심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다행히 그의 독심술은 카이젤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녹아든 건 아니었기에 이질감은 있을지언정 은은한 위화감은 덜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은 경솔하게 한 수 더 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분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라고 생각합니까? 혹은 인간이 아닌 것이 서서히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입으로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으면 하군요.”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진은 지금 자신의 무의식까지 꿰뚫는 질문을 서슴지 않고 던져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결론들을 아무런 추론도 없이 알아내는지는 알 턱이 없었다. 혹시 텔레파시나 정신계 기술과 관련이라도 있을까? 진은 점점 심각하게 굳는 윤혁의 표정을 보더니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이런, 이런! 미안합니다. 기분 나쁘게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

  “심리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원리거든요. 자극을 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추론해내는 방식 말이죠.”

  “당신이 마음을 읽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윤혁의 힐난에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단지 관찰일 뿐입니다. 타인의 정신을 정말 진정으로 관통할 방법은 없거든요.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자극을 통한 간단한 장난, 그리고 이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는 간접적인 간파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니 미심쩍었다.

  “그래도 그렇지, 구체적 정보에 추론도 없이 도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심리학자와 저희에겐 결정적인 능력 차이가 있습니다.”

  호쾌했던 진이 진중함으로 자신을 감쌌다.

  “비밀은 바로 뇌에 있죠.”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제 현자의 눈은 인간 뇌의 각 해부학적 부위에서 벌어지는 초 미시 단위의 전기 신호의 미묘한 흐름을 양자 공명을 통해서 일일이 읽을 수 있거든요. 물론 그것을 해석해내는 건 고도의 지혜가 필요하지만요.”

  기가 막힐 노릇의 이야기에 기분이 허탈해졌다.

  “뇌 신호를 읽는다고요?”

  영혼과 마음 자체를 읽는 것은 아니니 물리적으로 영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엄청난 연상량을 거뜬히 감당해낸다는 것은 심히 경악스러웠다. 다시 한번 초인이란 존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윤혁의 관심이 형에게 있음을 안 진은 영악하게 화제를 돌렸다.

  “인간의 정신에는 물리적인 부분뿐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미지의 비물리적인 영역도 함께 존재해서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한 정신 체를 이루어나간다고. 그렇기에 과학의 힘만으로는 아직 인간의 정신을 정복하거나 간파하지 못합니다. 과거보다는 그 ‘비물질적인 영역’의 실체를 조금 더 많이 알게 됐지만, 아직은 수박 겉핥기 수준이죠.”

  신의 존재에 이어 영혼의 존재까지 시인한 카이젤의 과학적, 합리적 증언. 그 사람이 영혼의 존재마저 과학의 힘으로 밝혀낸 건가? 하긴 ‘초인의 정신’의 구동 원리에 관해 설명하면서 암시를 주긴 했었다. 과연 어느 단계, 어느 차원까지 혼의 실체를 파악했을까? 윤혁은 긴장하며 진의 일장 연설에 집중했다.

  “뭐, 그 영역은 과학계 선두에 계신 아버지의 몫이죠. 하지만 일개 물질로 만들어진 ‘뇌’라면 조금 다르죠. 작동 자체는 전자기학과 생리학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거든요. 그러니 저희 수준에서도 충분히 간섭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신 간섭, 그러니까 최면, 조종, 텔레파시 등의 원리입니까.”

  윤혁은 이참에 직접적으로 물어보아 확실시해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말해두죠. 물론 뇌에만 간섭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주 원리가 되는 건 사실이에요.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경험적인 방법이나 초인의 요령으로 메우죠. 이를테면 심리학이라던가 정신과 치료 지식을 응용해서요.”

  진은 본격적으로 화두를 꺼냈다.

  “정신지배와 정신 간섭에 대해 가르쳐드리죠.”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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